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내의원"
검색결과 총 16건
내의(內醫)는 조선시대, 내의원에 소속된 당하관(堂下官) 의원이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으며, 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나 존경하는 학자가 병에 걸렸을 때 왕명을 받고 가서 질병을 돌보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공이 있는 자들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일이 많았으며, 중인이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매우 높았다.
내의 (內醫)
내의(內醫)는 조선시대, 내의원에 소속된 당하관(堂下官) 의원이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으며, 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나 존경하는 학자가 병에 걸렸을 때 왕명을 받고 가서 질병을 돌보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공이 있는 자들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일이 많았으며, 중인이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매우 높았다.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부봉사 (副奉事)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수의는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당상(堂上) 의관인 어의(御醫) 가운데 가장 중요한 최고 책임 의원이다. 신분은 중인이었지만 매우 높은 처우를 받았다. 수의는 중요한 의원 가문이 역임하였고, 지방 수령으로 파견되는 비중도 높았다.
수의 (首醫)
수의는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당상(堂上) 의관인 어의(御醫) 가운데 가장 중요한 최고 책임 의원이다. 신분은 중인이었지만 매우 높은 처우를 받았다. 수의는 중요한 의원 가문이 역임하였고, 지방 수령으로 파견되는 비중도 높았다.
승후관(承候官)은 조선 후기에 왕실 인사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임시로 만든 관직이다. 1809년(순조 9) 기록에서 처음 확인되지만 이전부터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국왕, 대비, 왕비, 세자 등 왕실 인사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설치되어 지근에서 직접 진료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왕비의 출산과 관련해서 정례적으로 설치하였지만 이후로는 대비나 왕비, 세자빈 등 왕실 여성들의 건강이 악화되면 설치하였다. 1910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승후관 (承候官)
승후관(承候官)은 조선 후기에 왕실 인사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임시로 만든 관직이다. 1809년(순조 9) 기록에서 처음 확인되지만 이전부터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국왕, 대비, 왕비, 세자 등 왕실 인사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설치되어 지근에서 직접 진료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왕비의 출산과 관련해서 정례적으로 설치하였지만 이후로는 대비나 왕비, 세자빈 등 왕실 여성들의 건강이 악화되면 설치하였다. 1910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조선시대 전의감(典醫監)·내의원(內醫院)·혜민서(惠民署) 소속의 의관을 뽑기 위하여 시행하였던 잡과시험.
의과 (醫科)
조선시대 전의감(典醫監)·내의원(內醫院)·혜민서(惠民署) 소속의 의관을 뽑기 위하여 시행하였던 잡과시험.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의관.
의약동참 (醫藥同參)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의관.
조선 말기 왕실의 의무를 주관하였던 관서.
태의원 (太醫院)
조선 말기 왕실의 의무를 주관하였던 관서.
조선 말기에 왕의 질병과 약을 담당하였던 관서.
전의사 (典醫司)
조선 말기에 왕의 질병과 약을 담당하였던 관서.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첨정 (僉正)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조선시대 각 관서의 전곡·비품 등의 출납실무를 주관하던 종7품 관직.
직장 (直長)
조선시대 각 관서의 전곡·비품 등의 출납실무를 주관하던 종7품 관직.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 등 여러 관서의 정·종3품 관직.
제거 (提擧)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 등 여러 관서의 정·종3품 관직.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의 침구에 관한 저술로 1581년에 편찬한 의서.
찬도방론맥결집성 권1, 3 (三|纂圖方論脈訣集成 卷一)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의 침구에 관한 저술로 1581년에 편찬한 의서.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이 선조의 명으로 저술한 의서. 한의학서.
동의보감 (東醫寶鑑)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이 선조의 명으로 저술한 의서. 한의학서.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이 두역 처방에 관해 서술하여 1608년에 간행한 의서. 한의학서.
언해두창집요 (諺解痘瘡集要)
조선시대 의학자 허준이 두역 처방에 관해 서술하여 1608년에 간행한 의서. 한의학서.
허준은 조선시대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을 저술한 의관, 의학자이다. 1539년(중종 34)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했다. 1571년(선조 4)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했고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쳐 종1품에 올랐다.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으며 풀려난 후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삶을 마쳤다. 어의로 재직하면서 내의원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고, 유배생활 중에 역작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허준 (許浚)
허준은 조선시대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을 저술한 의관, 의학자이다. 1539년(중종 34)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했다. 1571년(선조 4)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했고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쳐 종1품에 올랐다.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으며 풀려난 후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삶을 마쳤다. 어의로 재직하면서 내의원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고, 유배생활 중에 역작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이공기 (李公沂)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