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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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고창전투 (古昌戰鬪)
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공산전투 (公山戰鬪)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박영규 (朴英規)
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김악 (金岳)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경보 (慶甫)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금성전투 (錦城戰鬪)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고려전기 해군장군으로 수군을 거느리고 후백제를 공격한 장수.
능식 (能式)
고려전기 해군장군으로 수군을 거느리고 후백제를 공격한 장수.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에게 제거되었다.
능창 (能昌)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에게 제거되었다.
고려 전기에, 광평시중, 동남도초토사, 지아주제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행도 (金行濤)
고려 전기에, 광평시중, 동남도초토사, 지아주제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이었던 일리천싸움에 참전했던 무신·공신.
연주 (連珠)
고려 전기에,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이었던 일리천싸움에 참전했던 무신·공신.
고려 전기에, 아관, 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신강 (信康)
고려 전기에, 아관, 원윤 등을 역임한 문신.
후백제의 제2대(재위: 935년~936년) 왕.
신검 (神劍)
후백제의 제2대(재위: 935년~936년) 왕.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이 명덕에게 명하게 짓게 하였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 명덕은 7세기 후반,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여러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삼국시대의 명덕이 후백제 때 서고사를 지은 것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를 중심으로 동고사(東固寺), 서고사, 남고사, 북구사가 있었다.
서고사 (西固寺)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이 명덕에게 명하게 짓게 하였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 명덕은 7세기 후반,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여러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삼국시대의 명덕이 후백제 때 서고사를 지은 것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를 중심으로 동고사(東固寺), 서고사, 남고사, 북구사가 있었다.
남북국시대 공산전투에 참전한 후백제의 관리. 장군.
윤빈 (尹邠)
남북국시대 공산전투에 참전한 후백제의 관리. 장군.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조물성전투 (曹物城戰鬪)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일리천전투 (一利川戰鬪)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최견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장군으로, 927년 후백제에 왔다가 돌아가는 거란의 사신 사고(裟姑)와 마돌(麻咄) 등을 호송하던 중 예기치 않은 바람을 만나 후당의 등주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때 거란과 적대적이었던 후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최견 (崔堅)
최견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장군으로, 927년 후백제에 왔다가 돌아가는 거란의 사신 사고(裟姑)와 마돌(麻咄) 등을 호송하던 중 예기치 않은 바람을 만나 후당의 등주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때 거란과 적대적이었던 후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최필은 남북국시대 934년 운주성(지금의 홍주성)에서 후백제와 고려, 양국의 국왕이 몸소 군대를 지휘한 전투에 참전하였다. 견훤은 운주에 고려 왕건이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갑사(甲士) 5천 명을 이끌고 왔다. 이 전투에서 최필은 고려군에 생포되었다.
최필 (崔弼)
최필은 남북국시대 934년 운주성(지금의 홍주성)에서 후백제와 고려, 양국의 국왕이 몸소 군대를 지휘한 전투에 참전하였다. 견훤은 운주에 고려 왕건이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갑사(甲士) 5천 명을 이끌고 왔다. 이 전투에서 최필은 고려군에 생포되었다.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후삼국시대 (後三國時代)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