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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그릇 안에 돌이나 흙으로 빚은 방울알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만든 토기. # 내용 ‘영부배(鈴付杯)’라고도 한다. 형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의 바닥에 투공(透孔)을 한겹 내지 두겹 돌린 반구형(半球形) 또는 모난 구슬 모양의 방울 몸체[鈴部]를 맞붙인 것이다. 방울 몸체에 비해서 잔은 목이 길고 크며, 긴 목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게 벌어져 있다. 방울 몸체에 원추형의 대각(臺脚)을 덧붙인 것도 있고, 잔의 몸체에 고사리 모양의 장식을 부착시킨 것도 있다. 방울 몸체에 뚫려 있는 투공은 소원형(小圓形)과 삼각형, 제형(梯形) 그리고 볼록렌즈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방울잔의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0㎝ 정도이며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백제의 방울잔은 몸체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형태가 단순하고 소박한 점이 특징이다....
방울잔 (방울盞)
선사시대, 그릇 안에 돌이나 흙으로 빚은 방울알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만든 토기. # 내용 ‘영부배(鈴付杯)’라고도 한다. 형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의 바닥에 투공(透孔)을 한겹 내지 두겹 돌린 반구형(半球形) 또는 모난 구슬 모양의 방울 몸체[鈴部]를 맞붙인 것이다. 방울 몸체에 비해서 잔은 목이 길고 크며, 긴 목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게 벌어져 있다. 방울 몸체에 원추형의 대각(臺脚)을 덧붙인 것도 있고, 잔의 몸체에 고사리 모양의 장식을 부착시킨 것도 있다. 방울 몸체에 뚫려 있는 투공은 소원형(小圓形)과 삼각형, 제형(梯形) 그리고 볼록렌즈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방울잔의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0㎝ 정도이며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백제의 방울잔은 몸체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형태가 단순하고 소박한 점이 특징이다....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 등기는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이다.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것은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경이 있다.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실내에 놓는 좌등도 있다. 이 등기의 명칭과 형태는 다르지만 기름불이나 촛불을 이용하도록 만든 구조는 공통된다. 이들 등기 중 등잔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토기·도기·자기·옥석제로 나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잔은 신라시대의 다등식 등잔과 백제 무령왕릉의 벽에 놓였던 등잔이다. 현존하는 최고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감옥촛대이다.# 내용 재료나 형태 또는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기 (燈器)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 등기는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이다.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것은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경이 있다.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실내에 놓는 좌등도 있다. 이 등기의 명칭과 형태는 다르지만 기름불이나 촛불을 이용하도록 만든 구조는 공통된다. 이들 등기 중 등잔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토기·도기·자기·옥석제로 나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잔은 신라시대의 다등식 등잔과 백제 무령왕릉의 벽에 놓였던 등잔이다. 현존하는 최고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감옥촛대이다.# 내용 재료나 형태 또는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가교 (駕轎)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같은 글씨나 그림 등을 많이 박아내는 간편한 인쇄기. # 내용 파라핀·바셀린·송진 등을 섞어 만든 기름을 먹인 얇은 종이를 줄판 위에 놓고 철필로 긁어서 구멍을 내어 이를 틀에 끼운 다음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리면 잉크가 배어나와 종이에 글씨나 그림이 나타난다. 이를 등사판 또는 속사판이라고 한다. 등사원지 한장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데에는 1시간 쯤 걸리며 이 한 장으로는 약 500장을 인쇄할 수 있다. 등사기는 일반관공서·회사뿐만 아니라 시험을 자주 치르는 학교에는 필수품이었으며 전문가를 따로 고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수동식 등사기는 한 장씩 밀어내고 종이를 제친 다음 다시 밀어야 하는 불편이 따르고 그만큼 시간도 걸렸다. 이와 같은 결점을 보완한 것이 윤전등사기이다. 이것은 스크린을 붙인 원통(圓筒)...
등사기 (謄寫機)
같은 글씨나 그림 등을 많이 박아내는 간편한 인쇄기. # 내용 파라핀·바셀린·송진 등을 섞어 만든 기름을 먹인 얇은 종이를 줄판 위에 놓고 철필로 긁어서 구멍을 내어 이를 틀에 끼운 다음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리면 잉크가 배어나와 종이에 글씨나 그림이 나타난다. 이를 등사판 또는 속사판이라고 한다. 등사원지 한장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데에는 1시간 쯤 걸리며 이 한 장으로는 약 500장을 인쇄할 수 있다. 등사기는 일반관공서·회사뿐만 아니라 시험을 자주 치르는 학교에는 필수품이었으며 전문가를 따로 고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수동식 등사기는 한 장씩 밀어내고 종이를 제친 다음 다시 밀어야 하는 불편이 따르고 그만큼 시간도 걸렸다. 이와 같은 결점을 보완한 것이 윤전등사기이다. 이것은 스크린을 붙인 원통(圓筒)...
외기를 막기 위하여 방안에 치는 휘장. # 내용 여름에 사용되는 발과는 달리 겨울용으로 주로 모직물^1]과 견직물[^2]로 만들어진다. 방장은 벽체에 의지하고 천장에 가까운 부분으로부터 늘여지도록 설치하는 장치로 가방(假房)[^3]이나 침상의 네 벽에도 설치된다. 우리 나라에서의 방장 사용은 [삼국시대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활하는 모습 가운데는 건축물에 부착된 장막을 볼 수 있다. 또 따로 침상을 꾸민 주인공 내외가 거처하는 부분에 친 방장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구려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넓은 방의 네 벽에 거대하고 두꺼운 유막을 늘여 일단 외기를 차단하였던 것 같다. 방 한쪽에 따로 침상을 놓고 그 침상에 천장과 벽체를 방장이나 병풍으로 둘러 설치하여...
방장 (房帳)
외기를 막기 위하여 방안에 치는 휘장. # 내용 여름에 사용되는 발과는 달리 겨울용으로 주로 모직물^1]과 견직물[^2]로 만들어진다. 방장은 벽체에 의지하고 천장에 가까운 부분으로부터 늘여지도록 설치하는 장치로 가방(假房)[^3]이나 침상의 네 벽에도 설치된다. 우리 나라에서의 방장 사용은 [삼국시대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생활하는 모습 가운데는 건축물에 부착된 장막을 볼 수 있다. 또 따로 침상을 꾸민 주인공 내외가 거처하는 부분에 친 방장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구려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넓은 방의 네 벽에 거대하고 두꺼운 유막을 늘여 일단 외기를 차단하였던 것 같다. 방 한쪽에 따로 침상을 놓고 그 침상에 천장과 벽체를 방장이나 병풍으로 둘러 설치하여...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을 켤 수 있도록 만든 그릇. # 내용 그 재료에 따라 목제·토제·대리석·백자·사기·놋쇠·철제 따위의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솜·마사(麻絲) 등으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켠다. 등잔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근원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발굴품 중에서 각종 형태의 등잔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多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특히 작은 옥등잔은 인등(引燈)이라고 하여 무가(巫家)의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연등(燃燈)에도 사용되었다. 큰 것은 지름이 한자[一尺]에 달하는 것도...
등잔 (燈盞)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을 켤 수 있도록 만든 그릇. # 내용 그 재료에 따라 목제·토제·대리석·백자·사기·놋쇠·철제 따위의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솜·마사(麻絲) 등으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켠다. 등잔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근원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삼국시대의 발굴품 중에서 각종 형태의 등잔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多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특히 작은 옥등잔은 인등(引燈)이라고 하여 무가(巫家)의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연등(燃燈)에도 사용되었다. 큰 것은 지름이 한자[一尺]에 달하는 것도...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가락바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가락식토기 (可樂式土器)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가락지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알곡에 섞인 까라기나 북더기를 날리는 데에 쓰는 큰 부채. # 내용 뼈대는 댓가지나 가는 통대로 얽고 앞뒤 양쪽에 한지를 여러 겹으로 발랐으며 한끝에 긴 자루를 붙였다. 그리고 자루와 몸 사이 한두 곳에 가로로 띠를 잡아매어서 힘을 받도록 하였다. 한 사람이 말 따위에 올라서서 키에 담은 곡식을 천천히 흘리거나 넉가래로 떠서 공중으로 흩뿌릴 때 이를 두 손으로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킨다. 무게는 60∼90g이며, 밑너비 1m, 살길이 1.5m, 자루길이는 1m 내외이다. 하루 두 사람이 30∼40섬[석(石)]의 곡식을 날릴 수 있다. 듸림부채는 부뚜의 개량형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지방에서는 부뚜부채라고 한다. - 『한국농기구고』(김광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
듸림부채
알곡에 섞인 까라기나 북더기를 날리는 데에 쓰는 큰 부채. # 내용 뼈대는 댓가지나 가는 통대로 얽고 앞뒤 양쪽에 한지를 여러 겹으로 발랐으며 한끝에 긴 자루를 붙였다. 그리고 자루와 몸 사이 한두 곳에 가로로 띠를 잡아매어서 힘을 받도록 하였다. 한 사람이 말 따위에 올라서서 키에 담은 곡식을 천천히 흘리거나 넉가래로 떠서 공중으로 흩뿌릴 때 이를 두 손으로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킨다. 무게는 60∼90g이며, 밑너비 1m, 살길이 1.5m, 자루길이는 1m 내외이다. 하루 두 사람이 30∼40섬[석(石)]의 곡식을 날릴 수 있다. 듸림부채는 부뚜의 개량형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지방에서는 부뚜부채라고 한다. - 『한국농기구고』(김광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 디딜방아는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이다. ‘디딜’과 ‘방아’로 이루어져 있다. ‘디딜’은 발로 딛는다는 뜻이고, ‘방아’는 공이의 상하운동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기구를 나타낸다. 따라서 디딜방아는 발로 밟아서 찧는 방아이며, 북한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발방아’라고 부른다. 방아류는 공이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사람의 손을 이용한 ‘손절구’, 발로 디뎌서 움직이는 ‘디딜방아’, 물의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와 ‘통방아’로 나뉜다.# 연원 한국에서는 외다리와 양다리를 모두 사용하다가 후에 양다리가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외다리는 4세기 무렵의 황해도 안악 3호분 고구려...
디딜방아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 디딜방아는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이다. ‘디딜’과 ‘방아’로 이루어져 있다. ‘디딜’은 발로 딛는다는 뜻이고, ‘방아’는 공이의 상하운동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기구를 나타낸다. 따라서 디딜방아는 발로 밟아서 찧는 방아이며, 북한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발방아’라고 부른다. 방아류는 공이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사람의 손을 이용한 ‘손절구’, 발로 디뎌서 움직이는 ‘디딜방아’, 물의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와 ‘통방아’로 나뉜다.# 연원 한국에서는 외다리와 양다리를 모두 사용하다가 후에 양다리가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외다리는 4세기 무렵의 황해도 안악 3호분 고구려...
조선시대 관청에 출입하던 사람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신분증. # 내용 나무로 네모지게 만든 패이다. 길이 약 8㎝, 너비 약 6.5㎝. 방패 뒷면에 소속한 관청의 이름과 성명을 기록하고, 한성부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주로 관청의 종들이 차고 다녔다. - 『대전통편』
방패 (方牌)
조선시대 관청에 출입하던 사람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신분증. # 내용 나무로 네모지게 만든 패이다. 길이 약 8㎝, 너비 약 6.5㎝. 방패 뒷면에 소속한 관청의 이름과 성명을 기록하고, 한성부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주로 관청의 종들이 차고 다녔다. - 『대전통편』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가래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육개장과 밥은 따로따로 주는 국밥. # 내용 대구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따로’의 비법은 국물의 맛을 잘 내는 데 있다. 소뼈를 13∼14시간 동안 고아서, 그 국물에 고춧가루·파·부추·마늘 등의 양념을 많이 넣고 다시 끓여 맛을 낸다. ‘따로’에 넣는 파·부추·마늘 등의 냄새성분은 유황화합물로, 충분히 삶으면 일부가 감미성분으로 변한다. 그래서 대구의 따로국밥은 매운맛 속에 감미가 감도는 독특한 맛의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문음식점도 생기고 있다. - 『대구의 향기』(대구직할시, 1982) -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 교문사, 1984)
따로국밥
육개장과 밥은 따로따로 주는 국밥. # 내용 대구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따로’의 비법은 국물의 맛을 잘 내는 데 있다. 소뼈를 13∼14시간 동안 고아서, 그 국물에 고춧가루·파·부추·마늘 등의 양념을 많이 넣고 다시 끓여 맛을 낸다. ‘따로’에 넣는 파·부추·마늘 등의 냄새성분은 유황화합물로, 충분히 삶으면 일부가 감미성분으로 변한다. 그래서 대구의 따로국밥은 매운맛 속에 감미가 감도는 독특한 맛의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문음식점도 생기고 있다. - 『대구의 향기』(대구직할시, 1982) -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 교문사, 1984)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 따비는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이다. 지역에 따라서 따부·따보·탑 등으로 불린다. 농경문화 발생 이전 수렵채집민이 사용하던 굴봉에서 발전된 것이다. 따비가 발전하여 쟁기나 극젱이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말굽쇠형따비, 코끼리이빨모양따비, 주걱형따비, 송곳형따비가 사용됐다. 농업이 시작된 당시부터 전국적으로 사용되다가 농경술과 농기구의 발전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근래에까지 서해안과 도서 지역, 제주도에서는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내용 농경문화 발생 이전의 수렵채집민이 사용하던 굴봉(掘棒)에서 발전된 것으로 따비가 발전하여 쟁기나 극젱이가 나타났다. 근래에까지 서해안과 그 도서지방...
따비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 따비는 논이나 밭을 가는 원시적인 형태의 농기구이다. 지역에 따라서 따부·따보·탑 등으로 불린다. 농경문화 발생 이전 수렵채집민이 사용하던 굴봉에서 발전된 것이다. 따비가 발전하여 쟁기나 극젱이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말굽쇠형따비, 코끼리이빨모양따비, 주걱형따비, 송곳형따비가 사용됐다. 농업이 시작된 당시부터 전국적으로 사용되다가 농경술과 농기구의 발전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근래에까지 서해안과 도서 지역, 제주도에서는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내용 농경문화 발생 이전의 수렵채집민이 사용하던 굴봉(掘棒)에서 발전된 것으로 따비가 발전하여 쟁기나 극젱이가 나타났다. 근래에까지 서해안과 그 도서지방...
주소·성명을 적어 문에 다는 패(牌). # 내용 지금의 문패에는 호주의 이름과 주소를 쓰는 것이 상식이나, 옛날에는 지번(地番)을 부여하는 제도가 없었으므로 숫자로 주소를 표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문패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패 달기를 종용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표창한 내용을 붉은색 바탕의 홍패나 남색 바탕의 청패에 써서 솟을대문에 내걸었다. 이것이 문패의 기원으로, 문패란 말도 홍문(紅門)과 패액(牌額)의 준말인 것이다. 홍문은 정문(旌門)과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표창하여 내리는 것이다. 홍(紅)은 충신 · 효자 · 열녀의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의미함이며, 문은 그러한 사람이 나온 가문이나 문벌을 뜻한다. 넓게는 그가 사는 마을이나...
문패 (門牌)
주소·성명을 적어 문에 다는 패(牌). # 내용 지금의 문패에는 호주의 이름과 주소를 쓰는 것이 상식이나, 옛날에는 지번(地番)을 부여하는 제도가 없었으므로 숫자로 주소를 표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문패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패 달기를 종용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표창한 내용을 붉은색 바탕의 홍패나 남색 바탕의 청패에 써서 솟을대문에 내걸었다. 이것이 문패의 기원으로, 문패란 말도 홍문(紅門)과 패액(牌額)의 준말인 것이다. 홍문은 정문(旌門)과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표창하여 내리는 것이다. 홍(紅)은 충신 · 효자 · 열녀의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의미함이며, 문은 그러한 사람이 나온 가문이나 문벌을 뜻한다. 넓게는 그가 사는 마을이나...
멥쌀에 방풍잎을 섞어 끓인 죽. # 내용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는 좋은 맛이 입안에 가득하여 3일이 지나도 가실 줄 모르는 향미로운 음식으로서 속간에서 으뜸가는 음식이라고 하였다. 방풍은 우리 나라의 산야에 자생하는 향약(鄕藥)의 하나로서, 『증보산림경제』 치포조(治圃條)에 방풍의 뿌리를 10월에 옮겨 이른봄에 나는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약이성 효과가 있는 식품을 음식에 적절하게 활용하였는데, 방풍도 그 중의 하나이다. 『증보산림경제』 권8에 수록된 방풍죽 끓이는 법은 “새벽이슬이 앉은 방풍의 새싹을 따다가 죽을 쑨다. 햇볕을 본 것은 좋지 않다. 멥쌀로 죽을 쑤어 쌀이 익고 반쯤 퍼졌을 때 방풍잎을 넣어 싼불에서 끓인다. 알맞게 되었을 때 차가운...
방풍죽 (防風粥)
멥쌀에 방풍잎을 섞어 끓인 죽. # 내용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는 좋은 맛이 입안에 가득하여 3일이 지나도 가실 줄 모르는 향미로운 음식으로서 속간에서 으뜸가는 음식이라고 하였다. 방풍은 우리 나라의 산야에 자생하는 향약(鄕藥)의 하나로서, 『증보산림경제』 치포조(治圃條)에 방풍의 뿌리를 10월에 옮겨 이른봄에 나는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약이성 효과가 있는 식품을 음식에 적절하게 활용하였는데, 방풍도 그 중의 하나이다. 『증보산림경제』 권8에 수록된 방풍죽 끓이는 법은 “새벽이슬이 앉은 방풍의 새싹을 따다가 죽을 쑨다. 햇볕을 본 것은 좋지 않다. 멥쌀로 죽을 쑤어 쌀이 익고 반쯤 퍼졌을 때 방풍잎을 넣어 싼불에서 끓인다. 알맞게 되었을 때 차가운...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가련수정과 (加蓮水正果)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금부(金部) 또는 체명(體鳴) 타악기의 하나. # 내용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당악기로 철향(鐵響) · 철방향(鐵方響)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악학궤범』(일본 蓬左文庫 소장)에 의하면 “철편(鐵片)의 모양은 길이가 9촌, 너비가 2촌으로,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가 졌고, 수(數)는 16개이다. 16개의 철판을 겹줄로 엮고 틀에 달아놓고 편종과 편경 대신으로 쓴다. 강한 쇠붙이로 만든 철편의 크기는 같고 그 두껍고 얇은 차이에 의해서 음이 높고 낮다. 철편 위에 구멍을 뚫어 삼갑진사(三甲眞絲)로 위 아래 두 단에 각각 가로놓인 두 개의 가로쇠[橫鐵]에 8매씩 붙들어 맨다.”고 하였다. 그러나 1610년(광해군 2) 간행된 『악학궤범』에 의하면 “좌우 기둥 아래 안팎으로 초엽...
방향 (方響)
금부(金部) 또는 체명(體鳴) 타악기의 하나. # 내용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당악기로 철향(鐵響) · 철방향(鐵方響)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악학궤범』(일본 蓬左文庫 소장)에 의하면 “철편(鐵片)의 모양은 길이가 9촌, 너비가 2촌으로,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가 졌고, 수(數)는 16개이다. 16개의 철판을 겹줄로 엮고 틀에 달아놓고 편종과 편경 대신으로 쓴다. 강한 쇠붙이로 만든 철편의 크기는 같고 그 두껍고 얇은 차이에 의해서 음이 높고 낮다. 철편 위에 구멍을 뚫어 삼갑진사(三甲眞絲)로 위 아래 두 단에 각각 가로놓인 두 개의 가로쇠[橫鐵]에 8매씩 붙들어 맨다.”고 하였다. 그러나 1610년(광해군 2) 간행된 『악학궤범』에 의하면 “좌우 기둥 아래 안팎으로 초엽...
곱은옥의 등과 배 또는 옆 부분에 작은 곱은옥 모양의 돌기물(突起物)이 달린 구슬. # 내용 ‘모자곡옥(母子曲玉)’이라고도 한다. 재료는 주로 활석(滑石)이나 납석인 것이 특색이며, 곱은옥보다 커서 대체로 길이 10㎝ 내외의 크기를 하고 있다. 딸린곱은옥은 고분시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8개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1개는 부여 군수리에서, 또 1개는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월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나머지 수장품들도 그 출토지는 모두 영남과 호남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 한정된다. 일본의 경우, 딸린곱은옥은 대부분이 단독으로 출토, 발견되고 있으며, 그밖에는 고분 또는 집터에서도 나오지만 주로 특수 제사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그 형태·재료와 함께 특수 공헌물(供獻物)이라고...
딸린곱은옥 (딸린곱은玉)
곱은옥의 등과 배 또는 옆 부분에 작은 곱은옥 모양의 돌기물(突起物)이 달린 구슬. # 내용 ‘모자곡옥(母子曲玉)’이라고도 한다. 재료는 주로 활석(滑石)이나 납석인 것이 특색이며, 곱은옥보다 커서 대체로 길이 10㎝ 내외의 크기를 하고 있다. 딸린곱은옥은 고분시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8개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1개는 부여 군수리에서, 또 1개는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월산리에서 출토되었으며 나머지 수장품들도 그 출토지는 모두 영남과 호남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 한정된다. 일본의 경우, 딸린곱은옥은 대부분이 단독으로 출토, 발견되고 있으며, 그밖에는 고분 또는 집터에서도 나오지만 주로 특수 제사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그 형태·재료와 함께 특수 공헌물(供獻物)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