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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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인공 호수.
산정호수 (山井湖水)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인공 호수.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호수돈여자고등학교 (好壽敦女子高等學校)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도결(都結)은 조선 후기에 전결세 징수 과정에서 기존에 호수(戶首)가 수행하던 취합 업무를 지방 관청에서 대신하는 방식이다. 전세 수취 과정에서 지방 관청은 4결 내지 8결 단위로 납세자들을 모아 작부(作夫)를 한 뒤, 각 부에서 경제적 기반이 있고 성실한 자를 호수(戶首)로 정해 해당 부의 세를 거두게 하고 일정 수수료를 챙기게 하였다. 도결(都結)은 호수의 업무를 관(官)에서 맡는 방식이었다. 관에서는 이를 통해 수수료를 얻었다. 더불어 부족한 재정을 도결 과정에서 추가로 징수하기도 하여 농민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도결 (都結)
도결(都結)은 조선 후기에 전결세 징수 과정에서 기존에 호수(戶首)가 수행하던 취합 업무를 지방 관청에서 대신하는 방식이다. 전세 수취 과정에서 지방 관청은 4결 내지 8결 단위로 납세자들을 모아 작부(作夫)를 한 뒤, 각 부에서 경제적 기반이 있고 성실한 자를 호수(戶首)로 정해 해당 부의 세를 거두게 하고 일정 수수료를 챙기게 하였다. 도결(都結)은 호수의 업무를 관(官)에서 맡는 방식이었다. 관에서는 이를 통해 수수료를 얻었다. 더불어 부족한 재정을 도결 과정에서 추가로 징수하기도 하여 농민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에 걸쳐 있는 산.
명성산 (鳴聲山)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에 걸쳐 있는 산.
광주호는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가사문학면과 광주광역시 북구 덕의동, 충효동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이다.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 제1차 사업으로 1976년에 505m 길이의 댐이 완공되었으며 저수량은 1,800만 톤(t)에 이른다. 887번 지방도를 따라 광주호 호수 생태공원, 한국가사문학관, 소쇄원 등의 문화, 생태 관광지가 위치하고 있어 광주광역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광주호 (光州湖)
광주호는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가사문학면과 광주광역시 북구 덕의동, 충효동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이다.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 제1차 사업으로 1976년에 505m 길이의 댐이 완공되었으며 저수량은 1,800만 톤(t)에 이른다. 887번 지방도를 따라 광주호 호수 생태공원, 한국가사문학관, 소쇄원 등의 문화, 생태 관광지가 위치하고 있어 광주광역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방결은 조선 후기에 결세(結稅)를 방납(防納)하는 방식이다. 팔결작부제(八結作夫制) 하에서 납세 과정을 책임지는 데 따른 대가로 호수가 일정한 부가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 관례였다. 호수직을 수행하며 얻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형태로서 양호(養戶)가 등장하였다. 양호가 진화하여 납세할 토지가 없는 이서(吏胥)들이 결세를 방납하는 방식이 방결이다.
방결 (防結)
방결은 조선 후기에 결세(結稅)를 방납(防納)하는 방식이다. 팔결작부제(八結作夫制) 하에서 납세 과정을 책임지는 데 따른 대가로 호수가 일정한 부가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 관례였다. 호수직을 수행하며 얻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형태로서 양호(養戶)가 등장하였다. 양호가 진화하여 납세할 토지가 없는 이서(吏胥)들이 결세를 방납하는 방식이 방결이다.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호수.
아산호 (牙山湖)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호수.
소양호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에 걸쳐 있는 호수이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대규모 인공 호수이다. 총 저수용량 29억t, 유효저수량 19억t, 홍수조절용량 5억t이며, 저수 면적은 70㎢에 달한다. 과거 춘천시의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양구군 양구읍 석현리 선착장과 인제군 남면 부평리 선착장까지 관광 쾌속선이 운항되었으나 최근에 도로 교통이 크게 개선되면서 탑승객이 줄어 운항이 중단되었다.
소양호 (昭陽湖)
소양호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양구군, 인제군에 걸쳐 있는 호수이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대규모 인공 호수이다. 총 저수용량 29억t, 유효저수량 19억t, 홍수조절용량 5억t이며, 저수 면적은 70㎢에 달한다. 과거 춘천시의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양구군 양구읍 석현리 선착장과 인제군 남면 부평리 선착장까지 관광 쾌속선이 운항되었으나 최근에 도로 교통이 크게 개선되면서 탑승객이 줄어 운항이 중단되었다.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인공호수.
의암호 (衣巖湖)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인공호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정세아 (鄭世雅)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주립 (朱笠)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용천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용암 동굴이다. 조개껍질 등 탄산염 퇴적층 위에 형성된 용암 동굴로, 총 길이 약 3.4㎞에 이른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종유, 동굴호수, 스파이크형 종유석 등 다양한 미지형과 탄산염 생성물이 화려하게 발달해 있다. 2005년 전신주 공사 중 발견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통일신라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도 크다.
제주 용천동굴 (濟州 龍泉洞窟)
용천동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용암 동굴이다. 조개껍질 등 탄산염 퇴적층 위에 형성된 용암 동굴로, 총 길이 약 3.4㎞에 이른다. 내부에는 용암선반, 용암종유, 동굴호수, 스파이크형 종유석 등 다양한 미지형과 탄산염 생성물이 화려하게 발달해 있다. 2005년 전신주 공사 중 발견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통일신라 토기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도 크다.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초대단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안무가, 발레교육자.
임성남 (林聖男)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초대단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안무가, 발레교육자.
일제강점기 양성학교 교사, 기전여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개신교인, 여성운동가.
방애인 (方愛人)
일제강점기 양성학교 교사, 기전여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개신교인, 여성운동가.
시화호는 경기도 안산시·시흥시·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이다. 시화호는 시화지구 대단위 간척종합개발사업으로 조성된 농경지와 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담수호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시화호로 유입하는 하천의 규모가 작고, 주변 산업단지와 시가지에서 다량의 폐수가 흘러들면서 시화호는 심각한 수질 오염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화호의 담수화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2001년 2월 공식적으로 시화호를 해수호로 인정하였다. 시화호 인근에는 ‘습지공원’이 있으며, 시화 방조제에는 시화조력발전소가 설치되었다.
시화호 (始華湖)
시화호는 경기도 안산시·시흥시·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이다. 시화호는 시화지구 대단위 간척종합개발사업으로 조성된 농경지와 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담수호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시화호로 유입하는 하천의 규모가 작고, 주변 산업단지와 시가지에서 다량의 폐수가 흘러들면서 시화호는 심각한 수질 오염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화호의 담수화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2001년 2월 공식적으로 시화호를 해수호로 인정하였다. 시화호 인근에는 ‘습지공원’이 있으며, 시화 방조제에는 시화조력발전소가 설치되었다.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신관빈 (申寬彬)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 (沈永植)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 (趙和璧)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나은주는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3일 교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2일과 3일에는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구금자 석방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들의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나은주 (羅恩周)
나은주는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3일 교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2일과 3일에는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구금자 석방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들의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문재민은 일제강점기 기생으로 활동하다 황해도 해주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기생이 되었으며, 1919년 4월 1일 기생조합 동료들과 함께 황해도 해주군 해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 행진하였고, 단상에 올라 연설도 하였다. 다른 기생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학업에 전념하였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문재민 (文載敏)
문재민은 일제강점기 기생으로 활동하다 황해도 해주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기생이 되었으며, 1919년 4월 1일 기생조합 동료들과 함께 황해도 해주군 해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 행진하였고, 단상에 올라 연설도 하였다. 다른 기생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학업에 전념하였다.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