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오일환"
검색결과 총 34건
북한이 대포동 1호에 실어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 (光明星 1號)
북한이 대포동 1호에 실어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인공지구위성’.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광장.
김일성광장 (金日成廣場)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광장.
김중린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남담당 당 비서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923년 평북 벽동군 출신으로 광복 전 중국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였다. 1953년 소련고급당학교를 수료하고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당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대남 전략가로서 당 통일전선부장, 대남담당 당 비서의 직책을 맡았으며, 1972년 평양 비밀협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2년에 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뒤 12대까지 대의원직을 유지하였다. 1982년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2010년 사망하였다.
김중린 (金仲麟)
김중린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대남담당 당 비서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923년 평북 벽동군 출신으로 광복 전 중국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였다. 1953년 소련고급당학교를 수료하고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당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대남 전략가로서 당 통일전선부장, 대남담당 당 비서의 직책을 맡았으며, 1972년 평양 비밀협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2년에 제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뒤 12대까지 대의원직을 유지하였다. 1982년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2010년 사망하였다.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정무원 부총리 겸 농업위원장 등을 역임한 관료.
김창주 (金昌柱)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정무원 부총리 겸 농업위원장 등을 역임한 관료.
남북농업협력위원회는 남북한이 6·15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 따라 농업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협의 추진해 나가기 위해 만든 협의기구이다. 2005년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농업협력위원회 구성을 합의 후, 8월 18일부터 19일까지 개성에서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는 북측 지역에 시범 농장 선정, 생태환경보호, 다양한 농업 분야 협력사업 및 협의체 구축 등을 합의했다. 2007년 농업협력사업 확대·발전을 위한 실무접촉도 진행되었다. 개발 지원·협력으로의 전환, 농업협력 추진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시범적 협력사업 추진 합의 등의 의의가 있다.
남북농업협력위원회 (南北農業協力委員會)
남북농업협력위원회는 남북한이 6·15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 따라 농업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협의 추진해 나가기 위해 만든 협의기구이다. 2005년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농업협력위원회 구성을 합의 후, 8월 18일부터 19일까지 개성에서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서는 북측 지역에 시범 농장 선정, 생태환경보호, 다양한 농업 분야 협력사업 및 협의체 구축 등을 합의했다. 2007년 농업협력사업 확대·발전을 위한 실무접촉도 진행되었다. 개발 지원·협력으로의 전환, 농업협력 추진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시범적 협력사업 추진 합의 등의 의의가 있다.
남북여성통일대회는 2002년 10월에 2002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여성위원회가 금강산에서 주최한 남·북·해외 여성 공동행사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공동선언 이행 촉구와 민족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 도모를 목적으로 남북한 및 해외 여성계 인사들이 개최한 행사이다. 9월 23일부터 24일까지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통해 개최를 확정한 후 10월 중순에 열렸다. 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다양한 토론과 문화 행사, 공동연회 등이 진행되었다. 남측 민화협 여성위원회와 북측 조선민주여성동맹 등 여러 단체들이 참여했으며, 여성의 통일과 평화 실천 역할을 강조했다.
남북여성통일대회 (南北女性統一大會)
남북여성통일대회는 2002년 10월에 2002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여성위원회가 금강산에서 주최한 남·북·해외 여성 공동행사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공동선언 이행 촉구와 민족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 도모를 목적으로 남북한 및 해외 여성계 인사들이 개최한 행사이다. 9월 23일부터 24일까지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통해 개최를 확정한 후 10월 중순에 열렸다. 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다양한 토론과 문화 행사, 공동연회 등이 진행되었다. 남측 민화협 여성위원회와 북측 조선민주여성동맹 등 여러 단체들이 참여했으며, 여성의 통일과 평화 실천 역할을 강조했다.
2002년 10월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들이 금강산에서 모여 ‘6·15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 이름으로 진행한 행사이다.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이 대회를 청년학생층의 3자연대 통일전선전술을 도모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남측 민화협손장래 상임대표, 천도교 김철 교령선생, 북측 김형직 사범대학홍일천 학장, 해외측 명예손님들이 청년학생 통일대회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였다. 10월 14일 발표된 공동호소문에서 알 수 있듯이,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들에 의한 3자연대 통일전선을 도모하기 위한 대회였다.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 (南北海外靑年學生統一大會)
2002년 10월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들이 금강산에서 모여 ‘6·15공동선언 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 이름으로 진행한 행사이다. 북한은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이 대회를 청년학생층의 3자연대 통일전선전술을 도모하기 위한 기회로 삼았다. 남측 민화협손장래 상임대표, 천도교 김철 교령선생, 북측 김형직 사범대학홍일천 학장, 해외측 명예손님들이 청년학생 통일대회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였다. 10월 14일 발표된 공동호소문에서 알 수 있듯이, 남 · 북 · 해외 청년학생들에 의한 3자연대 통일전선을 도모하기 위한 대회였다.
1997년 8월 15일 오익제(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을 계기로 ‘민족단합을 통한 평화통일 실현’을 표방하여 동년 9월 24일에 평양에서 발족된 전형적인 대남 통일전선체.
단군민족통일협의회 (檀君民族統一協議會)
1997년 8월 15일 오익제(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을 계기로 ‘민족단합을 통한 평화통일 실현’을 표방하여 동년 9월 24일에 평양에서 발족된 전형적인 대남 통일전선체.
대포동 미사일은 북한이 보유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다. 1993년 미국의 첩보위성이 대포동 센터에서 미사일을 탐지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북한은 구소련 및 중국으로부터 기술과 부품을 지원받아서, 자체적으로 미사일 개발 기술을 축적하였다. 그리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다. 1998년에 대포동 1호, 2006년과 2009년에 대포동 2호를 발사하였으며, 2012년에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였다. 특히 대포동 1호 발사는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재추대를 축하하는 성격을 띠는 한편, 선군정치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다.
대포동 미사일 (大浦洞 Missile)
대포동 미사일은 북한이 보유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다. 1993년 미국의 첩보위성이 대포동 센터에서 미사일을 탐지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북한은 구소련 및 중국으로부터 기술과 부품을 지원받아서, 자체적으로 미사일 개발 기술을 축적하였다. 그리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다. 1998년에 대포동 1호, 2006년과 2009년에 대포동 2호를 발사하였으며, 2012년에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였다. 특히 대포동 1호 발사는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재추대를 축하하는 성격을 띠는 한편, 선군정치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이다.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결과로 조직되었다.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다.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이다.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결과로 조직되었다.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다.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이 1974년 ‘전국 당선전일꾼강습회’에서 당유일지도체제 확립을 위해 발표한 정치이다.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지 6일 만인 2월 19일 발표한 문헌으로서,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사상이론적 기초로 기능해 왔다. 발표 이후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즉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확립이 중시되면서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합법화하기 위한 논리가 강조되었다. 특히 이 문헌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사업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을 꼽으며 충실성의 4대 척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2·19문헌 (二一九 文獻)
북한의 김정일이 1974년 ‘전국 당선전일꾼강습회’에서 당유일지도체제 확립을 위해 발표한 정치이다.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지 6일 만인 2월 19일 발표한 문헌으로서,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사상이론적 기초로 기능해 왔다. 발표 이후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즉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확립이 중시되면서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합법화하기 위한 논리가 강조되었다. 특히 이 문헌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사업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을 꼽으며 충실성의 4대 척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국토방위와 일종의 경찰 임무를 맡은 인민보안부 산하 기구.
조선인민경비대 (朝鮮人民警備隊)
국토방위와 일종의 경찰 임무를 맡은 인민보안부 산하 기구.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했다는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이 창건한 첫 ‘주체적 혁명무력’으로서 ‘항일유격대’였다며, 창건 당시에는 ‘반일인민유격대’로 호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 창설 날짜인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인민혁명군 (朝鮮人民革命軍)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했다는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이 창건한 첫 ‘주체적 혁명무력’으로서 ‘항일유격대’였다며, 창건 당시에는 ‘반일인민유격대’로 호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 창설 날짜인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한주민을 통제하며 당과 수령, 국가와 사회주의제도를 보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국무위원회 직속 기관.
사회안전성
북한주민을 통제하며 당과 수령, 국가와 사회주의제도를 보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국무위원회 직속 기관.
간부 현대화는 당중앙이 정책집행자인 간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사업이다. 북한은 간부를 ‘당의 기본역량’이자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말하는 간부화의 요체는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높은 실무능력, 고상한 인민적 품성 등이다. 간부는 당 노선과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이를 관철하는 투쟁정신과 함께 정치실무능력도 갖춰야 한다. 해방 후 김일성은 당의 중앙집권화를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간부산업의 중앙집권화를 수반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간부사업은 관료주의적 폐단과 형식주의를 촉발하고, 수령절대주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간부 현대화 (幹部 現代化)
간부 현대화는 당중앙이 정책집행자인 간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사업이다. 북한은 간부를 ‘당의 기본역량’이자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말하는 간부화의 요체는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높은 실무능력, 고상한 인민적 품성 등이다. 간부는 당 노선과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이를 관철하는 투쟁정신과 함께 정치실무능력도 갖춰야 한다. 해방 후 김일성은 당의 중앙집권화를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간부산업의 중앙집권화를 수반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간부사업은 관료주의적 폐단과 형식주의를 촉발하고, 수령절대주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김일성이 파견한 정치공작원들의 지도·방조 아래 공장, 기업소들에 조직되었던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기업관리단체.
공장관리위원회 (工場管理委員會)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김일성이 파견한 정치공작원들의 지도·방조 아래 공장, 기업소들에 조직되었던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기업관리단체.
군당위원회는 북한의 행정단위 군에 설치된 당조직의 상설적 지도기관이다. 군 단위에 설치되어 있는 해당 당 위원회를 뜻한다. 모든 국가기관과 단체를 통제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은 당위원회의 지도적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군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군당위원회는 농촌경리와 지방경제 발전의 거점이자 정치적 거점이다. 군당위원회는 당과 국가 정책의 집행 거점이자 정치적·사상적으로 주민을 통제하는 주요 거점으로서 김일성 1인 독재체제 구축에 크게 이바지했다.
군당위원회 (郡黨委員會)
군당위원회는 북한의 행정단위 군에 설치된 당조직의 상설적 지도기관이다. 군 단위에 설치되어 있는 해당 당 위원회를 뜻한다. 모든 국가기관과 단체를 통제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은 당위원회의 지도적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군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강조하고 있다. 군당위원회는 농촌경리와 지방경제 발전의 거점이자 정치적 거점이다. 군당위원회는 당과 국가 정책의 집행 거점이자 정치적·사상적으로 주민을 통제하는 주요 거점으로서 김일성 1인 독재체제 구축에 크게 이바지했다.
기석복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공산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소련의 구역당기관에서 활약하다 1945년 김열, 허가이, 박창옥 등과 함께 3진으로 입북하였다. 북조선공산당 내에 소련파 세력을 형성한 중심인물로 당 중앙위원,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당의 선전부문을 소련파가 도맡으면서 당기관지 『로동신문』, 『근로자』의 책임주필이 되었다. 문화선전성 부상으로 기용되었으며 1954년 제네바회담 때는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였다. 김일성의 1인 독재정치 강화로 소련파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숙청을 당하였다. 소련으로 되돌아간 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기석복 (奇石福)
기석복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공산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소련의 구역당기관에서 활약하다 1945년 김열, 허가이, 박창옥 등과 함께 3진으로 입북하였다. 북조선공산당 내에 소련파 세력을 형성한 중심인물로 당 중앙위원,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당의 선전부문을 소련파가 도맡으면서 당기관지 『로동신문』, 『근로자』의 책임주필이 되었다. 문화선전성 부상으로 기용되었으며 1954년 제네바회담 때는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였다. 김일성의 1인 독재정치 강화로 소련파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숙청을 당하였다. 소련으로 되돌아간 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하준수 (河準洙)
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노력영웅운동은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하여 ‘노력영웅’의 탄생을 장려하는 북한의 대중운동이다. ‘노력영웅’은 북한에서 경제 및 건설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조선로동당을 위해 위훈을 떨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이다. 북한은 이 운동을 통하여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계획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대중경제운동으로 이 운동을 비롯한 여러 노력경쟁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인센티브의 결여 등으로 말미암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운동은 오늘의 총체적인 경제난국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노력영웅운동 (努力英雄運動)
노력영웅운동은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하여 ‘노력영웅’의 탄생을 장려하는 북한의 대중운동이다. ‘노력영웅’은 북한에서 경제 및 건설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조선로동당을 위해 위훈을 떨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이다. 북한은 이 운동을 통하여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계획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대중경제운동으로 이 운동을 비롯한 여러 노력경쟁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인센티브의 결여 등으로 말미암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운동은 오늘의 총체적인 경제난국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