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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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駐美大韓帝國公使館)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로 미국 국가사적지이다. 16년 동안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이 미국 국무차관이였던 브라운에게 구입하였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이 건물은 로간 서클에 있던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중에서 외관이 뛰어났다고 알려졌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궁내부 (宮內府)
궁내부는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에 관한 관서들을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개화파와 일본은 왕조시대에 국가와 일체로 생각하였던 왕실을 국정 업무와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고 왕실이 정무에 관여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기에 황제권이 강화되면서 궁내부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핵심기구로 부상하였고, 각종 근대화 사업 기구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5년 이후 일본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다시 궁내부를 대폭 축소하였다.
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박문원 (博文院)
박문원은 대한제국시대에 국내외의 도서 · 신문 · 잡지 등을 보관 ·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갑오개혁 때 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설치한 궁내부는 대한제국시대에 오히려 강화된 황제권의 실현기구로 변모하였다. 궁내부가 대폭 확대되는 과정에서 1903년 1월에 박문원이 설립되었다. 1904년 1월, 예식원(禮式院) 박문과(博文課)로 축소 · 개편되었다.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관제이정소 (官制釐整所)
관제이정소는 1904년 10월, 일본이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탁지부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와 농상공부 고문인 가토 마스오가 주도하여 대한제국의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관원 수를 감축하면서 군부도 축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황제권을 제한하기 위해 대한제국기에 확대된 궁내부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05년 2월, 군부 관제 개정을 시작으로 의정부, 표훈원, 중추원을 비롯한 각부 관제가 일제히 개정되었고, 3월에는 궁내부 관제가 개정되었다.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 (光武)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광무개혁 (光武改革)
광무개혁은 대한제국 시기에 광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개혁이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 재위시절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따라 광무개혁이라 한다. 대한제국은 자주 · 자강의 근대적 주권 국가를 지향하며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적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으나, 개혁의 성격과 성과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광무개혁 논쟁’이 있었다.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대한국국제 (大韓國國制)
대한국국제는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제국의 국제(國制)이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으로서 근대적 주권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대내적으로 황제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1899년 6월에 설립된 법규교정소에서 작성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반포하였다.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
만수성절 (萬壽聖節)
1897년에 제정된 고종의 탄신일(誕辰日).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계천기원절 (繼天紀元節)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1876년 2월에서 1906년 2월까지 외부(外部)와 서울주재 각국 외교대표부 사이에 오고간 문서. 외교문서.
구한국외교문서 (舊韓國外交文書)
1876년 2월에서 1906년 2월까지 외부(外部)와 서울주재 각국 외교대표부 사이에 오고간 문서. 외교문서.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이다. 일본은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D.W.Stevens)를 파견하였다. 그 밖에 궁내부 고문, 경무 고문, 법부 고문, 군부 고문, 학정(學政) 참여관, 광산 고문을 비롯하여 보좌관, 교관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일본인 고문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고문정치 (顧問政治)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이다. 일본은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D.W.Stevens)를 파견하였다. 그 밖에 궁내부 고문, 경무 고문, 법부 고문, 군부 고문, 학정(學政) 참여관, 광산 고문을 비롯하여 보좌관, 교관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일본인 고문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순종 (純宗)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어공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버려진 제언(堤堰)이나 어장(漁場)을 관리해서 어공(御供)에 바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된 관서이다.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어업권 침탈에 맞서 궁내부가 이들 재원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5월 19일 신설하였으나, 7월 30일에 곧 폐지되었다.
어공원 (御供院)
어공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버려진 제언(堤堰)이나 어장(漁場)을 관리해서 어공(御供)에 바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된 관서이다.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어업권 침탈에 맞서 궁내부가 이들 재원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5월 19일 신설하였으나, 7월 30일에 곧 폐지되었다.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영선사 (營繕司)
영선사는 갑오개혁 때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왕실 관련 토목 공사와 건축, 수리 업무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조선시대 관영 건축을 담당했던 공조(工曹) 산하 선공감(繕工監)의 업무를 계승하였다. 1895년 4월 2일, 궁내부 제용원(濟用院) 산하에 설치되었다가, 11월 10일 제용원 폐지로 궁내부 직속의 독립 관서가 되었다.
수륜원(水輪院)은 대한제국기에 수륜(水輪), 제언(堤堰) 등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진황지(陳荒地)를 개간하는 업무를 맡은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899년(광무 3) 1월에 궁내부 내장사 소속 수륜과로 설치되었으나, 8월에 내장사가 내장원이 되면서 독립하여 궁내부 직속이 되었다. 1902년(광무 6) 4월에 수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904년(광무 8) 1월 11일에 폐지되었다.
수륜원 (水輪院)
수륜원(水輪院)은 대한제국기에 수륜(水輪), 제언(堤堰) 등 관개시설을 설치하여 진황지(陳荒地)를 개간하는 업무를 맡은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899년(광무 3) 1월에 궁내부 내장사 소속 수륜과로 설치되었으나, 8월에 내장사가 내장원이 되면서 독립하여 궁내부 직속이 되었다. 1902년(광무 6) 4월에 수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1904년(광무 8) 1월 11일에 폐지되었다.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수민원 (綏民院)
수민원(綏民院)은 대한제국기에 해외여행권 발급 업무를 관장하던 궁내부 산하의 관서이다. 1902년 11월 16일에 설치되었고, 총 21조로 이루어진 「수민원규칙」도 마련되었다. 수학(修學), 유람, 농공상업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사람에게 여행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여행 목적을 엄격히 심사하여 규칙에 위반되지 않으면 허락하였다.
대한제국 때 장례원(掌禮院)에 둔 관직.
좌장례 (左掌禮)
대한제국 때 장례원(掌禮院)에 둔 관직.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융희 (隆熙)
융희(隆熙)는 대한제국기에 순종황제 재위 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다. 1907년 8월 3일부터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었음을 알리는 병합칙유(勅諭)를 발표한 1910년 8월 29일까지 사용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후 순종이 공식적으로 즉위식을 하기 전에 새 연호가 융희로 제정되어 고종 퇴위를 기정사실화하였다.
특진관은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부에 설치되어 전례나 의식에 관한 자문을 담당하던 관직이다. 1894년 7월22일에 제정된 궁내부 관제가 1895년에 내각제를 도입한 뒤 4월 2일에 관제를 개정하면서 더욱 축소되자, 왕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5월 1일에 특진관 제도를 신설하였다.
특진관 (特進官)
특진관은 갑오개혁 때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부에 설치되어 전례나 의식에 관한 자문을 담당하던 관직이다. 1894년 7월22일에 제정된 궁내부 관제가 1895년에 내각제를 도입한 뒤 4월 2일에 관제를 개정하면서 더욱 축소되자, 왕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5월 1일에 특진관 제도를 신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