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천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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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보성사 사장 및 사원 일동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자주독립선언문 (自主獨立宣言文)
1922년 보성사 사장 및 사원 일동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주문(呪文)은 주술이나 의례를 행할 때 외는 글귀나 그것을 외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 원시종교에서 세계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신행(神行) 현상이다. 종교 행위로서 주문 수련을 행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인격의 전환을 이루기도 하고, 치병 및 퇴마 등의 능력을 갖기도 한다. 또한 주문에 정신을 집중해 반복하여 외우면 도통(道通)하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주문은 각 종교마다 그 특성과 기능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종교들이 신행에서 언어의 수행적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문 (呪文)
주문(呪文)은 주술이나 의례를 행할 때 외는 글귀나 그것을 외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 원시종교에서 세계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신행(神行) 현상이다. 종교 행위로서 주문 수련을 행하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인격의 전환을 이루기도 하고, 치병 및 퇴마 등의 능력을 갖기도 한다. 또한 주문에 정신을 집중해 반복하여 외우면 도통(道通)하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주문은 각 종교마다 그 특성과 기능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종교들이 신행에서 언어의 수행적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천도교를 상징하는 깃발.
궁을기 (弓乙旗)
천도교를 상징하는 깃발.
1923년 조직되었던 소년운동단체.
소년운동협회 (少年運動協會)
1923년 조직되었던 소년운동단체.
1940년 오지영이 동학과 천도교 운동사에 관하여 저술한 천도교서.
동학사 (東學史)
1940년 오지영이 동학과 천도교 운동사에 관하여 저술한 천도교서.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바하이교 (Baha’i敎)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오지영은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혁신운동을 벌인 동학 및 천도교 지도자이다.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 혁신파의 지도자이다. 1920년대 초반 천도교 민주화를 요구하는 혁신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천도교연합회를 만들어 천도교단을 이탈하였다.
오지영 (吳知泳)
오지영은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혁신운동을 벌인 동학 및 천도교 지도자이다.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 혁신파의 지도자이다. 1920년대 초반 천도교 민주화를 요구하는 혁신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천도교연합회를 만들어 천도교단을 이탈하였다.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권동진 (權東鎭)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김연국은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이다. 동학 지도자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시천교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시천교총부를 건립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후 상제교를 창건하여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김연국 (金演局)
김연국은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이다. 동학 지도자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시천교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시천교총부를 건립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후 상제교를 창건하여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진보회, 헌정연구회, 대한자강회 등을 조직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양한묵 (梁漢黙)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진보회, 헌정연구회, 대한자강회 등을 조직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조선농민사 (朝鮮農民社)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재만동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신숙 (申肅)
일제강점기 때,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재만동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김완규 (金完圭)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주필, 천도교월보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이후 제국신문, 대한민보, 천도교월보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주필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독립신문 주필 활동으로 3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해 일제의 경제 수탈정책과 언론탄압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협력하였다. 이종린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이종린 (李鍾麟)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주필, 천도교월보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07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이후 제국신문, 대한민보, 천도교월보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주필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독립신문 주필 활동으로 3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해 일제의 경제 수탈정책과 언론탄압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협력하였다. 이종린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보성사 총무, 천도교 서울교구장 등을 역임하였고, 『제국신문』, 『만세보』, 『대한협회회보』 발행에 힘쓰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장효근 (張孝根)
일제강점기 때, 보성사 총무, 천도교 서울교구장 등을 역임하였고, 『제국신문』, 『만세보』, 『대한협회회보』 발행에 힘쓰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잡지 『개벽』의 주필을 역임하였고, 방정환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을 전개한 언론인·천도교인·독립운동가.
김기전 (金起田)
일제강점기 때, 잡지 『개벽』의 주필을 역임하였고, 방정환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을 전개한 언론인·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임예환 (林禮煥)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울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천도교 교조 최제우 관련 천도교유적지.
수운 최제우 유허지 (水雲 崔濟愚 遺虛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천도교 교조 최제우 관련 천도교유적지.
박준승은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학 교인으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창건 이후 천도교 임실 교구를 이끌며 원로로 활동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준승 (朴準承)
박준승은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학 교인으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창건 이후 천도교 임실 교구를 이끌며 원로로 활동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천도교의 수도원.
봉황각 (鳳凰閣)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천도교의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