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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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골 출신의 귀족으로, 하서주총관, 집사부 중시 등을 지냈다. 『삼국사기』에 집사부 중시를 지낸 문훈과 동명이인이 668년(문무왕 8) 6월 21일에 귀당총관에 임명되었고, 675년(문무왕 15) 9월에 중국 당나라와 벌인 천성전투(泉城戰鬪)에서 승리하였다고 나온다.
문훈 (文訓)
문훈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골 출신의 귀족으로, 하서주총관, 집사부 중시 등을 지냈다. 『삼국사기』에 집사부 중시를 지낸 문훈과 동명이인이 668년(문무왕 8) 6월 21일에 귀당총관에 임명되었고, 675년(문무왕 15) 9월에 중국 당나라와 벌인 천성전투(泉城戰鬪)에서 승리하였다고 나온다.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김윤중 (金允中)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남북국시대 때, 중시 등을 역임하였으며, 불국사를 창건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김대성 (金大城)
남북국시대 때, 중시 등을 역임하였으며, 불국사를 창건한 통일신라의 귀족·관리.
1466년(세조 12) 현직 중신과 문무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중시(重試)의 일종.
발영시 (拔英試)
1466년(세조 12) 현직 중신과 문무관료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중시(重試)의 일종.
발해시대의 관직.
대령 (大令)
발해시대의 관직.
대정은 통일신라 경덕왕대 이찬으로 중시에 임명되었던 관리이다. 이름의 유사성과 활동 시기를 근거로 경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과 같은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복사의 표훈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표훈은 김대성 및 불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대정과 김대성은 동일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대정 (大正)
대정은 통일신라 경덕왕대 이찬으로 중시에 임명되었던 관리이다. 이름의 유사성과 활동 시기를 근거로 경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과 같은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복사의 표훈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표훈은 김대성 및 불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대정과 김대성은 동일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등준시(登俊試)는 1466년(세조 12)과 1774년(영조 50)에 현직 문무 관료 등을 대상으로 특별히 실시했던 중시(重試)의 일종이다. 합격자에게는 중시의 예에 따라 홍패(紅牌)를 수여하고 특별 승진을 시키거나 품계를 올려 주었다. 이는 특별 시험으로 단 두 차례만 시행되었다.
등준시 (登俊試)
등준시(登俊試)는 1466년(세조 12)과 1774년(영조 50)에 현직 문무 관료 등을 대상으로 특별히 실시했던 중시(重試)의 일종이다. 합격자에게는 중시의 예에 따라 홍패(紅牌)를 수여하고 특별 승진을 시키거나 품계를 올려 주었다. 이는 특별 시험으로 단 두 차례만 시행되었다.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신충 (信忠)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아찬으로 집사성 중시를 역임한 관리.
원선 (元宣)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아찬으로 집사성 중시를 역임한 관리.
고려시대 시정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어사대 (御史臺)
고려시대 시정을 논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예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중시(中侍)를 지낸 진골 귀족이다. 671년(문무왕 11) 정월에 중시에 임명되었지만, 673년 7월에 일어난 아찬(阿飡) 대토(大吐)의 모반과 관련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673년 8월에 물러났다.
예원 (禮元)
예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중시(中侍)를 지낸 진골 귀족이다. 671년(문무왕 11) 정월에 중시에 임명되었지만, 673년 7월에 일어난 아찬(阿飡) 대토(大吐)의 모반과 관련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673년 8월에 물러났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 중시를 역임한 관리. 대신, 진골귀족.
윤충 (允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 중시를 역임한 관리. 대신, 진골귀족.
고려 후기에, 좌간의대부, 수로방호사, 동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장일 (張鎰)
고려 후기에, 좌간의대부, 수로방호사, 동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시는 조선시대에 국가나 왕실에 경축할 일이 있거나 문신중시가 실시될 때 시행되는 문과와 무과의 한 종류이다. 정시 문과는 유생들의 권학을 목적으로 실시되어 녹명 절차가 느슨하였으며,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급락이 결정되어 시관 상피제, 시권 역서 등이 적용되지 않아 채점의 공정성, 응시생 통제 등이 문제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조 대에는 정시 문과에 초시를 설치하고, 전시에서 시권을 역서하여 채점하였다.
정시 (庭試)
정시는 조선시대에 국가나 왕실에 경축할 일이 있거나 문신중시가 실시될 때 시행되는 문과와 무과의 한 종류이다. 정시 문과는 유생들의 권학을 목적으로 실시되어 녹명 절차가 느슨하였으며,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급락이 결정되어 시관 상피제, 시권 역서 등이 적용되지 않아 채점의 공정성, 응시생 통제 등이 문제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조 대에는 정시 문과에 초시를 설치하고, 전시에서 시권을 역서하여 채점하였다.
조선 세조 때 3품 이하의 문신을 대상으로 하여 전문으로 실시하였던 임시시험.
전문시 (箋文試)
조선 세조 때 3품 이하의 문신을 대상으로 하여 전문으로 실시하였던 임시시험.
전중성은 고려 전기 때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당대(唐代) 황제의 생활 시봉을 관장하는 전중성과 종실을 관장하는 종정시의 두 관서가 고려에서 하나의 관서로 합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마련되어 왕의 의식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나중에 종부시로 바뀌었다.
전중성 (殿中省)
전중성은 고려 전기 때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당대(唐代) 황제의 생활 시봉을 관장하는 전중성과 종실을 관장하는 종정시의 두 관서가 고려에서 하나의 관서로 합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마련되어 왕의 의식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나중에 종부시로 바뀌었다.
고려 후기에 왕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하던 관서.
종부시 (宗簿寺)
고려 후기에 왕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하던 관서.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의 편찬과 종실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종부시 (宗簿寺)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의 편찬과 종실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고려후기 왕실의 보첩(譜牒 : 족보)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종정시 (宗正寺)
고려후기 왕실의 보첩(譜牒 : 족보)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조선 전기의 문인, 성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467년에 간행한 시문집.
진일유고 (眞逸遺稿)
조선 전기의 문인, 성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467년에 간행한 시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