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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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등에 서임된 사제. 추기경.
김수환 (金壽煥)
해방 이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등에 서임된 사제. 추기경.
비류국은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기에 비류수 상류에 위치하였던 국가이다. 비류국은 주몽이 졸본에 오기 전 오랫동안 이 일대에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주몽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끝에 투항하였다. 이후 비류국은 비류부(沸流部) 혹은 비류나부(沸流那部)로 지칭되는데, 이들은 중국측 사료에 소노부(消奴部) 내지 연노부(涓奴部)로 등장하는 세력과 동일한 집단이다.
비류국 (沸流國)
비류국은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기에 비류수 상류에 위치하였던 국가이다. 비류국은 주몽이 졸본에 오기 전 오랫동안 이 일대에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주몽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끝에 투항하였다. 이후 비류국은 비류부(沸流部) 혹은 비류나부(沸流那部)로 지칭되는데, 이들은 중국측 사료에 소노부(消奴部) 내지 연노부(涓奴部)로 등장하는 세력과 동일한 집단이다.
훈장조례는 1900년 4월 17일 공포·실시된 훈장 수여에 관한 법령으로 대한제국시대의 훈장제도이다. 1899년 7월 4일에 표훈원이 창설되면서 훈위와 훈등을 제정하고 그 계급에 따라 훈장을 수여하였다. 훈등은 대훈위·훈·공 등 3종으로 구분되었으며, 훈과 공은 1등에서 8등까지로 나누어졌다. 훈장의 종류는 처음에는 금척대훈장·이화대훈장·태극장·자응장이었는데 금척대훈장 다음으로 서성대훈장을 추가하고 태극장 다음으로 팔괘장을 추가하였다. 훈장에는 연금이나 일시 하사금이 지급되었다. 훈장은 본인 외에는 패용하지 못하고, 자손에게도 물려주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훈장조례 (勳章條例)
훈장조례는 1900년 4월 17일 공포·실시된 훈장 수여에 관한 법령으로 대한제국시대의 훈장제도이다. 1899년 7월 4일에 표훈원이 창설되면서 훈위와 훈등을 제정하고 그 계급에 따라 훈장을 수여하였다. 훈등은 대훈위·훈·공 등 3종으로 구분되었으며, 훈과 공은 1등에서 8등까지로 나누어졌다. 훈장의 종류는 처음에는 금척대훈장·이화대훈장·태극장·자응장이었는데 금척대훈장 다음으로 서성대훈장을 추가하고 태극장 다음으로 팔괘장을 추가하였다. 훈장에는 연금이나 일시 하사금이 지급되었다. 훈장은 본인 외에는 패용하지 못하고, 자손에게도 물려주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해방 이후 「돌아오지 않는 해병」, 「대전장」, 「어머니」 등에 출연한 배우. 영화배우, 악극배우.
장동휘 (張東輝)
해방 이후 「돌아오지 않는 해병」, 「대전장」, 「어머니」 등에 출연한 배우. 영화배우, 악극배우.
최고인민위원회 정령으로 수여하는 명예칭호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공훈칭호 (功勳稱號)
최고인민위원회 정령으로 수여하는 명예칭호를 가리키는 북한용어.
황만금은 소련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폴리타젤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19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에서 태어나 1937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다. 1953년 플리타젤 집단농장의 선임자로 선임되어 농장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만들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무죄임이 밝혀졌다. 폴리타젤 집단농장의 명예회장을 맡아 여생을 보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노동영웅’이라고 불렸으며, 레닌 훈장과 10월혁명 훈장을 받았다.
황만금 (黃萬金)
황만금은 소련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폴리타젤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19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에서 태어나 1937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다. 1953년 플리타젤 집단농장의 선임자로 선임되어 농장을 소련 최고의 모범농장으로 만들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재판이 진행되면서 무죄임이 밝혀졌다. 폴리타젤 집단농장의 명예회장을 맡아 여생을 보내다가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노동영웅’이라고 불렸으며, 레닌 훈장과 10월혁명 훈장을 받았다.
육군 참모총장, 육군 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민기식 (閔機植)
육군 참모총장, 육군 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서봉장은 1907년(광무 11) 3월에 제정되어 내외명부에게 수여한 대한제국기의 훈장이다. 형태는 조선시대 때 예식에 쓰는 모자의 형태를 본떠서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1등에서 6등까지 차등을 두었으며, 여성에게도 나라에 세운 공훈을 인정하여 훈장을 수여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서봉장 (瑞鳳章)
서봉장은 1907년(광무 11) 3월에 제정되어 내외명부에게 수여한 대한제국기의 훈장이다. 형태는 조선시대 때 예식에 쓰는 모자의 형태를 본떠서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1등에서 6등까지 차등을 두었으며, 여성에게도 나라에 세운 공훈을 인정하여 훈장을 수여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서성대훈장은 대한제국기인 1902년(광무 6) 9월에 대훈위 훈장으로, 금척대훈장 다음에 수여하도록 제정한 훈장이다. 금척대훈장과 이화대훈장 사이에 추가하여 황친이나 문무관 중에서 이미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이 있을 때 수여하도록 제정하였다. 대훈위로 등급이 따로 없으며, 훈장의 형태는 홍색 바탕에 3개의 은색 별이 있고, 백색 광선과 이화문으로 주위를 둘렀다.
서성대훈장 (瑞星大勳章)
서성대훈장은 대한제국기인 1902년(광무 6) 9월에 대훈위 훈장으로, 금척대훈장 다음에 수여하도록 제정한 훈장이다. 금척대훈장과 이화대훈장 사이에 추가하여 황친이나 문무관 중에서 이미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이 있을 때 수여하도록 제정하였다. 대훈위로 등급이 따로 없으며, 훈장의 형태는 홍색 바탕에 3개의 은색 별이 있고, 백색 광선과 이화문으로 주위를 둘렀다.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뜰 아래 한편에 지어 기거하게 한 공부방. 서방.
책방 (冊房)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뜰 아래 한편에 지어 기거하게 한 공부방. 서방.
「사학규제」는 1659년 2월 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효종의 명에 의하여 작성한 교육정상화 종합 방안이다.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외에도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장려, 생원진사시의 조흘강 규정 강화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이후 「사학규제」는 사부학당은 물론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사학규제 (四學規制)
「사학규제」는 1659년 2월 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효종의 명에 의하여 작성한 교육정상화 종합 방안이다.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외에도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장려, 생원진사시의 조흘강 규정 강화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이후 「사학규제」는 사부학당은 물론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권애라 (權愛羅)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고앙주 (高昻柱)
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곽영준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백 매를 시장에 집합한 군중에게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행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뒤로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32년 이후 양평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다.
곽영준 (郭英俊)
곽영준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백 매를 시장에 집합한 군중에게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행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뒤로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32년 이후 양평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다.
구수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뒤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의 휴유증으로 병을 얻어 병보석되었다. 1920년 5월 1일 나이 20세로 순국하였다.
구수암 (具壽巖)
구수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뒤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의 휴유증으로 병을 얻어 병보석되었다. 1920년 5월 1일 나이 20세로 순국하였다.
권채근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월 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권채근 (權采根)
권채근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월 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도주 (金道周)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수동 (金守東)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 (金永煥)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재화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의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진주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작성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석방되었다. 출감 직후 순국하였다.
김재화 (金在華)
김재화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의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진주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작성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석방되었다. 출감 직후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