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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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조소앙 (趙素昻)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은 일제강점기 실력 양성 운동에 의한 항일 운동 단체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민족사적 과제인 민족 통일, 민주주의 발전, 건전한 시민과 청소년 육성을 위해 힘쓴 사회교육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이다. 1913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의 주도로 조선 8도를 대표한 발기인 25명으로 조직되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해산되었다가 1963년 7월에 부활하여 청소년 수련을 위한 아카데미운동을 전개하는 등 시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흥사단 (興士團)
흥사단(Young Korean Academy, 興士團)은 일제강점기 실력 양성 운동에 의한 항일 운동 단체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민족사적 과제인 민족 통일, 민주주의 발전, 건전한 시민과 청소년 육성을 위해 힘쓴 사회교육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이다. 1913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의 주도로 조선 8도를 대표한 발기인 25명으로 조직되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해산되었다가 1963년 7월에 부활하여 청소년 수련을 위한 아카데미운동을 전개하는 등 시민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임시사료편찬회 (臨時史料編纂會)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1926년에, 주요한이 안창호의 흥사단을 배경으로 창간한 잡지.
동광 (東光)
1926년에, 주요한이 안창호의 흥사단을 배경으로 창간한 잡지.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국민회 (國民會)
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합성협회가 통합하여 설립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던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가 1908년 11월부터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여 1909년 2월 1일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창립한 한인 사회 단체이다.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공립협회 (共立協會)
공립협회는 19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등이 결성한 민족 운동 단체이다.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 국권 회복과 동족상애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LA 도산 안창호 거리 (LA 島山 安昌浩 거리)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권승렬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및 여운형·안창호의 검거 사건 등을 변론한 법조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26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법과를 수석 졸업하였다. 일본인변호사회와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으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무료로 변론했다. 1920∼1930년대 독립운동·사상문제에 관한 변호를 자임하였으며, 여운형(1929년), 안창호(1932년) 등의 변호를 맡았다. 광복 이후 과도정부의 사법부 법제처장,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과 한국법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권승렬 (權承烈)
권승렬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및 여운형·안창호의 검거 사건 등을 변론한 법조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26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법과를 수석 졸업하였다. 일본인변호사회와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으며,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무료로 변론했다. 1920∼1930년대 독립운동·사상문제에 관한 변호를 자임하였으며, 여운형(1929년), 안창호(1932년) 등의 변호를 맡았다. 광복 이후 과도정부의 사법부 법제처장,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과 한국법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전쟁 및 재난 때 부상자를 구호하기 위하여 조직한 보건후생단체.
대한적십자회 (大韓赤十字會)
1919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전쟁 및 재난 때 부상자를 구호하기 위하여 조직한 보건후생단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도산 안창호 기념관 (島山 安昌浩 記念館)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
계몽가요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부르던 노래이다. 배움, 체력 강화, 봉건 타파, 애국가, 충절가, 항일가, 독립가, 단결가 등을 내용으로 한다. 주로 익숙한 민요나 일본식 창가, 찬송가 등에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방식이었다. 한국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곡들도 있다. 학문 장려를 위한 「권학가」, 도산 안창호가 작사한 「점진가」, 야학 등에서 불린 「야학가」 등이 있다. 민족의 역사적 수난을 노래 운동으로 극복하고자 한 점, 민중과 음악인이 함께 전국적으로 펼쳐나간 노래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계몽가요 (啓蒙歌謠)
계몽가요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부르던 노래이다. 배움, 체력 강화, 봉건 타파, 애국가, 충절가, 항일가, 독립가, 단결가 등을 내용으로 한다. 주로 익숙한 민요나 일본식 창가, 찬송가 등에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방식이었다. 한국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곡들도 있다. 학문 장려를 위한 「권학가」, 도산 안창호가 작사한 「점진가」, 야학 등에서 불린 「야학가」 등이 있다. 민족의 역사적 수난을 노래 운동으로 극복하고자 한 점, 민중과 음악인이 함께 전국적으로 펼쳐나간 노래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중앙일보, 세계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의 반일여론 조성에 기여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신언준 (申彦俊)
일제강점기 때, 중앙일보, 세계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의 반일여론 조성에 기여한 언론인·독립운동가.
1926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단체.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臨時政府 經濟後援會)
1926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단체.
일제강점기 때, 서간도에서 군자금 모금, 밀정 색출, 변절자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관구 (李觀求)
일제강점기 때, 서간도에서 군자금 모금, 밀정 색출, 변절자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이동춘 (李同春)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조선상고민족사』, 『한국기독교 선교의 신배경』 등을 저술한 학자. 법의학자, 병리학자, 역사학자.
최동 (崔棟)
해방 이후 『조선상고민족사』, 『한국기독교 선교의 신배경』 등을 저술한 학자. 법의학자, 병리학자, 역사학자.
1927년 만주 길림에서 독립운동가 300여 명이 중국 군경에게 붙잡힌 사건.
길림 대검거 사건 (吉林 大檢擧 事件)
1927년 만주 길림에서 독립운동가 300여 명이 중국 군경에게 붙잡힌 사건.
샌프란시스코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이다. 1904년 안창호 등 9명의 교포들이 교회 창립의 기초를 다졌으며, 1908년 미국 남감리교단의 승인으로 정식 교회가 되었다. 미주한인사회 내 첫 한글 발행 잡지인 월간 『대도(大道)』를 창간하였는데, 이 잡지는 신앙 증진은 물론 구국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1910년 말 교회 내 대한소학교를 설립해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1시간씩 한글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쳤다. 해방 이전 기독교 신앙 증진은 물론 민족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양하는데 앞장선 민족교회로 활동하였다.
샌프란시스코한인연합감리교회 (桑港韓人聯合監理敎會)
샌프란시스코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이다. 1904년 안창호 등 9명의 교포들이 교회 창립의 기초를 다졌으며, 1908년 미국 남감리교단의 승인으로 정식 교회가 되었다. 미주한인사회 내 첫 한글 발행 잡지인 월간 『대도(大道)』를 창간하였는데, 이 잡지는 신앙 증진은 물론 구국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1910년 말 교회 내 대한소학교를 설립해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1시간씩 한글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쳤다. 해방 이전 기독교 신앙 증진은 물론 민족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양하는데 앞장선 민족교회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