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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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문무왕 5) 8월 신라의 문무왕과 백제왕자 부여 융(扶餘隆)이 취리산에서 국경에 대하여 맺은 동맹.
취리산회맹 (就利山會盟)
665년(문무왕 5) 8월 신라의 문무왕과 백제왕자 부여 융(扶餘隆)이 취리산에서 국경에 대하여 맺은 동맹.
‘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UN 韓國臨時委員團)
‘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경수로사업은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에 의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1997년 8월 초기현장공사를, 1999년 12월 경수로 공급을 위한 주계약이 체결되었다.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비를 맞게 되었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강경입장이 변하지 않자 2006년 경수로 사업은 종료되었다. 경수로 사업은 실패했지만, 남북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수로사업 (輕水爐事業)
경수로사업은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에 의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1997년 8월 초기현장공사를, 1999년 12월 경수로 공급을 위한 주계약이 체결되었다. 2002년 10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비를 맞게 되었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강경입장이 변하지 않자 2006년 경수로 사업은 종료되었다. 경수로 사업은 실패했지만, 남북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반도 동부지역에서 전승된 민요·무가·기악 등에 주로 나타나는 토리. 메나리조.
메나리토리
한반도 동부지역에서 전승된 민요·무가·기악 등에 주로 나타나는 토리. 메나리조.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각지의 토호세력으로 성장한 씨족.
하타씨 ([秦]氏)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각지의 토호세력으로 성장한 씨족.
범민족대회는 남한과 북한 및 해외동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통일행사이다. 1980년대 말 국제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서 문익환 등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 본부(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발족하였다. 북한도 이에 응하면서 재야 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거부하면서, 1990년 8월 15일에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는 서울과 판문점에서 각기 따로 개최되었다. 이후 1999년까지 범민족대회는 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 북(평양), 해외(주로 베를린)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범민족대회 (凡民族大會)
범민족대회는 남한과 북한 및 해외동포가 참여한 민간 주도의 통일행사이다. 1980년대 말 국제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서 문익환 등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 및 범민족대회 추진 본부(범민족대회 추진본부)’를 발족하였다. 북한도 이에 응하면서 재야 인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거부하면서, 1990년 8월 15일에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는 서울과 판문점에서 각기 따로 개최되었다. 이후 1999년까지 범민족대회는 남-북-해외 3자 연대 방식으로 남(서울), 북(평양), 해외(주로 베를린)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한반도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한 잠정적 방법의 하나로 남ㆍ북한 정권을 상호인정하는 방안을 가리키는 정치용어.
남북교차승인 (南北交叉承認)
한반도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한 잠정적 방법의 하나로 남ㆍ북한 정권을 상호인정하는 방안을 가리키는 정치용어.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안테나식 동검 (antenna式 銅劍)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1991년 11월 8일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선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 (韓半島 非核化와 平和構築을 爲한 宣言)
1991년 11월 8일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선언.
석기시대의 상시 바위그늘 유적에서 출토된 고인류화석. 상시슬기사람.
상시인 (上詩人)
석기시대의 상시 바위그늘 유적에서 출토된 고인류화석. 상시슬기사람.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多者)회담.
북핵육자회담 (北核六者會談)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多者)회담.
평양 상원군 용곡리 유적에서 발굴된 고인류화석.
용곡인 (龍谷人)
평양 상원군 용곡리 유적에서 발굴된 고인류화석.
자루를 도끼 등에 만들어진 투겁에 끼워 쓰는 도끼.
투겁도끼
자루를 도끼 등에 만들어진 투겁에 끼워 쓰는 도끼.
땅을 얕게 파고 별다른 구조물을 마련하지 않은 채 시체를 직접 땅 속에 묻는 무덤양식.
토장 (土葬)
땅을 얕게 파고 별다른 구조물을 마련하지 않은 채 시체를 직접 땅 속에 묻는 무덤양식.
이해조(李海朝)가 지은 한문소설.
잠상태 (岑上苔)
이해조(李海朝)가 지은 한문소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의 간돌검·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고인돌.
승주 신평리 유적 (昇州 新坪里 遺蹟)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의 간돌검·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고인돌.
땅끝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곶이다. 땅끝은 북위 34°17′21″, 동경 126°31′22″에 해당하며, 해남반도의 끝이 땅끝이다.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은 ‘땅끝마을’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땅끝’이라는 지리적 이미지를 내세워 관광지로 만들어졌다.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 세워진 땅끝전망대와 한반도 기(氣)의 정점 땅끝탑, 땅끝모노레일,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땅끝조각공원 등의 관광 시설들과 땅끝길, 코리아트레일, 땅끝 천년숲 옛길 등의 도보길이 있다.
땅끝
땅끝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곶이다. 땅끝은 북위 34°17′21″, 동경 126°31′22″에 해당하며, 해남반도의 끝이 땅끝이다.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은 ‘땅끝마을’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땅끝’이라는 지리적 이미지를 내세워 관광지로 만들어졌다.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 세워진 땅끝전망대와 한반도 기(氣)의 정점 땅끝탑, 땅끝모노레일,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땅끝조각공원 등의 관광 시설들과 땅끝길, 코리아트레일, 땅끝 천년숲 옛길 등의 도보길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도산리 지석묘 (道山里 支石墓)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 계몽운동가, 종교인.
박정동 (朴晶東)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 계몽운동가, 종교인.
동해무조석설은 한반도의 동해안에 조석 현상이 없는 이유에 대한 역대 학자들의 논설이다. 한반도의 동해에는 왜 조석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가에 관한 논의인 동해무조석설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 17세기 중반 이후 서학의 전래와 함께 유입된 세계의 자연 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입각하여 보다 발전적 형태로 전개되었다.
동해무조석설 (東海無潮汐說)
동해무조석설은 한반도의 동해안에 조석 현상이 없는 이유에 대한 역대 학자들의 논설이다. 한반도의 동해에는 왜 조석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가에 관한 논의인 동해무조석설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 17세기 중반 이후 서학의 전래와 함께 유입된 세계의 자연 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입각하여 보다 발전적 형태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