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무신"
검색결과 총 140건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무신정권 (武臣政權)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무신창의록』은 이진동이 1728년 무신란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이다. 목판본이며, 5권 2책이다. 1788년 3월 정조는 무신란 진압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신들을 추증하고, 경상 감사에게 사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1788년 이진동은 경상도 지역 13개 고을의 사적을 모아 1책으로 편집하여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당대에는 바로 간행되지 않다가, 1874년(고종 11) 경에 유후조의 서문을 받아 간행되었다. 『무신창의록』은 정치 기반으로 영남 남인들을 확보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취해지면서 편찬된 책이다.
무신창의록 (戊申倡義錄)
『무신창의록』은 이진동이 1728년 무신란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이다. 목판본이며, 5권 2책이다. 1788년 3월 정조는 무신란 진압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신들을 추증하고, 경상 감사에게 사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1788년 이진동은 경상도 지역 13개 고을의 사적을 모아 1책으로 편집하여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당대에는 바로 간행되지 않다가, 1874년(고종 11) 경에 유후조의 서문을 받아 간행되었다. 『무신창의록』은 정치 기반으로 영남 남인들을 확보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취해지면서 편찬된 책이다.
미상의 저자가, 조선 후기 무신난 당시 난의 초기부터 평정되어 의병을 파할 때까지의 경상도 지방의 상황을 수록하여 1728년에 간행한 역사서.
경상도 무신창의 사적 (慶尙道 戊申倡義 事蹟)
미상의 저자가, 조선 후기 무신난 당시 난의 초기부터 평정되어 의병을 파할 때까지의 경상도 지방의 상황을 수록하여 1728년에 간행한 역사서.
고려 최씨무인정권의 기병부대.
마별초 (馬別抄)
고려 최씨무인정권의 기병부대.
고려전기 의종의 총애를 받은 관리.
백자단 (白子端)
고려전기 의종의 총애를 받은 관리.
민영모는 고려 후기에 문하시랑평장사·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138년(인종 16)에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명종대에 무신정권에 협력하며 판이부사, 태자태사 등의 지위에 올랐다. 고려 후기에 여흥민씨 가문을 번창케 한 인물이며,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민영모 (閔令謨)
민영모는 고려 후기에 문하시랑평장사·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138년(인종 16)에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명종대에 무신정권에 협력하며 판이부사, 태자태사 등의 지위에 올랐다. 고려 후기에 여흥민씨 가문을 번창케 한 인물이며,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만적의 난은 1198년(신종 1) 개경에서 사노비 만적(萬積) 등이 신분 해방을 위해 일으킨 노비 저항이다. '노비'는 남자 종 '노(奴)'와 여자 종 '비(婢)'를 합하여 부른 말이다. 개경은 정치와 경제·문화 등의 중심지였다. 그곳의 노비들은 다른 지방의 노비들보다 사회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무신 정변 이후 정치적 격변 속에서 만적은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국가 권력을 잡겠다는 이상을 가졌다. 하지만 같은 노비 출신인 순정(順貞)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만적의 난 (萬積의 亂)
만적의 난은 1198년(신종 1) 개경에서 사노비 만적(萬積) 등이 신분 해방을 위해 일으킨 노비 저항이다. '노비'는 남자 종 '노(奴)'와 여자 종 '비(婢)'를 합하여 부른 말이다. 개경은 정치와 경제·문화 등의 중심지였다. 그곳의 노비들은 다른 지방의 노비들보다 사회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무신 정변 이후 정치적 격변 속에서 만적은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국가 권력을 잡겠다는 이상을 가졌다. 하지만 같은 노비 출신인 순정(順貞)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김윤후는 고려 후기 대몽항쟁 때 처인성과 충주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승려 출신 무신이다. 승려로서 처인성전투에 참여하여 몽골의 장군 살리타이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이후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충주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일반 민과 더불어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종6품의 섭랑장, 정3품의 상장군⋅병마사⋅추밀원부사⋅예부상서로 승진하였고, 마침내 정2품의 수사공 우복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윤후 (金允侯)
김윤후는 고려 후기 대몽항쟁 때 처인성과 충주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승려 출신 무신이다. 승려로서 처인성전투에 참여하여 몽골의 장군 살리타이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이후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충주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일반 민과 더불어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종6품의 섭랑장, 정3품의 상장군⋅병마사⋅추밀원부사⋅예부상서로 승진하였고, 마침내 정2품의 수사공 우복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김응상 (金應祥)
김응상은 조선 전기 종사관과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로 명나라에 간 주청사 황림의 종사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1583년(선조 16) 국왕 선조가 인재 천거령을 내렸을 때 곽흘이 추천하여 뽑혔다.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를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좌부승지에 추증되었다.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김이영 (金貽永)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개경 승도의 난 (開京 僧徒의 亂)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고려 전기 시정(時政)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의 규찰·탄핵을 맡아보던 관서.
금오대 (金吾臺)
고려 전기 시정(時政)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의 규찰·탄핵을 맡아보던 관서.
김준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을 주동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이어 시중(侍中)까지 오른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이 유경·박송비 등과 함께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이후 김준은 자기 휘하의 위사공신들과 연대하여 유경 등을 실각시키면서 ‘김준 정권’을 탄생시키고, 1265년(원종 3) 시중에 오르면서 해양후(海陽侯)에도 책봉되었다. 그는 정권을 독차지하면서 국왕 원종 및 몽골과 갈등하다가 1268년(원종 9) 임연에게 참살되었다.
김준 (金俊)
김준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을 주동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이어 시중(侍中)까지 오른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이 유경·박송비 등과 함께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이후 김준은 자기 휘하의 위사공신들과 연대하여 유경 등을 실각시키면서 ‘김준 정권’을 탄생시키고, 1265년(원종 3) 시중에 오르면서 해양후(海陽侯)에도 책봉되었다. 그는 정권을 독차지하면서 국왕 원종 및 몽골과 갈등하다가 1268년(원종 9) 임연에게 참살되었다.
고려후기 무신정변과 관련된 무신.
김준거 (金俊据)
고려후기 무신정변과 관련된 무신.
고려 후기에, 수사공 태자소부 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장군·공신.
박송비 (朴松庇)
고려 후기에, 수사공 태자소부 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장군·공신.
고려후기 추밀원사, 중서시랑평장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순필 (朴純弼)
고려후기 추밀원사, 중서시랑평장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전기 군기시첨정, 호조참판,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박영문 (朴永文)
조선전기 군기시첨정, 호조참판,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군부판서 응양군상장군, 밀직부사, 동지밀직사 감찰제헌 등을 역임한 무신.
기홍석 (奇洪碩)
고려후기 군부판서 응양군상장군, 밀직부사, 동지밀직사 감찰제헌 등을 역임한 무신.
신보균이 1906년 6월부터 1908년 6월까지 대마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기록한 일기. 의병록.
동고록 (同苦錄)
신보균이 1906년 6월부터 1908년 6월까지 대마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기록한 일기. 의병록.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목지경 (睦趾敬)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