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윤선도"
검색결과 총 17건
조선 후기에 침굉(枕肱, 懸辯)이 지은 불교가사.
귀산곡 (歸山曲)
조선 후기에 침굉(枕肱, 懸辯)이 지은 불교가사.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만흥 (漫興)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조선 후기에, 남양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박세성 (朴世城)
조선 후기에, 남양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기세탄 (饑歲歎)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유계는 조선 후기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40)에 출생하여 1664년(현종5)에 사망했다.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자신의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강거문답』,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여사제강』을 편찬하였다.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졌다. 문집으로 『시남집』이 있다.
유계 (兪棨)
유계는 조선 후기 예문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40)에 출생하여 1664년(현종5)에 사망했다.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자신의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강거문답』, 역사상의 예설들을 밝힌 『가례원류』, 노론 정권하의 고려사에 대한 역사관을 대변해 주는 『여사제강』을 편찬하였다.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졌다. 문집으로 『시남집』이 있다.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윤의중 (尹毅中)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호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무 (李堥)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호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618년(광해군 1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우후요 (雨後謠)
1618년(광해군 1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일모요 (日暮謠)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조선 후기에 윤이후(尹爾厚)가 지은 가사.
일민가 (逸民歌)
조선 후기에 윤이후(尹爾厚)가 지은 가사.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증반금 (贈伴琴)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좌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합 (李柙)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좌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추야조 (秋夜操)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춘효음 (春曉吟)
1645년(인조 23)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조무요 (朝霧謠)
1642년(인조 20)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조선후기 천봉산 처우화상(處愚和尙)에게 출가해 선암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침굉집』을 남긴 승려.
현변 (懸辯)
조선후기 천봉산 처우화상(處愚和尙)에게 출가해 선암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침굉집』을 남긴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