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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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군의 교육을 담당한 관직.
대군사부 (大君師傅)
조선시대 대군의 교육을 담당한 관직.
왕자사부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종9품의 특별 관직이다. 성종 대에 처음 두었다. 제도상 왕자가 있을 때에만 한시적으로 두는 특별 관직으로 900일을 근무한 후 6품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왕자사부 (王子師傅)
왕자사부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후궁 소생인 왕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한 종9품의 특별 관직이다. 성종 대에 처음 두었다. 제도상 왕자가 있을 때에만 한시적으로 두는 특별 관직으로 900일을 근무한 후 6품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첨사부 (詹事府)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관학 (館學)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응남 (朴應男)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응복 (朴應福)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돈녕부주부, 내섬시주부, 용인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응순 (朴應順)
조선 전기에, 돈녕부주부, 내섬시주부, 용인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의금부도사, 상의원정,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응인 (朴應寅)
조선 중기에, 의금부도사, 상의원정,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태인현감, 봉산군수,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응천 (朴應川)
조선 전기에, 태인현감, 봉산군수,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인간 (朴仁幹)
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당비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중에서 쓰인 당악기이다. 일명 사현비파 또는 곡경비파라고 한다. 조선 시대 문헌 『악학궤범』에 악기의 모양과 만드는 법 등이 실려 있다. 총 길이가 약 90㎝ 가량으로 목 부분이 ‘ㄱ’자처럼 굽었으며 넉 줄이 매여 있다. 당비파는 조선 초 세종 때 당악뿐 아니라 향악 연주 때 널리 사용되었다. 성종 때는 종묘의 헌가나 연례악 등을 연주할 때도 쓰였다. 유명했던 당비파의 명수는 송태평의 아들 전수와 도선길이었다. 당비파의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전승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당비파 (唐琵琶)
당비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궁중에서 쓰인 당악기이다. 일명 사현비파 또는 곡경비파라고 한다. 조선 시대 문헌 『악학궤범』에 악기의 모양과 만드는 법 등이 실려 있다. 총 길이가 약 90㎝ 가량으로 목 부분이 ‘ㄱ’자처럼 굽었으며 넉 줄이 매여 있다. 당비파는 조선 초 세종 때 당악뿐 아니라 향악 연주 때 널리 사용되었다. 성종 때는 종묘의 헌가나 연례악 등을 연주할 때도 쓰였다. 유명했던 당비파의 명수는 송태평의 아들 전수와 도선길이었다. 당비파의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전승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교학정례』는 1870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주도로 편찬한 대군·왕자군·적왕손·왕손의 교육 관련 의례서이다. 서문은 대원군이 작성하였고, 본문은 설청, 초기식, 절목식,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 고례 순으로 되어 있다. 고종 대 왕실 교육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교학정례 (敎學定例)
『교학정례』는 1870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주도로 편찬한 대군·왕자군·적왕손·왕손의 교육 관련 의례서이다. 서문은 대원군이 작성하였고, 본문은 설청, 초기식, 절목식,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 고례 순으로 되어 있다. 고종 대 왕실 교육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사학합제 (四學合製)
사학합제는 조선 후기에 사학(四學)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한 시험의 한 종류이다. 사학에서 매년 4차에 걸쳐 제술과 고강 시험을 시행하여 일정 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을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다시 시험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최종 합격자에게는 식년시 생원 · 진사시 때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왕손교부는 1756년(영조 32년)에 세자의 아들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치한 종9품의 관직이다. 궁궐에서 자라는 아동기의 교육을 위하여 설치하였다. 영조 대에 처음 두었으나 정조 대 이후에는 왕손의 지위에 있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임명되지 않았다.
왕손교부 (王孫敎傅)
왕손교부는 1756년(영조 32년)에 세자의 아들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치한 종9품의 관직이다. 궁궐에서 자라는 아동기의 교육을 위하여 설치하였다. 영조 대에 처음 두었으나 정조 대 이후에는 왕손의 지위에 있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임명되지 않았다.
권설직(權設職)은 조선시대에, 중앙과 지방에 임시로 두었던 관직이다.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행사나 토목, 내우외란, 외교사신 등 상설관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국가적으로 큰 일이 발생하였을 때 설치하는 모든 관직을 권설직이라 한다. 좁은 의미로는 왕실 인사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한 사부(師傅) 등 관직만을 법제적으로 규정한 권설직이라 한다.
권설직 (權設職)
권설직(權設職)은 조선시대에, 중앙과 지방에 임시로 두었던 관직이다.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행사나 토목, 내우외란, 외교사신 등 상설관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국가적으로 큰 일이 발생하였을 때 설치하는 모든 관직을 권설직이라 한다. 좁은 의미로는 왕실 인사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한 사부(師傅) 등 관직만을 법제적으로 규정한 권설직이라 한다.
유율타악기(有律打樂器)의 하나.
양금 (洋琴)
유율타악기(有律打樂器)의 하나.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양광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균형 (徐鈞衡)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양광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우부빈객(右副賓客)은 조선시대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1395년(태조4)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1명으로 타 관서의 겸직관이었다. 우부빈객의 임무는 서연(書筵)에서 강의의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주로 하였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우부빈객 (右副賓客)
우부빈객(右副賓客)은 조선시대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1395년(태조4)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1명으로 타 관서의 겸직관이었다. 우부빈객의 임무는 서연(書筵)에서 강의의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주로 하였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고려 중기의 정5품 동궁관(東宮官).
우찬선대부 (右贊善大夫)
고려 중기의 정5품 동궁관(東宮官).
고려 중기의 정3품 동궁관(東宮官).
우첨사 (右詹事)
고려 중기의 정3품 동궁관(東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