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검색결과 총 1,879건
조선시대 왕·왕비·왕세자 등의 행차시에 사용된 의장기물(儀仗器物). # 내용 대형 일산(日傘)으로서 홍개(紅蓋)와 청개(靑蓋)의 두 종류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대산(大傘)이라 하여 역시 홍 · 청 두 종류가 있었다. 그 형태는 양산(陽繖)과 비슷한데, 나무 통(桶)에 대나무 살을 돌아가면서 설치하고 그 위에 홍초(紅綃 : 붉은 비단) 혹은 청초(靑綃)의 덮개를 씌운 것이다. 덮개의 하단에는 첨(幨 : 휘장) 셋을 붙이고 용을 그렸으며, 덮개의 꼭대기에는 도금으로 장식하였다. 자루는 긴 대나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왕 · 왕비 · 왕세자 등의 야외행차 때에 햇볕을 가리도록 고안된 것이었으나, 보통은 과(瓜) · 부(斧) · 정(旌) · 선(扇) 등과 같이 의례적인 의장으로 사용되었다. 개는 행차 당사자의 신분과 행차의 규모에 따라 그 종류와 수효가...
개 (蓋)
조선시대 왕·왕비·왕세자 등의 행차시에 사용된 의장기물(儀仗器物). # 내용 대형 일산(日傘)으로서 홍개(紅蓋)와 청개(靑蓋)의 두 종류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대산(大傘)이라 하여 역시 홍 · 청 두 종류가 있었다. 그 형태는 양산(陽繖)과 비슷한데, 나무 통(桶)에 대나무 살을 돌아가면서 설치하고 그 위에 홍초(紅綃 : 붉은 비단) 혹은 청초(靑綃)의 덮개를 씌운 것이다. 덮개의 하단에는 첨(幨 : 휘장) 셋을 붙이고 용을 그렸으며, 덮개의 꼭대기에는 도금으로 장식하였다. 자루는 긴 대나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왕 · 왕비 · 왕세자 등의 야외행차 때에 햇볕을 가리도록 고안된 것이었으나, 보통은 과(瓜) · 부(斧) · 정(旌) · 선(扇) 등과 같이 의례적인 의장으로 사용되었다. 개는 행차 당사자의 신분과 행차의 규모에 따라 그 종류와 수효가...
멥쌀로 술밑을 만든 것에 찹쌀로 한번 덧술하여 빚는 술. # 내용 그 빛이 거울과 같이 맑고 아름다워 경면녹파주(鏡面綠波酒)라고도 부른다. 이 술은 고려시대부터 알려진 술로 『사시찬요보(四時纂要補)』·『동국이상국집』·『산림경제』·『임원경제지』·『규합총서(閨閤叢書)』·『양주방』 등의 많은 문헌에 그 제법이 기록되어 있다. 제조법은 『사시찬요보』에서는 찹쌀 1말을 가루로 만들어 술밑을 만들고, 희게 도정한 쌀 2, 3말을 가루로 만들어 죽을 쑨 뒤, 먼저 만든 술밑과 섞어서 빚는다고 하였다. 『산림경제』에서는 백미 1말을 가루내어 뜨거운 물 2말을 넣고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가루 2되를 골고루 섞어 술밑을 만들고 여기에 푹 찐 찹쌀 2말과 끓는 물 3말을 골고루 섞어 차게 식힌 것을 넣어 익힌다고 하였다....
녹파주 (綠波酒)
멥쌀로 술밑을 만든 것에 찹쌀로 한번 덧술하여 빚는 술. # 내용 그 빛이 거울과 같이 맑고 아름다워 경면녹파주(鏡面綠波酒)라고도 부른다. 이 술은 고려시대부터 알려진 술로 『사시찬요보(四時纂要補)』·『동국이상국집』·『산림경제』·『임원경제지』·『규합총서(閨閤叢書)』·『양주방』 등의 많은 문헌에 그 제법이 기록되어 있다. 제조법은 『사시찬요보』에서는 찹쌀 1말을 가루로 만들어 술밑을 만들고, 희게 도정한 쌀 2, 3말을 가루로 만들어 죽을 쑨 뒤, 먼저 만든 술밑과 섞어서 빚는다고 하였다. 『산림경제』에서는 백미 1말을 가루내어 뜨거운 물 2말을 넣고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가루 2되를 골고루 섞어 술밑을 만들고 여기에 푹 찐 찹쌀 2말과 끓는 물 3말을 골고루 섞어 차게 식힌 것을 넣어 익힌다고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주자도감(鑄字都監)에서 만든 동활자. # 내용 갑인자(甲寅字)를 세번째로 개주(改鑄)한 것으로, 그 해의 간지를 따서 ‘무오자’ 또는 ‘삼주갑인자(三鑄甲寅字)’라 일컫는데, 혹은 ‘광해군동자(光海君銅字)’라 부르기도 한다. 갑인자를 개주한 것 중에서는 가장 박력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특정 자를 보면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갑인자이다. 이 동활자의 고증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구구한 설이 제기되었으나, 1623년(인조 1) 6월정온(鄭蘊)에게 내사(內賜)한 《서전대전 書傳大全》이 발견되어 그 주자(鑄字)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서전대전》은 명나라의 호광(胡廣)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책인데, 이때 무오자로 찍어 1623년 사간원 사간 정온에게 내사한 것이다[天啓三年六月日...
무오자 (戊午字)
1618년(광해군 10) 주자도감(鑄字都監)에서 만든 동활자. # 내용 갑인자(甲寅字)를 세번째로 개주(改鑄)한 것으로, 그 해의 간지를 따서 ‘무오자’ 또는 ‘삼주갑인자(三鑄甲寅字)’라 일컫는데, 혹은 ‘광해군동자(光海君銅字)’라 부르기도 한다. 갑인자를 개주한 것 중에서는 가장 박력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특정 자를 보면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갑인자이다. 이 동활자의 고증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구구한 설이 제기되었으나, 1623년(인조 1) 6월정온(鄭蘊)에게 내사(內賜)한 《서전대전 書傳大全》이 발견되어 그 주자(鑄字)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서전대전》은 명나라의 호광(胡廣)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책인데, 이때 무오자로 찍어 1623년 사간원 사간 정온에게 내사한 것이다[天啓三年六月日...
레이저광(laser光)을 이용하여 정보를 기록, 재생하는 매체. # 내용 기존에 사용되던 정보기록 매체로는 테이프(tape)·하드디스크(hard disk)·플로피디스크(floppy disk)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재료의 자기적특성(磁氣的特性) 변화를 이용하고 있으나 광디스크는 재료의 광특성(光特性) 변화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정보기록 매체를 말한다. 자기기록(磁氣記錄) 매체는 반자계(反磁界), 헤드(head)와 매체간의 주행(走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기록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광디스크는 레이저광을 이용하여 비접촉으로 정보를 기록, 재생함으로써 107∼108 bit/㎠의 고밀도 기록을 실현할 수 있어 다음 세대의 정보기록 매체로서 확실시되고 있다. 광디스크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롬형(ROM...
광디스크 (光disk)
레이저광(laser光)을 이용하여 정보를 기록, 재생하는 매체. # 내용 기존에 사용되던 정보기록 매체로는 테이프(tape)·하드디스크(hard disk)·플로피디스크(floppy disk)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재료의 자기적특성(磁氣的特性) 변화를 이용하고 있으나 광디스크는 재료의 광특성(光特性) 변화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정보기록 매체를 말한다. 자기기록(磁氣記錄) 매체는 반자계(反磁界), 헤드(head)와 매체간의 주행(走行)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기록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광디스크는 레이저광을 이용하여 비접촉으로 정보를 기록, 재생함으로써 107∼108 bit/㎠의 고밀도 기록을 실현할 수 있어 다음 세대의 정보기록 매체로서 확실시되고 있다. 광디스크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롬형(ROM...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가교 (駕轎)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 내용 들채를 앞뒤 두마리 말의 멍에에 매달아 운행하였다. 왕이 탄 가교를 어가(御駕) 혹은 대가(大駕)라 하였고, 행렬의 앞에 예비로 운행하는 빈 가교를 공가교(空駕轎)라 하였다. 가교의 명칭은 주로 조선 후기의 문헌에 나타나고 능행도(陵行圖) 등에서 잘 묘사되고 있으나 그 기원은 고려시대의 상로(象輅 : 상아로 만든 왕이 타던 수레) · 초요(軺𨍳)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왕들의 보편적 교통수단이었던 연(輦)을 간편하게 개량한 것이었다. 그 형태는 연과 마찬가지로 두개의 긴 들채[杠] 위에 옥교(屋轎)를 얹은 것인데, 왕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장식을 주로 하였고, 왕세자의 것은 들채와 창틀을 검정색으로...
도미에 갖은 고명을 얹고 양념하여 익힌 음식. # 내용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성종 때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하여 의주지방으로 갔던 허종(許琮)이 그곳 사람들이 잔칫상에 도미찜을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도미찜의 맛이 기(妓)와 악(樂)보다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도미찜 만드는 방법은 일본에 전해져서 ‘고려자(高麗煮)’라는 이름으로 『요리물어』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진찬의궤(進饌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술만드는 법』·『조선요리제법』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일반가정이나 궁중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추측된다. 만드는 법은 도미를 깨끗이 씻고 내장을 뺀 뒤 토막으로 치거나 통째로 하는데, 통째로 할 때는 칼집을 내고 소금을 뿌려 지져낸다....
도미찜
도미에 갖은 고명을 얹고 양념하여 익힌 음식. # 내용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성종 때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하여 의주지방으로 갔던 허종(許琮)이 그곳 사람들이 잔칫상에 도미찜을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도미찜의 맛이 기(妓)와 악(樂)보다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도미찜 만드는 방법은 일본에 전해져서 ‘고려자(高麗煮)’라는 이름으로 『요리물어』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진찬의궤(進饌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술만드는 법』·『조선요리제법』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일반가정이나 궁중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추측된다. 만드는 법은 도미를 깨끗이 씻고 내장을 뺀 뒤 토막으로 치거나 통째로 하는데, 통째로 할 때는 칼집을 내고 소금을 뿌려 지져낸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판전(板殿)에 걸려 있는 현판. # 내용 세로 77㎝, 가로 181㎝. 19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가 1856년(철종 9)에 썼다. 판전은 1856년 새겨진 『화엄경(華嚴經)』 목판을 비롯한 여러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이 현판은 화엄경판의 각성을 봉축하기 위해 쓴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희는 1852년 북청(北靑)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과천(果川)에 있는 자신의 별서(別墅) 과지초당(瓜地草堂)과 봉은사를 왕래하면서 서예와 신앙생활로 한가롭게 보내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71세로 별세하였는데, 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쓴 것이라고 전한다. 자형이 어리숙하고 점획에 꾸밈이 없는 졸박(拙樸)한 필치인데...
봉은사 김정희서 판전 현판 (奉恩寺 金正喜書 板殿 懸板)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판전(板殿)에 걸려 있는 현판. # 내용 세로 77㎝, 가로 181㎝. 19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가 1856년(철종 9)에 썼다. 판전은 1856년 새겨진 『화엄경(華嚴經)』 목판을 비롯한 여러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이 현판은 화엄경판의 각성을 봉축하기 위해 쓴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희는 1852년 북청(北靑)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과천(果川)에 있는 자신의 별서(別墅) 과지초당(瓜地草堂)과 봉은사를 왕래하면서 서예와 신앙생활로 한가롭게 보내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71세로 별세하였는데, 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쓴 것이라고 전한다. 자형이 어리숙하고 점획에 꾸밈이 없는 졸박(拙樸)한 필치인데...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가락바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 내용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 · 토제 · 석제 · 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 · 구형 · 반구형 · 원통형 · 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가락식토기 (可樂式土器)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금강 유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민무늬토기이다. 토기의 입술을 겹아가리로 만들고 그 위에 짧은빗금무늬, 격자무늬, 거치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명칭은 196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서울가락동유적에서 유래하지만, 한강 유역보다는 대전을 중심으로 한 금강 유역 일대의 지역성을 잘 보여 주는 토기 형식이다.# 특징과 변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 토기인 가락식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에 겹아가리의 전체 혹은 하단, 몸통에 걸쳐 짧은빗금무늬, 석쇠무늬, 톱니무늬 등을 시문한 토기를 말한다. 가락식토기는 겹아가리의 하단부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에서...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찐 떡. # 내용 경기도 지방 향토음식의 하나인데 주로 강화도 지방에서 해 먹는다. 만드는 법은 보릿가루에 파·간장·참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절구에 잘 찧어 차지게 만든 뒤, 솥에 겅그레를 놓고 넓적하게 펴서 쪄낸다. 보릿가루는 보리가 여물어갈 때쯤 보리를 타서 방아 찧어서 만든다.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향토음식편-(문화재관리국, 1985)
개떡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찐 떡. # 내용 경기도 지방 향토음식의 하나인데 주로 강화도 지방에서 해 먹는다. 만드는 법은 보릿가루에 파·간장·참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절구에 잘 찧어 차지게 만든 뒤, 솥에 겅그레를 놓고 넓적하게 펴서 쪄낸다. 보릿가루는 보리가 여물어갈 때쯤 보리를 타서 방아 찧어서 만든다.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향토음식편-(문화재관리국, 1985)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가락지
여자의 손가락에 끼는 장식물. # 내용 안은 판판하고 겉은 퉁퉁하게 만든 두 쪽의 고리로 되어 있다. 한 짝으로 된 것은 반지라고 한다. 지환(指環)은 가락지와 반지의 총칭이면서, 가락지만을 뜻하기도 한다. 가락지의 유물은 조선시대 이후의 것만 볼 수 있다. 당시 가락지는 기혼여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미혼여자는 반지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가락지는 조선시대가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사상이 생활윤리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혼례를 인간 대사[^1]의 하나로 삼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2]과 부부일신(夫婦一身)[^3]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반지나...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가래
흙을 뜨고 파는 데 쓰이는 연장. # 내용 『훈민정음해례』에는 ‘ᄀᆞ래[鍬]’로, 『천일록(千一錄)』에서는 ‘가내(可乃)’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험(杴)’으로 표기되었다. 끝에 쇠날이 달려 있어 ‘ᄂᆞᆯ가래’, 넓적하다 하여 ‘넙가래’라고도 하였다.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웠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그 줄을 당겨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가래질은 줄꾼 두 사람과 장부(자루)잡이 한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하는 ‘세손목 한카래’가 있고, 장부잡이 한 사람과 줄꾼 여섯 사람 등 모두 일곱 사람이 하는 ‘일곱목 한카래’, 그리고 두 개의...
1458년(세조 4)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 # 내용 『교식추보법가령(交食推步法假令)』의 본문 큰자(주해 중 · 소자 갑인자)와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의 본문 큰자, 세주의 특소자(주해 중 · 소자 갑인자)를 찍어내기 위하여 주조한 활자이며, 그 해의 간지(干支)를 붙여 이름한 것이다. 1457년 12월 24일 세조로부터 이순지(李純之)와 김석제(金石梯)가 세종 때 이루어진 『교식추보법』과 『산송(算誦)』에 가령(假令) 및 주해를 지어 붙이는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도록 명령을 받고 두 사람이 저술하였다. 임금의 수정을 받아 완성시킨 다음 서문을 마련한 것이 다음해 정월이었다. 그리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친히 요해한 『역학계몽』을 최항(崔恒) · 김구(金鉤) · 한계희(韓繼禧) 등에게 교정, 보해시켜 1458년 7월 주자소로...
무인자 (戊寅字)
1458년(세조 4)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 # 내용 『교식추보법가령(交食推步法假令)』의 본문 큰자(주해 중 · 소자 갑인자)와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의 본문 큰자, 세주의 특소자(주해 중 · 소자 갑인자)를 찍어내기 위하여 주조한 활자이며, 그 해의 간지(干支)를 붙여 이름한 것이다. 1457년 12월 24일 세조로부터 이순지(李純之)와 김석제(金石梯)가 세종 때 이루어진 『교식추보법』과 『산송(算誦)』에 가령(假令) 및 주해를 지어 붙이는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도록 명령을 받고 두 사람이 저술하였다. 임금의 수정을 받아 완성시킨 다음 서문을 마련한 것이 다음해 정월이었다. 그리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친히 요해한 『역학계몽』을 최항(崔恒) · 김구(金鉤) · 한계희(韓繼禧) 등에게 교정, 보해시켜 1458년 7월 주자소로...
물을 퍼올리는 농기구. # 내용 『북학의(北學議)』의 ‘수차(水車)’는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역에 따라 ‘무자새’(경남) · ‘자새’(전남 보성, 전북 봉동) · ‘물자새’(전남, 전북) · ‘수리차’(충남 서산) · ‘수차’ · ‘수룡(水龍)’ · ‘답차(踏車)’라고도 불린다. 또, 옛말로는 ‘믈자ᅀᅢ’ 또는 ‘믈ᄌᆞ의‘로 표기되었다. 형태는 물레방아 바퀴나 달구지의 바퀴를 닮았다. 한가운데의 축을 의지하여 많은 발판을 나선형으로 붙였으며, 한쪽에 주둥이를 달아 퍼올린 물을 이리로 흘러나가게 한다. 받침대 끝에 긴 작대기 두개를 엇비스듬히 질렀으며, 사람은 이것을 의지하고 서서 우근판(발받침)을 밟아 바퀴를 돌린다. 바퀴가 돌 때마다 물이 따라 올라온다. 이것을 돌리는 일은 매우 힘이 들어서 보통...
무자위
물을 퍼올리는 농기구. # 내용 『북학의(北學議)』의 ‘수차(水車)’는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역에 따라 ‘무자새’(경남) · ‘자새’(전남 보성, 전북 봉동) · ‘물자새’(전남, 전북) · ‘수리차’(충남 서산) · ‘수차’ · ‘수룡(水龍)’ · ‘답차(踏車)’라고도 불린다. 또, 옛말로는 ‘믈자ᅀᅢ’ 또는 ‘믈ᄌᆞ의‘로 표기되었다. 형태는 물레방아 바퀴나 달구지의 바퀴를 닮았다. 한가운데의 축을 의지하여 많은 발판을 나선형으로 붙였으며, 한쪽에 주둥이를 달아 퍼올린 물을 이리로 흘러나가게 한다. 받침대 끝에 긴 작대기 두개를 엇비스듬히 질렀으며, 사람은 이것을 의지하고 서서 우근판(발받침)을 밟아 바퀴를 돌린다. 바퀴가 돌 때마다 물이 따라 올라온다. 이것을 돌리는 일은 매우 힘이 들어서 보통...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가련수정과 (加蓮水正果)
연꽃의 어린 속잎을 오미자국물에 띄운 화채. # 내용 가련수정과라는 명칭에서 곶감을 이용하여 만드는 수정과(水正果)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정과라기보다는 화채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3, 4월경의 이른 아침, 연꽃의 햇순이 돌돌 말려 물위로 피어오를 때, 연잎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녹두 녹말가루에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오미자물에 띄우고 꿀을 타서 마신다. 가련수정과는 일반사가에서보다 궁중에서 이용되었던 음료인 듯, 조선시대의 일반조리서에는 보이지 않고, 궁중연회에 관한 것을 기록해놓은 『진연의궤』와 『진찬의궤』에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음료로는 수련과에 속하는 순채를 이용하여 만드는 순채화채가 『시의전서』에 보이고 있다. - 『시의전서(是議全書)』 - 『조선왕조궁중연회음식...
놋쇠와 가죽을 재료로 만든 신. # 내용 ‘협금혜(挾金鞋)’라고도 한다. 당상관의 상복(常服)에 신었다고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다. 모양은 태사혜(太史鞋)와 비슷하고 창은 징신과 같이 촘촘히 징을 박았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9) - 「화제(靴制)」(조효순, 『한국의 복식』,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2) - 『한국복식사』(석주선, 보진재, 1978)
놋갖신
놋쇠와 가죽을 재료로 만든 신. # 내용 ‘협금혜(挾金鞋)’라고도 한다. 당상관의 상복(常服)에 신었다고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다. 모양은 태사혜(太史鞋)와 비슷하고 창은 징신과 같이 촘촘히 징을 박았다. - 『한국복식사연구』(유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9) - 「화제(靴制)」(조효순, 『한국의 복식』,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2) - 『한국복식사』(석주선, 보진재, 1978)
조선 후기에 최한기(崔漢綺)가 청동으로 제작한 지구의. # 개설 보물 883호.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회전할 수 있게 하고, 규목(槻木, 느릅나뭇과에 속한 교목)을 파서 만든 사발모양의 받침대에 남북축을 수평이 되게 걸쳐 넣어놓았다.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구의에는 10도 간격의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이 그려져 있고,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그리고 황도(黃道)가 그려져 있는데, 황도에는 24절기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세계지도가 거의 그려져 있고 한자로 된 각 나라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받침대인 목발 입구에는 청동제 환(環)을 붙이고 거기에 360도의 눈금을 새겨 놓았다. 지구의는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에서 선교사 벨베스트(湯若望)에게서 받아가지고 온 여지구(輿地球)...
지구의 (地球儀)
조선 후기에 최한기(崔漢綺)가 청동으로 제작한 지구의. # 개설 보물 883호.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회전할 수 있게 하고, 규목(槻木, 느릅나뭇과에 속한 교목)을 파서 만든 사발모양의 받침대에 남북축을 수평이 되게 걸쳐 넣어놓았다.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구의에는 10도 간격의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이 그려져 있고,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그리고 황도(黃道)가 그려져 있는데, 황도에는 24절기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세계지도가 거의 그려져 있고 한자로 된 각 나라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받침대인 목발 입구에는 청동제 환(環)을 붙이고 거기에 360도의 눈금을 새겨 놓았다. 지구의는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에서 선교사 벨베스트(湯若望)에게서 받아가지고 온 여지구(輿地球)...
의류 및 기타 기물(器物)을 보관하는 나무상자. # 내용 비(篚)·협(篋)·광(筐) 등의 죽기(竹器)를 의미하였던 광주리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에는 뚜껑이 위에 있다가 점점 상자 앞면에 문을 달아 옷을 넣는 데 편리하게 하여 사용하다가 이를 포개어서 옷장으로 썼던 것 같다.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 섬용지(贍用志) 권3에 “농은 원래 죽기를 의미하였던 것인데, 나무나 고리버들로써 만든 것을 농이라고 불렀다……라고 농의 시원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농에는 개판(蓋板 : 맨 위에 댄 나무판)이 없는 것이 장(欌)과 다른 점이지만, 후에는 농에도 개판 혹은 다리부분인 마대(馬臺)를 붙여 이를 ‘개판농’ 혹은 '마대농'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민주택에서는 상자의 안팎에 종이를 바른 함롱(函籠)을 사용하였는데, 바닥에 놓고 썼기...
농 (籠)
의류 및 기타 기물(器物)을 보관하는 나무상자. # 내용 비(篚)·협(篋)·광(筐) 등의 죽기(竹器)를 의미하였던 광주리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에는 뚜껑이 위에 있다가 점점 상자 앞면에 문을 달아 옷을 넣는 데 편리하게 하여 사용하다가 이를 포개어서 옷장으로 썼던 것 같다.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 섬용지(贍用志) 권3에 “농은 원래 죽기를 의미하였던 것인데, 나무나 고리버들로써 만든 것을 농이라고 불렀다……라고 농의 시원을 알려주고 있다. 원래 농에는 개판(蓋板 : 맨 위에 댄 나무판)이 없는 것이 장(欌)과 다른 점이지만, 후에는 농에도 개판 혹은 다리부분인 마대(馬臺)를 붙여 이를 ‘개판농’ 혹은 '마대농'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민주택에서는 상자의 안팎에 종이를 바른 함롱(函籠)을 사용하였는데, 바닥에 놓고 썼기...
조선시대 도성의 폐문 시간에 긴급한 일로 성문을 열고자 할 때 사용하던 부험(符驗: 확인 표찰)의 좌편(左篇). # 내용 1443년(세종 25) 교어부(交魚符)라는 명칭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형의 목제 표찰로서, 초기에는 한 면에 전자(篆字)로 ‘信符(신부)’라 쓰고 뒷면에는 압인하였으나, 후기에는 한 면에 ‘某更符驗(모경부험)’이라 쓰고 뒷면에 해당 문 이름을 새겼다. 이를 두 쪽으로 나누어 좌부는 궁중에 비치하고, 우부는 수문장들에게 교부하여 유사시 서로 맞추어보고 문을 열어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선전표신(宣傳標信: 승정원에서 왕명으로 발부하는 특수표찰)과 함께 제시해야 유효하였다. 이것들은 정문(正門: 4대문)에서 사용되는 것이었으며, 간문(間門: 4소문)에는 따로 개문표신이 사용되고, 부험은...
개문좌부 (開門左符)
조선시대 도성의 폐문 시간에 긴급한 일로 성문을 열고자 할 때 사용하던 부험(符驗: 확인 표찰)의 좌편(左篇). # 내용 1443년(세종 25) 교어부(交魚符)라는 명칭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형의 목제 표찰로서, 초기에는 한 면에 전자(篆字)로 ‘信符(신부)’라 쓰고 뒷면에는 압인하였으나, 후기에는 한 면에 ‘某更符驗(모경부험)’이라 쓰고 뒷면에 해당 문 이름을 새겼다. 이를 두 쪽으로 나누어 좌부는 궁중에 비치하고, 우부는 수문장들에게 교부하여 유사시 서로 맞추어보고 문을 열어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선전표신(宣傳標信: 승정원에서 왕명으로 발부하는 특수표찰)과 함께 제시해야 유효하였다. 이것들은 정문(正門: 4대문)에서 사용되는 것이었으며, 간문(間門: 4소문)에는 따로 개문표신이 사용되고, 부험은...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 개설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부췌』가 완성된 것은 1628년(인조 6)이었으며, 1758년(영조 34)에 이를 간행하고자 안정복(安鼎福)의 발문(跋文)을 얻었으나 끝내 간행하지 못하고, 1899년 저자의 10대손 안상진(安商鎭)이 간행하였다. 이 책판은 그때 간행을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131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안재우가 소장하고 있다. # 내용 안신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자(五休子), 본관은 광주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향(同鄕)의 김시민(金時敏)이 병마절도사로서 울산에 주둔하자 그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난후(亂後)...
가례부췌 책판 (家禮附贅 冊板)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 개설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부췌』가 완성된 것은 1628년(인조 6)이었으며, 1758년(영조 34)에 이를 간행하고자 안정복(安鼎福)의 발문(跋文)을 얻었으나 끝내 간행하지 못하고, 1899년 저자의 10대손 안상진(安商鎭)이 간행하였다. 이 책판은 그때 간행을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131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안재우가 소장하고 있다. # 내용 안신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자(五休子), 본관은 광주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향(同鄕)의 김시민(金時敏)이 병마절도사로서 울산에 주둔하자 그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난후(亂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