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마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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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
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서불한을 역임한 관리.
미사품 (未斯品)
삼국시대 신라의 서불한을 역임한 관리.
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노객 (奴客)
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간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부족과 정치체에서 지역의 수장 또는 족장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장 강력한 간이 왕 또는 마립간이 되어 여러 간과 더불어 주요한 국정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다. 점차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간은 국왕으로부터 관등을 받고 신료로 편입되었다.
간 (干)
간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부족과 정치체에서 지역의 수장 또는 족장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장 강력한 간이 왕 또는 마립간이 되어 여러 간과 더불어 주요한 국정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다. 점차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간은 국왕으로부터 관등을 받고 신료로 편입되었다.
신라의 제17대 왕, 내물마립간의 아버지로, 이벌찬에 임명된 왕족.
말구 (末仇)
신라의 제17대 왕, 내물마립간의 아버지로, 이벌찬에 임명된 왕족.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매금 (寐錦)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재위:356~402) 왕.
누한 (樓寒)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재위:356~402) 왕.
삼국시대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의 둘째 아들인 왕자.
복호 (卜好)
삼국시대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의 둘째 아들인 왕자.
삼국시대 신라의 제19대 눌지마립간 때 고구려에 질자로 간 복호(卜好)를 보좌한 관리.
김무알 (金武謁)
삼국시대 신라의 제19대 눌지마립간 때 고구려에 질자로 간 복호(卜好)를 보좌한 관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황남리 고분군 (慶州 皇南里 古墳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신라의 제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동생이자 제18대 실성이사금의 아버지로, 이찬에 임명된 왕족.
대서지 (大西知)
신라의 제13대 왕, 미추이사금의 동생이자 제18대 실성이사금의 아버지로, 이찬에 임명된 왕족.
『계림잡전』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신라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여러 전승을 모은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중기에 『삼국사기』가 편찬될 때까지는 전해지고 있었다. 즉, 『삼국사기』 편찬자가 『계림잡전』을 참조하여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어원과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계림잡전 (鷄林雜傳)
『계림잡전』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신라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여러 전승을 모은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중기에 『삼국사기』가 편찬될 때까지는 전해지고 있었다. 즉, 『삼국사기』 편찬자가 『계림잡전』을 참조하여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어원과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의 하슬라 성주를 역임한 장수.
삼직 (三直)
삼국시대 신라의 하슬라 성주를 역임한 장수.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삼년산성 (三年山城)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삼국시대 신라 제18대 실성마립간의 왕비.
아류부인 (阿留夫人)
삼국시대 신라 제18대 실성마립간의 왕비.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선혜부인은 삼국시대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의 왕비이다. 이벌찬 내숙의 딸이다.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의 혼인 시기는 내숙이 이벌찬에 등용된 소지마립간 8년(486)을 기준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내숙에 대한 관련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지마립간 대에 일어난 분수승과 궁주의 내통 관련 내용을 다룬 『삼국유사』의 사금갑 설화는 궁주를 선혜부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선혜부인 (善兮夫人)
선혜부인은 삼국시대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의 왕비이다. 이벌찬 내숙의 딸이다.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의 혼인 시기는 내숙이 이벌찬에 등용된 소지마립간 8년(486)을 기준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내숙에 대한 관련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지마립간 대에 일어난 분수승과 궁주의 내통 관련 내용을 다룬 『삼국유사』의 사금갑 설화는 궁주를 선혜부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신라의 제22대 왕, 지증왕의 어머니이자 제19대 눌지마립간의 딸인 왕족.
조생부인 (鳥生夫人)
신라의 제22대 왕, 지증왕의 어머니이자 제19대 눌지마립간의 딸인 왕족.
신라의 제17대 왕, 내물마립간의 어머니인 왕족.
휴례부인 (休禮夫人)
신라의 제17대 왕, 내물마립간의 어머니인 왕족.
분수승은 신라 시대 부처 앞에 향을 태우며 불교 의식을 집전하던 승려이다. 분수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의 소지마립간 대에 궁 안의 불당에서 향을 태우며 불교의식을 담당하였던 『삼국유사』의 사금갑설화 속 승려에서 찾을 수 있다. 사금갑설화에 따르면, 분수승은 궁주와 몰래 정을 통하다가 왕에게 발각되어 처형되었다고 한다.
분수승 (焚修僧)
분수승은 신라 시대 부처 앞에 향을 태우며 불교 의식을 집전하던 승려이다. 분수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의 소지마립간 대에 궁 안의 불당에서 향을 태우며 불교의식을 담당하였던 『삼국유사』의 사금갑설화 속 승려에서 찾을 수 있다. 사금갑설화에 따르면, 분수승은 궁주와 몰래 정을 통하다가 왕에게 발각되어 처형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