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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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순종 (純宗)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대한국국제 (大韓國國制)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궁내부 (宮內府)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이다. 일본은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D.W.Stevens)를 파견하였다. 그 밖에 궁내부 고문, 경무 고문, 법부 고문, 군부 고문, 학정(學政) 참여관, 광산 고문을 비롯하여 보좌관, 교관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일본인 고문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고문정치 (顧問政治)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이다. 일본은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D.W.Stevens)를 파견하였다. 그 밖에 궁내부 고문, 경무 고문, 법부 고문, 군부 고문, 학정(學政) 참여관, 광산 고문을 비롯하여 보좌관, 교관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일본인 고문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법규교정소는 1899년(광무 3), 대한제국의 법규 개정을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와 구제도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1897년에 설치한 교전소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된 후 1899년 6월,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었다. 8월 17일 법규교정소에서 마련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가 반포되었다.
법규교정소 (法規校正所)
법규교정소는 1899년(광무 3), 대한제국의 법규 개정을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갑오개혁 이후의 신제도와 구제도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1897년에 설치한 교전소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된 후 1899년 6월, 다시 법규교정소가 설치되었다. 8월 17일 법규교정소에서 마련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가 반포되었다.
내장원(內藏院)은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갑오개혁으로 국가 재정과 왕실 재정이 분리되면서 왕실 재정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황제권 강화와 함께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관리하면서 근대적인 사업에도 관여하였다. 1905년 이후 일제의 황실 재정 정리 과정에서 내장원은 폐지되고 경리원이 설치되었다.
내장원 (內藏院)
내장원(內藏院)은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갑오개혁으로 국가 재정과 왕실 재정이 분리되면서 왕실 재정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황제권 강화와 함께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관리하면서 근대적인 사업에도 관여하였다. 1905년 이후 일제의 황실 재정 정리 과정에서 내장원은 폐지되고 경리원이 설치되었다.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 (光武)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황제 (皇帝)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융희 (隆熙)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駐美大韓帝國公使館)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철근콘크리트조의 건물로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건물. 해양시설.
팔미도 등대 (八尾島 燈臺)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철근콘크리트조의 건물로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건물. 해양시설.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수민원 (綏民院)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1876년 2월에서 1906년 2월까지 외부(外部)와 서울주재 각국 외교대표부 사이에 오고간 문서. 외교문서.
구한국외교문서 (舊韓國外交文書)
1876년 2월에서 1906년 2월까지 외부(外部)와 서울주재 각국 외교대표부 사이에 오고간 문서. 외교문서.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영선사 (營繕司)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고종초상은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이다. 보스는 네덜란드인으로 1898년 조선에 들어와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본을 그린 후 하나는 조선 왕실에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파리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가지고 갔는데 현존하는 것은 박람회 출품본이다. 초상화는 장막이 드리워진 배경으로 고종이 황룡포를 입고 궁궐 마루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등신대의 전신 입상이다. 양식 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작품 중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왕의 초상이자 최초의 서양화이다.
고종 초상 (高宗 肖像)
고종초상은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이다. 보스는 네덜란드인으로 1898년 조선에 들어와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본을 그린 후 하나는 조선 왕실에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파리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가지고 갔는데 현존하는 것은 박람회 출품본이다. 초상화는 장막이 드리워진 배경으로 고종이 황룡포를 입고 궁궐 마루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등신대의 전신 입상이다. 양식 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작품 중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왕의 초상이자 최초의 서양화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내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이다. 1992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여 본격적으로 왕실 유물을 관리·전시·연구·보존하다가 2005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국립고궁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상설전시실은 총 3개층 12개실로 2층에는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1층에는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지하층에는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실, 자격루실 등이 있다. 왕실 유물의 체계적, 종합적 연구와 수집, 보존으로 왕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國立古宮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내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이다. 1992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여 본격적으로 왕실 유물을 관리·전시·연구·보존하다가 2005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국립고궁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상설전시실은 총 3개층 12개실로 2층에는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1층에는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지하층에는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실, 자격루실 등이 있다. 왕실 유물의 체계적, 종합적 연구와 수집, 보존으로 왕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예식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대외 교섭과 예식, 황제의 친서(親書) · 국서(國書)를 담당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의정부 산하의 외부(外部)와 별도로 황제와 직접 관련된 교섭 및 예식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되었다. 황제의 친서 · 국서를 작성하고 외국 문서를 번역하는 업무도 담당하였다.
예식원 (禮式院)
예식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대외 교섭과 예식, 황제의 친서(親書) · 국서(國書)를 담당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의정부 산하의 외부(外部)와 별도로 황제와 직접 관련된 교섭 및 예식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되었다. 황제의 친서 · 국서를 작성하고 외국 문서를 번역하는 업무도 담당하였다.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
만수성절 (萬壽聖節)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