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5·16군사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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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윤보선 (尹潽善)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이후 민족일보 사건과 관련된 언론인.
조용수 (趙鏞壽)
해방 이후 민족일보 사건과 관련된 언론인.
군사정변을 성공한 1962년 3월 16일에 박정희를 비롯한 5.16세력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세력을 거세하기 위해 작성했던 개혁법안.
정치활동정화법 (政治活動淨化法)
군사정변을 성공한 1962년 3월 16일에 박정희를 비롯한 5.16세력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세력을 거세하기 위해 작성했던 개혁법안.
이석제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총무처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이다. 1925년 출생하여 2011년 사망했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여, 1949년 3월 소위로 임관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사전계획부터 핵심멤버로 참여해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부정축재처리위원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제정, 개정의 실무를 맡았다. 1963년~1969년까지 제1대 총무처 장관으로 총 6년 9개월간 재임했다. 1978년 12월 제10대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였다가 1980년 사임했다.
이석제 (李錫濟)
이석제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총무처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이다. 1925년 출생하여 2011년 사망했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여, 1949년 3월 소위로 임관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사전계획부터 핵심멤버로 참여해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부정축재처리위원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제정, 개정의 실무를 맡았다. 1963년~1969년까지 제1대 총무처 장관으로 총 6년 9개월간 재임했다. 1978년 12월 제10대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였다가 1980년 사임했다.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육군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김용순 (金容珣)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육군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발표한 사건들.
반혁명사건 (反革命事件)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발표한 사건들.
1960년 국군내 하급 장교들이 상급장교들의 용퇴를 요구한 운동.
정군운동 (整軍運動)
1960년 국군내 하급 장교들이 상급장교들의 용퇴를 요구한 운동.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성명.
혁명공약 (革命公約)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성명.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간한 잡지. 월간지.
최고회의보 (最高會議報)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간한 잡지. 월간지.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충주·중원지역구 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이종근 (李鍾根)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충주·중원지역구 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4·19 이후 조성된 혁신세력들의 정치활동.
혁신운동 (革新運動)
4·19 이후 조성된 혁신세력들의 정치활동.
중앙정보부는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에 설치한 국가정보·수사기관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주체들이 주도하여 군사정부 최고 의결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에 설치하였다. 군사정부의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고,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며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고, 군을 포함한 국가 각 기관의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감독하는 특수 기관이었다. 1979년 10·26 사건을 계기로 신군부가 주도하여 입법한 국가안전기획부법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되었다.
중앙정보부 (中央情報部)
중앙정보부는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에 설치한 국가정보·수사기관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주체들이 주도하여 군사정부 최고 의결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에 설치하였다. 군사정부의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고,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며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고, 군을 포함한 국가 각 기관의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감독하는 특수 기관이었다. 1979년 10·26 사건을 계기로 신군부가 주도하여 입법한 국가안전기획부법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제2군사령부 소속의 소령으로 5, 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군인. 공무원, 기업인.
이낙선 (李洛善)
해방 이후 제2군사령부 소속의 소령으로 5, 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군인. 공무원, 기업인.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내건 통일론.
선건설·후통일론 (先建設·後統一論)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내건 통일론.
5·16군사정변 주체세력이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였던 과도기의 국가최고통치의결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 (國家再建最高會議)
5·16군사정변 주체세력이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였던 과도기의 국가최고통치의결기구.
신생활복은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민관(民官)이 합작하여 범국민 생활 개선 운동으로 활발히 추진하였던 신생활운동(新生活運動)의 일환으로 제정된 의복이다. 따라서 신생활복은 해방 후 시기별 신생활운동 과정에서 제정된 다양한 의복들을 포괄한다. 남자용 신생활복으로 반소매와 노타이셔츠(하복), 혼방 또는 면 소재의 작업복 스타일 상의와 하의(춘추동복)가 규정된 반면, 여자용 신생활복으로는 통치마와 적삼, 개량 한복, 원피스, 투피스 등 다양한 형태의 간소복이 제안되었다.
신생활복 (新生活服)
신생활복은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민관(民官)이 합작하여 범국민 생활 개선 운동으로 활발히 추진하였던 신생활운동(新生活運動)의 일환으로 제정된 의복이다. 따라서 신생활복은 해방 후 시기별 신생활운동 과정에서 제정된 다양한 의복들을 포괄한다. 남자용 신생활복으로 반소매와 노타이셔츠(하복), 혼방 또는 면 소재의 작업복 스타일 상의와 하의(춘추동복)가 규정된 반면, 여자용 신생활복으로는 통치마와 적삼, 개량 한복, 원피스, 투피스 등 다양한 형태의 간소복이 제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