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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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 (朴順天)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신익희 (申翼熙)
신익희는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6년에 사망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이 발표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후 상해로 떠나 26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중책을 맡았다. 귀국 후 임시정부 계통과 노선을 달리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이 되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장면·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고 1956년 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부근 야주현(夜珠峴)에 세워졌던 개화기의 사설극장.
원각사 (圓覺社)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부근 야주현(夜珠峴)에 세워졌던 개화기의 사설극장.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갑성 (李甲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공립협회 (共立協會)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흥업구락부는 1925년 3월 이승만의 독립혁명동지회와 연계되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단체이다. 서울 신흥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흥업구락부가 조직되었으며, 창립회원 대부분은 YMCA와 밀접하게 연관을 가진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이들은 실력양성운동을 수행하였으며,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민족연합전선인 신간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관련자 54명이 체포되었다. 1938년 9월 일제는 ‘흥업구락부 사건’ 관련자에게 ‘전향 성명서’를 받은 후, 이들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하였다.
흥업구락부 (興業俱樂部)
흥업구락부는 1925년 3월 이승만의 독립혁명동지회와 연계되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단체이다. 서울 신흥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흥업구락부가 조직되었으며, 창립회원 대부분은 YMCA와 밀접하게 연관을 가진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이들은 실력양성운동을 수행하였으며,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민족연합전선인 신간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관련자 54명이 체포되었다. 1938년 9월 일제는 ‘흥업구락부 사건’ 관련자에게 ‘전향 성명서’를 받은 후, 이들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하였다.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한인합성협회 (韓人合成協會)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9월 2일 미국 하와이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미국 한인사회는 1907년 무렵까지 약 20개 이상의 항일운동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07년 8월 말, 하와이 각 지역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가 합동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였다.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종림 (金鐘林)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LA 도산 안창호 거리 (LA 島山 安昌浩 거리)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쿠바 한인회 (Cuba 韓人會)
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와 서북학회, 무관학교 등을 창설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갑 (李甲)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와 서북학회, 무관학교 등을 창설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와 신민회를 창설하였고, 대동공보 편집책임, 임시정부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이강 (李剛)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와 신민회를 창설하였고, 대동공보 편집책임, 임시정부의정원 의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원용 (金元容)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 청산학교를 설립하고, 조선독립청년단과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장일환 (張日煥)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 청산학교를 설립하고, 조선독립청년단과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4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진영 주도로 신탁통치 반대를 표방하며 결성된 대중단체 연대조직.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信託統治反對國民總動員委員會)
194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진영 주도로 신탁통치 반대를 표방하며 결성된 대중단체 연대조직.
차경신은 일제강점기 때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평북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선천읍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졸업하고 강계 명신여학교와 함흥 영생학교, 원산 진성여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한국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선천지역 3.1운동을 주도하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독립운동과 구제사업에 힘썼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차경신 (車敬信)
차경신은 일제강점기 때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평북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선천읍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졸업하고 강계 명신여학교와 함흥 영생학교, 원산 진성여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일본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한국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선천지역 3.1운동을 주도하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독립운동과 구제사업에 힘썼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島山 安昌浩 記念館)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