"키워드 : 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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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북간도국민회 (北間島國民會)
북간도국민회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직된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이다. 용정(龍井) 3 · 13 만세시위운동 이후 북간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조직한 기독교계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이다. 산하에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여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승리로 이끌었다.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북미대한인국민회 (北美大韓人國民會)
미주 독립운동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후신.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국민회기념관 (國民會紀念館)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1910년 7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서 전개한 경술국치 반대운동.
대한국민회 경술국치 반대운동 (大韓國民會 庚戌國恥 反對運動)
1910년 7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서 전개한 경술국치 반대운동.
독립운동 지원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 멕시코와 쿠바 한인이 펼친 모금 운동을 말한다. 1941년 12월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 사회는 대한인국민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독립성금을 모아 대한인국민회에 보냈다. 광복 이후에도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조국의 난민을 구제하자는 데 뜻을 모아 모금 활동을 계속 펴나갔다. 한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하나로 단결한 대표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범대한인국민회 기부금 운동 (汎大韓人國民會 寄附金 運動)
독립운동 지원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 멕시코와 쿠바 한인이 펼친 모금 운동을 말한다. 1941년 12월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멕시코와 쿠바의 한인 사회는 대한인국민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독립성금을 모아 대한인국민회에 보냈다. 광복 이후에도 대한인국민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조국의 난민을 구제하자는 데 뜻을 모아 모금 활동을 계속 펴나갔다. 한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하나로 단결한 대표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쿠바 하바나(La Habana)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대한인국민회의의 주요 근거지로 사용된 건물. 해외독립운동유적.
아바나 국민회관 (Habana 國民會館)
쿠바 하바나(La Habana)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대한인국민회의의 주요 근거지로 사용된 건물. 해외독립운동유적.
일제강점기 때, 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독립군과 군자금 모집 및 밀정색출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기운 (姜基云)
일제강점기 때, 국민회에서 활동하며 독립군과 군자금 모집 및 밀정색출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공립협회 (共立協會)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민찬호 (閔贊鎬)
민찬호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합성협회, 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소약소국동맹회의와 필라델피아 대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으며, 동지회,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등의 지도자로서 활약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박기영 (朴琪永)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 (朴順天)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희백 (金熙伯)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 등에서 활약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김내범 (金迺範)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구춘선 (具春先)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익희 (申翼熙)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군무위원, 국민보 주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안현경 (安顯景)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군무위원, 국민보 주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미주 본토의 한인사회에서 1910년 국치 직전 한일합병 반대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애국동맹단 (愛國同盟團)
미주 본토의 한인사회에서 1910년 국치 직전 한일합병 반대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