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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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주박 모양의 고려 시대 청자 주자(注子).
청자 표형 주자 (靑磁 瓢形 注子)
표주박 모양의 고려 시대 청자 주자(注子).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의철이 『주자어류』에서 난해한 어류체 문장들을 풀이하여 1774년에 편찬한 유학서.
주자어류고문해의 (朱子語類考文解義)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의철이 『주자어류』에서 난해한 어류체 문장들을 풀이하여 1774년에 편찬한 유학서.
조선후기 학자 이종수가 주자 「감흥시」에 대한 역대 제가의 주해를 모아 엮은 주석서. 유학서.
주자감흥시제가집해 (朱子感興時諸家集解)
조선후기 학자 이종수가 주자 「감흥시」에 대한 역대 제가의 주해를 모아 엮은 주석서. 유학서.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주자경연강의 (朱子經筵講義)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매순이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812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주자대전차의문목표보 (朱子大全箚疑問目標補)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매순이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812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민재가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809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주자대전차의보 (朱子大全箚疑補)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민재가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809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조선후기 문신 이의철이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762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주자대전차의후어 (朱子大全箚疑後語)
조선후기 문신 이의철이 『주자대전』을 해석하여 1762년에 간행한 주석서. 유학서.
유희춘·홍계희가 『주자문집』과 『주자어류』의 통일된 정본을 만드는 과정에대하여 기술한 유학서. 교감본.
주자문집어류교간범례 (朱子文集語類校刊凡例)
유희춘·홍계희가 『주자문집』과 『주자어류』의 통일된 정본을 만드는 과정에대하여 기술한 유학서. 교감본.
조선시대 학자 이덕홍이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의문나는 부분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풀이한 유학서. 강의록.
주자서절요강록 (朱子書節要講錄)
조선시대 학자 이덕홍이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의문나는 부분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풀이한 유학서. 강의록.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여 저술한 유학서.
주자서절요문초선 (朱子書節要文抄選)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의 『주자서절요』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여 저술한 유학서.
송나라 여정덕의 『주자어류대전』을 교감하여 간행한 유학서. 교감본.
주자어류대전고증 (朱子語類大全考證)
송나라 여정덕의 『주자어류대전』을 교감하여 간행한 유학서. 교감본.
미상의 저자가, 『주자어류』에서 주자와 중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뽑아 21권 8책으로 엮은 유교서.
주자어류초 (朱子語類抄)
미상의 저자가, 『주자어류』에서 주자와 중국 역사에 관한 내용을 뽑아 21권 8책으로 엮은 유교서.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왕명으로 『주자대전』의 핵심을 모아 1774년에 간행한 유학서.
주자회선 (朱子會選)
조선후기 문신·학자 서명응이 왕명으로 『주자대전』의 핵심을 모아 1774년에 간행한 유학서.
공주 충현서원에 보관되어 있는 총 9점의 주자 초상화.
충현서원 소장 주자 영정 (忠賢書院 所藏 朱子 影幀)
공주 충현서원에 보관되어 있는 총 9점의 주자 초상화.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가례부췌 책판 (家禮附贅 冊板)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답산가 (踏山歌)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고려 후기에, 직제학, 개성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수 (金銖)
고려 후기에, 직제학, 개성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후기에, 찬수낭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김유 (金楺)
조선 후기에, 찬수낭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 (光山金氏 禮安派 宗家 典籍)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