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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나무·곡식의 대 등을 베는 데 쓰는 연장. # 내용 생김새는 ㄱ자 모양으로 되었으며, 안쪽은 갈아서 날을 삼고 슴베(자루) 속에 박히는 부분 끝을 나무 자루에 박았다. 지역에 따라 날의 길이나 너비, 그리고 날과 자루와의 각도 등에 차이가 있다. 경기 및 영남 지방에서는 날이 거의 직각을 이루며, 날의 너비가 길이에 비하여 좁은 것을 많이 쓴다. 그러나 강원·충청·호남 지방의 것은 날이 반달모양으로 굽었다. 특히 경상남도의 낫은 경기지방의 것에 비해 슴베가 긴 편이며, 강원도 산간에서는 날의 너비가 넓고 낫등도 두꺼우며, 슴베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거의 날 끝까지 자루에 박은 것을 쓴다. 일반적으로 슴베가 비교적 길고 날이 두꺼워서, 나무를 하는 데 편리한 것을 우멍낫(조선낫이라고도 하며, 강원도에서는...
낫
풀·나무·곡식의 대 등을 베는 데 쓰는 연장. # 내용 생김새는 ㄱ자 모양으로 되었으며, 안쪽은 갈아서 날을 삼고 슴베(자루) 속에 박히는 부분 끝을 나무 자루에 박았다. 지역에 따라 날의 길이나 너비, 그리고 날과 자루와의 각도 등에 차이가 있다. 경기 및 영남 지방에서는 날이 거의 직각을 이루며, 날의 너비가 길이에 비하여 좁은 것을 많이 쓴다. 그러나 강원·충청·호남 지방의 것은 날이 반달모양으로 굽었다. 특히 경상남도의 낫은 경기지방의 것에 비해 슴베가 긴 편이며, 강원도 산간에서는 날의 너비가 넓고 낫등도 두꺼우며, 슴베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거의 날 끝까지 자루에 박은 것을 쓴다. 일반적으로 슴베가 비교적 길고 날이 두꺼워서, 나무를 하는 데 편리한 것을 우멍낫(조선낫이라고도 하며, 강원도에서는...
상투를 튼 정수리에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장신구. # 내용 윗부분은 반구형(半球形)이고 밑은 약간 굽었거나 똑바른 것, 말뚝같이 생긴 것이 있다. 신분에 따른 제한은 없었으나, 의관정제를 선비의 도리로 삼던 양반층의 유물을 보면 금·은·옥·밀화·호박·마노·비취·산호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호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서민은 나무나 뿔을 사용하였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 『한국복식사(韓國服飾史)』(석주선, 보진재, 1978)
동곳
상투를 튼 정수리에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장신구. # 내용 윗부분은 반구형(半球形)이고 밑은 약간 굽었거나 똑바른 것, 말뚝같이 생긴 것이 있다. 신분에 따른 제한은 없었으나, 의관정제를 선비의 도리로 삼던 양반층의 유물을 보면 금·은·옥·밀화·호박·마노·비취·산호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호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서민은 나무나 뿔을 사용하였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 『한국복식사(韓國服飾史)』(석주선, 보진재, 1978)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 꺾창은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등장하여 중원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함께 전해져서 여러 토착화된 형식들로 변형된다.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에서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요령식꺾창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했던 한국식꺾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동 꺾창은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내용 청동 꺾창은 보통 수직으로 세운 길이 100~300㎝의 나무 자루 끝에 날을 지닌 길이 10~30㎝의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꺾창 (꺾槍)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 꺾창은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등장하여 중원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함께 전해져서 여러 토착화된 형식들로 변형된다.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에서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요령식꺾창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했던 한국식꺾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동 꺾창은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내용 청동 꺾창은 보통 수직으로 세운 길이 100~300㎝의 나무 자루 끝에 날을 지닌 길이 10~30㎝의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의 청동무기. # 내용 길이 19.9㎝.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오쿠라(小倉武之助)의 수집품으로 일본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출토로 전한다. 등대가 갈리지 않았고, 등대의 좌우에 나 있는 홈이 봉부(鋒部)쪽 상단의 한 곳에서 만나는 형식으로, 홈에는 각각 단선문을 세로로 배치하였다. 홈에 무늬가 새겨진 꺾창은 주로 경상북도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대체로 짧은 사선문을 엇갈리게 한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양이 나 있는 꺾창은 실용기로서보다는, 의기적(儀器的)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小倉コレクション目錄』(東京國立博物館, 1982) - 「한국동과(韓國銅戈)에 대(對)하여」(최몽룡, 『서울대학교문리대학보』18, 1972)...
동과 (銅戈)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의 청동무기. # 내용 길이 19.9㎝.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오쿠라(小倉武之助)의 수집품으로 일본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출토로 전한다. 등대가 갈리지 않았고, 등대의 좌우에 나 있는 홈이 봉부(鋒部)쪽 상단의 한 곳에서 만나는 형식으로, 홈에는 각각 단선문을 세로로 배치하였다. 홈에 무늬가 새겨진 꺾창은 주로 경상북도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대체로 짧은 사선문을 엇갈리게 한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양이 나 있는 꺾창은 실용기로서보다는, 의기적(儀器的)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小倉コレクション目錄』(東京國立博物館, 1982) - 「한국동과(韓國銅戈)에 대(對)하여」(최몽룡, 『서울대학교문리대학보』18, 1972)...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가교 (駕轎)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거름을 운반하는 데 쓰는 용구. # 내용 거름통은 지역에 따라 오줌통(경기도 덕적) · 망우통(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 나무똥통(강원도 도계) · 질통(전라남도 영광) · 밀통(전라남도 보성) · 소매통(전라북도 부안)으로도 불린다. 거름통의 형태는 다양하나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가 가장 널리 쓰인다. ① 쪽나무에 테를 둘러서 길쭉한 통으로 된 것으로, 가운데가 약간 불룩하고 양 끝이 조금 오물어들었으며 몸통 가운데에 주둥이가 있다. 지게에 얹어 운반할 때에는 짚으로 주둥이를 막는다. 작은 것은 두 말의 거름이 들어가며, 너말들이도 있다. 무게는 3㎏ 내외이다. ② 쪽나무를 둥글게 세워 맞추고 테를 둘러 동인 것으로, 쪽나무 중, 좌우 양쪽의 두개는 다른 것보다 길게 하고 거기에 둥근 나무를 가로대서 손잡이로 삼으며...
거름통 (거름桶)
거름을 운반하는 데 쓰는 용구. # 내용 거름통은 지역에 따라 오줌통(경기도 덕적) · 망우통(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 나무똥통(강원도 도계) · 질통(전라남도 영광) · 밀통(전라남도 보성) · 소매통(전라북도 부안)으로도 불린다. 거름통의 형태는 다양하나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가 가장 널리 쓰인다. ① 쪽나무에 테를 둘러서 길쭉한 통으로 된 것으로, 가운데가 약간 불룩하고 양 끝이 조금 오물어들었으며 몸통 가운데에 주둥이가 있다. 지게에 얹어 운반할 때에는 짚으로 주둥이를 막는다. 작은 것은 두 말의 거름이 들어가며, 너말들이도 있다. 무게는 3㎏ 내외이다. ② 쪽나무를 둥글게 세워 맞추고 테를 둘러 동인 것으로, 쪽나무 중, 좌우 양쪽의 두개는 다른 것보다 길게 하고 거기에 둥근 나무를 가로대서 손잡이로 삼으며...
두엄·썩은새 또는 낙엽 같은 것을 걷어내거나 쳐내는 데 쓰는 연장. # 내용 지역에 따라 ‘쇠스랑’이라고도 하며, 모양이 무기인 삼지창과 비슷하여 ‘삼지창’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산간마을인 도계읍 신리와 인제군 인제 · 원통 등지에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가지가 세 갈래로 벌어진 자연생의 물푸레나무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든다. 쇠스랑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세 갈래로 갈라진 발이 흡사하기 때문이며, 거릿대는 발이 뻗어나가고, 쇠스랑은 굽어진 것이 차이점이다. 생김새에 따라 거릿대는 주로 앞으로 밀면서 쳐내는 기능을 하고 쇠스랑은 끌어당기는 기능이 다를 뿐이다. 가장 원시적인 농기구의 하나이다. - 『한국의 농기구』(김광언, 문화재관리국, 1969)
거릿대
두엄·썩은새 또는 낙엽 같은 것을 걷어내거나 쳐내는 데 쓰는 연장. # 내용 지역에 따라 ‘쇠스랑’이라고도 하며, 모양이 무기인 삼지창과 비슷하여 ‘삼지창’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산간마을인 도계읍 신리와 인제군 인제 · 원통 등지에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가지가 세 갈래로 벌어진 자연생의 물푸레나무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든다. 쇠스랑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세 갈래로 갈라진 발이 흡사하기 때문이며, 거릿대는 발이 뻗어나가고, 쇠스랑은 굽어진 것이 차이점이다. 생김새에 따라 거릿대는 주로 앞으로 밀면서 쳐내는 기능을 하고 쇠스랑은 끌어당기는 기능이 다를 뿐이다. 가장 원시적인 농기구의 하나이다. - 『한국의 농기구』(김광언, 문화재관리국, 1969)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로 고정된 괘를 갖고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거문고의 '거문(玄)'은 고구려를 뜻하며, '고(琴)'는 현악기의 고어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현악기로 해석되며, 삼국사기의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거문고의 한쪽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반대쪽은 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자세의 특징은 온돌 문화가 발달한 고구려의 생활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원 사각형의 상자에 줄을 걸고 연주하는 악기를 지더(zither) 형 또는 와공후(臥箜篌)^31] 형 악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분벽화 등의 유적을 고찰하면...
거문고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로 고정된 괘를 갖고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거문고의 '거문(玄)'은 고구려를 뜻하며, '고(琴)'는 현악기의 고어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현악기로 해석되며, 삼국사기의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거문고의 한쪽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반대쪽은 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자세의 특징은 온돌 문화가 발달한 고구려의 생활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원 사각형의 상자에 줄을 걸고 연주하는 악기를 지더(zither) 형 또는 와공후(臥箜篌)^31] 형 악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분벽화 등의 유적을 고찰하면...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성 연대 미상의 철솥. #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0㎝, 지름 270㎝. 현재 법주사 경내의 금강문(金剛門) 왼쪽 켠에 놓여 있는 이 법주사 철솥은 신라시대 성덕왕 때에 주조되었다고 구전되어 오는 것으로, 본래는 냇가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솥의 몸체가 반원 모양으로 둥글고 구연이 직선으로 외반되어 마치 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과도 같은 이 철솥은 크기가 하도 커서 한꺼번에 승려 3,000명이 먹을 수 있는 장국을 끓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승려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기도 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주성(鑄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철솥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할 뿐만 아니라, 형태...
보은 법주사 철솥 (報恩 法住寺 鐵솥)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성 연대 미상의 철솥. #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0㎝, 지름 270㎝. 현재 법주사 경내의 금강문(金剛門) 왼쪽 켠에 놓여 있는 이 법주사 철솥은 신라시대 성덕왕 때에 주조되었다고 구전되어 오는 것으로, 본래는 냇가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솥의 몸체가 반원 모양으로 둥글고 구연이 직선으로 외반되어 마치 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과도 같은 이 철솥은 크기가 하도 커서 한꺼번에 승려 3,000명이 먹을 수 있는 장국을 끓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승려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하기도 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주성(鑄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철솥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할 뿐만 아니라, 형태...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이다.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의 상체 부분을 개량해서 덮개를 덮은 구조이다. 판옥선은 1층은 노를 젓는 공간이고 2층은 전투공간이었는데, 여기에 덮개를 만들고 칼과 송곳을 꽂아 개량함으로써 일본 수군의 백병전술에 대비한 돌격전함이었다. 『태종실록』에도 귀선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우리가 발전시켜온 뛰어난 배 건조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상은 일본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설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板屋船)의 상체 부분을 개량해서 덮개를 덮은...
거북선 (거북船)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이다.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의 상체 부분을 개량해서 덮개를 덮은 구조이다. 판옥선은 1층은 노를 젓는 공간이고 2층은 전투공간이었는데, 여기에 덮개를 만들고 칼과 송곳을 꽂아 개량함으로써 일본 수군의 백병전술에 대비한 돌격전함이었다. 『태종실록』에도 귀선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우리가 발전시켜온 뛰어난 배 건조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상은 일본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설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板屋船)의 상체 부분을 개량해서 덮개를 덮은...
1589년(선조 22)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의 책판과 고본.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67판, 고본 3종 27책. 이 중 책판은 초판본의 판목이 남아 있는 것이며,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의 것이다. 18책본·1책본·8책본 등 3종이 있다. 18책본은 제11·18책이 결본으로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두주(頭註)에 누락된 부문의 기사를 보기(補記)한 곳이 상당수 있다. 1책본은 1·2권이며, 8책본은 2·7·12·13·14·16·17·20권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20책 후미 여백에 1655년(효종 3)에 쓴 김응조(金應祖)의 발문이 있는데 본문과 글씨체가 다르다. 이 3종의 고본은 모두 권수서명이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으로 되어 있으며, 인용서목과 체재 등이 간본 『대동운부군옥』과 다소 차이가...
대동운부군옥 목판 및 고본 (大東韻府群玉 木板 및 稿本)
1589년(선조 22)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의 책판과 고본.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67판, 고본 3종 27책. 이 중 책판은 초판본의 판목이 남아 있는 것이며,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의 것이다. 18책본·1책본·8책본 등 3종이 있다. 18책본은 제11·18책이 결본으로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두주(頭註)에 누락된 부문의 기사를 보기(補記)한 곳이 상당수 있다. 1책본은 1·2권이며, 8책본은 2·7·12·13·14·16·17·20권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20책 후미 여백에 1655년(효종 3)에 쓴 김응조(金應祖)의 발문이 있는데 본문과 글씨체가 다르다. 이 3종의 고본은 모두 권수서명이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으로 되어 있으며, 인용서목과 체재 등이 간본 『대동운부군옥』과 다소 차이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가락바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가락식토기 (可樂式土器)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궁중정재(宮中呈才)에 사용하는 북의 하나. # 내용 고면(鼓面)은 청ㆍ홍ㆍ백ㆍ흑의 빛깔을 사용하고, 원광(圓光)을 그려 사방(四方)의 방위를 상징한다. 북통에는 둥근 고리 셋을 달고 가자(架子 : 악기를 다는 틀)에는 세 기둥을 세우고 기둥 안에 구철(鉤鐵 : 장구나 북 등의 양편 가죽을 통에 부착시키기 위하여 쓰이는 쇠갈고리)을 설치하여 북을 건다. 기둥마다 횡목(橫木) 둘을 두고, 안쪽 끝에 주주(珠柱)를 써서 못을 꿰어 접거나 펴기도 하는데, 모두 붉은 칠을 한다. 북의 형태는 행악(行樂)에 쓰이는 교방고(敎坊鼓)와 같으나 약간 작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무고 (舞鼓)
궁중정재(宮中呈才)에 사용하는 북의 하나. # 내용 고면(鼓面)은 청ㆍ홍ㆍ백ㆍ흑의 빛깔을 사용하고, 원광(圓光)을 그려 사방(四方)의 방위를 상징한다. 북통에는 둥근 고리 셋을 달고 가자(架子 : 악기를 다는 틀)에는 세 기둥을 세우고 기둥 안에 구철(鉤鐵 : 장구나 북 등의 양편 가죽을 통에 부착시키기 위하여 쓰이는 쇠갈고리)을 설치하여 북을 건다. 기둥마다 횡목(橫木) 둘을 두고, 안쪽 끝에 주주(珠柱)를 써서 못을 꿰어 접거나 펴기도 하는데, 모두 붉은 칠을 한다. 북의 형태는 행악(行樂)에 쓰이는 교방고(敎坊鼓)와 같으나 약간 작다. - 『악학궤범(樂學軌範)』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가락지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가래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조선 중기의 학자 송몽인(宋夢寅, 1586~1612)의 시집을 판각한 책판으로 그가 죽은 후 부인 민씨가 유고를 모아 제작한 것. # 개설 1992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원래 43매였으나 지금 33매가 남아 있다. # 내용 이 책판은 송몽인이 31세로 세상을 떠나자 부인 민씨가 유고(遺稿)를 거두어 1615년(광해군 7) 외숙부 이수광(李睟光)에게 부탁하여 편교(編校)하고, 다음해 우인(友人) 죽창(竹窓)이시직(李時稷, 1572~1637)이 글씨를 쓴 뒤 비래암(飛來庵)의 승려 지숭(智嵩)이 새긴 것이다. 이때 찍은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송몽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문병(文炳), 호는 금암(琴巖)이다. 어려서부터 시에 탁월한 자질을...
금암집 판목 (琴巖集 版木)
조선 중기의 학자 송몽인(宋夢寅, 1586~1612)의 시집을 판각한 책판으로 그가 죽은 후 부인 민씨가 유고를 모아 제작한 것. # 개설 1992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원래 43매였으나 지금 33매가 남아 있다. # 내용 이 책판은 송몽인이 31세로 세상을 떠나자 부인 민씨가 유고(遺稿)를 거두어 1615년(광해군 7) 외숙부 이수광(李睟光)에게 부탁하여 편교(編校)하고, 다음해 우인(友人) 죽창(竹窓)이시직(李時稷, 1572~1637)이 글씨를 쓴 뒤 비래암(飛來庵)의 승려 지숭(智嵩)이 새긴 것이다. 이때 찍은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송몽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문병(文炳), 호는 금암(琴巖)이다. 어려서부터 시에 탁월한 자질을...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가련수정과 (加蓮水正果)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무를 넣고 끓인 맑은 장국. # 내용 ‘무황볶기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쇠고기를 황육이라고 하며 볶아서 끓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문선(東文選)』에 무에 관한 첫 기록이 있으며,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뭇국[玉糝根羹方]이 보이고 있다. 현재 일반 가정에서 자주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얇게 썬 무와 양념한 쇠고기를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다시마를 통째로 함께 넣고 끓이다가 무가 다 익었을 때 다시마를 건져 네모나게 썰어서 다시 넣고, 파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 그릇에 담는다. 무는 썰기를 달리하여 변화 있게 하면 좋다. 무에는 겨자유와 유화물질이 들어 있어 맑은 장국을 끓이면 시원하면서도 감미가 도는 좋은 국이 된다. 특히, 겨울철에 잘 여문 무로 끓이면 더욱 맛이 좋다....
뭇국
무를 넣고 끓인 맑은 장국. # 내용 ‘무황볶기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쇠고기를 황육이라고 하며 볶아서 끓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문선(東文選)』에 무에 관한 첫 기록이 있으며,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뭇국[玉糝根羹方]이 보이고 있다. 현재 일반 가정에서 자주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얇게 썬 무와 양념한 쇠고기를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다시마를 통째로 함께 넣고 끓이다가 무가 다 익었을 때 다시마를 건져 네모나게 썰어서 다시 넣고, 파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 그릇에 담는다. 무는 썰기를 달리하여 변화 있게 하면 좋다. 무에는 겨자유와 유화물질이 들어 있어 맑은 장국을 끓이면 시원하면서도 감미가 도는 좋은 국이 된다. 특히, 겨울철에 잘 여문 무로 끓이면 더욱 맛이 좋다....
조선 초기 수군(水軍)을 배정하지 않고 비상시에 대비하여 예비적으로 둔 군선. # 내용 고려 말기부터 창궐한 왜구를 토벌,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군선을 증강하여 왜구를 무찌르고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동안 증강된 군선의 종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대선(大船)·중대선(中大船)·중선(中船)·병선(兵船)·쾌선(快船)·맹선(猛船)·중맹선(中猛船)·별선(別船)·무군선·선(船)·추왜별맹선(追倭別猛船)·왜별선(倭別船)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무군선은 경기의 각 포에 47척, 충청도에 10척 등 57척이 있는데, 그것은 1420년(세종 1) 여름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이종무(李從茂)가 대마도를 원정한 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공선(空船)을 둔 데서부터 유래되었다. 이때의 무군선은...
무군선 (無軍船)
조선 초기 수군(水軍)을 배정하지 않고 비상시에 대비하여 예비적으로 둔 군선. # 내용 고려 말기부터 창궐한 왜구를 토벌,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군선을 증강하여 왜구를 무찌르고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동안 증강된 군선의 종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대선(大船)·중대선(中大船)·중선(中船)·병선(兵船)·쾌선(快船)·맹선(猛船)·중맹선(中猛船)·별선(別船)·무군선·선(船)·추왜별맹선(追倭別猛船)·왜별선(倭別船)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무군선은 경기의 각 포에 47척, 충청도에 10척 등 57척이 있는데, 그것은 1420년(세종 1) 여름 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이종무(李從茂)가 대마도를 원정한 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공선(空船)을 둔 데서부터 유래되었다. 이때의 무군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