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멕시코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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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메리다 한인학교 (Merida 韓人學校)
메리다한인학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에 설립한 학교이다. 1909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고 1910년 사관학교인 숭무학교를 세웠다. 그뒤 메리다지방회는 사낙타 경찰소에 한인 학교, 잇신캅 농장에 진성국어학교, 피시야 지역에 국어학교, 오스타파캅 지역에 의성국어학교, 레판 지역에 반도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해동학교를 설립하여, 한인 자녀들에게 국어와 국사 등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인 2세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멕시코 와하케뇨 지방에 설립된 한인 소학교.
일신국어학교 (日新國語學校)
멕시코 와하케뇨 지방에 설립된 한인 소학교.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낸 최병덕이 자신의 멕시코 이민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교포역설 (僑胞歷說)
멕시코시티 한인회 초대회장을 지낸 최병덕이 자신의 멕시코 이민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 (Mexico 移住民 救出運動)
멕시코 이주민 구출운동은 멕시코 한인을 미국 하와이나 본토로 이주시키려고 하였던 운동이다. 1905년에 한인들은 멕시코의 유카탄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왔지만 1910년경 멕시코에 내란이 일어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멕시코 한인들을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1911년 9월에 멕시코를 떠나 9월 19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미국 이민조례에 위반이 되어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 이 운동은 해외 한인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에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민갈 때 타고 간 배.
일포드호 (Ilford號)
1905년에 한인들이 멕시코로 이민갈 때 타고 간 배.
김익주는 일제 강점기 때, 멕시코로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고, 식당 경영으로 번 수입을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873년에 태어나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으며,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섰다. 특히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다. 1930년에 『신한민보』에 실린 기사로 인하여 묵경[멕시코]지방회를 해산하고 한인자성단을 조직하여 흥사단을 후원하였다. 1935년에 한인의 단결과 합작을 위해 한인자성단과 멕시코지방회를 통합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김익주 (金益周)
김익주는 일제 강점기 때, 멕시코로 이민하여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고, 식당 경영으로 번 수입을 기부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873년에 태어나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대한인국민회 탐피코지방회를 결성하였으며, 독립의연금 모금에 앞장섰다. 특히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다. 1930년에 『신한민보』에 실린 기사로 인하여 묵경[멕시코]지방회를 해산하고 한인자성단을 조직하여 흥사단을 후원하였다. 1935년에 한인의 단결과 합작을 위해 한인자성단과 멕시코지방회를 통합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메리다지방회 회장,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교민. 지도자.
이근영 (李根永)
일제강점기 멕시코에서 메리다지방회 회장, 코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교민. 지도자.
황보영주는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서 1917년에 숭실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 강계 지역 3.1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후 상해 흥사단 단원으로 멕시코로 이주하여 멕시코 한인 사회의 형성을 주도했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일 선전포고의 입장을 강조하여 멕시코 한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도록 했다. 멕시코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이 인정되어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황보영주 (皇甫永周)
황보영주는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서 1917년에 숭실대학을 졸업했다. 1919년 강계 지역 3.1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이후 상해 흥사단 단원으로 멕시코로 이주하여 멕시코 한인 사회의 형성을 주도했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일 선전포고의 입장을 강조하여 멕시코 한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도록 했다. 멕시코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이 인정되어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메리다 지방회 (Merida 地方會)
메리다지방회는 멕시코 한인이 메리다에 설립한 단체이다. 멕시코 한인들의 단결과 민족 정체성 유지를 도모하기 위해서 설립하였다. 아트사코알코스지방회, 묵경지방회 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에 속한 멕시코 3대 지방회의 하나였다. 1909년에 메리다 지역 16곳의 농장 대표 등 70여 명이 모여 창립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인 안창호를 중심으로 1918년에는 ‘노동규정’을 제정하였다. 멕시코 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숭무학교를 설립하여 원동지역의 독립군 지원을 계획하였던 것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베라크루스주(Veracuruz州) 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Oaxaqueno) 지역으로 이주한 약 3백 여명의 한인들이 1911년 12월 17일에 조직하였다. 회장은 서현우가 맡았고, 부회장에 이종대, 총무에 이원석, 서기에 이기종 등이 선임되었다. 1913년 6월에는 노동소를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지방회를 유지하려고 ‘재정출납에 대한 세칙’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하였다. 1917년 6월 1일에 멕시코 혁명군의 노략질에 모두 코아트사코알코스로 도망하여 해산되고 말았다.
오학기나 지방회 (Oaxaqueños 地方會)
멕시코의 오학기나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이다.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베라크루스주(Veracuruz州) 남쪽 끝에 자리한 와하케뇨(Oaxaqueno) 지역으로 이주한 약 3백 여명의 한인들이 1911년 12월 17일에 조직하였다. 회장은 서현우가 맡았고, 부회장에 이종대, 총무에 이원석, 서기에 이기종 등이 선임되었다. 1913년 6월에는 노동소를 설치하였고, 1914년에는 지방회를 유지하려고 ‘재정출납에 대한 세칙’을 만들어 실행하기도 하였다. 1917년 6월 1일에 멕시코 혁명군의 노략질에 모두 코아트사코알코스로 도망하여 해산되고 말았다.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이다. 1917년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등이 선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프론테라 지방회 (Frontera 地方會)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이다. 1917년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등이 선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2004년에 멕시코 한인 이민자의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
멕시코 한인후손회 (Mexico 韓人後孫會)
2004년에 멕시코 한인 이민자의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선전위원, 멕시코국립대학교 역사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독립운동가.
한종원 (韓宗源)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묵경지방회 선전위원, 멕시코국립대학교 역사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독립운동가.
1918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멕시코 한인의 단결과 지식을 넓하기 위해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단계 (檀界)
1918년에,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멕시코 한인의 단결과 지식을 넓하기 위해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Mexico 韓人 移民 百年史)
이자경이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에 저술한 한인 이민 역사서.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신광희 (申光熙)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 · 대한인국민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간 뒤 1909년 5월 24일 국민회 메리다(Mérida)지방회가 창립되자 서기로 임명되었다. 1912년 5월에 오학기나 일신국어학교(日新國語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는 비행사양성소가 설립되었는데, 재무를 맡아 활동하면서 1923년경까지 무장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1년 8월 30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로원 병원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멕시코 국민회 치와와지방회 회장을 역임한 교민.
채등진
일제강점기 멕시코 국민회 치와와지방회 회장을 역임한 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