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혜진"
검색결과 총 17건
대한그리스도인회보는 대한제국기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가 편집하여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신문이다. 1897년 2월 2일 아펜젤러가 책임을 맡고 한국인 최병헌(崔炳憲), 노병선(盧炳善)이 편집인으로 참여하여 순한글로 정동 한미화활판소에서 매주 발행하였다.
대한그리스도인회보 (大韓Kristos人會報)
대한그리스도인회보는 대한제국기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가 편집하여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신문이다. 1897년 2월 2일 아펜젤러가 책임을 맡고 한국인 최병헌(崔炳憲), 노병선(盧炳善)이 편집인으로 참여하여 순한글로 정동 한미화활판소에서 매주 발행하였다.
대한기독교서회는 1890년 기독교 서적의 출판과 판매 및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초교파적 연합 사업 단체이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스크랜턴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참여하였다. 한국 출판 문화의 개척자적인 임무를 수행하였고, 기독교 선교는 물론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정착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대한기독교서회 (大韓基督敎書會)
대한기독교서회는 1890년 기독교 서적의 출판과 판매 및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초교파적 연합 사업 단체이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스크랜턴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참여하였다. 한국 출판 문화의 개척자적인 임무를 수행하였고, 기독교 선교는 물론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정착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백홍준은 개항기 개신교 초기 세례인이자 최초의 전도인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중국 선교사 로스(John Ross)를 통해 개신교 복음을 받아들인 후 개신교 두 번째 세례인이 되었다. 평안도 의주에 파송된 최초의 전도인으로 언더우드, 마펫 등 선교사들을 돕고 의주읍교회 등을 설립하여 서북지역 전도에 매진하였다.
백홍준 (白鴻俊)
백홍준은 개항기 개신교 초기 세례인이자 최초의 전도인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중국 선교사 로스(John Ross)를 통해 개신교 복음을 받아들인 후 개신교 두 번째 세례인이 되었다. 평안도 의주에 파송된 최초의 전도인으로 언더우드, 마펫 등 선교사들을 돕고 의주읍교회 등을 설립하여 서북지역 전도에 매진하였다.
『성교촬리』는 중국에서 활동한 런던선교회 선교사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이 저술하고 한국의 첫 복음선교사로 내한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번역하여 1890년에 한국성교서회에서 간행한 최초의 교리서·번역서이다.
성교촬리 (聖敎撮理)
『성교촬리』는 중국에서 활동한 런던선교회 선교사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이 저술하고 한국의 첫 복음선교사로 내한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번역하여 1890년에 한국성교서회에서 간행한 최초의 교리서·번역서이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Dinuba 韓人長老敎會)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는 191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장로교회이다. 다뉴바는 유명한 과일 생산지로 이 지역 과일농장에서 일하는 한인근로자들이 증가하자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치완 전도사의 인도로 설립되어 한때 교인이 150명에 이르기도 했으나 한인의 급감으로 1958년 폐쇄되었다. 중가주 지역 한인교회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되어 이 지역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 모금, 3.1운동 기념식 개최, 민족운동 단체의 설립,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미주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1930년 2월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감리교회이다. 1954년 10월 1일 교회 건물을 클린턴 스트리트(Clinton Street) 1028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한인들이 줄어들어 유지가 곤란해지자 1958년 6월에 델라노한인교회는 폐지되었다. 교인수는 많을 때는 7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와,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다뉴바·리들리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델라노 한인교회 (Delano 韓人敎會)
1930년 2월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감리교회이다. 1954년 10월 1일 교회 건물을 클린턴 스트리트(Clinton Street) 1028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한인들이 줄어들어 유지가 곤란해지자 1958년 6월에 델라노한인교회는 폐지되었다. 교인수는 많을 때는 7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와,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다뉴바·리들리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Reedley 韓人長老敎會)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충현교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역삼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19,835㎡의 대지에 본당, 교육관 등 1만 평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딕식 외관 형태를 갖춘 대형 교회이다. 2012년 9월 현재 신자 수는 22,000명이다. 김창인 전도사가 1952년 부산에 동일교회를 개척하였다. 동일교회는 1956년 8월 서울 충무로에 충현교회를 세웠다. 김창인 목사가 1958년부터 1987년까지 시무하였다. 1997년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면서 교회 세습 문제가 발생하였다. 2013~2016까지 김동하 목사가 시무하였다.
충현교회 (忠峴敎會)
충현교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역삼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19,835㎡의 대지에 본당, 교육관 등 1만 평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딕식 외관 형태를 갖춘 대형 교회이다. 2012년 9월 현재 신자 수는 22,000명이다. 김창인 전도사가 1952년 부산에 동일교회를 개척하였다. 동일교회는 1956년 8월 서울 충무로에 충현교회를 세웠다. 김창인 목사가 1958년부터 1987년까지 시무하였다. 1997년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면서 교회 세습 문제가 발생하였다. 2013~2016까지 김동하 목사가 시무하였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한국 교회를 위해 순교한 개신교인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18일 개관한 순교자 기념관이다. 양지순교자기념관이라고도 한다. 1980년 개신교 11개 교단 대표들이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범 교단적 협의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협의회에서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한국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짓고 그 앞에 순교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1884년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약 600여 명의 순교자 명단이 기념관에 헌정되었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韓國基督敎殉敎者記念館)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한국 교회를 위해 순교한 개신교인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1월 18일 개관한 순교자 기념관이다. 양지순교자기념관이라고도 한다. 1980년 개신교 11개 교단 대표들이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범 교단적 협의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협의회에서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한국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짓고 그 앞에 순교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1884년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약 600여 명의 순교자 명단이 기념관에 헌정되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1982년 9월 27일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소장 학자들이 모여 만든 한국기독교 역사 연구기관이다. 한국교회 및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역사 연구와 성과 보급을 통해 기독교 문화의 창달과 선교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2년 ‘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조직되었고, 1990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로 명칭과 조직을 바꾸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를 각 선교부별로 구분하여 소장하고 있다. 유적지 답사, 출판물 보급, 역사 강좌, 학술 활동 등을 통해 한국기독교 역사 연구의 성과를 보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韓國基督敎歷史硏究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1982년 9월 27일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소장 학자들이 모여 만든 한국기독교 역사 연구기관이다. 한국교회 및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역사 연구와 성과 보급을 통해 기독교 문화의 창달과 선교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2년 ‘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조직되었고, 1990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로 명칭과 조직을 바꾸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를 각 선교부별로 구분하여 소장하고 있다. 유적지 답사, 출판물 보급, 역사 강좌, 학술 활동 등을 통해 한국기독교 역사 연구의 성과를 보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2001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1리 474-2번지에 설립된 한국기독교 역사 박물관이다. 문서선교에 헌신한 한영제 장로가 모은 10만여 점의 교회사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1955년 기독교 문화 창달, 민족과 세계 복음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문서선교기관인 정문사를 모태로 발전을 거듭해 현재의 박물관이 되었다. 한영제는 망실되는 문헌 자료를 보관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에서 기독교 자료 및 한국 역사와 종교, 철학, 문화에 대한 자료도 수집하였다. 한국교회사 초기 자료들이 모여있어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 신도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韓國基督敎歷史博物館)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2001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1리 474-2번지에 설립된 한국기독교 역사 박물관이다. 문서선교에 헌신한 한영제 장로가 모은 10만여 점의 교회사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1955년 기독교 문화 창달, 민족과 세계 복음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문서선교기관인 정문사를 모태로 발전을 거듭해 현재의 박물관이 되었다. 한영제는 망실되는 문헌 자료를 보관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에서 기독교 자료 및 한국 역사와 종교, 철학, 문화에 대한 자료도 수집하였다. 한국교회사 초기 자료들이 모여있어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 신도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용문산기도원은 1947년 4월 5일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 용문산 기슭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개신교 기도원이다. 1947년 나운몽은 용문산에 들어가 ‘애향숙’을 짓고 5명의 숙생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후 애향숙과 구국 기도를 접목시킨 용문산기도원 운동을 시작하였다. 1978년 정부에서 교단 없는 기도원을 철거하려고 하자, 미국 오순절성결교회와 제휴하여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오성)라는 교단을 설립을 하였으나 곧 분리되었다.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재단법인 애향숙이 편입되면서 ‘이단’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용문산기도원 (龍門山祈禱院)
용문산기도원은 1947년 4월 5일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 용문산 기슭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개신교 기도원이다. 1947년 나운몽은 용문산에 들어가 ‘애향숙’을 짓고 5명의 숙생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후 애향숙과 구국 기도를 접목시킨 용문산기도원 운동을 시작하였다. 1978년 정부에서 교단 없는 기도원을 철거하려고 하자, 미국 오순절성결교회와 제휴하여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오성)라는 교단을 설립을 하였으나 곧 분리되었다.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재단법인 애향숙이 편입되면서 ‘이단’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장로회보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에서 장로교회의 기관지로 1940년에 창간한 신문이다. 조선의 침략전쟁 협력을 목표로 일제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였다. 1939년 그 하부조직으로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이 결성되었고, 내선일치 거국일치 국민정신 총동원을 목적으로 친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연맹은 장로회보를 발행해 애국주일 예배, 국방헌금 모금 등의 친일 협력 활동을 독려했다. 하지만 교회의 협력은 저조했고. 장로회보는 1942년 폐간되었다. 장로교회의 기관지로서 철저히 친일적 성향을 가진 신문으로 평가된다.
장로회보 (長老會報)
장로회보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에서 장로교회의 기관지로 1940년에 창간한 신문이다. 조선의 침략전쟁 협력을 목표로 일제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였다. 1939년 그 하부조직으로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이 결성되었고, 내선일치 거국일치 국민정신 총동원을 목적으로 친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연맹은 장로회보를 발행해 애국주일 예배, 국방헌금 모금 등의 친일 협력 활동을 독려했다. 하지만 교회의 협력은 저조했고. 장로회보는 1942년 폐간되었다. 장로교회의 기관지로서 철저히 친일적 성향을 가진 신문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 개성 남부교회, 경기도 파주구읍교회, 개풍군 풍덕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강조원 (姜助遠)
일제강점기 개성 남부교회, 경기도 파주구읍교회, 개풍군 풍덕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일제강점기 안동교회 장로, 베다니전도교회 건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육영사업가, 순교자.
김응락 (金應洛)
일제강점기 안동교회 장로, 베다니전도교회 건축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육영사업가, 순교자.
일제강점기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 훈육주임, 용정 은진중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김준성 (金俊星)
일제강점기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 훈육주임, 용정 은진중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개신교 성결교단 교회. 성결교회.
구 군위성결교회 (舊 軍威聖潔敎會)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개신교 성결교단 교회. 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