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선사"
검색결과 총 19건
고려후기 조계산 수선사 제3세 국사 승려.
몽여 (夢如)
고려후기 조계산 수선사 제3세 국사 승려.
고려후기 조계산 수선사 제10세 국사인 승려.
만항 (萬恒)
고려후기 조계산 수선사 제10세 국사인 승려.
고봉 법장(高峰法藏)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선종의 승려이다. 조선 초기 송광사를 중창한 공으로 송광사 16국사로 추숭되었으며, 수선사 16세 사주(社主)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나옹 삼가(懶翁三歌)를 게송으로 풀이한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이 있다.
법장 (法藏)
고봉 법장(高峰法藏)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선종의 승려이다. 조선 초기 송광사를 중창한 공으로 송광사 16국사로 추숭되었으며, 수선사 16세 사주(社主)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나옹 삼가(懶翁三歌)를 게송으로 풀이한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이 있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뜻으로 선종에서 해탈을 위한 방편으로 삼는 화두. 조주무자.
구자무불성 (拘子無佛性)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뜻으로 선종에서 해탈을 위한 방편으로 삼는 화두. 조주무자.
구자무불성화간병론은 고려 후기 선종 승려 진각국사 혜심이 지은 간화선 수행에 대한 지침서이다. 혜심은 수선사 제2세 사주이다. 이 책은 무(無)자라는 화두를 참구할 때 생기는 10가지 병을 제시하고 수행자들이 이를 극복하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지었다.
구자무불성화간병론 (拘子無佛性話看病論)
구자무불성화간병론은 고려 후기 선종 승려 진각국사 혜심이 지은 간화선 수행에 대한 지침서이다. 혜심은 수선사 제2세 사주이다. 이 책은 무(無)자라는 화두를 참구할 때 생기는 10가지 병을 제시하고 수행자들이 이를 극복하고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지었다.
복구는 수선사 13대 승려이자 공민왕대 왕사로 재책봉된 승려이다. 젊은 시절 선종 승과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백암사(白巖寺), 월남사(月南寺), 수선사(修禪社), 불갑사(佛岬寺) 등을 주석하였으며 입적한 후에는 각진국사로 추봉되었다.
복구 (復丘)
복구는 수선사 13대 승려이자 공민왕대 왕사로 재책봉된 승려이다. 젊은 시절 선종 승과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백암사(白巖寺), 월남사(月南寺), 수선사(修禪社), 불갑사(佛岬寺) 등을 주석하였으며 입적한 후에는 각진국사로 추봉되었다.
『선문삼가염송집(禪門三家拈頌集)』은 1246년(고종 33)에 수선사 승려 구암(龜庵)이 제2세 혜심(慧諶)이 편찬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으로부터 설두중현(雪竇重顯), 천동굉지(天童宏智), 원오극근(圜悟克勤) 등 북송대의 대표적 선승 세 사람의 염(拈)과 송(頌)을 발췌하여 간행한 불교 공안집이다.
선문삼가염송집 (禪門三家拈頌集)
『선문삼가염송집(禪門三家拈頌集)』은 1246년(고종 33)에 수선사 승려 구암(龜庵)이 제2세 혜심(慧諶)이 편찬한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으로부터 설두중현(雪竇重顯), 천동굉지(天童宏智), 원오극근(圜悟克勤) 등 북송대의 대표적 선승 세 사람의 염(拈)과 송(頌)을 발췌하여 간행한 불교 공안집이다.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
선사 (禪師)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
수련은 해방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불일회 총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09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으로, 1937년 출가하여 송광사와 통도사, 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다. 1954년 교단 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500자의 혈서를 써서 정화의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1960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1969년 불일회의 총재 겸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미국 삼보사 개원식에 참석하고, 송광사에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발전시켰다. 외국인을 위해 법문을 영역해 출간하고 해외 포교에도 힘썼다. 1983년 12월 16일 입적하였다.
수련 (秀蓮)
수련은 해방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불일회 총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09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으로, 1937년 출가하여 송광사와 통도사, 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다. 1954년 교단 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500자의 혈서를 써서 정화의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1960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1969년 불일회의 총재 겸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미국 삼보사 개원식에 참석하고, 송광사에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발전시켰다. 외국인을 위해 법문을 영역해 출간하고 해외 포교에도 힘썼다. 1983년 12월 16일 입적하였다.
지눌은 고려 후기 정혜결사를 개창한 승려이다. 조계산 송광사를 창건하였다.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고 수행의 방법으로 3문 체계를 제시했으며, 선의 입장에 화엄을 수용하는 등 지눌 당시까지의 동아시아 선종을 재정립하며 고려 선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 나갔다.
지눌 (知訥)
지눌은 고려 후기 정혜결사를 개창한 승려이다. 조계산 송광사를 창건하였다.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고 수행의 방법으로 3문 체계를 제시했으며, 선의 입장에 화엄을 수용하는 등 지눌 당시까지의 동아시아 선종을 재정립하며 고려 선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 나갔다.
『조계진각국사어록』은 고려 무인 집권 시기 수선결사의 제2세 사주였던 진각국사(溪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의 법문 및 승속의 제자들에게 준 편지 등을 모아 놓은 책으로 현전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이른 시기의 승려 어록(語錄)이다. 고려시대의 간행본은 전하지 않으며, 1526년(중종 21)에 간행된 판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혜심의 선 사상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수선사 사주 당시 그의 행적 및 그와 교유한 여러 인물들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계진각국사어록 (曹溪眞覺國師語錄)
『조계진각국사어록』은 고려 무인 집권 시기 수선결사의 제2세 사주였던 진각국사(溪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의 법문 및 승속의 제자들에게 준 편지 등을 모아 놓은 책으로 현전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이른 시기의 승려 어록(語錄)이다. 고려시대의 간행본은 전하지 않으며, 1526년(중종 21)에 간행된 판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혜심의 선 사상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수선사 사주 당시 그의 행적 및 그와 교유한 여러 인물들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혼원(混元)은 수선사 4세로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동한 선승이다. 그는 사굴산문에 출가하여 수선사 2세 혜심, 3세 몽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선원사에 머물러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원종 대에 왕사가 되었으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수선사가 퇴조하자 혼원도 하산소인 와룡사로 물러나 1271년에 입적하였다.
혼원 (混元)
혼원(混元)은 수선사 4세로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동한 선승이다. 그는 사굴산문에 출가하여 수선사 2세 혜심, 3세 몽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최씨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선원사에 머물러 항몽 의식을 고취하고 최씨 정권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혜심 대까지 최씨 정권과 그는 최우에 의해 정혜사 주지와 선원사 법주가 되었으며, 대선사에 제수되었다. 이어 최항의 영향력으로 수선사 사주가 되었다. 원종 대에 왕사가 되었으나 무신 정권이 몰락하고 수선사가 퇴조하자 혼원도 하산소인 와룡사로 물러나 1271년에 입적하였다.
고려 후기의 승려, 충지의 표·발원문·안거원문 등을 모아 엮은 문집.
해동조계밀암화상잡저 (海東曹溪宓唵和尙雜著)
고려 후기의 승려, 충지의 표·발원문·안거원문 등을 모아 엮은 문집.
충지(冲止)는 고려 후기 수선사의 6세 사주이며 입적 후 원감국사(圓鑑國師)로 추증된 승려이다. 무신집권기에 과거 급제를 하였다가 늦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원나라 황제에게 수선사의 면세를 요청하는 글, 수선사를 황제의 원찰로 삼기를 요청하는 글 등을 지은 것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시를 지었는데 불교의 이치나 설법 외에도 세태와 백성들의 고통 등을 다룬 내용도 다수 확인되어 어려운 현실을 당면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충지 (冲止)
충지(冲止)는 고려 후기 수선사의 6세 사주이며 입적 후 원감국사(圓鑑國師)로 추증된 승려이다. 무신집권기에 과거 급제를 하였다가 늦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원나라 황제에게 수선사의 면세를 요청하는 글, 수선사를 황제의 원찰로 삼기를 요청하는 글 등을 지은 것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시를 지었는데 불교의 이치나 설법 외에도 세태와 백성들의 고통 등을 다룬 내용도 다수 확인되어 어려운 현실을 당면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화엄론절요』는 고려 무인 집권기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당나라 화엄학자 이통현(李通玄, 635-730)이 찬술한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편찬한 불교 논서이다. 지눌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에 의거하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이라는 수행법을 제시하였으며, 문인들이 이 책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핵심 부분을 발췌하여 3권으로 편집한 『화엄론절요』를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전하지 않고 일본의 가나자와문고에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화엄론절요 (華嚴論節要)
『화엄론절요』는 고려 무인 집권기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당나라 화엄학자 이통현(李通玄, 635-730)이 찬술한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편찬한 불교 논서이다. 지눌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에 의거하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이라는 수행법을 제시하였으며, 문인들이 이 책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핵심 부분을 발췌하여 3권으로 편집한 『화엄론절요』를 편찬하였다. 국내에는 전하지 않고 일본의 가나자와문고에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혜심(慧諶)은 고려 후기 수선사의 제2세 사주였던 승려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출가하여 지눌에게 인가를 받았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주가 되었고 당시 무신집정자 최우가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으며 승과를 치르지 않고 높은 승계를 받았으며 단속사 주지가 되었고 입적 후 진각국사(眞覺國師)로 추증되었다.
혜심 (慧諶)
혜심(慧諶)은 고려 후기 수선사의 제2세 사주였던 승려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출가하여 지눌에게 인가를 받았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주가 되었고 당시 무신집정자 최우가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으며 승과를 치르지 않고 높은 승계를 받았으며 단속사 주지가 되었고 입적 후 진각국사(眞覺國師)로 추증되었다.
고려후기 승려 혜심이 선종의 화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 공안집.
선문염송 (禪門拈頌)
고려후기 승려 혜심이 선종의 화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 공안집.
고려 후기에, 이부원외랑, 이부낭중, 판사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노관 (盧琯)
고려 후기에, 이부원외랑, 이부낭중, 판사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백련사결사 (白蓮寺結社)
백련사결사는 고려후기 천태종 승려인 요세가 개창된 결사를 가리키는 종교용어이다. 백련결사라고도 한다. 1198년 천태종에 크게 실망한 요세가 신앙결사에 뜻을 두고 영동산 장연사에서 수행하였다. 1216년 전라도 강진의 토호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지원을 받아 강진 만덕산으로 주거를 옮겨 본격적으로 결사를 결행하였다. 점차 지방관과 최씨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1232년에 보현도량을 개설하여 대몽항전을 표방하였다. 불교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