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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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관측하기 위하여 높이 쌓은 대(臺). 점성과 제천(祭天)의 관계, 참성단과 경주 첨성대의 상방하원의 형태상의 비슷함과 명칭이 소리가 서로 비슷한 것, 그리고 그 뒤 조선시대에 마니산 산정에서 천문관측을 하였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고려가 몽고의 침공을 받았던 강화도에 도읍이 있었던 때의 첨성단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가는 곳이다. 만월대의 첨성대는 높이 3m 가량의 다섯 개의 돌기둥으로 받친 석대(石臺)로서 위의 평면넓이가 대략 3m×3m로 9㎡이다. ≪고려사≫에는 충렬왕 7년(1281) 원나라에서 수시력(授時曆:원나라 곽수경이 만든 달력)이 들어 왔는데, 왕은 태사원(太史院)에 명하여 영대(靈臺:임금이 기상을 보는 대)와 천문기기(天文器機:觀象)를 만들어서 일월(日月)을 관측하여 도수(度數:각도나 광도 등의...
첨성대 (瞻星臺)
별을 관측하기 위하여 높이 쌓은 대(臺). 점성과 제천(祭天)의 관계, 참성단과 경주 첨성대의 상방하원의 형태상의 비슷함과 명칭이 소리가 서로 비슷한 것, 그리고 그 뒤 조선시대에 마니산 산정에서 천문관측을 하였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고려가 몽고의 침공을 받았던 강화도에 도읍이 있었던 때의 첨성단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가는 곳이다. 만월대의 첨성대는 높이 3m 가량의 다섯 개의 돌기둥으로 받친 석대(石臺)로서 위의 평면넓이가 대략 3m×3m로 9㎡이다. ≪고려사≫에는 충렬왕 7년(1281) 원나라에서 수시력(授時曆:원나라 곽수경이 만든 달력)이 들어 왔는데, 왕은 태사원(太史院)에 명하여 영대(靈臺:임금이 기상을 보는 대)와 천문기기(天文器機:觀象)를 만들어서 일월(日月)을 관측하여 도수(度數:각도나 광도 등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첨성대로 구전되는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 내용 개성 만월대(滿月臺) 서쪽 첨성대라고 구전되어온 석조물(石造物)을 말한다. 구조는 길이 약 3m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약 3m 사방의 4각형 석대(石臺)를 만들고 이것을 역시 약 3m 길이의 석재 5개로 받치고 있는데, 그 중 4개는 석대의 네 귀퉁이를, 1개는 중앙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석대의 윗면 네 귀퉁이에 하변이 약 15㎝의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본래 이곳에 돌난간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개성첨성대에 대하여는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도 일체 언급한 바가 없다. 그러나 『고려사』 천문지·역지(曆志)·백관지(百官志) 서운관조(書雲觀條) 등을 보아 고려시대에 첨성대가...
개성 첨성대 (開城 瞻星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첨성대로 구전되는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 내용 개성 만월대(滿月臺) 서쪽 첨성대라고 구전되어온 석조물(石造物)을 말한다. 구조는 길이 약 3m의 장대석(長臺石)으로 약 3m 사방의 4각형 석대(石臺)를 만들고 이것을 역시 약 3m 길이의 석재 5개로 받치고 있는데, 그 중 4개는 석대의 네 귀퉁이를, 1개는 중앙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석대의 윗면 네 귀퉁이에 하변이 약 15㎝의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본래 이곳에 돌난간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개성첨성대에 대하여는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도 일체 언급한 바가 없다. 그러나 『고려사』 천문지·역지(曆志)·백관지(百官志) 서운관조(書雲觀條) 등을 보아 고려시대에 첨성대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환경은 나라마다 다른 첨성대 또는 점성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환경은 나라마다 다른 첨성대 또는 점성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 내용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천문관측소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1688년(숙종 14)에 축조된 것으로 높이는 2.2m이고, 크기는 가로 2.4m, 세로 2.3m 정도의 화강석 축조물로 그 위에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고 천문을 관측했다. 따라서, 당대에는 ‘소간의대’ 또는 별을 관측하는 대라 하여 ‘첨성대’라고도 알려졌다. 지금은 소간의는 없어진 채 돌대만 남아 있다. 창경궁의 관천대에는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대의 한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서운관지(書雲觀志)』 - 문화재청(www.cha.go.kr)
창경궁 관천대 (昌慶宮 觀天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 내용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천문관측소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1688년(숙종 14)에 축조된 것으로 높이는 2.2m이고, 크기는 가로 2.4m, 세로 2.3m 정도의 화강석 축조물로 그 위에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고 천문을 관측했다. 따라서, 당대에는 ‘소간의대’ 또는 별을 관측하는 대라 하여 ‘첨성대’라고도 알려졌다. 지금은 소간의는 없어진 채 돌대만 남아 있다. 창경궁의 관천대에는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대의 한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서운관지(書雲觀志)』 - 문화재청(www.cha.go.kr)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전기 에 건립된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서울 시내에는 이 외에도 창경궁 안에 또 하나의 관천대가 있으며, 그 축조 연대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1688년(숙종 14)으로 밝혀져 있다. # 특징 반듯하게 다듬어진 돌로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로 대를 쌓은 후, 정상 부분에 직사각형의 돌로 난간을 둘러 놓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는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2011년 11월 11일 기존 사적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서운관지(書雲觀志)』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문화재청(www.cha.go.kr)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觀象監 觀天臺)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전기 에 건립된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서울 시내에는 이 외에도 창경궁 안에 또 하나의 관천대가 있으며, 그 축조 연대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1688년(숙종 14)으로 밝혀져 있다. # 특징 반듯하게 다듬어진 돌로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로 대를 쌓은 후, 정상 부분에 직사각형의 돌로 난간을 둘러 놓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는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2011년 11월 11일 기존 사적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서운관지(書雲觀志)』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문화재청(www.cha.go.kr)
향찰·구결·이두에서 우리말 단어의 끝 음절이나 끝 자음을 부기하는 차자표기법. 말음첨기법은 향찰·구결·이두에서 우리말 단어의 끝 음절이나 끝 자음을 덧붙이는 차자표기법이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사용하였고, 김완진과 남풍현 등이 수용하였다. 남풍현은 석독구결을 다루면서 말음 첨기가 훈독 구성소에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 말음첨기는 수의적으로 나타나며 첨기된 대상에 따라 ‘음절말 자음 첨기’와 ‘어말 음절 첨기’로 구별된다. 말음첨기는 향찰에서부터 생성되었고 이후의 차자표기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석독구결에서는 말음첨기의 쓰임이 풍부해졌다. 말음첨기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초·중·종성의 삼분체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말음첨기법 (末音添記法)
향찰·구결·이두에서 우리말 단어의 끝 음절이나 끝 자음을 부기하는 차자표기법. 말음첨기법은 향찰·구결·이두에서 우리말 단어의 끝 음절이나 끝 자음을 덧붙이는 차자표기법이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사용하였고, 김완진과 남풍현 등이 수용하였다. 남풍현은 석독구결을 다루면서 말음 첨기가 훈독 구성소에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 말음첨기는 수의적으로 나타나며 첨기된 대상에 따라 ‘음절말 자음 첨기’와 ‘어말 음절 첨기’로 구별된다. 말음첨기는 향찰에서부터 생성되었고 이후의 차자표기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석독구결에서는 말음첨기의 쓰임이 풍부해졌다. 말음첨기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초·중·종성의 삼분체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설 말음첨기라는 용어는 양주동이 처음...
고려시대,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설치 목적 첨사부는 태자(太子)의 일상을 보좌하는 기구이기에 첨사부로 성립하기 이전부터 태자 또래나 젊은 신하들을 배치하여 태자의 정치적 역량과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왕통의 안정적 계승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 왕권을 안정시키는 목적이었다. # 기능과 역할 태자는 미래의 국왕으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존재이다. 따라서 그를...
첨사부 (詹事府)
고려시대,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 첨사부는 고려시대에 동궁의 살림과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던 관청이다. 태자의 생활을 관리하고 관련 기구를 총괄하기 위한 조직으로 마련된 관서이다.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면서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양왕 대까지 존속하였다.# 설치 목적 첨사부는 태자(太子)의 일상을 보좌하는 기구이기에 첨사부로 성립하기 이전부터 태자 또래나 젊은 신하들을 배치하여 태자의 정치적 역량과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왕통의 안정적 계승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 왕권을 안정시키는 목적이었다. # 기능과 역할 태자는 미래의 국왕으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존재이다. 따라서 그를...
주두, 소로 및 살미와 함께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部材). 첨차는 주두, 소로 및 살미와 함께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이다. 주심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수평으로 돌출하여 형성되는 출목 선상에 사용된다. 첨차의 형태는 양쪽 끝부분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데 시대와 공포 형식에 따라 다양하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 둥글게 접은 교두형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주심포식 공포에 사용되는 첨차는 연화두형을 초각한 것이 일반화되었다. 다포식 공포가 보급되면서 첨차의 형태는 공포 형식에 따라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내용 첨차는 주심(柱心)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첨차 (檐遮)
주두, 소로 및 살미와 함께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部材). 첨차는 주두, 소로 및 살미와 함께 공포를 구성하는 기본 부재로 살미와 반턱맞춤에 의해 직교하여 결구되는 도리 방향의 부재이다. 주심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수평으로 돌출하여 형성되는 출목 선상에 사용된다. 첨차의 형태는 양쪽 끝부분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데 시대와 공포 형식에 따라 다양하다.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 둥글게 접은 교두형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주심포식 공포에 사용되는 첨차는 연화두형을 초각한 것이 일반화되었다. 다포식 공포가 보급되면서 첨차의 형태는 공포 형식에 따라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내용 첨차는 주심(柱心)을 비롯하여 공포가 건물 내외로...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 시중은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으로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도첨의시중, 첨의중찬, 도첨의중찬, 도첨의정승, 문하시중, 정승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에서 집사성의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불렀고, 태봉에서도 광평성의 장관을 시중이라고 불렀다. 고려 성종 때에 내사문하성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종친에게 수여되는 종1품의 명예직이나 치사직, 증직과는 유일한 실직이었다. 원나라의 압박으로 첨의중찬으로 격하되었는데 1356년에 문하시중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문하부가 의정부에 병합되면서 좌·우시중으로 되었다가 좌·우의정으로 이어졌다.# 개설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재상직의 통칭이며, 고려 후기에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이라고도 하였다. # 내용 및 변천 본래 중국 진 · 한대(秦漢代)에...
시중 (侍中)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 시중은 고려시대 종1품 수상직으로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도첨의시중, 첨의중찬, 도첨의중찬, 도첨의정승, 문하시중, 정승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에서 집사성의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불렀고, 태봉에서도 광평성의 장관을 시중이라고 불렀다. 고려 성종 때에 내사문하성과 동시에 설치되었다. 종친에게 수여되는 종1품의 명예직이나 치사직, 증직과는 유일한 실직이었다. 원나라의 압박으로 첨의중찬으로 격하되었는데 1356년에 문하시중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문하부가 의정부에 병합되면서 좌·우시중으로 되었다가 좌·우의정으로 이어졌다.# 개설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이다. 재상직의 통칭이며, 고려 후기에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이라고도 하였다. # 내용 및 변천 본래 중국 진 · 한대(秦漢代)에...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설치와 운영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강요로 고려에서는 관제를 격하하였다.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상서성(尙書省)을 합쳐서 첨의부(僉議府)로 바꾸었다. 관부 개편과 함께 소속 관직의 명칭과...
중찬 (中贊)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 중찬은 고려 후기,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에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서문하성의 문하시중을 첨의부 중찬으로 바꾸고 우 · 좌 각 1명씩 두었다. 129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다가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중찬이라 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중찬을 정승(政丞)으로 바꾸고 정원을 1명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즉위하여 도첨의중찬으로 개칭하였지만 곧이어 충숙왕이 복위하여 정승으로 되돌리고 좌 · 우 2명을 두었다.# 설치와 운영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강요로 고려에서는 관제를 격하하였다.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상서성(尙書省)을 합쳐서 첨의부(僉議府)로 바꾸었다. 관부 개편과 함께 소속 관직의 명칭과...
고려시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여산(礪山). 중찬(中贊)으로...
송분 (宋玢)
고려시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여산(礪山). 중찬(中贊)으로...
책 표지의 좌측 상단에 제목과 책차를 써서 붙인 첨지. 제첨은 동장본(東裝本) 표지의 좌측 상단 또는 중앙에 붙이는 단찰(短札) 형태의 종이 또는 천으로, 주로 책의 서명인 제명(題名)과 책의 순서인 책차(冊次) 등을 기록한 첨지이다. 절첩본과 선장본의 경우에는 표지의 좌측 상단에 붙였고, 권자본의 경우에는 펼쳤을 때 본문이 시작하는 뒷면, 즉 책을 말았을 때 보이는 겉면의 가장자리에 붙였다.# 내용 동장본(東裝本)과 같은 고서의 표지에는 책의 서명[^2]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서명이 표기되어 있다. 표지에 기록된 제목을 표제(表題)[^1]라고 하는데, 표제는 일반적으로 앞표지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다. 표지에 표제를 바로 쓰기도 하지만, 별도의 종이 또는 비단에 표제를 적어 표지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제첨 (題簽)
책 표지의 좌측 상단에 제목과 책차를 써서 붙인 첨지. 제첨은 동장본(東裝本) 표지의 좌측 상단 또는 중앙에 붙이는 단찰(短札) 형태의 종이 또는 천으로, 주로 책의 서명인 제명(題名)과 책의 순서인 책차(冊次) 등을 기록한 첨지이다. 절첩본과 선장본의 경우에는 표지의 좌측 상단에 붙였고, 권자본의 경우에는 펼쳤을 때 본문이 시작하는 뒷면, 즉 책을 말았을 때 보이는 겉면의 가장자리에 붙였다.# 내용 동장본(東裝本)과 같은 고서의 표지에는 책의 서명[^2]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서명이 표기되어 있다. 표지에 기록된 제목을 표제(表題)[^1]라고 하는데, 표제는 일반적으로 앞표지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다. 표지에 표제를 바로 쓰기도 하지만, 별도의 종이 또는 비단에 표제를 적어 표지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온 상여. 남은들 상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온 상여이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소를 이곳 덕산면으로 옮길 때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마을 유래에 의하면 이곳이 명당이라는 풍수설에 의해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의 묘소를 이장하고 이듬해 낳은 둘째 아들이 고종으로 등극하였다고 한다. 이야기로 미루어 상여의 제작과 이장 시기는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이전일 것이다. 상여의 부속품의 조각수법, 단청의 질이나 수법이 매우 뛰어난 점 등으로 보아 왕가에 버금가는 가문에서 제작한 것이라 짐작된다. 1974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내용 197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상여를 보존해...
남은들 상여 (남은들 喪輿)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온 상여. 남은들 상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온 상여이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소를 이곳 덕산면으로 옮길 때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마을 유래에 의하면 이곳이 명당이라는 풍수설에 의해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의 묘소를 이장하고 이듬해 낳은 둘째 아들이 고종으로 등극하였다고 한다. 이야기로 미루어 상여의 제작과 이장 시기는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이전일 것이다. 상여의 부속품의 조각수법, 단청의 질이나 수법이 매우 뛰어난 점 등으로 보아 왕가에 버금가는 가문에서 제작한 것이라 짐작된다. 1974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내용 197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상여를 보존해...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임무와 직능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우정승 (右政丞)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우정승은 고려시대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임무와 직능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며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한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 문하시중은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며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한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이다. 수상으로서 백관을 통솔하였고, 국가 중대사를 논의했으며, 중서문하성의 재신으로 판이부사를 겸직하여 문반의 인사를 관할하였다. 중서령과 상서령이 명예직이나 치사직, 추증직으로 운영된 반면에 실무를 담당한 실질적으로 최고 지위의 관직이었다. 지위가 높아 임명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설치 목적 수상(首相)으로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국왕을 보좌하며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고,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임하여 인사 행정을 관할할 목적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재신(宰臣)으로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문하시중(門下侍中)은 국왕을...
문하시중 (門下侍中)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며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한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 문하시중은 고려시대 국왕을 보좌하며 국정의 중대사를 논의한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이다. 수상으로서 백관을 통솔하였고, 국가 중대사를 논의했으며, 중서문하성의 재신으로 판이부사를 겸직하여 문반의 인사를 관할하였다. 중서령과 상서령이 명예직이나 치사직, 추증직으로 운영된 반면에 실무를 담당한 실질적으로 최고 지위의 관직이었다. 지위가 높아 임명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설치 목적 수상(首相)으로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국왕을 보좌하며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고,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임하여 인사 행정을 관할할 목적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재신(宰臣)으로 설치하였다. # 임무와 직능 문하시중(門下侍中)은 국왕을...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설치 목적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문하부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1061년(문종 15)에 이를...
좌시중 (左侍中)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좌시중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우왕대에 문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재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설치 목적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문하부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1061년(문종 15)에 이를...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설치 목적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1061년...
좌정승 (左政丞)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 좌정승은 고려 후기 도첨의부에 소속된 관직이다. 고려 전기 중서문하성의 종1품 관직인 문하시중의 후신으로, 충숙왕 대 도첨의부에 속한 관직이다. 백규서무와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중서문하성(뒤의 도첨의부)의 장관직으로, 서열이 가장 높은 재신이었으며 일종의 수상이었다.# 설치 목적 정사를 총괄하는 벼슬로 여러 정무를 담당하는 백규서무(百揆庶務)와 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을 말하고 부당한 명령을 돌려 보내는 간쟁봉박(諫諍封駁)을 관장하던 고려의 최상위 정무 기구인 도첨의부(都僉議府)의 장관직이다. # 변천사항 원래 국초에 내의성(內議省)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치고 장관으로 종1품의 내사령(內史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두었다. 1061년...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 『주년첨례광익』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이다. 1865년 목판본으로 인쇄된 이후 1884~1885년 활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899년과 1908년에 중간되었으며, 1930년 신판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성년광익』을 저본으로 삼아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새로운 순서로 편집했으며, 몇 가지 축일을 추가했다. 53명의 성인과 관련된 총 93개 항목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축일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인들을 선별해 수록했다.제4권에는 성 베네딕도 · 성 레오 교황 등 24개 항목이 실려 있다. 각 항목에는 해당 축일의 의미를 해설하고 신자들이 ‘마땅히...
주년첨례광익 (周年瞻禮廣益)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 『주년첨례광익』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이다. 1865년 목판본으로 인쇄된 이후 1884~1885년 활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899년과 1908년에 중간되었으며, 1930년 신판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성년광익』을 저본으로 삼아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새로운 순서로 편집했으며, 몇 가지 축일을 추가했다. 53명의 성인과 관련된 총 93개 항목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축일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인들을 선별해 수록했다.제4권에는 성 베네딕도 · 성 레오 교황 등 24개 항목이 실려 있다. 각 항목에는 해당 축일의 의미를 해설하고 신자들이 ‘마땅히...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고종 대 첨정의 정원은 12명으로 축소되었다. 이 역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근대 관제 개혁을 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속대전(續大典)』 ## 단행본 - 한충희, 『조선초기 정치제도와 정치』...
첨정 (僉正)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고종 대 첨정의 정원은 12명으로 축소되었다. 이 역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근대 관제 개혁을 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속대전(續大典)』 ## 단행본 - 한충희, 『조선초기 정치제도와 정치』...
고려 후기, 필도치·도첨의중찬·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서원(瑞原). 초명은 염유직(廉惟直). 정당문학(政堂文學) 염신약(廉信若)의 후손이다. 염순언(廉純彦)의 둘째 아들이며, 염제신(廉悌臣)의 조부이다. # 주요 활동 일찍이 나쁜 병을 얻었을 때 부처와 신에게 빌어 회복되었다. 이후 병든 사람을 위해 힘쓰다가 이지저(李之氐)의 천거로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염승익 (廉承益)
고려 후기, 필도치·도첨의중찬·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서원(瑞原). 초명은 염유직(廉惟直). 정당문학(政堂文學) 염신약(廉信若)의 후손이다. 염순언(廉純彦)의 둘째 아들이며, 염제신(廉悌臣)의 조부이다. # 주요 활동 일찍이 나쁜 병을 얻었을 때 부처와 신에게 빌어 회복되었다. 이후 병든 사람을 위해 힘쓰다가 이지저(李之氐)의 천거로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