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작곡가"
검색결과 총 21건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윤희순 (尹熙順)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해방 이후 김순애가곡집, 김순애동요곡집 등을 발표한 작곡가.
김순애 (金順愛)
해방 이후 김순애가곡집, 김순애동요곡집 등을 발표한 작곡가.
해방 이후 한양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교육자. 작곡가.
김연준 (金連俊)
해방 이후 한양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교육자. 작곡가.
해방 이후 「새야, 새야 파랑새야」, 「교향곡 제1번」, 「교향곡 제6번」 등을 만든 작곡가.
이상근 (李相根)
해방 이후 「새야, 새야 파랑새야」, 「교향곡 제1번」, 「교향곡 제6번」 등을 만든 작곡가.
해방 이후 『하대응 가곡집 I』, 『하대응 가곡집 II』, 『산』 등을 발표한 성악가. 작곡가.
하대응 (河大應)
해방 이후 『하대응 가곡집 I』, 『하대응 가곡집 II』, 『산』 등을 발표한 성악가. 작곡가.
해방 이후 「비목」, 「불타는 탑」, 「조용한 아침의 나라」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장일남 (張一男)
해방 이후 「비목」, 「불타는 탑」, 「조용한 아침의 나라」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해방 이후 「노래의 날개 위에」, 「금잔디」, 「그리움」 등을 만든 작곡가. 음악학자.
김진균 (金晋均)
해방 이후 「노래의 날개 위에」, 「금잔디」, 「그리움」 등을 만든 작곡가. 음악학자.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파키스탄 총영사, 포르투칼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작곡가.
변훈 (邊焄)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파키스탄 총영사, 포르투칼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작곡가.
김순애(金順愛) 작사·작곡의 가곡.
네잎클로버 (네잎clover)
김순애(金順愛) 작사·작곡의 가곡.
해방 이후 「황병기 주제에 의한 가야금 협주곡」, 「연산군」, 「아쟁과 피아노를 위한 북문」 등을 만든 작곡가.
정윤주 (鄭潤柱)
해방 이후 「황병기 주제에 의한 가야금 협주곡」, 「연산군」, 「아쟁과 피아노를 위한 북문」 등을 만든 작곡가.
해방 이후 「종묘제례악」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국악연주자·지휘자·작곡가.
이강덕 (李康德)
해방 이후 「종묘제례악」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국악연주자·지휘자·작곡가.
해방 이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변용」으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작곡가.
윤양석 (尹良錫)
해방 이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변용」으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작곡가.
해방 이후 가곡집 『애모』, 「교향곡 1번」, 「세 가지 단상」 등을 만든 작곡가.
이연국 (李演國)
해방 이후 가곡집 『애모』, 「교향곡 1번」, 「세 가지 단상」 등을 만든 작곡가.
대한민국 작곡가에게 수여되는 상.
한국작곡가상 (韓國作曲家賞)
대한민국 작곡가에게 수여되는 상.
해방 이후 「해뜨는소리」·「대마루 댓바람」·「우헌도곡」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김용만 (金容萬)
해방 이후 「해뜨는소리」·「대마루 댓바람」·「우헌도곡」 등을 만든 작곡가. 지휘자.
김순남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이다. 서울 낙원동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8년 동경고등음악학원 본과 작곡부에서 공부하였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음악의 정신적 지주격인 하라 타로를 만나 음악을 민중의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사상적 영향을 깊게 받았다. 해방 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하고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을 작곡하였고, 일제 잔재 청산과 진보적 민족 음악 건설을 주장하였다. 월북으로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88년 해금 조치로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김순남 (金順男)
김순남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이다. 서울 낙원동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8년 동경고등음악학원 본과 작곡부에서 공부하였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음악의 정신적 지주격인 하라 타로를 만나 음악을 민중의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사상적 영향을 깊게 받았다. 해방 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하고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을 작곡하였고, 일제 잔재 청산과 진보적 민족 음악 건설을 주장하였다. 월북으로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88년 해금 조치로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서울음악제는 1969년 문화공보부가 후원하고 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하여 한국 창작음악 진흥을 위해 시작한 음악제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작 음악 축제이다. 국내 음악인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해 오고 있다. 실내악, 관현악,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므로 한국 창작음악의 흐름과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창작인과 연주자들이 교류하면서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무대이다.
서울음악제 (서울音樂祭)
서울음악제는 1969년 문화공보부가 후원하고 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하여 한국 창작음악 진흥을 위해 시작한 음악제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작 음악 축제이다. 국내 음악인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해 오고 있다. 실내악, 관현악,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므로 한국 창작음악의 흐름과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창작인과 연주자들이 교류하면서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무대이다.
임배세는 근대 초기 소프라노로 「금주가(禁酒歌)」(1918)와 「나의 성경」(1938년 추정)을 작사, 작곡한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 졸업 후 1923년 9월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기독학교 교사를 지냈고,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종교교육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경(金慶)과 결혼 후 미국에 정착하였으며, 시카고와 뉴욕 등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조선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해나갔다. 해방 이후 1950년대 초 한미재단에서 근무했다.
임배세 (林培世)
임배세는 근대 초기 소프라노로 「금주가(禁酒歌)」(1918)와 「나의 성경」(1938년 추정)을 작사, 작곡한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 졸업 후 1923년 9월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기독학교 교사를 지냈고, 일리노이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종교교육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경(金慶)과 결혼 후 미국에 정착하였으며, 시카고와 뉴욕 등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조선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해나갔다. 해방 이후 1950년대 초 한미재단에서 근무했다.
「제례악(祭禮樂)」은 1943년 만주에서 김동진(金東振, 1913∼2009)이 작곡한 관현악곡이다. 「교향시곡 제례악(交響詩曲祭禮樂)」이라고도 불리며,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김동진이 1943년 만주 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에서 연주 활동과 만주작곡가협회에 가입하여 창작 활동을 하던 시기에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아악(雅樂)의 느낌을 바탕으로 작곡하여 연주된 관현악곡이다.
제례악 (祭禮樂)
「제례악(祭禮樂)」은 1943년 만주에서 김동진(金東振, 1913∼2009)이 작곡한 관현악곡이다. 「교향시곡 제례악(交響詩曲祭禮樂)」이라고도 불리며,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김동진이 1943년 만주 신경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에서 연주 활동과 만주작곡가협회에 가입하여 창작 활동을 하던 시기에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아악(雅樂)의 느낌을 바탕으로 작곡하여 연주된 관현악곡이다.
최옥산은 일제강점기 가야금, 대금, 단소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한 전통예술인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목포, 원산, 함흥 등지에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해방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무용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였다. 판소리나 단가 또는 민요 등을 토대로 다수의 가야금, 대금, 단소의 창작곡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반야월성」,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밝은 하늘 아래」 등 무용극 음악 창작이 주목된다.
최옥산 (崔玉山)
최옥산은 일제강점기 가야금, 대금, 단소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한 전통예술인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목포, 원산, 함흥 등지에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해방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무용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였다. 판소리나 단가 또는 민요 등을 토대로 다수의 가야금, 대금, 단소의 창작곡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반야월성」,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밝은 하늘 아래」 등 무용극 음악 창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