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일제_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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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는 1927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이다. 3·1운동 후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항일여성단체들이 1927년 신간회의 탄생을 계기로 통합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하였다.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삼았고 운동 목표로는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자신의 해방과 일제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대 방향이 제시되었다. 1930년에는 전국에 6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일본·만주 등 해외에 지부를 두는 등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내부의 분열과 자금난 등으로 정식 해산 발표도 없이 1931년 이후 해체되었다.
근우회 (勤友會)
근우회는 1927년에 조직되었던 독립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이다. 3·1운동 후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항일여성단체들이 1927년 신간회의 탄생을 계기로 통합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하였다.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삼았고 운동 목표로는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자신의 해방과 일제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양대 방향이 제시되었다. 1930년에는 전국에 6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일본·만주 등 해외에 지부를 두는 등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내부의 분열과 자금난 등으로 정식 해산 발표도 없이 1931년 이후 해체되었다.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백청단 (白靑團)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금서 (禁書)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1926년부터 1935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농민조합 형태의 농민운동.
농민조합운동 (農民組合運動)
1926년부터 1935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농민조합 형태의 농민운동.
1941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학생비밀결사.
다혁당 (茶革黨)
1941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학생비밀결사.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사회단체.
경성여자청년동맹 (京城女子靑年同盟)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사회단체.
『무문헌문집』은 조선 후기에 개항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학자 이철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6권 3책의 석인본으로, 표제, 권수제, 판심제 모두 동일하게 ‘무문헌문집(無聞軒文集)’이다.
무문헌문집 (無聞軒文集)
『무문헌문집』은 조선 후기에 개항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학자 이철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6권 3책의 석인본으로, 표제, 권수제, 판심제 모두 동일하게 ‘무문헌문집(無聞軒文集)’이다.
『무주부읍지』는 1910년대 초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으며, 무주의 자연과 역사, 경제, 군사 등과 관련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항목은 많으나 기록은 소략하다.
무주부읍지 (茂朱府邑誌)
『무주부읍지』는 1910년대 초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으며, 무주의 자연과 역사, 경제, 군사 등과 관련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항목은 많으나 기록은 소략하다.
1911년 일제가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제정·공포한 법령.
사찰령 (寺刹令)
1911년 일제가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제정·공포한 법령.
『남평읍지』는 1910년대 초반 전라남도 남평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원본 읍지에 있던 지도는 수록하지 않았다. 남평의 자연과 역사, 문화, 경제, 군사 등을 기록하였으며, 인물 관련 기록이 빠져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남평읍지 (南平邑誌)
『남평읍지』는 1910년대 초반 전라남도 남평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원본 읍지에 있던 지도는 수록하지 않았다. 남평의 자연과 역사, 문화, 경제, 군사 등을 기록하였으며, 인물 관련 기록이 빠져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원주읍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원주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 110자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읍지의 분량이 다른 관찬 읍지에 비해 많지만, 내용은 18세기 후반 정조 대에 머물러 있다. 원주 지역의 다른 관찬 읍지와 다르게 선생안 항목이 빠져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원주읍지 (原州邑誌)
『원주읍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원주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 110자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읍지의 분량이 다른 관찬 읍지에 비해 많지만, 내용은 18세기 후반 정조 대에 머물러 있다. 원주 지역의 다른 관찬 읍지와 다르게 선생안 항목이 빠져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육사시집』은 1946년에 이원조가 이육사의 시 20편을 수록하여 서울출판사에서 간행한 시집이다. 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신석초, 김광균 등의 서문과 이원조의 발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육사의 시는 그의 공간 의식, 내면의 수사법, 저항정신, 강한 의지력이 녹아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육사시집 (陸史詩集)
『육사시집』은 1946년에 이원조가 이육사의 시 20편을 수록하여 서울출판사에서 간행한 시집이다. 2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신석초, 김광균 등의 서문과 이원조의 발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육사의 시는 그의 공간 의식, 내면의 수사법, 저항정신, 강한 의지력이 녹아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월군읍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당시 영월군수 김필현의 책임하에 편찬한 책을 다시 베껴 쓴 것이다. 1책 54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영월군읍지 (寧越郡邑誌)
『영월군읍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당시 영월군수 김필현의 책임하에 편찬한 책을 다시 베껴 쓴 것이다. 1책 54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옥구현읍지』는 일제강점기 전라도 옥구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5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판심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인쇄된 원고지에 펜으로 베껴 썼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일반적인 읍지 체제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지역의 일반적인 사항은 줄여 쓰고, 조세와 물자 등 재화의 생산력과 경제 규모에 집중한 특징이 있다.
옥구현읍지 (沃溝縣邑誌)
『옥구현읍지』는 일제강점기 전라도 옥구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5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판심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인쇄된 원고지에 펜으로 베껴 썼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일반적인 읍지 체제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지역의 일반적인 사항은 줄여 쓰고, 조세와 물자 등 재화의 생산력과 경제 규모에 집중한 특징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광주청년동맹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장재성 (張載性)
일제강점기 때,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광주청년동맹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선노동대회는 1920년 서울 광무대에서 조직된 노동운동 단체이다. 김광제·문탁·권직상·노병희 등이 노동자들의 상호 부조와 지적·인격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초대 회장 김광제의 사망 이후 지도층의 불화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하는 서울청년회 계열 인사들이 대회를 장악하였다. 1922년에는 지게꾼사정강연회, 자유노동자 대회 등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경성자유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으로 통폐합되었는데 일부는 경성노동회로 개편되었다. 조선노동대회는 지식층이 주도한 계몽주의적 단체로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한 선구적 단체였다.
조선노동대회 (朝鮮勞動大會)
조선노동대회는 1920년 서울 광무대에서 조직된 노동운동 단체이다. 김광제·문탁·권직상·노병희 등이 노동자들의 상호 부조와 지적·인격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초대 회장 김광제의 사망 이후 지도층의 불화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하는 서울청년회 계열 인사들이 대회를 장악하였다. 1922년에는 지게꾼사정강연회, 자유노동자 대회 등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경성자유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으로 통폐합되었는데 일부는 경성노동회로 개편되었다. 조선노동대회는 지식층이 주도한 계몽주의적 단체로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한 선구적 단체였다.
1922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
조선노동동맹회 (朝鮮勞動同盟會)
1922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
조선노동총연맹은 1927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이다. 1925년에 조선노농총동맹에서 결정한 노농분리 원칙에 따라 농민단체는 조선농민총동맹을 조직하고 노동단체는 조선노동총동맹을 조직하였다. 각 지방에 있는 노동자와 농민의 연합단체도 조직을 개편하여 분화하였다. 1927년 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농민총동맹과 노동총동맹의 단체규약을 심의하여 다수의 찬성으로 노동과 농민단체를 분리하였다. 당시 일제의 탄압 속에서 분리·결성되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조선노동자의 유일한 권익옹호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노동총연맹 (朝鮮勞動總聯盟)
조선노동총연맹은 1927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이다. 1925년에 조선노농총동맹에서 결정한 노농분리 원칙에 따라 농민단체는 조선농민총동맹을 조직하고 노동단체는 조선노동총동맹을 조직하였다. 각 지방에 있는 노동자와 농민의 연합단체도 조직을 개편하여 분화하였다. 1927년 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농민총동맹과 노동총동맹의 단체규약을 심의하여 다수의 찬성으로 노동과 농민단체를 분리하였다. 당시 일제의 탄압 속에서 분리·결성되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조선노동자의 유일한 권익옹호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조선농민사 (朝鮮農民社)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