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민부"
검색결과 총 21건
일제강점기 때, 김좌진의 고문 겸 참모, 신민부 검사원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인수 (姜寅秀)
일제강점기 때, 김좌진의 고문 겸 참모, 신민부 검사원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학도감, 신민부 보안사령, 성동사관학교 교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영희 (朴寧熙)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학도감, 신민부 보안사령, 성동사관학교 교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26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정치단체.
귀일당 (歸一黨)
1926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정치단체.
일제강점기 때, 한족총연합회 조직 선전 농무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종진 (金宗鎭)
일제강점기 때, 한족총연합회 조직 선전 농무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국내파견 결사대장으로 활동하였고, 정의부, 신민부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태연 (金泰淵)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국내파견 결사대장으로 활동하였고, 정의부, 신민부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북만주민적조사위원, 신민부 교육부위원, 군사부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해강 (金海岡)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북만주민적조사위원, 신민부 교육부위원, 군사부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흥업단 부단장 · 대한독립군단 군사부장 ·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 성동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혁 (金赫)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흥업단 부단장 · 대한독립군단 군사부장 ·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 성동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나중소 (羅仲昭)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신일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8·15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1922년 잡지 『신생활』 기자로 많은 기사를 집필하였으며, 필화사건으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1928년에 걸쳐 민족통일론에 대해서 ML파와 논쟁을 벌였다. 만주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였다.
신일용 (辛日鎔)
신일용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8·15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1922년 잡지 『신생활』 기자로 많은 기사를 집필하였으며, 필화사건으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1928년에 걸쳐 민족통일론에 대해서 ML파와 논쟁을 벌였다. 만주 민족유일당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손양윤 (孫亮尹)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 검사원 위원, 임시의정원 상임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손일민 (孫逸民)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 검사원 위원, 임시의정원 상임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에서 친일파 암살,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손호 (孫滸)
일제강점기 때, 신민부에서 친일파 암살,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25년 북만주에서 설립된 독립군 간부양성기관.
성동사관학교 (城東士官學校)
1925년 북만주에서 설립된 독립군 간부양성기관.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복영 (尹復榮)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무관연성소 교관, 북로군정서 제2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운강 (李雲岡)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무관연성소 교관, 북로군정서 제2소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재정위원, 신민부 경리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유민식 (兪民植)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재정위원, 신민부 경리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민부에 가입하였고, 한족총연합회, 한족자치연합회 등을 조직해 김좌진을 보좌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창덕 (兪昌德)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신민부에 가입하였고, 한족총연합회, 한족자치연합회 등을 조직해 김좌진을 보좌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
한족총연합회 (韓族總聯合會)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
혁신의회 (革新議會)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강훈 (李康勳)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