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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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제11대 문종의 왕비.
인예순덕태후 (仁睿順德太后)
고려전기 제11대 문종의 왕비.
고려시대에 창기(倡妓)가 소속되어 속악을 익히고 연주한 음악기관.
교방 (敎坊)
고려시대에 창기(倡妓)가 소속되어 속악을 익히고 연주한 음악기관.
고려 후기에, 지신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광철 (金光轍)
고려 후기에, 지신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취려는 고려후기 평장사 판병부사, 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172년(명종 2)에 태어나 1234년(고종 21)에 사망했다. 1216년에 거란의 잔존 세력이 침략하였을 때 섭(攝) 상장군으로 전공을 세웠다. 이후 고려군을 이끌고 몽골군과 합세하여 거란을 토벌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려와 몽골은 형제맹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세력이 의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중군을 이끌고 토벌하였다. 거란의 잔여 무리까지 토벌하여 북쪽 국경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1232년 강화로 천도한 이후 문하시중에 올랐다.
김취려 (金就礪)
김취려는 고려후기 평장사 판병부사, 평장사 판이부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172년(명종 2)에 태어나 1234년(고종 21)에 사망했다. 1216년에 거란의 잔존 세력이 침략하였을 때 섭(攝) 상장군으로 전공을 세웠다. 이후 고려군을 이끌고 몽골군과 합세하여 거란을 토벌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려와 몽골은 형제맹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세력이 의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중군을 이끌고 토벌하였다. 거란의 잔여 무리까지 토벌하여 북쪽 국경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1232년 강화로 천도한 이후 문하시중에 올랐다.
김통정은 고려후기 진도의 삼별초의 항쟁과 관련된 무신이다. 고려 원종은 개경 환도를 명령했으나 삼별초는 따르지 않고 진도에서 저항하였다. 고려군과 몽골군이 합세하여 진도를 공격하자 김통정은 삼별초를 이끌고 탐라로 옮겨 갔다. 김통정의 삼별초는 탐라에 내성과 외성을 쌓고, 항파두리성이라고 불렀다. 원종은 김통정을 회유하기 위해 김찬 등을 보냈으나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1273년 여몽연합군이 탐라를 공략하여 항파두리성을 함락시켰다. 산중으로 들어간 김통정도 죽음을 맞이하였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일대에 항파두리성 유적이 남아 있다.
김통정 (金通精)
김통정은 고려후기 진도의 삼별초의 항쟁과 관련된 무신이다. 고려 원종은 개경 환도를 명령했으나 삼별초는 따르지 않고 진도에서 저항하였다. 고려군과 몽골군이 합세하여 진도를 공격하자 김통정은 삼별초를 이끌고 탐라로 옮겨 갔다. 김통정의 삼별초는 탐라에 내성과 외성을 쌓고, 항파두리성이라고 불렀다. 원종은 김통정을 회유하기 위해 김찬 등을 보냈으나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1273년 여몽연합군이 탐라를 공략하여 항파두리성을 함락시켰다. 산중으로 들어간 김통정도 죽음을 맞이하였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일대에 항파두리성 유적이 남아 있다.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3 왕비.
헌애왕태후 (獻哀王太后)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3 왕비.
개경은 태조 왕건이 건설한 고려왕조의 수도이다. 919년 왕건이 송악현과 개성현 일부를 통합해 개주로 칭하고 이곳으로 천도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이 탄생했다. 강화도 천도기를 제외하고는 436년 8개월 동안 고려왕조의 수도로서 기능했다. 성종 때 개주를 개성부로 개칭하였고 조선이 건국과 더불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개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에도 송악산 남쪽에 있는 궁성과 그 외곽의 황성, 도성 안팎의 별궁, 내성·외성으로 이루어진 성곽, 불교사원 및 유교 시설인 원구·태묘·사직·국자감·문묘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개경 (開京)
개경은 태조 왕건이 건설한 고려왕조의 수도이다. 919년 왕건이 송악현과 개성현 일부를 통합해 개주로 칭하고 이곳으로 천도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이 탄생했다. 강화도 천도기를 제외하고는 436년 8개월 동안 고려왕조의 수도로서 기능했다. 성종 때 개주를 개성부로 개칭하였고 조선이 건국과 더불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개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에도 송악산 남쪽에 있는 궁성과 그 외곽의 황성, 도성 안팎의 별궁, 내성·외성으로 이루어진 성곽, 불교사원 및 유교 시설인 원구·태묘·사직·국자감·문묘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흥왕사 변란을 진압한 공으로 책봉된 공신. 흥왕토적공신.
흥왕공신 (興王功臣)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흥왕사 변란을 진압한 공으로 책봉된 공신. 흥왕토적공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책봉된 공신을 말한다. 기해년(1359) 홍건적 격퇴에 대한 전체적인 공신 책봉은 제때에 이뤄지지 않았다. 삼원수(三元帥) 사건, 흥왕사 변란으로 흔들리는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신책봉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이 공신 책봉을 제때 하지 않은 것은 공신들의 세력 신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기해격주홍적공신 중의 하나인 조돈의 귀순과 활약은 사돈인 이자춘(李子春)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동북면 세력이 고려 말엽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기해격주홍적공신 (己亥擊走紅賊功臣)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제1차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책봉된 공신을 말한다. 기해년(1359) 홍건적 격퇴에 대한 전체적인 공신 책봉은 제때에 이뤄지지 않았다. 삼원수(三元帥) 사건, 흥왕사 변란으로 흔들리는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신책봉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이 공신 책봉을 제때 하지 않은 것은 공신들의 세력 신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기해격주홍적공신 중의 하나인 조돈의 귀순과 활약은 사돈인 이자춘(李子春)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동북면 세력이 고려 말엽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반원정치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펼친 고려의 정치활동이다. 1270년 개경환도에 반발한 삼별초의 항쟁과 충선왕의 개혁, 총목왕의 정치도감 개혁 등을 반원적 행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반원정책은 1356년 공민왕이 원을 배경으로 권세를 부려온 부원세력을 제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한 정동행성 이문소를 혁파하여 사법권을 회복하였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원의 연호를 정지하고 관제를 대폭 개정하여 황제국 체제를 회복하였다. 국왕의 측근 세력이 주도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반원정치 (反元政治)
반원정치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펼친 고려의 정치활동이다. 1270년 개경환도에 반발한 삼별초의 항쟁과 충선왕의 개혁, 총목왕의 정치도감 개혁 등을 반원적 행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반원정책은 1356년 공민왕이 원을 배경으로 권세를 부려온 부원세력을 제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한 정동행성 이문소를 혁파하여 사법권을 회복하였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원의 연호를 정지하고 관제를 대폭 개정하여 황제국 체제를 회복하였다. 국왕의 측근 세력이 주도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부원세력 (附元勢力)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민가에서 제사를 위하여 조상의 신주를 봉안한 건축물.
사당 (祠堂)
민가에서 제사를 위하여 조상의 신주를 봉안한 건축물.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문형 (李文馨)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병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임내신 (任鼐臣)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병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부수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임병 (任柄)
조선 전기에, 홍문관박사, 부수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당상관, 동지중추부사, 충청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임시척 (任時倜)
조선후기 당상관, 동지중추부사, 충청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전기에, 사직서, 집경전, 연은전, 후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첨모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임운 (林芸)
조선 전기에, 사직서, 집경전, 연은전, 후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첨모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시대 정묘호란 당시 천총으로 안주성전투에 참전한 무신.
임충서 (林忠恕)
조선시대 정묘호란 당시 천총으로 안주성전투에 참전한 무신.
조선후기 효행으로 사헌부지평에 추증된 효자.
임형업 (林亨業)
조선후기 효행으로 사헌부지평에 추증된 효자.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여 문경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임란일기』, 『용담잡영』 등을 저술한 학자.
임흘 (任屹)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여 문경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임란일기』, 『용담잡영』 등을 저술한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