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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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3대 아악사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가야금명인.
김영제 (金寧濟)
일제강점기 제3대 아악사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가야금명인.
조선 말기의 작자 미상의 금강산 기행가사.
금강산유산록 (金剛山遊山錄)
조선 말기의 작자 미상의 금강산 기행가사.
관은 관악기의 총칭이거나 지(篪)와 유사한 6공의 관악기 및 조선 궁중에서 사용되던 관악기를 말한다. 조선 태종대에 아악에서 사용된 관은 두 개의 관을 엮은 쌍관으로 6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관의 윗부분으로 김을 넣어 소리낸다. 황종(黃鐘)부터 청협종(淸夾鐘)까지 12율 4청성을 갖추고, 궁중의 아악과 속악에서 사용되었다.
관 (管)
관은 관악기의 총칭이거나 지(篪)와 유사한 6공의 관악기 및 조선 궁중에서 사용되던 관악기를 말한다. 조선 태종대에 아악에서 사용된 관은 두 개의 관을 엮은 쌍관으로 6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관의 윗부분으로 김을 넣어 소리낸다. 황종(黃鐘)부터 청협종(淸夾鐘)까지 12율 4청성을 갖추고, 궁중의 아악과 속악에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아악(雅樂)의 등가(登歌)에서 사용된 아악기.
박부 (搏拊)
고려시대 아악(雅樂)의 등가(登歌)에서 사용된 아악기.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명안지곡 (明安之曲)
「명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 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전폐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명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에 「명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전폐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정악전습소에서 활동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명완벽 (明完璧)
일제강점기 조선정악전습소에서 활동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조선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기행가사.
봉래청기 (蓬萊淸奇)
조선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기행가사.
사직제향악은 토지의 신인 태사와 곡식의 신인 태직에게 올리는 기악, 성악, 무용으로 구성된 제향악이다. 영신(迎神)은 궁가에서 8성을 연주하고, 전폐(奠幣), 초헌(初獻), 철변두(撤籩豆)는 등가(登歌)에서 응종궁(應鍾宮)을 연주하며, 아헌(亞獻), 종헌(終獻), 송신(送神)은 궁가에서 태주궁(太蔟宮)을 연주한다. 악장(樂章)은 초헌의 국사와 국직, 철변두의 절차에서 등가에서 부른다. 일무(佾舞)는 64명으로 구성된 팔일무(八佾舞)이며, 영신, 전폐, 초헌에 열문지무(문무(文舞)), 아헌, 종헌에 소무지무(무무(武舞))를 춘다.
사직제향악 (社稷祭享樂)
사직제향악은 토지의 신인 태사와 곡식의 신인 태직에게 올리는 기악, 성악, 무용으로 구성된 제향악이다. 영신(迎神)은 궁가에서 8성을 연주하고, 전폐(奠幣), 초헌(初獻), 철변두(撤籩豆)는 등가(登歌)에서 응종궁(應鍾宮)을 연주하며, 아헌(亞獻), 종헌(終獻), 송신(送神)은 궁가에서 태주궁(太蔟宮)을 연주한다. 악장(樂章)은 초헌의 국사와 국직, 철변두의 절차에서 등가에서 부른다. 일무(佾舞)는 64명으로 구성된 팔일무(八佾舞)이며, 영신, 전폐, 초헌에 열문지무(문무(文舞)), 아헌, 종헌에 소무지무(무무(武舞))를 춘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쓰인 의물(儀物).
둑 (纛)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쓰인 의물(儀物).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로(개포동)에 있는 국립 예능계 특수목적고등학교.
국악고등학교 (國樂高等學校)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로(개포동)에 있는 국립 예능계 특수목적고등학교.
일제강점기 아악에 정통한 음악인. 장구명인.
김수천 (金壽天)
일제강점기 아악에 정통한 음악인. 장구명인.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
상 (相)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
타악기의 하나.
아 (雅)
타악기의 하나.
예종은 고려 전기 제1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05~1122년이며, 숙종의 맏아들이다.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여진정벌에 힘썼다. 윤관·오연총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게 하고, 정복 지역에 구성을 설치했다가 1년 만에 구성을 철폐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여진의 금나라,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는 대체로 중립 외교를 펼쳤다. 국학에 학과별 전문 강좌인 칠재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두었으며, 이름난 선비를 뽑아 학관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여 유학을 크게 일으켰다. 송의 궁중에서 쓰던 대성악을 들여왔다.
예종 (睿宗)
예종은 고려 전기 제1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05~1122년이며, 숙종의 맏아들이다.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여진정벌에 힘썼다. 윤관·오연총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게 하고, 정복 지역에 구성을 설치했다가 1년 만에 구성을 철폐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여진의 금나라,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는 대체로 중립 외교를 펼쳤다. 국학에 학과별 전문 강좌인 칠재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두었으며, 이름난 선비를 뽑아 학관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여 유학을 크게 일으켰다. 송의 궁중에서 쓰던 대성악을 들여왔다.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갖은 영산회상」·「중영산」·「타령」 등을 수록한 악보. 가야금고악보.
우의산수 (寓意山水)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갖은 영산회상」·「중영산」·「타령」 등을 수록한 악보. 가야금고악보.
해방 이후 국악채보전문위원, 국악예술학교 교사, 공군교향악단 교관 등을 역임한 국악인. 피리, 단소명인.
이병우 (李炳祐)
해방 이후 국악채보전문위원, 국악예술학교 교사, 공군교향악단 교관 등을 역임한 국악인. 피리, 단소명인.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악생 (樂生)
악생은 조선시대 아악 연주, 노래, 일무를 담당한 악인이다. 조선 초 ‘악공’은 아악·속악 연주자를 통칭하였다. 세조의 악제 개혁 후 궁중음악 기관이 장악원으로 일원화되며 양인 아악 연주자는 ‘악생’, 천인 속악 연주자는 ‘악공’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부류 모두 아악·속악을 같이 연습해야 하였다. 악생은 주로 국가 제례에서 아악 연주, 악장 노래, 일무를 담당했지만 둑제 등 속악 의식도 맡았다. 한편,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에서 음악을 전수한 고구려·백제·신라 출신의 악인을 악생이라고 했으나 장악원의 악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속악은 아악과 대비되는 음악, 또는 음악의 큰 갈래인 아악·당악·향악 중 하나인 향악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향악·당악·아악의 세 갈래 음악이 있었다. 속악은 아악의 대칭어로서 향악과 당악을 뜻하는 상위 개념인데, 때로 향악을 뜻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속악은 상위 개념으로서 향악과 당악 및 이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신악까지 두루 포함하는 용어로도 쓰이고, 향악의 의미로도 쓰였다.
속악 (俗樂)
속악은 아악과 대비되는 음악, 또는 음악의 큰 갈래인 아악·당악·향악 중 하나인 향악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향악·당악·아악의 세 갈래 음악이 있었다. 속악은 아악의 대칭어로서 향악과 당악을 뜻하는 상위 개념인데, 때로 향악을 뜻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속악은 상위 개념으로서 향악과 당악 및 이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신악까지 두루 포함하는 용어로도 쓰이고, 향악의 의미로도 쓰였다.
1932년 10월 아악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노악사(老樂師)들이 중심이 되어 아악의 연습과 연주를 위해 조직한 단체.
이습회 (肄習會)
1932년 10월 아악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노악사(老樂師)들이 중심이 되어 아악의 연습과 연주를 위해 조직한 단체.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
탄금가 (彈琴歌)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