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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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인적사항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충청남도 홍주군(지금의 홍성군)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어릴 적에는 한학을 수학하고 1904년에 상경하여 1905년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07년에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 장교에 임관되었다. # 주요 활동...
김좌진 (金佐鎭)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인적사항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충청남도 홍주군(지금의 홍성군)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어릴 적에는 한학을 수학하고 1904년에 상경하여 1905년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07년에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 장교에 임관되었다. # 주요 활동...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무덤. 김좌진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향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다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1910년대 이후에는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대 전과를 올렸다. 이 후에도 주로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0년 1월 24일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 앞 자택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당시 장군의 돌연한 비보가 전해지자 당시 국내외 혁명동지들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인까지도 아연실색하였다. 특히 국내에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김좌진 장군 묘 (金佐鎭 將軍 墓)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무덤. 김좌진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향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다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1910년대 이후에는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대 전과를 올렸다. 이 후에도 주로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0년 1월 24일중동선(中東線) 산시역(山市驛) 앞 자택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당시 장군의 돌연한 비보가 전해지자 당시 국내외 혁명동지들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인까지도 아연실색하였다. 특히 국내에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생가터.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98년 1월 생가지 및 기념관까지 완공되어 충의정신(忠義精神)의 계승 발전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좌진장군은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였다. 이듬해에는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섰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ㆍ기호학회(畿湖學會)ㆍ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 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다. 3ㆍ1운동 후에는...
김좌진 장군 생가지 (金佐鎭 將軍 生家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생가터.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98년 1월 생가지 및 기념관까지 완공되어 충의정신(忠義精神)의 계승 발전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좌진장군은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였다. 이듬해에는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섰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ㆍ기호학회(畿湖學會)ㆍ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 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다. 3ㆍ1운동 후에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군정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친일파 숙청, 일제 기관 파괴 활동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9년 김좌진(金佐鎭)·유동열(柳東說) 등과 왕청현(汪淸縣)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를 조직, 활동하였다. 이해 11월 김좌진·정관해(鄭觀海) 등과 협의하여 김동순(金東淳)을 국내에 파견, 일제기관 파괴, 친일파암살 등의 공작을 시행하게 하고, 자신은 군자금모금 및 무기조달에 전력하였다. 1920년 군정서의 민사부(民事部) 책임자로 독립군에게 군량 및 무기를 조달, 공급하였고, 1921년 이후에는 오운현(烏雲縣)에 배달학원(倍達學院)을 설립,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사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그 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항전하다가 전사하자 부인 김씨도 남편을 따라...
정내붕 (鄭來鵬)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군정서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친일파 숙청, 일제 기관 파괴 활동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9년 김좌진(金佐鎭)·유동열(柳東說) 등과 왕청현(汪淸縣)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를 조직, 활동하였다. 이해 11월 김좌진·정관해(鄭觀海) 등과 협의하여 김동순(金東淳)을 국내에 파견, 일제기관 파괴, 친일파암살 등의 공작을 시행하게 하고, 자신은 군자금모금 및 무기조달에 전력하였다. 1920년 군정서의 민사부(民事部) 책임자로 독립군에게 군량 및 무기를 조달, 공급하였고, 1921년 이후에는 오운현(烏雲縣)에 배달학원(倍達學院)을 설립,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사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그 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항전하다가 전사하자 부인 김씨도 남편을 따라...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대한의용군 소대장,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을 역임한 군인·교육자·독립운동가. 김승빈은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 교관, 대한의용군 소대장,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을 역임한 군인·교육자·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김병주로 1919년 중국 남만주로 망명한 직후 개명했다. 남만주에서 한국인 소학교 교사,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다가 시베리아로 건너가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소련군과 일본군이 국경 문제로 충돌한 ‘장고봉사건’ 등 소련군의 대일항전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 소련에서 ‘붉은 별’ 훈장 및 ‘일본 타승’ 훈장 등 모두 6차례의 훈장을 받았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1922년 8월 김좌진(金佐鎭) 및...
김승빈 (金承彬)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대한의용군 소대장,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을 역임한 군인·교육자·독립운동가. 김승빈은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 교관, 대한의용군 소대장,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을 역임한 군인·교육자·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김병주로 1919년 중국 남만주로 망명한 직후 개명했다. 남만주에서 한국인 소학교 교사,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다가 시베리아로 건너가 고려혁명군정의회 장교 등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소련군과 일본군이 국경 문제로 충돌한 ‘장고봉사건’ 등 소련군의 대일항전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 소련에서 ‘붉은 별’ 훈장 및 ‘일본 타승’ 훈장 등 모두 6차례의 훈장을 받았다.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1922년 8월 김좌진(金佐鎭) 및...
일제강점기 때, 중광단 단장, 북로군정서 총재,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하였으며, 독립군 양성과 육영사업에 힘쓴 대종교인·독립운동가. 1918년 여준(呂準)·유동열(柳東說)·김동삼(金東三)·김좌진(金佐鎭) 등과 무오독립선언(戊午獨立宣言)을 발표함으로써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이듬해 중광단을 토대로 군사적 행동을 위해 계화(桂和) 등과 정의단(正義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대종교 2세교주인 무원종사(茂園宗師) 김헌(金獻)이 그에게 교통을 전수하려고 하였으나 독립군 양성과 일제에 대한 무력항쟁에 힘을 기울이기 위해 교통의 인수를 5년 뒤로 미루었다. 같은 해 8월현천묵(玄天默)·김좌진·계화 등과 함께 정의단을 개편하여 군정부(軍政府)로 만들고, 12월에는 다시 한 민족에게 두 개의 정부가 있을...
서일 (徐一)
일제강점기 때, 중광단 단장, 북로군정서 총재,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하였으며, 독립군 양성과 육영사업에 힘쓴 대종교인·독립운동가. 1918년 여준(呂準)·유동열(柳東說)·김동삼(金東三)·김좌진(金佐鎭) 등과 무오독립선언(戊午獨立宣言)을 발표함으로써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이듬해 중광단을 토대로 군사적 행동을 위해 계화(桂和) 등과 정의단(正義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대종교 2세교주인 무원종사(茂園宗師) 김헌(金獻)이 그에게 교통을 전수하려고 하였으나 독립군 양성과 일제에 대한 무력항쟁에 힘을 기울이기 위해 교통의 인수를 5년 뒤로 미루었다. 같은 해 8월현천묵(玄天默)·김좌진·계화 등과 함께 정의단을 개편하여 군정부(軍政府)로 만들고, 12월에는 다시 한 민족에게 두 개의 정부가 있을...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신한청년당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독립노동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어문학자·정치인·독립운동가.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규합하여 김좌진...
유림 (柳林)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신한청년당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독립노동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어문학자·정치인·독립운동가.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규합하여 김좌진...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북로군정서와 신민부에 가담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오항선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김좌진의 부인 나혜국과 함께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을 마련하고, 외부와의 기밀 연락을 담당하고, 무기를 운반·은익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김좌진 사망 후에는 복수를 위해 하얼빈 일본공사관 습격을 기도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남편은 김좌진(金佐鎭)의 부관을 지낸 독립유공자 유창덕(兪昌德, 1902~1931)이다. 독립만세운동과 민족종교 활동이 활발하였던 중국 지린성 왕청현 석두하자에서 4년간 소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길렀다. 또한, 만주 지역의 여성들이 간도애국부인회(間島愛國婦人會), 훈춘애국부인회, 만주여자교육회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대적...
오항선 (吳恒善)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북로군정서와 신민부에 가담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오항선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김좌진의 부인 나혜국과 함께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을 마련하고, 외부와의 기밀 연락을 담당하고, 무기를 운반·은익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김좌진 사망 후에는 복수를 위해 하얼빈 일본공사관 습격을 기도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남편은 김좌진(金佐鎭)의 부관을 지낸 독립유공자 유창덕(兪昌德, 1902~1931)이다. 독립만세운동과 민족종교 활동이 활발하였던 중국 지린성 왕청현 석두하자에서 4년간 소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길렀다. 또한, 만주 지역의 여성들이 간도애국부인회(間島愛國婦人會), 훈춘애국부인회, 만주여자교육회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대적...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海藻). 김은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이다. 세계적으로 약 80종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형태는 세포가 한층으로 된 댓잎모양 또는 둥근 엽상체이다. 수온이 낮은 가을과 봄에 본체가 나타난다. 본체는 조가비 속에서 살다가 가을에 각포자를 내어 김으로 성숙한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김 양식업이 시작되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발라서 구워 먹기도 하고 좌반·부각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김에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이 풍부하다. 우리 민속에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속설이 있다.김은 세계적으로 약 80여 종이 있으나 우리 나라에는 방사무늬김 · 김 · 둥근돌김 · 긴잎돌김 · 잇바디돌김 등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형태는 세포가 한층으로 된...
김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海藻). 김은 보라털과에 속하는 해조이다. 세계적으로 약 80종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형태는 세포가 한층으로 된 댓잎모양 또는 둥근 엽상체이다. 수온이 낮은 가을과 봄에 본체가 나타난다. 본체는 조가비 속에서 살다가 가을에 각포자를 내어 김으로 성숙한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김 양식업이 시작되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발라서 구워 먹기도 하고 좌반·부각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김에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이 풍부하다. 우리 민속에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속설이 있다.김은 세계적으로 약 80여 종이 있으나 우리 나라에는 방사무늬김 · 김 · 둥근돌김 · 긴잎돌김 · 잇바디돌김 등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형태는 세포가 한층으로 된...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1929년 7월 21일 김좌진을 비롯한 16명의 대표자는 혁신의회를 해체하고, 신민부를 한족총연합회로 개편할 것을 결의하였다. 김좌진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일파의 연합으로 20여 개의 농무협회(農務協會)를 망라한 한족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간부는 위원장 김좌진...
한족총연합회 (韓族總聯合會)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1929년 7월 21일 김좌진을 비롯한 16명의 대표자는 혁신의회를 해체하고, 신민부를 한족총연합회로 개편할 것을 결의하였다. 김좌진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일파의 연합으로 20여 개의 농무협회(農務協會)를 망라한 한족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간부는 위원장 김좌진...
1919년, 대창서원에서 출판된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김씨열행록』은 1919년 대창서원에서 출판된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윤리소설 및 가정소설로 분류될 외형에 조선 후기 유행하던 사적 복수 열녀설화가 삽입되어 있다. 「조생원전」과 매우 비슷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조생원전」과 서로 다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개화기 이해조의 「구의산」이 이 작품을 번안한 것이다.또한 장계현이 후처 유씨와 그녀의 소생을 방에 가두고 집에 불을 질러 태워 죽인 다음, 아들의 머리와 자기의 논밭 관련 문서를 며느리인 김 씨에게 보내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구성은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내용이다. 이는 이 소설에 나오는 복수담이 사실에 기반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김씨가 유복자...
김씨열행록 (金氏烈行錄)
1919년, 대창서원에서 출판된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김씨열행록』은 1919년 대창서원에서 출판된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윤리소설 및 가정소설로 분류될 외형에 조선 후기 유행하던 사적 복수 열녀설화가 삽입되어 있다. 「조생원전」과 매우 비슷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조생원전」과 서로 다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개화기 이해조의 「구의산」이 이 작품을 번안한 것이다.또한 장계현이 후처 유씨와 그녀의 소생을 방에 가두고 집에 불을 질러 태워 죽인 다음, 아들의 머리와 자기의 논밭 관련 문서를 며느리인 김 씨에게 보내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구성은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내용이다. 이는 이 소설에 나오는 복수담이 사실에 기반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김씨가 유복자...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인적 사항 김안(金安)의 초명은 김찬(金粲)이다. 김안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 주요 활동 김안은 1126년(인종 4) 인종의 내시지후(內侍祗候)로서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그는 국왕의 명령으로 평장사(平章事) 이수(李壽), 전 평장사 김인존(金仁存)에게 계획의 실행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인종은 군대를...
김안 (金安)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인적 사항 김안(金安)의 초명은 김찬(金粲)이다. 김안의 가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 주요 활동 김안은 1126년(인종 4) 인종의 내시지후(內侍祗候)로서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그는 국왕의 명령으로 평장사(平章事) 이수(李壽), 전 평장사 김인존(金仁存)에게 계획의 실행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인종은 군대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으로 시중, 상상, 병부령 등을 지낸 관리.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가계 및 인적 사항 김옹(金邕)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이다. 가계에 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으나,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김옹이 김순정(金順貞)의 손자라고 나온다. 김순정은 경덕왕의 장인이었으므로 김옹은 경덕왕대 유력한 진골 가문 출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에는 혜공왕이 원구(元舅)에게 의지하였다고 전한다. 여기 나오는 원구가 김옹인데, 원구는...
김옹 (金邕)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으로 시중, 상상, 병부령 등을 지낸 관리.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가계 및 인적 사항 김옹(金邕)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이다. 가계에 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으나,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김옹이 김순정(金順貞)의 손자라고 나온다. 김순정은 경덕왕의 장인이었으므로 김옹은 경덕왕대 유력한 진골 가문 출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에는 혜공왕이 원구(元舅)에게 의지하였다고 전한다. 여기 나오는 원구가 김옹인데, 원구는...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 지월리에 위치한 김첨(金瞻: 1502∼1584)과 그의 딸 안동김씨, 손부(孫婦) 원주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개설 1987년...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 (安東金氏 墓 出土 衣服)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 지월리에 위치한 김첨(金瞻: 1502∼1584)과 그의 딸 안동김씨, 손부(孫婦) 원주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개설 1987년...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여러 가지 재료로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싼 음식. 김밥은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시금치, 계란, 단무지, 오이, 우엉, 햄, 소고기, 참치, 멸치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싼 음식이다. 오늘날의 김밥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김초밥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토착화된 음식으로, 김에 밥을 싸서 먹는 형태, 김부스러기를 밥에 섞어 성형한 주먹밥 형태, 식초물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서 둥글게 만든 형태 등이 있었다. 1950~60년대를 거치며 김밥이 대중화되었고, 쇠고기와 표고조림, 달걀부침, 시금치나물, 단무지, 당근볶음 등이 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육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햄이 추가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김밥 전문점이 생겨나며 야채김밥, 당근김밥, 김치김밥... 김 위에...
김밥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여러 가지 재료로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싼 음식. 김밥은 김 위에 밥을 펴놓고 시금치, 계란, 단무지, 오이, 우엉, 햄, 소고기, 참치, 멸치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소를 넣어 돌돌 말아 싼 음식이다. 오늘날의 김밥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김초밥이 우리나라 방식으로 토착화된 음식으로, 김에 밥을 싸서 먹는 형태, 김부스러기를 밥에 섞어 성형한 주먹밥 형태, 식초물로 간을 한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서 둥글게 만든 형태 등이 있었다. 1950~60년대를 거치며 김밥이 대중화되었고, 쇠고기와 표고조림, 달걀부침, 시금치나물, 단무지, 당근볶음 등이 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육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햄이 추가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김밥 전문점이 생겨나며 야채김밥, 당근김밥, 김치김밥... 김 위에...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및 창작 연도 미상의 한문소설. 『운영전』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및 창작 연도 미상의 한문소설이다. 그 줄거리는 유영(柳泳)이 1601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옛집인 수성궁(壽聖宮)에서 잠이 들었다가, 꿈속에서 안평대군 시절의 궁녀였던 운영(雲英) 및 그녀의 연인인 김(金) 진사(進士)로부터 안평대군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뒤 꿈에서 깨어났다는 내용인데,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운영전』의 원작은 한문본이며 국문본은 한문본을 번역한 것인데, 현재 한문본 80여 종, 국문본 몇 종이 전해지고 있다.그는 꿈속에서 안평대군 시절의 궁녀인 운영과 그녀의 연인인 김 진사를 만났다. 그런데 김 진사가 슬픔에 잠겨 있자, 유영은 그에게 “안평대군 성시(盛時)의 일과...
운영전 (雲英傳)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및 창작 연도 미상의 한문소설. 『운영전』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및 창작 연도 미상의 한문소설이다. 그 줄거리는 유영(柳泳)이 1601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옛집인 수성궁(壽聖宮)에서 잠이 들었다가, 꿈속에서 안평대군 시절의 궁녀였던 운영(雲英) 및 그녀의 연인인 김(金) 진사(進士)로부터 안평대군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뒤 꿈에서 깨어났다는 내용인데,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운영전』의 원작은 한문본이며 국문본은 한문본을 번역한 것인데, 현재 한문본 80여 종, 국문본 몇 종이 전해지고 있다.그는 꿈속에서 안평대군 시절의 궁녀인 운영과 그녀의 연인인 김 진사를 만났다. 그런데 김 진사가 슬픔에 잠겨 있자, 유영은 그에게 “안평대군 성시(盛時)의 일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3대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의 무덤.# 내용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8,138㎡. 명빈김씨는 안정공(安靖公) 김구덕(金九德)의 딸로 태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1479년(성종 10)에 세상을 떠났다. 묘의 시설은 호석(護石)이나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이 없이 민묘(民墓)로 나지막하게 봉분이 조성되어 있고, 혼유석(魂遊石)과 문인석(文人石)이 있다. 묘비 전면에 ‘明嬪金氏之墓(명빈김씨지묘)’, 후면에 ‘楊州面成化己亥七月初七日(양주면성화기해칠월초칠일)’이 새겨져 있어 1479년에 세운 것임을 밝히고 있다. - 『선원보감(璿源寶鑑)』 - 『기내능원지』(경기도, 1988)
명빈묘 (明嬪墓)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3대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의 무덤.# 내용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8,138㎡. 명빈김씨는 안정공(安靖公) 김구덕(金九德)의 딸로 태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1479년(성종 10)에 세상을 떠났다. 묘의 시설은 호석(護石)이나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이 없이 민묘(民墓)로 나지막하게 봉분이 조성되어 있고, 혼유석(魂遊石)과 문인석(文人石)이 있다. 묘비 전면에 ‘明嬪金氏之墓(명빈김씨지묘)’, 후면에 ‘楊州面成化己亥七月初七日(양주면성화기해칠월초칠일)’이 새겨져 있어 1479년에 세운 것임을 밝히고 있다. - 『선원보감(璿源寶鑑)』 - 『기내능원지』(경기도, 1988)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 저경궁(儲慶宮)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이다.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인 인빈김씨에게 ‘저경’이라는 궁호를 바친 후 제향을 위한 묘우(廟宇)를 짓고는 저경궁으로 불렀다. 인빈김씨를 위한 제사궁 기능을 하던 저경궁은 1908년(융희 2)에 육상궁(毓祥宮)에 합쳐지고 그 소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건립 경위 저경궁(儲慶宮)은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
저경궁 (儲慶宮)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 저경궁(儲慶宮)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이다.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인 인빈김씨에게 ‘저경’이라는 궁호를 바친 후 제향을 위한 묘우(廟宇)를 짓고는 저경궁으로 불렀다. 인빈김씨를 위한 제사궁 기능을 하던 저경궁은 1908년(융희 2)에 육상궁(毓祥宮)에 합쳐지고 그 소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건립 경위 저경궁(儲慶宮)은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
현진건(玄鎭健)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적도(赤道)』는 현진건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적도』의 중심인물은 김여해와 홍영애인데, 홍영애는 가난한 김여해가 아니라 부자인 박병일과 결혼한다. 소설은 실연을 경험한 김여해가 복수심을 버리고 민족의식을 갖는 인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외에 망명했던 김상열이 국내에 잠입하자, 김여해는 김상열 대신 그 임무를 맡게 된다. 『적도』는 통속성과 사회의식을 조화시키려 한 1930년대 전반기 장편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데에서 소설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개설 현진건의 장편소설 『적도(赤道)』는 1933년 12월 20일부터 1934년 6월 1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이후 1939년 박문서관에서...
적도 (赤道)
현진건(玄鎭健)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적도(赤道)』는 현진건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적도』의 중심인물은 김여해와 홍영애인데, 홍영애는 가난한 김여해가 아니라 부자인 박병일과 결혼한다. 소설은 실연을 경험한 김여해가 복수심을 버리고 민족의식을 갖는 인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외에 망명했던 김상열이 국내에 잠입하자, 김여해는 김상열 대신 그 임무를 맡게 된다. 『적도』는 통속성과 사회의식을 조화시키려 한 1930년대 전반기 장편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데에서 소설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개설 현진건의 장편소설 『적도(赤道)』는 1933년 12월 20일부터 1934년 6월 1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이후 1939년 박문서관에서...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신민부의 군정파는 김좌진, 참의부 주류파는 김승학(金承學), 정의부 탈퇴파는 김동삼, 지청천 등이 대표하였다. 이들은 각기 소속 단체의 해산을 선언한 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에 좌익 진영의 재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在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 재만농민동맹(在滿農民同盟), 남화한인청년동맹(南華韓人靑年聯盟)의 일부가 지지를 표명하였다....
혁신의회 (革新議會)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신민부의 군정파는 김좌진, 참의부 주류파는 김승학(金承學), 정의부 탈퇴파는 김동삼, 지청천 등이 대표하였다. 이들은 각기 소속 단체의 해산을 선언한 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에 좌익 진영의 재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在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 재만농민동맹(在滿農民同盟), 남화한인청년동맹(南華韓人靑年聯盟)의 일부가 지지를 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