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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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 조양규(曺良奎)가 그린 서양화.
31번 창고 (三十一番 倉庫)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 조양규(曺良奎)가 그린 서양화.
「조선농업창고령」은 1931년에 제정된 농업창고업에 관한 조선총독부 제령이다. 조선총독부는 1930년 4월에 조선미곡창고계획을 발표하여, 기존의 농업 창고를 미곡 창고로 개칭하고 미곡 창고를 늘렸는데, 계속되는 풍작으로 저장해야 할 미곡의 양이 늘고, 기간도 길어지자 지주와 농민들의 재정적 압박이 심해졌다. 미곡 창고가 창하 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여, 보관 의뢰자인 지주, 농민들에게 자금 융통의 길을 확대하기 위해 「조선농업창고령」을 제정하였다.
조선농업창고업령 (朝鮮農業倉庫業令)
「조선농업창고령」은 1931년에 제정된 농업창고업에 관한 조선총독부 제령이다. 조선총독부는 1930년 4월에 조선미곡창고계획을 발표하여, 기존의 농업 창고를 미곡 창고로 개칭하고 미곡 창고를 늘렸는데, 계속되는 풍작으로 저장해야 할 미곡의 양이 늘고, 기간도 길어지자 지주와 농민들의 재정적 압박이 심해졌다. 미곡 창고가 창하 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여, 보관 의뢰자인 지주, 농민들에게 자금 융통의 길을 확대하기 위해 「조선농업창고령」을 제정하였다.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금강고 (金剛庫)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만파식적을 보관하던 천존고(天尊庫)의 창고지기로 근무한 관리.
김정고 (金貞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만파식적을 보관하던 천존고(天尊庫)의 창고지기로 근무한 관리.
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감창사 (監倉使)
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고려시대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도재고 (都齋庫)
고려시대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교제창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 기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원산 · 고원 · 함흥 3곳에 설치한 환곡 창고이다. 함경도는 농토가 부족하고 척박한 탓에 곡물이 상시적으로 부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기근이 발생하면 다수의 아사자가 생겨날 우려가 있었다. 조선 정부는 1732년(영조 8)에 함경도와 운송 경로가 가까운 경상도 연일에 포항창을 설치하고, 이와 짝하여 1737년(영조 13)에 함경도 덕원에도 진휼 창고로 원산창을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성에 자외창, 함흥에 운전창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모두 교제창이라 한다.
교제창 (交濟倉)
교제창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 기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원산 · 고원 · 함흥 3곳에 설치한 환곡 창고이다. 함경도는 농토가 부족하고 척박한 탓에 곡물이 상시적으로 부족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기근이 발생하면 다수의 아사자가 생겨날 우려가 있었다. 조선 정부는 1732년(영조 8)에 함경도와 운송 경로가 가까운 경상도 연일에 포항창을 설치하고, 이와 짝하여 1737년(영조 13)에 함경도 덕원에도 진휼 창고로 원산창을 설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성에 자외창, 함흥에 운전창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모두 교제창이라 한다.
고구려시대의 창고를 지칭하는 용어.
부경 (桴京)
고구려시대의 창고를 지칭하는 용어.
낙정미는 조선시대에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마질이나 되질을 할 때 땅에 떨어지는 쌀, 또는 그러한 명목으로 받아내던 부가세이다. 본래 수세 담당자인 이서층이나 창고지기[고직(庫直)] 등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지급하던 관행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 전세에 딸린 부가세 명목으로 자리 잡으며 폐단의 원인이 되었다.
낙정미 (落庭米)
낙정미는 조선시대에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마질이나 되질을 할 때 땅에 떨어지는 쌀, 또는 그러한 명목으로 받아내던 부가세이다. 본래 수세 담당자인 이서층이나 창고지기[고직(庫直)] 등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지급하던 관행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 전세에 딸린 부가세 명목으로 자리 잡으며 폐단의 원인이 되었다.
고려시대 창고를 관장하던 관청.
대창서 (大倉署)
고려시대 창고를 관장하던 관청.
군창지(軍倉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군수물자 관련 창고터이다. 군창지가 자리한 곳은 부여부소산성 내부의 가장 높은 지점에 해당한다. 1915년 이곳에서 창고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타다 만 쌀 · 보리 · 콩 등의 찌꺼기가 많이 나왔다.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 것에 기인하여 '백제군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다시 발굴이 이루어져 조선시대 초기 창고와 바닥 밑에서 기둥구멍과 연꽃무늬기와 조각 일부가 발견되었다.
군창지 (軍倉址)
군창지(軍倉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군수물자 관련 창고터이다. 군창지가 자리한 곳은 부여부소산성 내부의 가장 높은 지점에 해당한다. 1915년 이곳에서 창고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타다 만 쌀 · 보리 · 콩 등의 찌꺼기가 많이 나왔다.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 것에 기인하여 '백제군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다시 발굴이 이루어져 조선시대 초기 창고와 바닥 밑에서 기둥구멍과 연꽃무늬기와 조각 일부가 발견되었다.
백제시대의 중앙관서.
내경부 (內𢈴部)
백제시대의 중앙관서.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내고 (內庫)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백제시대의 관서.
외경부 (外𢈴部)
백제시대의 관서.
고려시대 군수(軍需)를 담당하였던 관청·창고.
용문창 (龍門倉)
고려시대 군수(軍需)를 담당하였던 관청·창고.
1968년 부산에 젊은 연극운동을 제언(提言)하며 창단된 극단.
에저또 (Ejotto)
1968년 부산에 젊은 연극운동을 제언(提言)하며 창단된 극단.
여수석보(麗水石堡)는 조선 초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에 만든 관방시설이다. 조선 초기 읍성을 만든 후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요해처에 석보를 쌓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곳이다. 문종 2년(1452)에서 세조 3년(1457) 무렵 이 석보를 쌓았으며, 연해안 방어 체제가 변하면서 중종 17년(1522)에 혁파되었다. 석보를 지키던 군병은 이웃 돌산진으로 옮겨갔고, 군사 시설이던 석보는 환곡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용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환곡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 석보창도 폐지되었다.
여수석보 (麗水石堡)
여수석보(麗水石堡)는 조선 초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에 만든 관방시설이다. 조선 초기 읍성을 만든 후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요해처에 석보를 쌓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곳이다. 문종 2년(1452)에서 세조 3년(1457) 무렵 이 석보를 쌓았으며, 연해안 방어 체제가 변하면서 중종 17년(1522)에 혁파되었다. 석보를 지키던 군병은 이웃 돌산진으로 옮겨갔고, 군사 시설이던 석보는 환곡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용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환곡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 석보창도 폐지되었다.
고려시대 창고 관리를 관장하던 관서.
전해고 (典廨庫)
고려시대 창고 관리를 관장하던 관서.
신라 중고기(中古期)에 설치된 왕실 부속의 창고.
창예창 (唱翳倉)
신라 중고기(中古期)에 설치된 왕실 부속의 창고.
고려시대 수도인 개경에 설치된 여러 가지 창고의 총칭.
경창 (京倉)
고려시대 수도인 개경에 설치된 여러 가지 창고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