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에 대외 교섭과 예식, 황제의 친서(親書) · 국서(國書) 관련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궁내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1900년 12월 16일, 궁내부 외사과(外事課)와 번역과를 폐지하는 대신 예식원을 설치하였다. 궁내의 교섭과 일체의 예식, 친서(親署), 국서(國書) 및 외국 문서의 번역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관원 구성을 보면 장(長) 1인, 부장(副長) 1인은 칙임관(勅任官)으로, 외무과장 · 번역과장 각 1인, 참리관(叅理官) 6인, 번역관 3인은 주임관(奏任官)으로, 주사 5인, 번역관보 5인은 판임관(判任官)으로 임명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 서양 각국과 교섭 업무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예식을 관장하는 궁내부 장례원(掌禮院) 외에 근대적인 교섭 예식과 황제의 친서 · 국서 등을 담당하는 예식원 설치가 필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식원 설치 직후인 12월 28일, 궁내부 찬의관(贊議官) 미국인 샌즈(W.Sands)를 예식원 찬무(贊務)로 겸임시킨 것도 이러한 필요에서였다.
1902년에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예식 준비도 의정부와 더불어 궁내부 예식원과 장례원이 함께 준비하게 하였다. 각국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근대적인 국제행사로 즉위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예식원의 준비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에 예식원 번역과장은 프랑스어학교 출신의 현상건(玄尙健)이었다. 이후 1903년 1월 11일, 궁내부 박문원(博文院)이 폐지되면서 국내외 각종 도서와 신문, 잡지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박문과(博文課)도 예식원에 소속되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에서 궁내부가 축소되면서 1906년 8월 23일에 예식원은 폐지되고, 궁내부에 예식과를 두는 것으로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