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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 6월 19일 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가덕도근해에서 싸운 해전. # 내용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원익(李元翼)과 권율(權慄)이 원균에게 “후방을 경계하는 동시에 수군을 출전시켜 바다로 침범하는 일본 수군의 길을 막으라.”고 하였는데, 원균은 먼저 육상병력으로 안골포(安骨浦)를 공격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전투에 임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종사관 남이공(南以恭)이 직접 한산도로 가서 전투에 참여할 것을 재촉하자, 원균은 남이공과 함께 6월 18일 100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다음날 안골포로 쳐들어갔다. 이 때 일본 수군들은 해변에 숨어서 대포를 쏘다가 다시 배를 타고 반격하여왔으나, 원균이 거느린 전선들은 이를 물리치고 가덕도방면으로 나아갔는데, 마침 안골포의...
가덕도해전 (加德島海戰)
1597년(선조 30) 6월 19일 수군통제사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가덕도근해에서 싸운 해전. # 내용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원익(李元翼)과 권율(權慄)이 원균에게 “후방을 경계하는 동시에 수군을 출전시켜 바다로 침범하는 일본 수군의 길을 막으라.”고 하였는데, 원균은 먼저 육상병력으로 안골포(安骨浦)를 공격하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전투에 임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종사관 남이공(南以恭)이 직접 한산도로 가서 전투에 참여할 것을 재촉하자, 원균은 남이공과 함께 6월 18일 100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다음날 안골포로 쳐들어갔다. 이 때 일본 수군들은 해변에 숨어서 대포를 쏘다가 다시 배를 타고 반격하여왔으나, 원균이 거느린 전선들은 이를 물리치고 가덕도방면으로 나아갔는데, 마침 안골포의...
1621년~1637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가도에 들어와 동강진을 설치한 뒤로 조선 · 명 · 후금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가도사건(椵島事件)은 1621년~1637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가도에 들어와 동강진을 설치한 뒤로 조선 · 명 · 후금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다. 모문룡이 조선의 가도에 진을 친 이후 조선 · 명 · 후금 사이는 다음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모문룡이 조선과의 군사 공조를 꾀한 시기, 둘째, 유흥치의 정변 등 동강진의 내부적 권력 갈등으로 조선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진 시기, 셋째, 부총병 심세괴가 동강진을 이끈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에는 조선과 청의 연합군이 가도를 점령하면서 동강진이 소멸되었다.이 사건은 조선에도 큰 여파를 미쳤다. 남사위와 진강아문, 관전보(寬奠堡) 등의 한인들이 후금의 점령에...
가도사건 (椵島事件)
1621년~1637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가도에 들어와 동강진을 설치한 뒤로 조선 · 명 · 후금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가도사건(椵島事件)은 1621년~1637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가도에 들어와 동강진을 설치한 뒤로 조선 · 명 · 후금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다. 모문룡이 조선의 가도에 진을 친 이후 조선 · 명 · 후금 사이는 다음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모문룡이 조선과의 군사 공조를 꾀한 시기, 둘째, 유흥치의 정변 등 동강진의 내부적 권력 갈등으로 조선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진 시기, 셋째, 부총병 심세괴가 동강진을 이끈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에는 조선과 청의 연합군이 가도를 점령하면서 동강진이 소멸되었다.이 사건은 조선에도 큰 여파를 미쳤다. 남사위와 진강아문, 관전보(寬奠堡) 등의 한인들이 후금의 점령에...
미군 최초의 참전부대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을 방어한 전투. # 내용 미국 정부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한국정부의 지원요청이 있자,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장군에게 선발대를 파견하여 사태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에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 중인 미 제24사단의 각 부대에서 병력을 선발하여 스미스특수임무부대를 편성했다. 스미스(Smith) 중령의 지휘 아래 편성된 스미스부대는 1950년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북한군이 남진하는 경부국도로 북상하였다. 7월 4일 오산 북방 죽미령 일대 양쪽고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2개 소총중대와 75미리 무반동총 4정 및 4.2인치 박격포 4문을 포함하여 모두 406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그 밖에 105미리 곡사포 6문으로 이루어진 미군 1개 포대의...
오산전투 (烏山戰鬪)
미군 최초의 참전부대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을 방어한 전투. # 내용 미국 정부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한국정부의 지원요청이 있자,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장군에게 선발대를 파견하여 사태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에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 중인 미 제24사단의 각 부대에서 병력을 선발하여 스미스특수임무부대를 편성했다. 스미스(Smith) 중령의 지휘 아래 편성된 스미스부대는 1950년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북한군이 남진하는 경부국도로 북상하였다. 7월 4일 오산 북방 죽미령 일대 양쪽고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2개 소총중대와 75미리 무반동총 4정 및 4.2인치 박격포 4문을 포함하여 모두 406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그 밖에 105미리 곡사포 6문으로 이루어진 미군 1개 포대의...
1933년 한국독립군이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과 연합, 일본군과 만주국군 연합부대를 만주의 경박호 연변에서 섬멸한 전투. 경박호전투는 1933년 한국독립군과 길림구국군이 연합해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만주의 경박호에서 섬멸한 전투이다.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북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려워진 한국독립군은 일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 항일의용군인 길림구국군과 연합하였다. 연합부대는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일·만군의 정보를 듣고 경박호에서 매복하였다가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는 일·만군 후속부대 1개 대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많은 물품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경박호전투는 연합부대 최초의 승리로 항일무장 투쟁을 더욱 고양시켰다.# 역사적 배경 1932년 11월 하순 2차 쌍성보(雙城堡)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독립군은...
경박호전투 (鏡泊湖戰鬪)
1933년 한국독립군이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과 연합, 일본군과 만주국군 연합부대를 만주의 경박호 연변에서 섬멸한 전투. 경박호전투는 1933년 한국독립군과 길림구국군이 연합해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만주의 경박호에서 섬멸한 전투이다.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북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려워진 한국독립군은 일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 항일의용군인 길림구국군과 연합하였다. 연합부대는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일·만군의 정보를 듣고 경박호에서 매복하였다가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는 일·만군 후속부대 1개 대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많은 물품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경박호전투는 연합부대 최초의 승리로 항일무장 투쟁을 더욱 고양시켰다.# 역사적 배경 1932년 11월 하순 2차 쌍성보(雙城堡)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독립군은...
1715년(숙종 41)에 『가례원류(家禮源流)』가 간행되자 그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론과 노론 사이의 정쟁. # 역사적 배경 일찍이 효종 때 유계(兪棨)가 주자의 『가례』에 단마다 해석을 붙여 『가례원류』를 편찬했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80년이 지나 1713년(숙종 39)에 당시 좌의정 이이명(李頤命)이 간행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또 저자의 손자인 유상기(兪相基)가 용담현령(龍潭縣令)으로 있으면서 간행하려 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이 실정을 왕에게 고하고 책의 간행을 위해 관찰사에게 물력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 왕의 허락를 받았다. 그리하여 1715년 권상하(權尙夏)의 서문과 정호(鄭澔)의 발문을 추가하여 출간되었다. 책이 출간되자 정호의 발문 가운데 소론 윤증(尹拯)이 스승 송시열(宋時烈)을 등지고...
가례원류시말 (家禮源流始末)
1715년(숙종 41)에 『가례원류(家禮源流)』가 간행되자 그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론과 노론 사이의 정쟁. # 역사적 배경 일찍이 효종 때 유계(兪棨)가 주자의 『가례』에 단마다 해석을 붙여 『가례원류』를 편찬했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80년이 지나 1713년(숙종 39)에 당시 좌의정 이이명(李頤命)이 간행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또 저자의 손자인 유상기(兪相基)가 용담현령(龍潭縣令)으로 있으면서 간행하려 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이 실정을 왕에게 고하고 책의 간행을 위해 관찰사에게 물력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 왕의 허락를 받았다. 그리하여 1715년 권상하(權尙夏)의 서문과 정호(鄭澔)의 발문을 추가하여 출간되었다. 책이 출간되자 정호의 발문 가운데 소론 윤증(尹拯)이 스승 송시열(宋時烈)을 등지고...
1884년(고종 21) 초 전라도 가리포에서 일어난 민란. # 내용 허사겸(許士兼)·문사순(文士巡)·최도일(崔道一)·최여집(崔汝集)·채운집(蔡云集) 등이 주동하였다. 19세기초 순조즉위 후 소수의 세도가문에 국가권력이 집중되고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삼정(三政)의 문란이 심화되어갔다. 이러한 국가기강 문란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농민들의 탐관오리에 대한 반발이 민란의 형태를 띠면서 전국적인 양상으로 확산되어갔다. 이때 가리포에서도 관아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멋대로 경제적 침탈을 자행하였다. 부호들의 재산도 마음대로 빼앗아가자 백성들은 정장소원(呈狀訴寃)할 것을 목적으로 석장(石場)에 모여 성토한 뒤 관아를 점령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강진현감 정학순(鄭學淳)을 파견하여 소요의 원인과 경과를 조사하게 하였으나...
가리포민란 (加里浦民亂)
1884년(고종 21) 초 전라도 가리포에서 일어난 민란. # 내용 허사겸(許士兼)·문사순(文士巡)·최도일(崔道一)·최여집(崔汝集)·채운집(蔡云集) 등이 주동하였다. 19세기초 순조즉위 후 소수의 세도가문에 국가권력이 집중되고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삼정(三政)의 문란이 심화되어갔다. 이러한 국가기강 문란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농민들의 탐관오리에 대한 반발이 민란의 형태를 띠면서 전국적인 양상으로 확산되어갔다. 이때 가리포에서도 관아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멋대로 경제적 침탈을 자행하였다. 부호들의 재산도 마음대로 빼앗아가자 백성들은 정장소원(呈狀訴寃)할 것을 목적으로 석장(石場)에 모여 성토한 뒤 관아를 점령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강진현감 정학순(鄭學淳)을 파견하여 소요의 원인과 경과를 조사하게 하였으나...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 역사적 배경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양진영의 반목으로 1947년 8월 12일 완전 결렬되어, 한국에 독립적·민주적 통합정부를 수립한다는 목적이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1947년 9월 17일 국제연합 총회 제2일에 마샬(Marshall,G.C.) 국무장관을 통하여 한국의 독립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 21일에 총회 운영위원회가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잇따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을 통과시킴에 따라, 총회 제1차(정치)위원회에 한국문제가 정식으로 부의, 심의되었다. 이 정치위원회에서 미국측은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국제연합임시위원단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5·10 총선거 (五十 總選擧)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 역사적 배경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양진영의 반목으로 1947년 8월 12일 완전 결렬되어, 한국에 독립적·민주적 통합정부를 수립한다는 목적이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1947년 9월 17일 국제연합 총회 제2일에 마샬(Marshall,G.C.) 국무장관을 통하여 한국의 독립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 21일에 총회 운영위원회가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잇따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을 통과시킴에 따라, 총회 제1차(정치)위원회에 한국문제가 정식으로 부의, 심의되었다. 이 정치위원회에서 미국측은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국제연합임시위원단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1904∼1905년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 더욱이, 발틱함대에 대한 연료보급이라든가, 도거 뱅크(Dogger Bank)사건 때 보인 독일의 노골적인 대러시아 지지 등은 열강의 불신을 가중시켰다. 결국, 러일전쟁은 영 · 불협상과 영 · 러협상을 맺게 하여 대독포위망(對獨包圍網)을 구축, 마침내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과도적 전쟁의 성격을 띠게 된 셈이었다. 대마도해전 직후 일본은 미국에 중재를 의뢰했고, 국제정세도 전쟁을 끝낼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대항을 위해 러시아 군사력이 약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미국 역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강자로 전면에 나서는 것을 위험시하였다. 이에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자, 열강은 제각기 종전...
러일전쟁 (←Russia日戰爭)
1904∼1905년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 더욱이, 발틱함대에 대한 연료보급이라든가, 도거 뱅크(Dogger Bank)사건 때 보인 독일의 노골적인 대러시아 지지 등은 열강의 불신을 가중시켰다. 결국, 러일전쟁은 영 · 불협상과 영 · 러협상을 맺게 하여 대독포위망(對獨包圍網)을 구축, 마침내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는 과도적 전쟁의 성격을 띠게 된 셈이었다. 대마도해전 직후 일본은 미국에 중재를 의뢰했고, 국제정세도 전쟁을 끝낼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대항을 위해 러시아 군사력이 약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미국 역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강자로 전면에 나서는 것을 위험시하였다. 이에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자, 열강은 제각기 종전...
1470년(성종 1)에 왕족 구성군을 왕권에 위협이 된다 하여 유배시킨 사건. 이 사건은 성종 초의 왕권이 불안정한 것을 기회로 원로 대신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일어났다. 이로써 신권 견제를 위한 종친 중용은 종말을 고하고 이후 신권이 정치를 주도해나가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1474년에 입법화된 《경국대전》에 종친사환금지(宗親仕宦禁止)를 규정해 종친은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 『세조실록』 - 『예종실록』 - 『성종실록』 - 『경국대전』 - 『조선초기정치지배세력연구』(정두희, 일조각, 1983) - 「종친부고」(김성준, 『사학연구』 18 신석호박사화갑기념특집호, 1964) - 「왕권의 확립과 제도의 완성」-세조∼성종-(한영우,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74)
구성군 사건 (龜城君 事件)
1470년(성종 1)에 왕족 구성군을 왕권에 위협이 된다 하여 유배시킨 사건. 이 사건은 성종 초의 왕권이 불안정한 것을 기회로 원로 대신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일어났다. 이로써 신권 견제를 위한 종친 중용은 종말을 고하고 이후 신권이 정치를 주도해나가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1474년에 입법화된 《경국대전》에 종친사환금지(宗親仕宦禁止)를 규정해 종친은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 『세조실록』 - 『예종실록』 - 『성종실록』 - 『경국대전』 - 『조선초기정치지배세력연구』(정두희, 일조각, 1983) - 「종친부고」(김성준, 『사학연구』 18 신석호박사화갑기념특집호, 1964) - 「왕권의 확립과 제도의 완성」-세조∼성종-(한영우,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74)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는 이러한 백제의 공세가 절정에 달한 사건이었다. # 경과 642년 8월의자왕은 장군 윤충(允忠)에게 군사 1만인을 주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대야성 도독(都督)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金品釋)이었다. 김품석은 재지세력인 사지(舍知) 검일(黔日)의 아내를 빼앗음으로써 대야성 지방의 상당한 재지세력들이 이탈하였다. 검일은 이 일을 원망하다가 백제군과 내통해 창고에 불을 질렀다. 백제 군사가 대야성을 공격해 왔을 때 재지세력인 죽죽(竹竹)과 용석(龍石)은 백제군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으나 김품석은 싸우지도 않고 보좌관인 아찬(阿飡) 서천(西川)의 주장에 따라 항복하여 가족과 함께...
대야성전투 (大耶城戰鬪)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는 이러한 백제의 공세가 절정에 달한 사건이었다. # 경과 642년 8월의자왕은 장군 윤충(允忠)에게 군사 1만인을 주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대야성 도독(都督)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金品釋)이었다. 김품석은 재지세력인 사지(舍知) 검일(黔日)의 아내를 빼앗음으로써 대야성 지방의 상당한 재지세력들이 이탈하였다. 검일은 이 일을 원망하다가 백제군과 내통해 창고에 불을 질렀다. 백제 군사가 대야성을 공격해 왔을 때 재지세력인 죽죽(竹竹)과 용석(龍石)은 백제군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으나 김품석은 싸우지도 않고 보좌관인 아찬(阿飡) 서천(西川)의 주장에 따라 항복하여 가족과 함께...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 구십육각간(九十六角干)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이다. 왕도를 33일 간 포위하여 신성과 장창이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혔으며, 전국적 진압에는 3개월이 소요되었다.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서 768년(혜공왕 4) 7월에 일길찬(一吉飡) 대공과 동생인 아찬(阿飡) 대렴(大廉)이 함께 일으켰다는 반란과 동일한 사건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서는 혜공왕 2년이라고 하였으나, 『삼국사기』 연표(年表)에 따르면 정미년은 767년(혜공왕 3)에 해당한다. 두 기록 사이에 1년의 시차가 있다. 한편, 『신당서(新唐書)...
96각간의 난 (九十六角干의 亂)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 구십육각간(九十六角干)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이다. 왕도를 33일 간 포위하여 신성과 장창이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혔으며, 전국적 진압에는 3개월이 소요되었다.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서 768년(혜공왕 4) 7월에 일길찬(一吉飡) 대공과 동생인 아찬(阿飡) 대렴(大廉)이 함께 일으켰다는 반란과 동일한 사건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서는 혜공왕 2년이라고 하였으나, 『삼국사기』 연표(年表)에 따르면 정미년은 767년(혜공왕 3)에 해당한다. 두 기록 사이에 1년의 시차가 있다. 한편, 『신당서(新唐書)...
1186년(명종 16) 안동에서 일어난 민란. # 내용 1170년 무신정권이 수립된 뒤 신분질서의 해이와 무신들의 토지 점탈, 지방관의 탐학 등으로 고려사회가 동요하자 전국 각지에서 농민ㆍ천민의 난이 일어났는데, 안동민란도 그 중의 하나였다. 농민들의 유망(流亡)으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그 해 명종은 수령의 백성 수탈을 엄금하는 조서까지 내렸으나, 이는 무신집권자들의 토지점탈이 그치지 않는 한 쉽게 근절될 수 없는 것이었다. 1186년 안동수령 이광실(李廣實)이 탐학하여 백성들을 수탈하자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래서 정부에서 이광실을 장죄(贓罪 : 뇌물을 받은 죄)로 다스려 귀양보내자 비로소 이 난은 가라앉았다. 이 안동민란은 지방수령의 탐학에 대한 농민봉기로서 가장 전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안동민란 (安東民亂)
1186년(명종 16) 안동에서 일어난 민란. # 내용 1170년 무신정권이 수립된 뒤 신분질서의 해이와 무신들의 토지 점탈, 지방관의 탐학 등으로 고려사회가 동요하자 전국 각지에서 농민ㆍ천민의 난이 일어났는데, 안동민란도 그 중의 하나였다. 농민들의 유망(流亡)으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그 해 명종은 수령의 백성 수탈을 엄금하는 조서까지 내렸으나, 이는 무신집권자들의 토지점탈이 그치지 않는 한 쉽게 근절될 수 없는 것이었다. 1186년 안동수령 이광실(李廣實)이 탐학하여 백성들을 수탈하자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래서 정부에서 이광실을 장죄(贓罪 : 뇌물을 받은 죄)로 다스려 귀양보내자 비로소 이 난은 가라앉았다. 이 안동민란은 지방수령의 탐학에 대한 농민봉기로서 가장 전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1919년 3·1운동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 개설 안동에서는 이상동(李相東)의 단독시위가 기폭제 역할을 하여 1919년 3월 17일예안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 뒤 3월 말까지 계속해서 격렬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 경과와 결과 처음 계획은 일본유학생 강대극(姜大極) 등이 3월 12일의 예안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으나,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 등은 다음 장날인 17일에 전개하기로 재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 등사하였다.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주동자들은 수천 명의 장꾼들을 동원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오후 6시경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으로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안동 3·1운동 (安東 三一運動)
1919년 3·1운동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 개설 안동에서는 이상동(李相東)의 단독시위가 기폭제 역할을 하여 1919년 3월 17일예안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된 뒤 3월 말까지 계속해서 격렬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 경과와 결과 처음 계획은 일본유학생 강대극(姜大極) 등이 3월 12일의 예안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으나,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 등은 다음 장날인 17일에 전개하기로 재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 등사하였다.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주동자들은 수천 명의 장꾼들을 동원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오후 6시경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으로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64년(다루왕 37)에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지역에서 있었던 신라와 백제의 싸움. # 내용 신라와 백제의 초기 싸움은 주로 현재의 충청북도 보은과 경상북도 상주를 잇는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64년(다루왕 37) 8월 와산성(蛙山城 : 지금의 보은)을 공격한 백제는 그 여세를 몰아 11월에는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다. 이에 신라의 탈해이사금은 기병 3000을 보내 백제군을 격퇴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구양전투 (狗壤戰鬪)
64년(다루왕 37)에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지역에서 있었던 신라와 백제의 싸움. # 내용 신라와 백제의 초기 싸움은 주로 현재의 충청북도 보은과 경상북도 상주를 잇는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64년(다루왕 37) 8월 와산성(蛙山城 : 지금의 보은)을 공격한 백제는 그 여세를 몰아 11월에는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다. 이에 신라의 탈해이사금은 기병 3000을 보내 백제군을 격퇴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64년(탈해이사금 8) 10월과 189년(벌휴이사금 6) 7월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의 싸움. # 내용 신64년(탈해이사금 8)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을 공격하고, 10월에 또 구양성을 공격하였으므로, 기병 2천 명을 보내 물리쳤다. 또한 189년(벌휴이사금 6) 7월에 신라의 파진찬(波珍飡) 구도(仇道)가 백제의 구양을 공격하여, 500여 인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와산성이 현재의 보은으로 비정되고 있는 만큼, 와산성과 이웃한 구양성 혹은 구양은 충청북도 보은 인근지역임이 분명하다. 554년 백제 성왕이 신라의 복병을 만난 구천(狗川)이 옥천(沃川)인 것으로 보아, 구양 또한 같은 옥천지역으로 비정된다. ‘천(川)’의 훈(訓)인 ‘내’·‘나’와 ‘양(壤)’의 음이 서로 비슷하여, 통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삼국사기...
구양전투 (狗壤戰鬪)
64년(탈해이사금 8) 10월과 189년(벌휴이사금 6) 7월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의 싸움. # 내용 신64년(탈해이사금 8) 8월에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을 공격하고, 10월에 또 구양성을 공격하였으므로, 기병 2천 명을 보내 물리쳤다. 또한 189년(벌휴이사금 6) 7월에 신라의 파진찬(波珍飡) 구도(仇道)가 백제의 구양을 공격하여, 500여 인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와산성이 현재의 보은으로 비정되고 있는 만큼, 와산성과 이웃한 구양성 혹은 구양은 충청북도 보은 인근지역임이 분명하다. 554년 백제 성왕이 신라의 복병을 만난 구천(狗川)이 옥천(沃川)인 것으로 보아, 구양 또한 같은 옥천지역으로 비정된다. ‘천(川)’의 훈(訓)인 ‘내’·‘나’와 ‘양(壤)’의 음이 서로 비슷하여, 통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삼국사기...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整軍派)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 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장면 총리, 윤보선 대통령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분열은 더욱...
5·16 (五一六)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整軍派)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 오일육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사쿠데타이다. 4·19혁명 이후 허정 과도정부나 이를 계승한 장면 정권은 4·19혁명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고 정당 등 정치권도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군부 내에서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정군 운동이 쿠데타로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어 군정에 돌입했다. 30년 이상 지속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장면 총리, 윤보선 대통령이 결정되기는 했지만 분열은 더욱...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당시 광주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운동. 1980년 발발 당시에는 극소수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광주사태)으로 규정되었다가 제6공화국 출범 이후인 1988년 4월 1일 민주화추진위원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제13대 총선(4월 26일)의 소산인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건규명을 위한 국회 광주특위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장기간 군사독재가 통치능력을 상실한 일련의 사태는 1979년 10월 이후 연속적으로 발생하였다. 10월 4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은 국회에서 의원직을 제명당하자 10월 15부터 10월 20까지 부산 · 마산 등지에서는 부마항쟁(釜馬抗爭)이 일어났고, 이의 해결을 둘러싼 노선대립으로 10월 26일...
5·18광주민주화운동 (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당시 광주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운동. 1980년 발발 당시에는 극소수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광주사태)으로 규정되었다가 제6공화국 출범 이후인 1988년 4월 1일 민주화추진위원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제13대 총선(4월 26일)의 소산인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건규명을 위한 국회 광주특위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장기간 군사독재가 통치능력을 상실한 일련의 사태는 1979년 10월 이후 연속적으로 발생하였다. 10월 4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은 국회에서 의원직을 제명당하자 10월 15부터 10월 20까지 부산 · 마산 등지에서는 부마항쟁(釜馬抗爭)이 일어났고, 이의 해결을 둘러싼 노선대립으로 10월 26일...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 개설 일명 ‘백강구전(白江口戰)’·‘백강전쟁(白江戰爭)’이라고도 한다.『구당서(舊唐書)』·『삼국사기』에는 ‘백강구(白江口)’라 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촌강(白村江)’이라 하였다. 이곳이 지금의 어디인가는 아직 정설(定說)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종래의 연구가 그러했듯이 백강구전쟁의 종합적인 연구가 모아지는 것으로 진전된 것이 아니고, 일본의 전적지(戰跡地)를 찾는 데만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거의 음성학적으로 위치를 비정하다 보니 많은 지명이 등장하는 혼란만 낳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백강구전의 현장을 찾는데 기준이 되어야 할 몇...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 개설 일명 ‘백강구전(白江口戰)’·‘백강전쟁(白江戰爭)’이라고도 한다.『구당서(舊唐書)』·『삼국사기』에는 ‘백강구(白江口)’라 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촌강(白村江)’이라 하였다. 이곳이 지금의 어디인가는 아직 정설(定說)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종래의 연구가 그러했듯이 백강구전쟁의 종합적인 연구가 모아지는 것으로 진전된 것이 아니고, 일본의 전적지(戰跡地)를 찾는 데만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거의 음성학적으로 위치를 비정하다 보니 많은 지명이 등장하는 혼란만 낳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백강구전의 현장을 찾는데 기준이 되어야 할 몇...
1946년 9월 24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이 전국적 규모로 일으킨 미군정기 최대의 총파업. # 사건의 배경 9월 총파업이 일어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은 당시의 식량 문제였고, 정치적 배경은 공산당이 미군정^1]과의 우호적 관계에서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신전술’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의 경제적 사정은 매우 심각하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식량부족 문제는 사회를 위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다. 미군정청의 미곡수집계획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합리한 미곡수집 가격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미곡의 자유 반입을 금지한 조처는 도시의 식량 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군정 관료와 결탁한 모리배들은 쌀값을 마음대로 조작하여 대중의 분노를 야기하였다. 이와 같이...
9월 총파업 (九月 總罷業)
1946년 9월 24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이 전국적 규모로 일으킨 미군정기 최대의 총파업. # 사건의 배경 9월 총파업이 일어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은 당시의 식량 문제였고, 정치적 배경은 공산당이 미군정^1]과의 우호적 관계에서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신전술’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의 경제적 사정은 매우 심각하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식량부족 문제는 사회를 위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다. 미군정청의 미곡수집계획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합리한 미곡수집 가격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미곡의 자유 반입을 금지한 조처는 도시의 식량 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군정 관료와 결탁한 모리배들은 쌀값을 마음대로 조작하여 대중의 분노를 야기하였다. 이와 같이...
1859년(철종10) 말에서 1860년(철종 11) 8월에 걸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獄事). # 내용 1839년(헌종 4) 기해사옥 때 천주교 박해에 공을 세운 금위대장이던 임성고(任聖皐)의 아들인 좌포도장 태영(泰瑛)이 천주교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으로 우포도장 신명순(申命淳)과 함께 자행한 옥사였다. 원래 철종은 온건한 성품인데다가 당시의 집권세력인 안동김씨(安東金氏)도 비교적 유화정책을 썼으므로, 천주교는 조용한 가운데 착실하게 교세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에 개인적으로 천주교를 사학시(邪學視)하고 반감을 품고 있던 임태영은 신명순과 의논하여 조정의 허락도 없이 서울과 지방의 교인촌을 급습, 30여명의 신자들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시켰다. 그러나 포졸들이 천주교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재산의 약탈과 방화 등...
경신박해 (庚申迫害)
1859년(철종10) 말에서 1860년(철종 11) 8월에 걸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獄事). # 내용 1839년(헌종 4) 기해사옥 때 천주교 박해에 공을 세운 금위대장이던 임성고(任聖皐)의 아들인 좌포도장 태영(泰瑛)이 천주교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으로 우포도장 신명순(申命淳)과 함께 자행한 옥사였다. 원래 철종은 온건한 성품인데다가 당시의 집권세력인 안동김씨(安東金氏)도 비교적 유화정책을 썼으므로, 천주교는 조용한 가운데 착실하게 교세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에 개인적으로 천주교를 사학시(邪學視)하고 반감을 품고 있던 임태영은 신명순과 의논하여 조정의 허락도 없이 서울과 지방의 교인촌을 급습, 30여명의 신자들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시켰다. 그러나 포졸들이 천주교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재산의 약탈과 방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