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우왕"
검색결과 총 37건
고려의 제32대 왕, 우왕의 왕비.
근비 (謹妃)
고려의 제32대 왕, 우왕의 왕비.
고려후기 서운부정, 대호군, 밀직사 등을 역임한 관리.
노영수 (盧英壽)
고려후기 서운부정, 대호군, 밀직사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7왕비.
덕비 (德妃)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7왕비.
고려 후기에, 찬성사, 계품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인유 (姜仁裕)
고려 후기에, 찬성사, 계품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김저 (金佇)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조선 전기에, 상의중추원사, 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곽충보 (郭忠輔)
조선 전기에, 상의중추원사, 도총제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변안열 (邊安烈)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명순옹주 (明順翁主)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길재는 조선전기 『야은집』, 『야은속집』, 『야은언행습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353년(공민왕 2)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태학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직만 맡다가,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갔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도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고, 경전 토론과 성리학 강해, 후학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학통은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
길재 (吉再)
길재는 조선전기 『야은집』, 『야은속집』, 『야은언행습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353년(공민왕 2)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태학에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직만 맡다가,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갔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서도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고, 경전 토론과 성리학 강해, 후학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학통은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
고려후기 밀직부사,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반복해 (潘福海)
고려후기 밀직부사,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어머니인 왕족.
반야 (般若)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어머니인 왕족.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 우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반익순 (潘益淳)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 우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문달한은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삼사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우왕 대에 양광·경상도 도체찰사로서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웠다. 공양왕 대에는 외척 이림의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직전에 사망하였다. 봉군호는 순평군이며, 전라도 김제의 저산서원에 제향되었다.
문달한 (文達漢)
문달한은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삼사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우왕 대에 양광·경상도 도체찰사로서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웠다. 공양왕 대에는 외척 이림의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직전에 사망하였다. 봉군호는 순평군이며, 전라도 김제의 저산서원에 제향되었다.
고려후기 집의, 좌부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간신.
김승득 (金承得)
고려후기 집의, 좌부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간신.
신아는 고려 후기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신의 딸을 우왕에게 바쳐 출세한 인물이다. 이후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비리를 일으켜 아들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이후 창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지만 공양왕 즉위 후 다시 유배되었다.
신아 (申雅)
신아는 고려 후기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신의 딸을 우왕에게 바쳐 출세한 인물이다. 이후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비리를 일으켜 아들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이후 창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지만 공양왕 즉위 후 다시 유배되었다.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염제신 (廉悌臣)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조선 전기에, 공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권담 (權湛)
조선 전기에, 공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양광도도순문사, 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성대용 (成大庸)
고려 후기에, 양광도도순문사, 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2왕비.
영비 (寧妃)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2왕비.
수창궁은 고려시대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었던 궁궐이다. 개경 중심인 십자가 서북쪽에 있었다. 고려 현종, 인종, 명종 등이 본궐을 중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 강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동안 사용된 사례가 잘 보이지 않아서 원종∼충렬왕 대 사이에 폐허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381년(우왕 7)∼1384년(우왕 10)에 중수하였고, 창왕 즉위 후 잠시 수령궁으로 개칭한 적이 있었다. 우왕 대 중수된 이후로 수창궁은 조선 초까지 주요 궁궐로 활용되었다.
수창궁 (壽昌宮)
수창궁은 고려시대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었던 궁궐이다. 개경 중심인 십자가 서북쪽에 있었다. 고려 현종, 인종, 명종 등이 본궐을 중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 강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동안 사용된 사례가 잘 보이지 않아서 원종∼충렬왕 대 사이에 폐허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381년(우왕 7)∼1384년(우왕 10)에 중수하였고, 창왕 즉위 후 잠시 수령궁으로 개칭한 적이 있었다. 우왕 대 중수된 이후로 수창궁은 조선 초까지 주요 궁궐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