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솔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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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설치 목적 성종 대에 홍문관(弘文館)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에 세자시강원의 사경은 정6품직이었지만, 성종 대에 경연에 설치된 사경은 정7품 관직으로 편제되었다. # 임무와 직능 1463년(세조 9)에 장서각을 홍문관으로 개칭하면서, 겸관(兼官)...
사경 (司經)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설치 목적 성종 대에 홍문관(弘文館)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에 세자시강원의 사경은 정6품직이었지만, 성종 대에 경연에 설치된 사경은 정7품 관직으로 편제되었다. # 임무와 직능 1463년(세조 9)에 장서각을 홍문관으로 개칭하면서, 겸관(兼官)...
고려시대 물화(物貨)의 유통과 저화(楮貨)의 발행을 맡아보던 관청.# 내용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재정구조의 개혁을 시도하며 설치하였다. 관원으로는 정5품의 지사(知事) 2인, 사(使) 4인(그 중 2인은 겸관), 정6품의 부사(副使) 2인(그 중 1인은 겸관), 정7품의 승(丞) 2인이 있었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자섬사(資贍司)로 고치고, 지사를 없애고 사를 종4품, 부사를 정5품으로 올리고, 승을 없애고 주부(注簿)를 두어 정8품으로 내렸으나 곧 혁파되었다. - 『고려사(高麗史)』
제용사 (濟用司)
고려시대 물화(物貨)의 유통과 저화(楮貨)의 발행을 맡아보던 관청.# 내용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재정구조의 개혁을 시도하며 설치하였다. 관원으로는 정5품의 지사(知事) 2인, 사(使) 4인(그 중 2인은 겸관), 정6품의 부사(副使) 2인(그 중 1인은 겸관), 정7품의 승(丞) 2인이 있었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자섬사(資贍司)로 고치고, 지사를 없애고 사를 종4품, 부사를 정5품으로 올리고, 승을 없애고 주부(注簿)를 두어 정8품으로 내렸으나 곧 혁파되었다. - 『고려사(高麗史)』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사경은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과 시위(侍衛)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문종 대부터 사경이 경연에도 자주 참여하면서 『경국대전』에 세자시강원 사경은 정6품의 사서로 바뀌고 사경은 경연의 정7품 관직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치 목적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1]과 시위(侍衛)[^2]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이는 1390년(공양왕 2)에 6품의 시학(侍學)[^7]을 좌우사경(左右司經)으로...
사경 (司經)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사경은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과 시위(侍衛)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문종 대부터 사경이 경연에도 자주 참여하면서 『경국대전』에 세자시강원 사경은 정6품의 사서로 바뀌고 사경은 경연의 정7품 관직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치 목적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1]과 시위(侍衛)[^2]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이는 1390년(공양왕 2)에 6품의 시학(侍學)[^7]을 좌우사경(左右司經)으로...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사서(司書)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세자관속으로 설치된 사경이 1469년(예종 1)에 사서로 바뀌었으며, 이후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으로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중종 대 이후에는 겸사서가 증치되기도 하였다.# 설치 목적 조선 초기에 세자의 강학(講學)^1]과 시위(侍衛)[^2]를 위해 설치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우사경(左右司經)이 1명씩 있었는데, 경연에 정7품의 사경이 설치되면서 중복을 피해 1469년(예종 1)에 [세자시강원의 사경을 사서(司書)로 바꾸었다. #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시강원은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하고, 도의를 올바로 계도하는...
사서 (司書)
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 사서(司書)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세자관속으로 설치된 사경이 1469년(예종 1)에 사서로 바뀌었으며, 이후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으로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중종 대 이후에는 겸사서가 증치되기도 하였다.# 설치 목적 조선 초기에 세자의 강학(講學)^1]과 시위(侍衛)[^2]를 위해 설치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우사경(左右司經)이 1명씩 있었는데, 경연에 정7품의 사경이 설치되면서 중복을 피해 1469년(예종 1)에 [세자시강원의 사경을 사서(司書)로 바꾸었다. #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시강원은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하고, 도의를 올바로 계도하는...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 사평(司評)은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형조도관이 변정원으로 바뀌면서 형조도관의 좌랑이 변정원 사평으로 바뀌었고, 다음 해 변정원이 장예원으로 바뀌면서 장예원에 속한 관직이 되었다. 노비 관련 송사를 판결하는 결송관인 사평은 1764년(영조 40)에 장예원이 보민사로 바뀌면서 혁파되었다.# 설치 목적 1392년(태조 1)에 설치한 형조도관(刑曹都官)을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정비하면서 변정원(辯定院)^1]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이때 형조도관의 [정랑을 사의(司議)로, 좌랑을 사평(司評)으로 바꾸었으며, 정랑 하나를 없애고 사평을 하나 더 두었다. 이후 『경국대전』의 규정에는 장예원에 정3품의 판결사 1명, 정5품의 사의 3명, 정6품의 사평...
사평 (司評)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 사평(司評)은 조선시대, 장예원에 소속된 정6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형조도관이 변정원으로 바뀌면서 형조도관의 좌랑이 변정원 사평으로 바뀌었고, 다음 해 변정원이 장예원으로 바뀌면서 장예원에 속한 관직이 되었다. 노비 관련 송사를 판결하는 결송관인 사평은 1764년(영조 40)에 장예원이 보민사로 바뀌면서 혁파되었다.# 설치 목적 1392년(태조 1)에 설치한 형조도관(刑曹都官)을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정비하면서 변정원(辯定院)^1]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이때 형조도관의 [정랑을 사의(司議)로, 좌랑을 사평(司評)으로 바꾸었으며, 정랑 하나를 없애고 사평을 하나 더 두었다. 이후 『경국대전』의 규정에는 장예원에 정3품의 판결사 1명, 정5품의 사의 3명, 정6품의 사평...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5품 · 종5품의 겸임 관직. 기주관은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5품 · 종5품의 겸임 관직이다. 6품 이하의 기사관이 작성한 역사 편찬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상세하게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홍문관의 정5품 교리(2명), 종5품 부교리(2명), 의정부의 정5품 검상(1명), 세자시강원의 정5품 문학(1명), 사헌부의 정5품 지평(2명), 사간원의 정5품 헌납(1명), 승문원의 종5품 교리(2명), 육조의 정5품 정랑(이조·호조·예조·공조 각 3명, 병조·형조 각 4명) 등이 춘추관 기주관을 겸직할 수 있었다.# 설치 목적 조선시대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던 사관(史官) 가운데 하나이다. 1401년(태종 1) 7월에 관제를 개혁하여 예문춘추관을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하였는데, 춘추관 기주관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기주관 (記注官)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5품 · 종5품의 겸임 관직. 기주관은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5품 · 종5품의 겸임 관직이다. 6품 이하의 기사관이 작성한 역사 편찬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상세하게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홍문관의 정5품 교리(2명), 종5품 부교리(2명), 의정부의 정5품 검상(1명), 세자시강원의 정5품 문학(1명), 사헌부의 정5품 지평(2명), 사간원의 정5품 헌납(1명), 승문원의 종5품 교리(2명), 육조의 정5품 정랑(이조·호조·예조·공조 각 3명, 병조·형조 각 4명) 등이 춘추관 기주관을 겸직할 수 있었다.# 설치 목적 조선시대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던 사관(史官) 가운데 하나이다. 1401년(태종 1) 7월에 관제를 개혁하여 예문춘추관을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하였는데, 춘추관 기주관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조선시대,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임무와 직능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건국 이래 수차례의 변화를 거쳐 『경국대전』의 춘추관 규정으로 일단락되었는데,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춘추관 직제는 영의정이 겸임하는 영사 1인, 좌 · 우의정이 겸임하는 감사(監事)...
수찬관 (修撰官)
조선시대,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임무와 직능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건국 이래 수차례의 변화를 거쳐 『경국대전』의 춘추관 규정으로 일단락되었는데,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춘추관 직제는 영의정이 겸임하는 영사 1인, 좌 · 우의정이 겸임하는 감사(監事)...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황(李滉)의 심(心)·성(性)·정(情)에 관한 도설. 「심통성정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황의 심(心), 성(性, 정(情)에 관한 도설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여섯 번째 그림이다. 심통성정도는 정복심(程復心)의 상도(上圖)와 이황에 의해 개정된 중도(中圖) 및 하도(下圖)로 이루어졌다. 「심통성정도」에서는 먼저 정임은(程林隱)의 설을 인용하여 오행과 오성, 성과 정, 체와 용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장재의 설을 인용하여, 마음, 성과 정, 인의예지, 사단(측은, 수오, 사양, 시비) 등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이상의 도설 다음에 이황 자신이 그린 중도와 하도에 관한 설명이 서술되어 있다.성(性)과 정(情)을 통괄하는 것이 마음이며, 마음이 고요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 성이며 마음의 체(體)이다....
심통성정도 (心統性情圖)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황(李滉)의 심(心)·성(性)·정(情)에 관한 도설. 「심통성정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황의 심(心), 성(性, 정(情)에 관한 도설이다.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여섯 번째 그림이다. 심통성정도는 정복심(程復心)의 상도(上圖)와 이황에 의해 개정된 중도(中圖) 및 하도(下圖)로 이루어졌다. 「심통성정도」에서는 먼저 정임은(程林隱)의 설을 인용하여 오행과 오성, 성과 정, 체와 용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장재의 설을 인용하여, 마음, 성과 정, 인의예지, 사단(측은, 수오, 사양, 시비) 등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이상의 도설 다음에 이황 자신이 그린 중도와 하도에 관한 설명이 서술되어 있다.성(性)과 정(情)을 통괄하는 것이 마음이며, 마음이 고요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 성이며 마음의 체(體)이다....
고려 후기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례(祭禮)를 주관하고 왕의 묘호(廟號)와 시호(諡號)의 제정을 맡아보던 관청.# 내용 문종 때 두었던 태상부(大常府)의 후신으로, 1298년(충렬왕 24)봉상시(奉常寺)로 고쳐졌다가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에 의하여 다시 개칭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겸관(兼官)인 영사(領事) 2인과 영(令, 정3품) 1인, 부령(副令, 정4품) 2인, 승(丞, 정5품) 1인, 주부(注簿, 정6품) 1인, 직장(直長, 정7품) 2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 판사(判事, 정3품)가 새로 두어지면서 영이 종3품으로, 승이 종5품으로 각각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문종관제가 복구되면서 대상시로 고쳐지면서 폐지되었으나, 1362년에 곧 복치되었다. 이 때 관원들도 모두 전과 같이 두어졌는데, 부령만은 종4품으로 강등되었다. 1369년에 또...
전의시 (典儀寺)
고려 후기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례(祭禮)를 주관하고 왕의 묘호(廟號)와 시호(諡號)의 제정을 맡아보던 관청.# 내용 문종 때 두었던 태상부(大常府)의 후신으로, 1298년(충렬왕 24)봉상시(奉常寺)로 고쳐졌다가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에 의하여 다시 개칭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겸관(兼官)인 영사(領事) 2인과 영(令, 정3품) 1인, 부령(副令, 정4품) 2인, 승(丞, 정5품) 1인, 주부(注簿, 정6품) 1인, 직장(直長, 정7품) 2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 판사(判事, 정3품)가 새로 두어지면서 영이 종3품으로, 승이 종5품으로 각각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문종관제가 복구되면서 대상시로 고쳐지면서 폐지되었으나, 1362년에 곧 복치되었다. 이 때 관원들도 모두 전과 같이 두어졌는데, 부령만은 종4품으로 강등되었다. 1369년에 또...
조선시대 국가의 의례(儀禮)를 관장하였던 관서.# 내용 개국 직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조회(朝會)의 의례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합문(閤門)을 설치하고, 그 직제도 대체로 고려시대의 것을 따라 판사(정3품) 1인, 겸판사(정3품) 1인, 지사(종3품, 겸직) 2인, 인진사(정4품) 2인, 겸인진사(정4품) 2인, 인진부사(정5품) 2인, 통찬사인(종6품) 2인, 봉례랑(종6품) 10인, 겸봉례랑(종6품) 10인의 관원을 두고, 이속(吏屬)으로 영사 2인을 두었다. 합문은 얼마 뒤 통례문(通禮門)으로 개칭되고, 1414년(태종 14)에는 인진사가 첨지사, 인진부사가 판관, 통찬사인이 통찬으로 각각 바뀌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에 통례원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직제도 개편되어 좌통례(정3품) 1인, 우통례(정3품) 1인, 상례(종3품) 1인, 봉례(정4품) 1인, 찬의...
통례원 (通禮院)
조선시대 국가의 의례(儀禮)를 관장하였던 관서.# 내용 개국 직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조회(朝會)의 의례를 관장하는 관청으로 합문(閤門)을 설치하고, 그 직제도 대체로 고려시대의 것을 따라 판사(정3품) 1인, 겸판사(정3품) 1인, 지사(종3품, 겸직) 2인, 인진사(정4품) 2인, 겸인진사(정4품) 2인, 인진부사(정5품) 2인, 통찬사인(종6품) 2인, 봉례랑(종6품) 10인, 겸봉례랑(종6품) 10인의 관원을 두고, 이속(吏屬)으로 영사 2인을 두었다. 합문은 얼마 뒤 통례문(通禮門)으로 개칭되고, 1414년(태종 14)에는 인진사가 첨지사, 인진부사가 판관, 통찬사인이 통찬으로 각각 바뀌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에 통례원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직제도 개편되어 좌통례(정3품) 1인, 우통례(정3품) 1인, 상례(종3품) 1인, 봉례(정4품) 1인, 찬의...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 「정진사전」은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충청도 괴산을 서사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반부에는 주인공인 정 공자와 박 · 최 두 소저의 결연담이 중심이 되며, 후반부에서는 간악한 기생 일지로 인한 처첩 간의 갈등이 주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애정 소설과 쟁총형 가정 소설의 면모를 함께 지닌 작품이다.# 내용 충청도 괴산에 사는 정 진사에게는 얼굴과 목소리가 아주 닮은 '창린' · '귀봉'이라는 쌍둥이 남매가 있었다. 그리고 이웃에는 박 공의 딸 춘경과 최 공의 딸 옥련이 있었다. 어느날 박 · 최 두 소저가 정 소저(귀봉)를 박 소저의 집으로 청하였으나 정 소저가 몸이 불편하여 못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정 공자(창린)가 여장을 하고 가서 놀다가 본색이 드러난다. 박 · 최 두 소저의 부모는 이를...
정진사전 (鄭進士傳)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 「정진사전」은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충청도 괴산을 서사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반부에는 주인공인 정 공자와 박 · 최 두 소저의 결연담이 중심이 되며, 후반부에서는 간악한 기생 일지로 인한 처첩 간의 갈등이 주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애정 소설과 쟁총형 가정 소설의 면모를 함께 지닌 작품이다.# 내용 충청도 괴산에 사는 정 진사에게는 얼굴과 목소리가 아주 닮은 '창린' · '귀봉'이라는 쌍둥이 남매가 있었다. 그리고 이웃에는 박 공의 딸 춘경과 최 공의 딸 옥련이 있었다. 어느날 박 · 최 두 소저가 정 소저(귀봉)를 박 소저의 집으로 청하였으나 정 소저가 몸이 불편하여 못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정 공자(창린)가 여장을 하고 가서 놀다가 본색이 드러난다. 박 · 최 두 소저의 부모는 이를...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 내시부는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이다. 애초 남반의 관직으로 소수로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로 가면서 그 수가 늘고 점차 국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1356년(공민왕 5)에 환관의 직제를 정비하고 내시부가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 1356년(공민왕 5) 환관(宦官)의 관직을 고쳐 내첨사(內詹事)·내상시(內常侍)·내시감(內侍監)·내승직(內承直)·내급사(內給事)·궁위승(宮闈丞)·해관령(奚官令) 등을 두었다. # 기능과 역할 궁중에서 청소 등의 잡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몽골에 바친 환관이 고려에 와서 활동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환관의 활동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그러다가 공민왕이 왕권 강화를 꾀하는...
내시부 (內侍府)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 내시부는 고려시대 궁중에서 국왕과 그 가족의 생활을 보조하던 환관의 관청이다. 애초 남반의 관직으로 소수로 운영되었다. 고려 후기로 가면서 그 수가 늘고 점차 국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이에 1356년(공민왕 5)에 환관의 직제를 정비하고 내시부가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 1356년(공민왕 5) 환관(宦官)의 관직을 고쳐 내첨사(內詹事)·내상시(內常侍)·내시감(內侍監)·내승직(內承直)·내급사(內給事)·궁위승(宮闈丞)·해관령(奚官令) 등을 두었다. # 기능과 역할 궁중에서 청소 등의 잡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몽골에 바친 환관이 고려에 와서 활동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환관의 활동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그러다가 공민왕이 왕권 강화를 꾀하는...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와 숭의전(崇義殿)에 소속된 정6품 관직. 감(監)은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와 숭의전(崇義殿)에 소속된 정6품의 관직이다. 종친부 감은 처음에는 정5품직이었으나 1457년(세조 3)에 정6품직으로 내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숭의전 감은 고려 역대 군왕들을 제사 지내는 업무를 맡은 종6품의 관직이었다. 종친부 감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폐지되었고 숭의전 감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이 상실되면서 함께 해체되었다.# 설치 목적 종친부와 숭의전에 설치된 감은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달랐다. 종친부 감은 조선시대 종친을 예우하기 위하여 종친부에 설치한 관직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에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종친(宗親)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대신 이들을 예우하기...
감 (監)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와 숭의전(崇義殿)에 소속된 정6품 관직. 감(監)은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와 숭의전(崇義殿)에 소속된 정6품의 관직이다. 종친부 감은 처음에는 정5품직이었으나 1457년(세조 3)에 정6품직으로 내려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숭의전 감은 고려 역대 군왕들을 제사 지내는 업무를 맡은 종6품의 관직이었다. 종친부 감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폐지되었고 숭의전 감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이 상실되면서 함께 해체되었다.# 설치 목적 종친부와 숭의전에 설치된 감은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달랐다. 종친부 감은 조선시대 종친을 예우하기 위하여 종친부에 설치한 관직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에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종친(宗親)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대신 이들을 예우하기...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6품부터 정9품까지의 겸임 관직. 기사관은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6품부터 정9품까지의 겸임 관직이다. 국왕의 언행과 정사를 기록하고, 춘추관 시정기를 작성하여 후대의 실록 편찬에 대비하며, 국왕 사후 실록청에서 이루어지는 실록 편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예문관의 한림 8명은 춘추관 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임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흔히 전임사관(專任史官)이라고도 일컬었다.# 설치 목적 국왕의 언행(言行)과 정사(政事)^1]를 기록하고, [춘추관 시정기를 작성하여 후대가 실록을 편찬하는 데 대비하며, 국왕이 사망한 뒤 실록청에서 이루어지는 실록 편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임무와 직능 조선시대의 춘추관은 그때그때 시정(時政)[^2]을...
기사관 (記事官)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6품부터 정9품까지의 겸임 관직. 기사관은 조선시대, 춘추관에 소속된 정6품부터 정9품까지의 겸임 관직이다. 국왕의 언행과 정사를 기록하고, 춘추관 시정기를 작성하여 후대의 실록 편찬에 대비하며, 국왕 사후 실록청에서 이루어지는 실록 편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예문관의 한림 8명은 춘추관 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임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흔히 전임사관(專任史官)이라고도 일컬었다.# 설치 목적 국왕의 언행(言行)과 정사(政事)^1]를 기록하고, [춘추관 시정기를 작성하여 후대가 실록을 편찬하는 데 대비하며, 국왕이 사망한 뒤 실록청에서 이루어지는 실록 편찬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임무와 직능 조선시대의 춘추관은 그때그때 시정(時政)[^2]을...
조선시대, 중앙에 설치한 정9품의 관직.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설치 목적 1466년(세조 12)에 관직을 일원적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정9품의 품계로 규정한 여러 관직 가운데 하나이다. 각 관서에서 하위직인 정9품에 해당하는 관료로서 실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봉상시(奉常寺)...
부봉사 (副奉事)
조선시대, 중앙에 설치한 정9품의 관직.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설치 목적 1466년(세조 12)에 관직을 일원적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정9품의 품계로 규정한 여러 관직 가운데 하나이다. 각 관서에서 하위직인 정9품에 해당하는 관료로서 실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봉상시(奉常寺)...
고려시대의 관직. 부사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사(使)의 부직(副職)이다. 중앙직과 외직 등 여러 관서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품계와 정원, 연혁 등은 일정하지 않고 관서에 따라 다르다. 문종 때 관제에 의하면 도병마사·식목도감 등 합좌기관과 중추원·삼사 등 중앙관서에 두었다. 또한 영송도감·도재고 같은 임시관서에도 부사를 두었다. 외직으로는 도호부·목(牧)·방어진·주·군 등에 설치되어 있었다. 도병마사에는 정4품 이상의 경·감·시랑 등 6인이 겸하였고 식목도감에는 정3품 이상이 겸임하였다. 1298년부터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안렴사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품계는 알 수 없다. 또한, 1298년부터는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에 안렴사(按廉使)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해...
부사 (副使)
고려시대의 관직. 부사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사(使)의 부직(副職)이다. 중앙직과 외직 등 여러 관서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품계와 정원, 연혁 등은 일정하지 않고 관서에 따라 다르다. 문종 때 관제에 의하면 도병마사·식목도감 등 합좌기관과 중추원·삼사 등 중앙관서에 두었다. 또한 영송도감·도재고 같은 임시관서에도 부사를 두었다. 외직으로는 도호부·목(牧)·방어진·주·군 등에 설치되어 있었다. 도병마사에는 정4품 이상의 경·감·시랑 등 6인이 겸하였고 식목도감에는 정3품 이상이 겸임하였다. 1298년부터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안렴사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품계는 알 수 없다. 또한, 1298년부터는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에 안렴사(按廉使)의 부직으로서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해...
조선시대 왕자 중 정비(正妃)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嫡室王子). 대군은 조선시대 왕자 중 정비(正妃)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嫡室王子)이다. 1398년 친왕자를 공(公), 제종친을 후(侯), 정1품을 백(伯)으로 개정하였다. 1401년 공후의 작호를 폐지하고 부원대군(대군), 군·원윤·정윤의 명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414년부터 왕의 적비제자(嫡妃諸子)를 대군, 빈잉자(嬪?子)를 군에 봉하였다. 왕의 적자인 대군과 서자인 군은 정1품 무자(無資)로 정1품의 관품을 쓰지만, 산계(散階)는 없었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왕친봉작법은 그 뒤 변화없이 내려오다가 『대전회통』에 이르러 개정되었다.그러므로 이 때까지 종친부는 엄연히 정1품 아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군은 처음 정1품의 문산계(文散階)를 사용했으나, 1430년 12월부터...
대군 (大君)
조선시대 왕자 중 정비(正妃)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嫡室王子). 대군은 조선시대 왕자 중 정비(正妃)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嫡室王子)이다. 1398년 친왕자를 공(公), 제종친을 후(侯), 정1품을 백(伯)으로 개정하였다. 1401년 공후의 작호를 폐지하고 부원대군(대군), 군·원윤·정윤의 명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414년부터 왕의 적비제자(嫡妃諸子)를 대군, 빈잉자(嬪?子)를 군에 봉하였다. 왕의 적자인 대군과 서자인 군은 정1품 무자(無資)로 정1품의 관품을 쓰지만, 산계(散階)는 없었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왕친봉작법은 그 뒤 변화없이 내려오다가 『대전회통』에 이르러 개정되었다.그러므로 이 때까지 종친부는 엄연히 정1품 아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군은 처음 정1품의 문산계(文散階)를 사용했으나, 1430년 12월부터...
고려 후기,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에 둔 참외 관직. 부직장은 고려 후기에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에 둔 참외 관직이다. 본래 당제를 참고한 고려 문종 대 관제에서 여러 국(局)에는 정7품 직장이 있었을 뿐 부직장이라는 관직명은 없었는데, 1308년(충렬왕 34)에 상식국(尙食局)의 후신인 사선서에 정8품 부직장 3인을 설치하였으며, 이후 사설서, 사온서, 전악서 등에도 부직장을 두었다.# 설치 목적 원간섭기 이후에 일부 서(署)라는 명칭이 붙는 관서의 참외 관직으로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의 관서에 가장 낮은 품관직으로 설치되었으며, 영(令) · 승(丞) 등의 상위 관원을...
부직장 (副直長)
고려 후기,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에 둔 참외 관직. 부직장은 고려 후기에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에 둔 참외 관직이다. 본래 당제를 참고한 고려 문종 대 관제에서 여러 국(局)에는 정7품 직장이 있었을 뿐 부직장이라는 관직명은 없었는데, 1308년(충렬왕 34)에 상식국(尙食局)의 후신인 사선서에 정8품 부직장 3인을 설치하였으며, 이후 사설서, 사온서, 전악서 등에도 부직장을 두었다.# 설치 목적 원간섭기 이후에 일부 서(署)라는 명칭이 붙는 관서의 참외 관직으로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사선서(司膳署), 사설서(司設署), 사온서(司醞署), 전악서(典樂署) 등의 관서에 가장 낮은 품관직으로 설치되었으며, 영(令) · 승(丞) 등의 상위 관원을...
조선시대, 의복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내명부에 소속된 정6품 궁관직. 상공(尙功)은 조선시대에 의복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내명부에 소속된 정6품 궁관직이다. 궁궐 안에서 여자들이 하는 길쌈 등을 총괄하면서 의복과 재봉(裁縫)을 맡는 전제(典製)와 비단 · 모시 등 직물을 맡는 전채(典彩)를 통솔하였다. 1428년(세종 10)에 6상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법전의 내명부에 수록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설치 목적 조선 건국 초에 설치하여 운영하던 내관(內官)[^1] 제도를 1428년(세종 10) 3월에 보완하고 새로 궁관(宮官)[^2]을 설치하면서, 궁관 직책의 하나로 정5품의 상공 1명을 두었다. 이전에는 임금의 의복이나 거마(車馬)[^3] 따위를 맡은 궁위(宮闈)[^4]의 직책에는 통섭(統攝)[^5]이...
상공 (尙功)
조선시대, 의복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내명부에 소속된 정6품 궁관직. 상공(尙功)은 조선시대에 의복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내명부에 소속된 정6품 궁관직이다. 궁궐 안에서 여자들이 하는 길쌈 등을 총괄하면서 의복과 재봉(裁縫)을 맡는 전제(典製)와 비단 · 모시 등 직물을 맡는 전채(典彩)를 통솔하였다. 1428년(세종 10)에 6상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법전의 내명부에 수록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설치 목적 조선 건국 초에 설치하여 운영하던 내관(內官)[^1] 제도를 1428년(세종 10) 3월에 보완하고 새로 궁관(宮官)[^2]을 설치하면서, 궁관 직책의 하나로 정5품의 상공 1명을 두었다. 이전에는 임금의 의복이나 거마(車馬)[^3] 따위를 맡은 궁위(宮闈)[^4]의 직책에는 통섭(統攝)[^5]이...
조선시대, 왕녀나 왕세자녀와 혼인한 부마(駙馬)에게 주는 관계(官階). 의빈계(儀賓階)는 조선시대 왕녀나 왕세자녀와 혼인한 부마에게 주던 관계(官階)이다. 의빈계가 처음 실시된 것은 1444년(세종 26)이다. 의빈계는 정1품부터 종3품까지 매품마다 쌍계(雙階)로 되어 있다. 세종이 의빈계를 새로 마련한 것은 부마를 우대하면서 정치 참여를 제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의빈계의 명칭이 크게 개칭된 것은 고종 때인데 그간 문산계, 종친계, 의빈계의 구분 없이 모두 문산계로 통일하였는데,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만은 의정에게만 적용하였고, 대신 상보국숭록대부을 증치하여 종친과 의빈에게 사용하게 하였다.# 내용 의빈계(儀賓階)는 1444년(세종 26) 7월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의빈계는 다음 〈표〉...
의빈계 (儀賓階)
조선시대, 왕녀나 왕세자녀와 혼인한 부마(駙馬)에게 주는 관계(官階). 의빈계(儀賓階)는 조선시대 왕녀나 왕세자녀와 혼인한 부마에게 주던 관계(官階)이다. 의빈계가 처음 실시된 것은 1444년(세종 26)이다. 의빈계는 정1품부터 종3품까지 매품마다 쌍계(雙階)로 되어 있다. 세종이 의빈계를 새로 마련한 것은 부마를 우대하면서 정치 참여를 제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의빈계의 명칭이 크게 개칭된 것은 고종 때인데 그간 문산계, 종친계, 의빈계의 구분 없이 모두 문산계로 통일하였는데,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만은 의정에게만 적용하였고, 대신 상보국숭록대부을 증치하여 종친과 의빈에게 사용하게 하였다.# 내용 의빈계(儀賓階)는 1444년(세종 26) 7월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의빈계는 다음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