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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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崇實大學校 韓國基督敎博物館)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우회 사건은 1938년, 농촌계몽을 위해 조직된 농우회를 일제가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며 그 참여자들을 예비 검속 차원에서 혐의를 조작하고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의 개량을 도모하는 등 농촌사회 진흥을 위한 활동에 대해 1938년 일제가 조선 독립을 도모했다고 조작하며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 사건 (農友會 事件)
농우회 사건은 1938년, 농촌계몽을 위해 조직된 농우회를 일제가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며 그 참여자들을 예비 검속 차원에서 혐의를 조작하고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의 개량을 도모하는 등 농촌사회 진흥을 위한 활동에 대해 1938년 일제가 조선 독립을 도모했다고 조작하며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우호익은 해방 이후 숭실대학 교수, 숭전대학 명예학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개신교인이다. 한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무궁화가 일제로부터 탄압받던 시절에, 우호익은 무궁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학자로 문헌 고증을 통해 무궁화의 위상을 정립하여 한국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호익 (禹浩翊)
우호익은 해방 이후 숭실대학 교수, 숭전대학 명예학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개신교인이다. 한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무궁화가 일제로부터 탄압받던 시절에, 우호익은 무궁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학자로 문헌 고증을 통해 무궁화의 위상을 정립하여 한국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 2월 10일 북경 거주 한국기독교 청년·학생들이 미국 공리회 예배당에서 설립한 청년회.
고려기독교청년회 (高麗基督敎靑年會)
1920년 2월 10일 북경 거주 한국기독교 청년·학생들이 미국 공리회 예배당에서 설립한 청년회.
1947년 2월 24일 김창준(金昌俊), 이만규(李萬奎) 등이 결성한 기독교계 단체.
기독교민주동맹 (基督敎民主同盟)
1947년 2월 24일 김창준(金昌俊), 이만규(李萬奎) 등이 결성한 기독교계 단체.
1926년 2월 중앙YMCA회관에서 기독교 사회적 표준 마련과 한국적 기독교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연구단체.
기독교연구회 (基督敎硏究會)
1926년 2월 중앙YMCA회관에서 기독교 사회적 표준 마련과 한국적 기독교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독교 연구단체.
1909년 서울 북촌에 거주하는 양반 출신의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장로교회.
안동교회 (安洞敎會)
1909년 서울 북촌에 거주하는 양반 출신의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장로교회.
적극신앙단은 1932년 6월 신흥우를 비롯한 기독교계 인물들이 ‘적극신앙’에 동의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피안적·관념적인 천국주의를 비판하고, 기독교 개혁, 민족의식 고취, 독립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새로운 생활 신앙 선언과 21개조 실천 강령을 구상하고, 선교사들과 목사들에게 개혁구상을 밝히며 협조를 요청하였다. 참여 인물들은 기호지역 출신 감리교와 장로교인들로 3·1운동 이후 YMCA, 신간회 등 여러 민족·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5년 신흥우가 YMCA를 떠나면서 적극신앙단도 그 중심을 잃고 사실상 해체되었다.
적극신앙단 (積極信仰團)
적극신앙단은 1932년 6월 신흥우를 비롯한 기독교계 인물들이 ‘적극신앙’에 동의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피안적·관념적인 천국주의를 비판하고, 기독교 개혁, 민족의식 고취, 독립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새로운 생활 신앙 선언과 21개조 실천 강령을 구상하고, 선교사들과 목사들에게 개혁구상을 밝히며 협조를 요청하였다. 참여 인물들은 기호지역 출신 감리교와 장로교인들로 3·1운동 이후 YMCA, 신간회 등 여러 민족·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5년 신흥우가 YMCA를 떠나면서 적극신앙단도 그 중심을 잃고 사실상 해체되었다.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의 주체적 기독교 문화 창출을 목표로 설립된 기독교 출판사.
조선기독교창문사 (朝鮮基督敎彰文社)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의 주체적 기독교 문화 창출을 목표로 설립된 기독교 출판사.
1920년 대한독립애국단의 지부로 설립된 강원도 철원 애국단의 와해사건.
애국단 사건 (愛國團 事件)
1920년 대한독립애국단의 지부로 설립된 강원도 철원 애국단의 와해사건.
해방 이후 자교교회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연회장, 배화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김광우 (金光祐)
해방 이후 자교교회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연회장, 배화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일제강점기 농민복음학교 교장, 해주 구세요양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의료인.
김병서 (金秉瑞)
일제강점기 농민복음학교 교장, 해주 구세요양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의료인.
해방 이후 숭실대학교 초대 총장 ,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김형남 (金瑩楠)
해방 이후 숭실대학교 초대 총장 ,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대한제국기 협성회 부회장, 웹윗청년회 창립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노병선 (盧炳善)
대한제국기 협성회 부회장, 웹윗청년회 창립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개항기 맹인 복술가 출신으로 개성, 장단, 평양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전개한 개신교인. 전도인.
백사겸 (白士兼)
개항기 맹인 복술가 출신으로 개성, 장단, 평양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전개한 개신교인. 전도인.
일제강점기 학동교회, 숭덕학교를 설립한 개신교인. 전도부인.
전삼덕 (全三德)
일제강점기 학동교회, 숭덕학교를 설립한 개신교인. 전도부인.
해방 이후 원산교회 전도사, 대한수도원 원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전도사.
전진 (田鎭)
해방 이후 원산교회 전도사, 대한수도원 원장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전도사.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 (朝鮮基督敎南部大會)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1899년 수원 읍내에 형성된 신앙공동체를 토대로 1901년 설립된 기독교 교회.
수원 종로교회 (水原 鍾路敎會)
1899년 수원 읍내에 형성된 신앙공동체를 토대로 1901년 설립된 기독교 교회.
1947년 7월 이승만을 지지하는 기독교계의 함태영 주도로 결성된 기독교 단체.
그리스도교연맹 (←Kristos敎聯盟)
1947년 7월 이승만을 지지하는 기독교계의 함태영 주도로 결성된 기독교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