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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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노비소송을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서.
노비변정도감 (奴婢辨正都監)
조선 초기 노비소송을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서.
노비추쇄도감은 조선시대 공노비로서 도망자와 은루자(隱漏者) 또는 불법으로 양인이 된 자를 색출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이다. 공노비가 도망가거나 천적(賤籍)에 등재되는 것을 기피하여 공노비의 수효가 감소하자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경국대전』에는 3년마다 추쇄해 속안(續案)을, 20년마다 정안(正案)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요되는 기간이 오래 걸려서 실제로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왜란과 호란 이후에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1655년에 노비를 추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801년 공노비를 혁파할 때까지 전국적인 추쇄를 위해 설치된 적은 없었다.
노비추쇄도감 (奴婢推刷都監)
노비추쇄도감은 조선시대 공노비로서 도망자와 은루자(隱漏者) 또는 불법으로 양인이 된 자를 색출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이다. 공노비가 도망가거나 천적(賤籍)에 등재되는 것을 기피하여 공노비의 수효가 감소하자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경국대전』에는 3년마다 추쇄해 속안(續案)을, 20년마다 정안(正案)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요되는 기간이 오래 걸려서 실제로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왜란과 호란 이후에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1655년에 노비를 추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801년 공노비를 혁파할 때까지 전국적인 추쇄를 위해 설치된 적은 없었다.
조선시대 도성내에 개천공사를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개천도감 (開川都監)
조선시대 도성내에 개천공사를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조선 후기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복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복위도감 (復位都監)
조선 후기 폐위된 단종의 왕위를 복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고려시대 질병환자의 치료 및 병사자의 매장을 관장하던 임시관서.
구제도감 (救濟都監)
고려시대 질병환자의 치료 및 병사자의 매장을 관장하던 임시관서.
고려 후기에 설치된 임시관청.
국신도감 (國贐都監)
고려 후기에 설치된 임시관청.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침을 조성을 관장하였던 임시 관서.
산릉도감 (山陵都監)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침을 조성을 관장하였던 임시 관서.
고려 문종 때 율령 책정을 목적으로 설치된 관서.
산정도감 (刪定都監)
고려 문종 때 율령 책정을 목적으로 설치된 관서.
고려시대 궁궐의 창건과 수리를 관장하던 관서.
궁궐도감 (宮闕都監)
고려시대 궁궐의 창건과 수리를 관장하던 관서.
고려시대의 임시 관청.
수양도감 (輸養都監)
고려시대의 임시 관청.
고려 후기에 두었던 임시 관사(官司).
숭복도감 (崇福都監)
고려 후기에 두었던 임시 관사(官司).
어용모사도감은 어진 제작 시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설치했던 임시 관서이다. 왕실에서는 국가의 번창을 위해 임금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체계적인 제작을 위해 때로 도감이 설치되었다. 도감이 설치된 경우는 1713년 숙종어진도사 때 외에 4번이 더 있었다. 도감에는 도제조 1인, 제조 3인, 도청 2인 등이 있는데 시기에 따라 인원은 약간씩 다르다. 어진 제작을 담당할 어용화사는 당대의 화가 중 초상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자들을 뽑았다. 어진은 초본 제작 후 미진한 부분을 수정·보완하여 완성하고, 표제를 한 후에 진전에 봉안한다.
어용모사도감 (御容模寫都監)
어용모사도감은 어진 제작 시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설치했던 임시 관서이다. 왕실에서는 국가의 번창을 위해 임금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체계적인 제작을 위해 때로 도감이 설치되었다. 도감이 설치된 경우는 1713년 숙종어진도사 때 외에 4번이 더 있었다. 도감에는 도제조 1인, 제조 3인, 도청 2인 등이 있는데 시기에 따라 인원은 약간씩 다르다. 어진 제작을 담당할 어용화사는 당대의 화가 중 초상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자들을 뽑았다. 어진은 초본 제작 후 미진한 부분을 수정·보완하여 완성하고, 표제를 한 후에 진전에 봉안한다.
악기도감은 조선시대 궁중 의례에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었던 임시 기구의 대표 명칭이다. 주악에 필요한 기물을 뜻하는 ‘악기’와 국가의 임시 기구라는 뜻의 ‘도감’을 합친 말로서 국가의 악기 제작 기구를 가리키는 대표 명칭이며, 악기를 만드는(造成) ‘도감’이라는 뜻에서 ‘악기조성도감(樂器造成都監)’이라고도 했다. 한편, 특정 시기의 악기 제작 기관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악기도감 (樂器都監)
악기도감은 조선시대 궁중 의례에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었던 임시 기구의 대표 명칭이다. 주악에 필요한 기물을 뜻하는 ‘악기’와 국가의 임시 기구라는 뜻의 ‘도감’을 합친 말로서 국가의 악기 제작 기구를 가리키는 대표 명칭이며, 악기를 만드는(造成) ‘도감’이라는 뜻에서 ‘악기조성도감(樂器造成都監)’이라고도 했다. 한편, 특정 시기의 악기 제작 기관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군기(軍器)를 관장하던 임시관청.
융기도감 (戎器都監)
고려시대 군기(軍器)를 관장하던 임시관청.
고려 후기 노비의 추변(推辨)을 관장하던 임시관서.
인물추고도감 (人物推考都監)
고려 후기 노비의 추변(推辨)을 관장하던 임시관서.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전민변정도감 (田民辨整都監)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에 권세가의 대토지 불법 소유 및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고려 후기에 토지 침탈과 백성의 궁핍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1269년(원종 10)에 처음 설치된 기구였다. 이후 1288년(충렬왕 14), 1301년(충렬왕 27), 1352년(공민왕 1), 1366년(공민왕 15), 1381년(우왕 7), 1388년(우왕 14)에도 역시 토지와 백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설치되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전보도감 (典寶都監)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고려시대 불경 보관함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서.
전함조성도감 (鈿函造成都監)
고려시대 불경 보관함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임시관서.
고려 후기에 토지 분급을 위해 설치한 관서.
절급도감 (折給都監)
고려 후기에 토지 분급을 위해 설치한 관서.
장경도감(藏經都監)은 고려시대 대장경이나 교장 등을 목판에 새기고 인출하기 위해 만든 임시 관청이다. 도감(都監)은 특정 목적을 위해 설치하는 임시 관청으로, 경전을 판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였다. 의천의 속장경 간행을 위한 교장도감(敎藏都監)과 재조대장경 판각을 위해 설치했던 대장도감(大藏都監)이 이에 해당된다.
장경도감 (藏經都監)
장경도감(藏經都監)은 고려시대 대장경이나 교장 등을 목판에 새기고 인출하기 위해 만든 임시 관청이다. 도감(都監)은 특정 목적을 위해 설치하는 임시 관청으로, 경전을 판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였다. 의천의 속장경 간행을 위한 교장도감(敎藏都監)과 재조대장경 판각을 위해 설치했던 대장도감(大藏都監)이 이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