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찰"
검색결과 총 49건
통도사·해인사·송광사로 각각 불·법·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삼보사찰 (三寶寺刹)
통도사·해인사·송광사로 각각 불·법·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남고사지 (南固寺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개원사의 사찰터.
개원사지 (開元寺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개원사의 사찰터.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국가의 비보사찰 및 왕실의 원찰로서 사용된 사찰.
마니산 묘통사 (摩尼山 妙通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국가의 비보사찰 및 왕실의 원찰로서 사용된 사찰.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동회 (洞會)
동회는 1900년대 초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 권익 신장을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이 각 지역의 농장 단위로 10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는 곳에 친목 도모, 질서 유지, 상호부조와 권익 신장을 위해 동장(洞長)과 사찰(査察)을 선임하여 조직한 한인 이민자 자치단체였다.
귀정사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천황산(天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현오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백제의 승려 현오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믿기 어렵다. 고려 때 창건된 절로 추정된다. 고려 목종 때 대은이 중수(重修)하였고 조선 세조 때 낙은이 중창(重創)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고 현종 때 설제가 중건하였고 숙종 때 현일이 중수하였다.
귀정사 (歸政寺)
귀정사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천황산(天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현오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백제의 승려 현오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믿기 어렵다. 고려 때 창건된 절로 추정된다. 고려 목종 때 대은이 중수(重修)하였고 조선 세조 때 낙은이 중창(重創)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고 현종 때 설제가 중건하였고 숙종 때 현일이 중수하였다.
귀진사는 12세기 중엽에 성수사의 암자로 건립되었다. 조선 중기 고승 허응 보우가 대장경각을 짓고 불경을 간행하면서 독립된 사찰로 중창하였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중수(重修)되고 그 이후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정방산 성불사의 말사(末寺)였다. 극락전을 중심 건물로 하고 주악루, 심검당, 동선당, 서승당, 향로전, 칠성각, 관음대와 칠층탑 등이 있었다.
귀진사 (歸眞寺)
귀진사는 12세기 중엽에 성수사의 암자로 건립되었다. 조선 중기 고승 허응 보우가 대장경각을 짓고 불경을 간행하면서 독립된 사찰로 중창하였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중수(重修)되고 그 이후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정방산 성불사의 말사(末寺)였다. 극락전을 중심 건물로 하고 주악루, 심검당, 동선당, 서승당, 향로전, 칠성각, 관음대와 칠층탑 등이 있었다.
관리서는 1902년(광무 6)에 전국의 사찰 · 산림 · 성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이다. 갑오개혁기에 전국 사찰의 관리체계가 해체되어 사찰의 재산이 침탈 위험에 처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궁내부 경위원(警衛院) 산하에 만들어진 사찰 관리 관서이다. 역할은 국내의 산림, 성보(城堡), 사찰에 관한 사무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전국 사찰의 현황 조사와 사찰 관련 규칙 제정 등을 시행하였다. 1904년 1월에 그다지 필요가 없는 관서로 지목되어 폐지되었다.
관리서 (管理署)
관리서는 1902년(광무 6)에 전국의 사찰 · 산림 · 성보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궁내부에 설치한 관서이다. 갑오개혁기에 전국 사찰의 관리체계가 해체되어 사찰의 재산이 침탈 위험에 처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궁내부 경위원(警衛院) 산하에 만들어진 사찰 관리 관서이다. 역할은 국내의 산림, 성보(城堡), 사찰에 관한 사무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것이었으며, 전국 사찰의 현황 조사와 사찰 관련 규칙 제정 등을 시행하였다. 1904년 1월에 그다지 필요가 없는 관서로 지목되어 폐지되었다.
규봉사(圭峰寺)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慧諶)과 혜근(惠勤)이 수도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 1183년(명종 13)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창건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주변 유물로 보아 지눌의 창건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규봉사 (圭峰寺)
규봉사(圭峰寺)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慧諶)과 혜근(惠勤)이 수도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 1183년(명종 13)에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이 창건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주변 유물로 보아 지눌의 창건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태종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1418년에 13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태종과 비 원경왕후가 세운 원당이다. 대자암의 토지가 250결에 이르고 120명의 승려를 비롯해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한 왕실 원찰이었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안평대군·수양대군, 문종과 단종 등이 참여한 왕실 원당이었다. 행호와 무학의 수제자인 진산과 기화, 신미가 주지로 재임하였다.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되어 갔다. 그 후 대자암에 인조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되어 곁에 명적암이라 하였다.
대자암 (大慈庵)
태종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1418년에 13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태종과 비 원경왕후가 세운 원당이다. 대자암의 토지가 250결에 이르고 120명의 승려를 비롯해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한 왕실 원찰이었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 안평대군·수양대군, 문종과 단종 등이 참여한 왕실 원당이었다. 행호와 무학의 수제자인 진산과 기화, 신미가 주지로 재임하였다.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되어 갔다. 그 후 대자암에 인조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되어 곁에 명적암이라 하였다.
대장경과 법신불인 비로자나불 또는 설법주인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 법보전.
대장전 (大藏殿)
대장경과 법신불인 비로자나불 또는 설법주인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불교건축물. 법보전.
관음사는 고려 전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천마산에 승려 법인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후기에는 낙산 관음굴과 함께 가까운 천마산 관음굴이 2대 관음 기도처로 이름이 있었다. 태조의 조부인 익조가 부인과 관음굴에서 기도하여 도조를 낳았다. 1395년에는 태조가 전왕족인 고려 왕씨들을 위해 견암사, 삼화사와 함께 매년 춘추로 수륙재를 상설하도록 하였다. 1424년 선교양종 36개사로 축소시 관음사는 선종에 소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등사 말사였다. 관음사 뒤 관음굴에 있던 2구의 관음보살상은 옛 조각상으로 예술적으로 우수하다.
관음사 (觀音寺)
관음사는 고려 전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천마산에 승려 법인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후기에는 낙산 관음굴과 함께 가까운 천마산 관음굴이 2대 관음 기도처로 이름이 있었다. 태조의 조부인 익조가 부인과 관음굴에서 기도하여 도조를 낳았다. 1395년에는 태조가 전왕족인 고려 왕씨들을 위해 견암사, 삼화사와 함께 매년 춘추로 수륙재를 상설하도록 하였다. 1424년 선교양종 36개사로 축소시 관음사는 선종에 소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등사 말사였다. 관음사 뒤 관음굴에 있던 2구의 관음보살상은 옛 조각상으로 예술적으로 우수하다.
마하연사는 통일신라 시대, 승려 의상이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말에 인도승 지공이 묵었으며, 조선 중기 고승의 보우가 15세에 출가하였다. 조선 후기에 승려 청고와 인성과 경화 등이 묵기도 하였다. 1831년(순조 31), 승려 월송 등이 50여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848년(헌종 14) 승려 대운이 마하선실을 지었다. 일제 강점기 1923년 승려 형진이 10년 정진하면서 1932년 59칸의 전각을 중창하였다. 한국전쟁으로 폐사되었으며 그 후 중수되어 고승 만공 등이 수행하였다.
마하연사 (摩訶衍寺)
마하연사는 통일신라 시대, 승려 의상이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말에 인도승 지공이 묵었으며, 조선 중기 고승의 보우가 15세에 출가하였다. 조선 후기에 승려 청고와 인성과 경화 등이 묵기도 하였다. 1831년(순조 31), 승려 월송 등이 50여 동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848년(헌종 14) 승려 대운이 마하선실을 지었다. 일제 강점기 1923년 승려 형진이 10년 정진하면서 1932년 59칸의 전각을 중창하였다. 한국전쟁으로 폐사되었으며 그 후 중수되어 고승 만공 등이 수행하였다.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에 있었던 백제 왕족의 후예들이 창건한 사찰.
일본 백제사 (日本 百濟寺)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에 있었던 백제 왕족의 후예들이 창건한 사찰.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 당시 금탑이 있어 사찰을 창건하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혹은 인도 아육왕(阿育王)의 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하여 금탑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보물로 지정된 괘불은 1778년에 조성되었으며 서울시 종로구 지장암의 목조 관음‧지장보살이 1726년에 이곳에서 조성되었다.
금탑사 (金塔寺)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 당시 금탑이 있어 사찰을 창건하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혹은 인도 아육왕(阿育王)의 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하여 금탑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보물로 지정된 괘불은 1778년에 조성되었으며 서울시 종로구 지장암의 목조 관음‧지장보살이 1726년에 이곳에서 조성되었다.
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하여 덧술하여 빚는 술.
법주 (法酒)
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하여 덧술하여 빚는 술.
사찰에서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불교의식.
도량석 (道場釋)
사찰에서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불교의식.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1211년(희종 7) 원묘국사 요세가 천태종의 결사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후 고승들은 백련사 8국사라고도 불리었다. 강진 백련사의 사세는 완도의 법화사, 상주의 동백련사, 제주의 묘련사와 법화사로 전개되었다. 원 간섭기에 개경의 묘련사에 진출하였으며, 개경의 보암사와 법화사의 결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 초에 행호가 효령대군의 후원을 받아 중창하였다. 조선 후기에 백련사 8대사가 배출되었는데 대부분 소요태능계의 전법 제자였다.
백련사 (白蓮社)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1211년(희종 7) 원묘국사 요세가 천태종의 결사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후 고승들은 백련사 8국사라고도 불리었다. 강진 백련사의 사세는 완도의 법화사, 상주의 동백련사, 제주의 묘련사와 법화사로 전개되었다. 원 간섭기에 개경의 묘련사에 진출하였으며, 개경의 보암사와 법화사의 결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 초에 행호가 효령대군의 후원을 받아 중창하였다. 조선 후기에 백련사 8대사가 배출되었는데 대부분 소요태능계의 전법 제자였다.
신라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부석사에서 조성한 금동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의 불두가 현재 일본 쓰시마의 간노지에 소장되어 있다. 서산 부석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유물에 의하면 1330년에 계진 등 32명 발원자들이 주조하였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자초가 부석사도 중건하다. 1669년 승려 원응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이 부석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부석사 (浮石寺)
신라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부석사에서 조성한 금동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의 불두가 현재 일본 쓰시마의 간노지에 소장되어 있다. 서산 부석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유물에 의하면 1330년에 계진 등 32명 발원자들이 주조하였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자초가 부석사도 중건하다. 1669년 승려 원응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이 부석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
단청 (丹靑)
단청은 건축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건축 미술을 말한다. 예부터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목조건축은 내후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특히 주 건축재로 사용된 소나무는 단단하고 잘 썩지 않지만,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 이에 고대인들은 목조건축의 내후성 강화를 위해 부재 표면에 채료(彩料)를 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원시 단청의 출발이다. 건축 부재에 칠을 하는 작업에도 인간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시대 발달과 변천에 따라 권위·종교·기복·내세의 각종 상징 문양이 채색됐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단청이 파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