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도화서_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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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단청 (丹靑)
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사(畵師).
어진화사 (御眞畵師)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사(畵師).
조선후기 「강산무진도」, 「송하담소도」, 「하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이인문 (李寅文)
조선후기 「강산무진도」, 「송하담소도」, 「하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도화서에서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이다. 1783년(정조 7)에 규장각 잡직으로 제도화되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을 상대로 한 공개 시험으로 선발했다. 시험은 인물, 산수, 누각, 초충 등 총 8과목이다. 1881년까지 약 100년간의 운영 상황 기록이 규장각 일지 『내각일력』에 남아 있다. 신한평·김홍도·김득신 등 대표적인 화원 화가들이 차비대령화원을 역임했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화단의 변화를 제도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차비대령화원 (差備待令畵員)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도화서에서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이다. 1783년(정조 7)에 규장각 잡직으로 제도화되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을 상대로 한 공개 시험으로 선발했다. 시험은 인물, 산수, 누각, 초충 등 총 8과목이다. 1881년까지 약 100년간의 운영 상황 기록이 규장각 일지 『내각일력』에 남아 있다. 신한평·김홍도·김득신 등 대표적인 화원 화가들이 차비대령화원을 역임했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화단의 변화를 제도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조선전기 「설경산수도」, 「미법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이정근 (李正根)
조선전기 「설경산수도」, 「미법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종8품 잡직.
화사 (畵史)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종8품 잡직.
조선시대 도화서의 종6품 관직.
선화 (善畵)
조선시대 도화서의 종6품 관직.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종9품 잡직.
회사 (繪史)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종9품 잡직.
조선시대 도화서의 종7품 관직.
선회 (善繪)
조선시대 도화서의 종7품 관직.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김수규 (金壽奎)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김양신은 조선 후기에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이다. 1765년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응리, 큰아버지는 김응환이다. 형인 김득신과 김석신, 아들 김순종과 김은종, 손자 김제무까지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사실로 보아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김양신 (金良臣)
김양신은 조선 후기에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화원이다. 1765년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미상이다. 조선 후기에 여러 화원을 배출한 개성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응리, 큰아버지는 김응환이다. 형인 김득신과 김석신, 아들 김순종과 김은종, 손자 김제무까지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했다. 도화서 교수를 역임한 사실로 보아 화격이 있는 그림을 제작했을 것 같으나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김유성은 조선 후기에 통신사를 수행하여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1757년에 수종화사로서 어진을 중수한 기록이 있고, 1763년에 참여한 계미통신사행에는 정3품 절충장군으로 차출되어 조선 문화를 선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본 현지의 지식인들에게 회화의 정통을 지녔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금강산도」가 있다.
김유성 (金有聲)
김유성은 조선 후기에 통신사를 수행하여 활동한 도화서 화원이다. 1757년에 수종화사로서 어진을 중수한 기록이 있고, 1763년에 참여한 계미통신사행에는 정3품 절충장군으로 차출되어 조선 문화를 선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본 현지의 지식인들에게 회화의 정통을 지녔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금강산도」가 있다.
김응환은 조선 후기에 『해악전도첩』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1783년(정조 7) 윤 3월 정조가 규장각 소속 차비대령화원을 선발할 때 영조 연간부터 차비대령화원이었던 김응환은 시험 없이 원차비대령화원으로 차정되어 1788년(정조 12)까지 5년 동안 봉직했다. 1788년(정조 12) 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영동 9군과 금강산을 주유하며 사경을 수행하여 『해악전도첩』을 완성했다. 주로 산수화를 남겼다.
김응환 (金應煥)
김응환은 조선 후기에 『해악전도첩』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1783년(정조 7) 윤 3월 정조가 규장각 소속 차비대령화원을 선발할 때 영조 연간부터 차비대령화원이었던 김응환은 시험 없이 원차비대령화원으로 차정되어 1788년(정조 12)까지 5년 동안 봉직했다. 1788년(정조 12) 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영동 9군과 금강산을 주유하며 사경을 수행하여 『해악전도첩』을 완성했다. 주로 산수화를 남겼다.
김건종은 조선 후기에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178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화업에 종사한 주요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호리건곤도」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김건종 (金建種)
김건종은 조선 후기에 순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고 도석인물화 「호리건곤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1781년에 태어나 1841년에 사망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화업에 종사한 주요 화원 가문인 개성 김씨 출신이다. 「호리건곤도」 1점이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김두량 (金斗樑)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유성업은 1617년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17세기 초 궁중 행사에 여러 차례 차출되었다. 간송미술관 소장 「부상관일」이 그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작은 크기의 비단에 그려진 청록산수화로, 조선 중기 절파 화풍보다 고식의 표현을 보여준다.
유성업 (柳成業)
유성업은 1617년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17세기 초 궁중 행사에 여러 차례 차출되었다. 간송미술관 소장 「부상관일」이 그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작은 크기의 비단에 그려진 청록산수화로, 조선 중기 절파 화풍보다 고식의 표현을 보여준다.
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박기준 (朴基駿)
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박유성은 조선 후기에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우가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도해를 맡았으며, 정조 국장에는 산릉도감에 속하여 석각을 담당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인문, 김홍도와 교유하였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박유성 (朴維城)
박유성은 조선 후기에 「서금도」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우가 역관을 지낸 중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도해를 맡았으며, 정조 국장에는 산릉도감에 속하여 석각을 담당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인문, 김홍도와 교유하였다. 1816년에 그린 「서금도」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
함제건 (咸悌健)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
백은배는 조선 후기에 「신선도」, 「해상군선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을 여러 명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조선 철종부터 고종 시대까지 도화서에서 활동하였다. 도화서 자비대령화원으로 30여 년 동안 봉직하면서 녹취재에 꾸준히 응시하였고, 국장도감, 어진 도사 등에 참여했다.
백은배 (白殷培)
백은배는 조선 후기에 「신선도」, 「해상군선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화원을 여러 명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조선 철종부터 고종 시대까지 도화서에서 활동하였다. 도화서 자비대령화원으로 30여 년 동안 봉직하면서 녹취재에 꾸준히 응시하였고, 국장도감, 어진 도사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