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오영섭"
검색결과 총 25건
유찬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민족교육 활동을 벌였고, 대한독립기성총회 재무부장, 국민회, 총기구입위원, 대한국민회 참의장과 재무부장, 고려공산당 중앙총회 참사 등을 역임하였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 부의장, 국민위원회 국민위원 등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유찬희 (柳纘熙)
유찬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민족교육 활동을 벌였고, 대한독립기성총회 재무부장, 국민회, 총기구입위원, 대한국민회 참의장과 재무부장, 고려공산당 중앙총회 참사 등을 역임하였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 부의장, 국민위원회 국민위원 등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웅해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 기원독립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독립단체 통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통의부 간부로서 일제 밀정을 처단하였고, 조선 내 일제 관공서 파괴와 고관 암살 활동을 지휘하였다.
이웅해 (李雄海)
이웅해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 기원독립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독립단체 통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통의부 간부로서 일제 밀정을 처단하였고, 조선 내 일제 관공서 파괴와 고관 암살 활동을 지휘하였다.
이중집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인들의 자치기구인 간민회의 임원을 맡았고, 광성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러시아 연해주의 한족회와 연대를 모색하였고, 연해주 추풍 지역 무장부대의 지휘관을 지냈으며, 고려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중집 (李仲執)
이중집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인들의 자치기구인 간민회의 임원을 맡았고, 광성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러시아 연해주의 한족회와 연대를 모색하였고, 연해주 추풍 지역 무장부대의 지휘관을 지냈으며, 고려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이형우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의 의사원으로 행정 활동을 하는 한편, 군대 훈련, 사무 연락, 무기 구입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내 함경남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이형우 (李亨雨)
이형우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과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범윤이 조직한 대한광복단의 의사원으로 행정 활동을 하는 한편, 군대 훈련, 사무 연락, 무기 구입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내 함경남도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이호원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와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 여러 학교에서 민족교육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펑톈성〔奉天省〕 신빈현 지역의 3·1만세운동 시위에 가담하였고, 경학사, 한족회, 광한단, 조선혁명당 등 여러 독립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호원 (李浩源)
이호원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와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 여러 학교에서 민족교육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펑톈성〔奉天省〕 신빈현 지역의 3·1만세운동 시위에 가담하였고, 경학사, 한족회, 광한단, 조선혁명당 등 여러 독립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임기홍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 지역과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독립을 표방한 천마대(천마산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와 참의부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강조한 독립운동가이다.
임기홍 (林基弘)
임기홍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 지역과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독립을 표방한 천마대(천마산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와 참의부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의 화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강조한 독립운동가이다.
장기초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청년단,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참의부, 국민부 등의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독립단 지단장으로서 평안북도 지역에서 일제의 시설을 불태우고 일제 경찰을 사살한 독립운동가이다.
장기초 (張基礎)
장기초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청년단,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참의부, 국민부 등의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독립단 지단장으로서 평안북도 지역에서 일제의 시설을 불태우고 일제 경찰을 사살한 독립운동가이다.
장명도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독립 단체인 국민부의 참모와 흥서총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통의부에서 선전 활동과 일본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으며, 조선혁명군 제3사 사령으로서 흥경현 등지에서 항일전을 전개하였고, 통화현에서 일제 경찰대와 교전 중 순국하였다.
장명도 (張明道)
장명도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독립 단체인 국민부의 참모와 흥서총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통의부에서 선전 활동과 일본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으며, 조선혁명군 제3사 사령으로서 흥경현 등지에서 항일전을 전개하였고, 통화현에서 일제 경찰대와 교전 중 순국하였다.
최영호는 한말 강원도 지역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독립 쟁취를 위한 단일 기관으로서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에 조직한 대한독립단의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노령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이다.
최영호 (崔永浩)
최영호는 한말 강원도 지역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이 독립 쟁취를 위한 단일 기관으로서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에 조직한 대한독립단의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노령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이다.
최윤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대한통의부, 조선혁명군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고 일제을 시설을 파괴하였으며, 동북인민혁명군과 연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고, 동북항일연군 제1군 참모장을 맡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최윤구 (崔允龜)
최윤구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대한통의부, 조선혁명군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고 일제을 시설을 파괴하였으며, 동북인민혁명군과 연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고, 동북항일연군 제1군 참모장을 맡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봉철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양평군 지역의 3·1운동에 가담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혁청단, 신활청년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등의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봉철 (韓奉喆)
한봉철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양평군 지역의 3·1운동에 가담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혁청단, 신활청년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등의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오항선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김좌진의 부인 나혜국과 함께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을 마련하고, 외부와의 기밀 연락을 담당하고, 무기를 운반·은익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김좌진 사망 후에는 복수를 위해 하얼빈 일본공사관 습격을 기도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오항선 (吳恒善)
오항선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김좌진의 부인 나혜국과 함께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을 마련하고, 외부와의 기밀 연락을 담당하고, 무기를 운반·은익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김좌진 사망 후에는 복수를 위해 하얼빈 일본공사관 습격을 기도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심영신은 일제강점기에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회 위원으로서 하와이 한인들에 대한 계몽 활동과 구제 활동을 펼쳤고, 대한부인구제회 부회장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국민회측 대표를 지내며 독립운동 단체 통합 활동과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심영신 (沈永信)
심영신은 일제강점기에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회 위원으로서 하와이 한인들에 대한 계몽 활동과 구제 활동을 펼쳤고, 대한부인구제회 부회장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국민회측 대표를 지내며 독립운동 단체 통합 활동과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강훈 (李康勳)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규창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상하이 지역에서 화랑청년단,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에 가담하여 급진적인 무정부주의 의열투쟁론에 따라 일제의 요인과 친일 인사들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항일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규창 (李圭昌)
이규창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상하이 지역에서 화랑청년단,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에 가담하여 급진적인 무정부주의 의열투쟁론에 따라 일제의 요인과 친일 인사들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항일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진산 (李震山)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전좌한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고, 국내와 만주에서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일제의 통치 시설과 요인 암살 활동을 하였던 독립운동가이며, 동시에 자신이 가담한 모든 거사를 일제 형사에게 밀고한 일제의 밀정으로 알려져 있다.
전좌한 (全佐漢)
전좌한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고, 국내와 만주에서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일제의 통치 시설과 요인 암살 활동을 하였던 독립운동가이며, 동시에 자신이 가담한 모든 거사를 일제 형사에게 밀고한 일제의 밀정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현정건 (玄鼎健)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노영재 (盧英哉)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의순은 일제강점기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명동여학교와 삼일여학교 교사를 지냈고, 한인독립회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주선하였고, 지린성 용정촌 한인 청년들과 한국의 독립 방안을 모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의순 (李義橓)
이의순은 일제강점기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명동여학교와 삼일여학교 교사를 지냈고, 한인독립회와 상해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주선하였고, 지린성 용정촌 한인 청년들과 한국의 독립 방안을 모색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