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천도교"
검색결과 총 47건
1910년 천도교회에서 교리부·학술부·기예부·물가부 등으로 구성한 회보. 천도교기관지.
천도교회 월보 (天道敎會 月報)
1910년 천도교회에서 교리부·학술부·기예부·물가부 등으로 구성한 회보. 천도교기관지.
1946년 설립된 북한의 종교단체.
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 (朝鮮天道敎中央指導委員會)
1946년 설립된 북한의 종교단체.
일제강점기 때,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김동식 (金東植)
일제강점기 때,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고려혁명당 간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봉국 (金鳳國)
일제강점기 때,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고려혁명당 간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바하이교 (Baha’i敎)
바하이교는 1921년에 전래된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이다. 빠하교, 바하이한국중앙회, 바하이한국공동체,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라고도 한다. 바하이교는 1844년 바하 올라로 알려진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1817∼1892)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교조 바하 올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고, 바하이는 바하 올라를 따르는 교도를 말한다. 이들은 예언자 바압, 교조 바하 올라, 바하 올라의 아들 압둘 바하를 숭배한다. 한국에는 1921년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66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설립되었다.
개항기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김봉득 (金鳳得)
개항기 동학운동에 참여한 천도교인.
천도교를 상징하는 깃발.
궁을기 (弓乙旗)
천도교를 상징하는 깃발.
장효근이 1916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지사·의사·열사 등의 동태를 견문한 사실을 기록한 일기.
동암일기 (東菴日記)
장효근이 1916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지사·의사·열사 등의 동태를 견문한 사실을 기록한 일기.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권동진 (權東鎭)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갈잎피리』는 1929년에 발간한 정순철(鄭淳哲)의 창작 동요집이다.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나뭇잎 배」, 「늙은 잠자리」, 「물새」, 「헌모자」, 「갈잎피리」,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모두 저자 자신이 작곡한 10편의 창작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갈잎피리 (童謠集 갈닙피리)
『갈잎피리』는 1929년에 발간한 정순철(鄭淳哲)의 창작 동요집이다.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나뭇잎 배」, 「늙은 잠자리」, 「물새」, 「헌모자」, 「갈잎피리」,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모두 저자 자신이 작곡한 10편의 창작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1940년 오지영이 동학과 천도교 운동사에 관하여 저술한 천도교서.
동학사 (東學史)
1940년 오지영이 동학과 천도교 운동사에 관하여 저술한 천도교서.
김연국은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이다. 동학 지도자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시천교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시천교총부를 건립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후 상제교를 창건하여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김연국 (金演局)
김연국은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이다. 동학 지도자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시천교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시천교총부를 건립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후 상제교를 창건하여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김완규 (金完圭)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박준승은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학 교인으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창건 이후 천도교 임실 교구를 이끌며 원로로 활동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준승 (朴準承)
박준승은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학 교인으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고, 천도교 창건 이후 천도교 임실 교구를 이끌며 원로로 활동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는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천도교 중앙총부가 1907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도교교리서.
대종정의 (大宗正義)
천도교 중앙총부가 1907년에 간행한 교리서. 천도교교리서.
대한민간정부는1898년부터 1925년까지 이종일이 경험한 근대·현대사를 기록한 『묵암비망록』에 등장하는 임시정부안이다. 이종일이 주관적 입장에서 집필한 『묵암비망록』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한다고 기록하였으며,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오세창, 국무총리에 이승만, 총무부장관에 3 · 1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끈 천도교 지도자 최린을 선임하였다.
대한민간정부 (大韓民間政府)
대한민간정부는1898년부터 1925년까지 이종일이 경험한 근대·현대사를 기록한 『묵암비망록』에 등장하는 임시정부안이다. 이종일이 주관적 입장에서 집필한 『묵암비망록』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한다고 기록하였으며, 대통령에 손병희, 부통령에 오세창, 국무총리에 이승만, 총무부장관에 3 · 1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끈 천도교 지도자 최린을 선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맹산 3·1운동 (孟山 三一運動)
1919년 3·1운동 때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대한제국기 천도교 서생감독, 통무사장의 재정 등을 담당한 천도교인.
김현구 (金顯玖)
대한제국기 천도교 서생감독, 통무사장의 재정 등을 담당한 천도교인.
김낙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이다.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복합상소운동에 참여하였고 1차 동학운동 때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별개로 활동하였다.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연합하여 활동하다가 1894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김낙철 (金洛喆)
김낙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이다.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복합상소운동에 참여하였고 1차 동학운동 때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별개로 활동하였다.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연합하여 활동하다가 1894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재만동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신숙 (申肅)
일제강점기 때,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한국독립군 참모장, 재만동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