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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나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49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거나 변화된 사실을 반영하였다.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나주목읍지』와 1897년의 『금성읍지』, 연대 미상의 『나주군읍지』 등 나주군에 대한 읍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나주군읍지 (羅州邑誌)
『나주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나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49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거나 변화된 사실을 반영하였다.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나주목읍지』와 1897년의 『금성읍지』, 연대 미상의 『나주군읍지』 등 나주군에 대한 읍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나주 덕산리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백제의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나주 반남고분군에 속한다. 10여 기의 고분 중 5기가 조사되었다. 3호분에서 쇠화살촉, 쇠못, 은제옥, 금동장식금구편 등이 나오고, 5호분에서 큰칼, 금제품, 옥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들은 하나의 봉토 안에 2∼3개의 큰 항아리를 맞붙여 무덤 곽을 만드는 형태로 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동쪽이 원형, 서쪽이 방형인 제2호분의 봉토 모양으로, 일본의 전방후원식 고분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세기 말경 백제 시대 마한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나주 덕산리 고분군 (羅州 德山里 古墳群)
나주 덕산리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백제의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나주 반남고분군에 속한다. 10여 기의 고분 중 5기가 조사되었다. 3호분에서 쇠화살촉, 쇠못, 은제옥, 금동장식금구편 등이 나오고, 5호분에서 큰칼, 금제품, 옥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들은 하나의 봉토 안에 2∼3개의 큰 항아리를 맞붙여 무덤 곽을 만드는 형태로 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동쪽이 원형, 서쪽이 방형인 제2호분의 봉토 모양으로, 일본의 전방후원식 고분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세기 말경 백제 시대 마한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의 금동관이다.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공주 도읍 시기에 영산강 지역을 다스리던 수장묘에서 출토되었다. 수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관의 관테는 너비 3㎝의 길죽한 금동판을 휘어서 모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풀꽃 모양 세움장식 3개를 별도로 만들어 안쪽에 고정하였다. 이 금동관은 현존하는 백제 관 중에서 내관과 외관이 결합된 유일한 예이다. 금도금한 구리판을 오리고 붙여 화려하게 꾸민 수작이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 (羅州 新村里 金銅冠)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의 금동관이다.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공주 도읍 시기에 영산강 지역을 다스리던 수장묘에서 출토되었다. 수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관의 관테는 너비 3㎝의 길죽한 금동판을 휘어서 모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풀꽃 모양 세움장식 3개를 별도로 만들어 안쪽에 고정하였다. 이 금동관은 현존하는 백제 관 중에서 내관과 외관이 결합된 유일한 예이다. 금도금한 구리판을 오리고 붙여 화려하게 꾸민 수작이다.
나주읍성은 고려 후기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시대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개·보수가 이루어진 성곽이다. 나주읍성은 객사가 있는 성북동 일대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이후 동측과 북측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현재 동·서·북 문지 일대와 금성관 일대 조사 결과,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자료들이 확인되고 있다. 나주읍성은 고려 후기에 토성으로 만들어져 조선 시대 때 석축성으로 변화하면서 크게 증축되었다.
나주읍성 (羅州邑城)
나주읍성은 고려 후기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시대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개·보수가 이루어진 성곽이다. 나주읍성은 객사가 있는 성북동 일대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이후 동측과 북측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현재 동·서·북 문지 일대와 금성관 일대 조사 결과,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자료들이 확인되고 있다. 나주읍성은 고려 후기에 토성으로 만들어져 조선 시대 때 석축성으로 변화하면서 크게 증축되었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외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나주초등학교 (羅州初等學校)
전라남도 나주시 남외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문묘와 학교. 유교건축.
나주향교 대성전 (羅州鄕校 大成殿)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문묘와 학교. 유교건축.
나주호(羅州湖)는 1976년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판촌리에 조성된 인공 호수이다. 이 호수는 나주댐의 건설로 형성되었으며, 호수에서 방류된 물은 대초천, 지석천을 지나 영산강으로 흐른다. 주변에 고인돌 등의 역사 유물 및 운주사 등의 사찰과 수려한 자연 경관 등의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나주호는 나주호관광단지가 조성되면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나주호 (羅州湖)
나주호(羅州湖)는 1976년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판촌리에 조성된 인공 호수이다. 이 호수는 나주댐의 건설로 형성되었으며, 호수에서 방류된 물은 대초천, 지석천을 지나 영산강으로 흐른다. 주변에 고인돌 등의 역사 유물 및 운주사 등의 사찰과 수려한 자연 경관 등의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나주호는 나주호관광단지가 조성되면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에 있는 고려후기 승려 원진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 부도.
나주 불회사 원진국사 부도 (羅州 佛會寺 圓眞國師 浮屠)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에 있는 고려후기 승려 원진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 부도.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에 소재한 호랑가시나무.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羅州 上方里 虎狼가시나무)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에 소재한 호랑가시나무.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공립중학교.
나주금천중학교 (羅州錦川中學校)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공립중학교.
1626년 무렵에 전라도 나주에서 갑인자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목활자. 나주목활자.
나주자 (羅州字)
1626년 무렵에 전라도 나주에서 갑인자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목활자. 나주목활자.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동에 있는 공립중학교.
나주중학교 (羅主中學校)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동에 있는 공립중학교.
전라남도 무안 지역의 옛 지명.
물내혜 (勿柰兮)
전라남도 무안 지역의 옛 지명.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하였으며, 신덕순 의진, 유병기 의진 등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율 (金聿)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하였으며, 신덕순 의진, 유병기 의진 등에서 활동한 의병장.
고려 후기에, 나주사록을 역임하여 삼별초의 난에 대항한 문신.
김응덕 (金應德)
고려 후기에, 나주사록을 역임하여 삼별초의 난에 대항한 문신.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금성전투 (錦城戰鬪)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대한제국기 이병수가 전라도 나주지방 유생들의 창의 사실을 기록한 의병록.
금성정의록 (錦城正義錄)
대한제국기 이병수가 전라도 나주지방 유생들의 창의 사실을 기록한 의병록.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었던 나루터.
벽파진 (碧波津)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었던 나루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옛 지명.
능주 (綾州)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옛 지명.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에게 제거되었다.
능창 (能昌)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에게 제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