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만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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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박준규 (朴俊圭)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최석일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군 정주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정주교구장으로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연합하여 진행한 대규모 만세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태극기를 흔들고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양팔을 잃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석일 (崔晳一)
최석일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군 정주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정주교구장으로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연합하여 진행한 대규모 만세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태극기를 흔들고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양팔을 잃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순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 양성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 양성면 주민이 연합한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군중이 2,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김순서는 앞장서서 원곡면사무소, 순사주재소 등의 문서와 물품 등을 불태우고 양성우편소의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일제 식민기관에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였다. 일본 군경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김순서 (金順西)
김순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 양성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 양성면 주민이 연합한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군중이 2,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김순서는 앞장서서 원곡면사무소, 순사주재소 등의 문서와 물품 등을 불태우고 양성우편소의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일제 식민기관에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였다. 일본 군경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김기범 (金箕範)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공재규 (孔在奎)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권세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단성면과 신등면 주민들은 30리 거리의 두 면 장터를 돌며 만세시위를 벌이다 29명이 검거되자 3월 21일 다시 만세시위를 벌였다. 신등면 출신의 박권세는 신등면과 단성면 주민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 헌병과 대치하다 헌병의 발포로 순국하였다.
박권세 (朴權世)
박권세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단성면과 신등면 주민들은 30리 거리의 두 면 장터를 돌며 만세시위를 벌이다 29명이 검거되자 3월 21일 다시 만세시위를 벌였다. 신등면 출신의 박권세는 신등면과 단성면 주민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 헌병과 대치하다 헌병의 발포로 순국하였다.
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상엽 (朴尙燁)
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 (沈永植)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 (柳禮道)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명애는 191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3월 25일에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하였으며, 3월 27일에는 교하리에서 주민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임명애 (林明愛)
임명애는 191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3월 25일에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하였으며, 3월 27일에는 교하리에서 주민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진신애 (陳信愛)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애순은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 통을 전달받아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3월 10일 광주 장날에 20여 명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조사 후 기소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애순 (朴愛順)
박애순은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 통을 전달받아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3월 10일 광주 장날에 20여 명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조사 후 기소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함용환 (咸用煥)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정선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족대동단의 일원으로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이신애의 권유로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였고, 부인 대표로 선정되었다. 1919년 11월 조선민족대동단이 추진한 제2차 만세시위 당시 서울 안국동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 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정선 (朴貞善)
박정선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족대동단의 일원으로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이신애의 권유로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였고, 부인 대표로 선정되었다. 1919년 11월 조선민족대동단이 추진한 제2차 만세시위 당시 서울 안국동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 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