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오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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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하준수 (河準洙)
하준수는 해방 이후 조선인민유격대 제3병단 부사령관을 역임한 군인이다. 남도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주오대학 법학부 수학 중 태평양 전쟁 학병으로 징집되자, 이를 거부하고 귀국하여 지리산에 숨었다. 1945년 3월, 지리산에서 항일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했다.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하여 제3병단 부사령관을 맡기도 하였다. 하준수는 미군정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6·25전쟁 중에는 태백산과 일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54년에 부하의 밀고로 체포, 1955년에 총살되었다.
노력영웅운동은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하여 ‘노력영웅’의 탄생을 장려하는 북한의 대중운동이다. ‘노력영웅’은 북한에서 경제 및 건설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조선로동당을 위해 위훈을 떨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이다. 북한은 이 운동을 통하여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계획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대중경제운동으로 이 운동을 비롯한 여러 노력경쟁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인센티브의 결여 등으로 말미암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운동은 오늘의 총체적인 경제난국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노력영웅운동 (努力英雄運動)
노력영웅운동은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하여 ‘노력영웅’의 탄생을 장려하는 북한의 대중운동이다. ‘노력영웅’은 북한에서 경제 및 건설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조선로동당을 위해 위훈을 떨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이다. 북한은 이 운동을 통하여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계획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 후반부터 대중경제운동으로 이 운동을 비롯한 여러 노력경쟁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인센티브의 결여 등으로 말미암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운동은 오늘의 총체적인 경제난국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 관련된 항일운동가들의 묘역이다. 김정숙, 김책, 김일 등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거나 김일성과 활동한 항일혁명렬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북한 조선로동당 창건 30돌을 맞는 1975년 10월에 완공되었다. 1985년에 재건 확장되었다. 총 부지면적이 35만㎡에 이르고, 능대문, 기념문주, 군상마당과 교양마당, 반신상구역 등의 순서로 꾸려져 있다.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실제로 방문자들의 혁명전통교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대성산 혁명열사릉 (大成山 革命烈士陵)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 관련된 항일운동가들의 묘역이다. 김정숙, 김책, 김일 등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거나 김일성과 활동한 항일혁명렬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북한 조선로동당 창건 30돌을 맞는 1975년 10월에 완공되었다. 1985년에 재건 확장되었다. 총 부지면적이 35만㎡에 이르고, 능대문, 기념문주, 군상마당과 교양마당, 반신상구역 등의 순서로 꾸려져 있다.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실제로 방문자들의 혁명전통교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되었던 당·국가 정책을 선전·선동하는 기능을 맡았던 집행기관.
문화선전성 (文化宣傳省)
북한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되었던 당·국가 정책을 선전·선동하는 기능을 맡았던 집행기관.
반종파투쟁은 김일성 개인숭배와 1당 독재체제의 폐해에 비판하는 세력을 반당·반혁명적인 종파주의자로 매도하면서 이들을 제거하고자 무자비하게 전개한 정치투쟁이다.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내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과 스탈린 격하 운동이 진행되었다. 북한에서도 반김일성 운동이 고조되자 반종파 투쟁을 전개해 국내파 거물인 박헌영을 숙청했다. 1956년 연안파에 대한 공격과 제거를 병행했다. 1958년 후반부터 소려파를 숙청했다. 김일성파는 반종파투쟁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1인 독재체제를 강화와 수령제를 확립하는 계기로 삼았다.
반종파투쟁 (反宗波鬪爭)
반종파투쟁은 김일성 개인숭배와 1당 독재체제의 폐해에 비판하는 세력을 반당·반혁명적인 종파주의자로 매도하면서 이들을 제거하고자 무자비하게 전개한 정치투쟁이다.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내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과 스탈린 격하 운동이 진행되었다. 북한에서도 반김일성 운동이 고조되자 반종파 투쟁을 전개해 국내파 거물인 박헌영을 숙청했다. 1956년 연안파에 대한 공격과 제거를 병행했다. 1958년 후반부터 소려파를 숙청했다. 김일성파는 반종파투쟁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1인 독재체제를 강화와 수령제를 확립하는 계기로 삼았다.
해방 이후 북한 산업시설의 가동에 필요한 기술자들이 부족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당국이 만든 기술자조직.
북조선기술자협회 (北朝鮮技術者協會)
해방 이후 북한 산업시설의 가동에 필요한 기술자들이 부족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당국이 만든 기술자조직.
북조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 이전에 북한에서 입법권을 행사한 최고주권기관이다. 1947년 2월에 창설되었다. 회의는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최고인민회의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모두 5차례의 정기회의와 1차례의 특별회의가 열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 이전의 최고주권기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인 「헌법」 제정 임무를 완수하였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출범과 함께 해체되었다. 북조선인민회의는 전체 근로자들을 수령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결시키고, 그의 혁명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조직을 동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북조선인민회의 (北朝鮮人民會議)
북조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 이전에 북한에서 입법권을 행사한 최고주권기관이다. 1947년 2월에 창설되었다. 회의는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최고인민회의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모두 5차례의 정기회의와 1차례의 특별회의가 열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 이전의 최고주권기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인 「헌법」 제정 임무를 완수하였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출범과 함께 해체되었다. 북조선인민회의는 전체 근로자들을 수령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결시키고, 그의 혁명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조직을 동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미리 애국열사릉은 북한 평양직할시 형제산 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항일투쟁·사회주의 건설·통일사업 등의 분야에서 위훈을 세운 공로자들의 묘역이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김일성의 지도하에 1986년 9월 애국열사릉이 세워졌다. 애국열사릉에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되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 각계각층의 공로자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월북한 일부 민족주의 인사와 납북된 유명인사들의 유해 상당수도 이곳에 묻혀 있다. 애국열사릉은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방문자들에 대한 혁명전통 교양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신미리 애국열사릉 (新美里 愛國烈士陵)
신미리 애국열사릉은 북한 평양직할시 형제산 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항일투쟁·사회주의 건설·통일사업 등의 분야에서 위훈을 세운 공로자들의 묘역이다. 대성산혁명열사릉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김일성의 지도하에 1986년 9월 애국열사릉이 세워졌다. 애국열사릉에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되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 각계각층의 공로자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월북한 일부 민족주의 인사와 납북된 유명인사들의 유해 상당수도 이곳에 묻혀 있다. 애국열사릉은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방문자들에 대한 혁명전통 교양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당의 노선 및 경제정책과 사회주의 경제법칙의 요구에 따라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발전계획.
인민경제계획 (人民經濟計劃)
당의 노선 및 경제정책과 사회주의 경제법칙의 요구에 따라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발전계획.
일본인 납북사건은 북한이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 및 신분 도용을 위하여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이다.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일본어 여교사에게 일본어를 배웠다고 폭로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일본이 조작한 정치적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 치열한 남북 대결 상태에서 빚어진 북한의 심각하고 중대한 국가범죄의 하나로 북·일 관계 개선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본인 납북사건 (日本人 拉北事件)
일본인 납북사건은 북한이 남파간첩의 일본어 교육 및 신분 도용을 위하여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이다.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일본어 여교사에게 일본어를 배웠다고 폭로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일본이 조작한 정치적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 치열한 남북 대결 상태에서 빚어진 북한의 심각하고 중대한 국가범죄의 하나로 북·일 관계 개선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시우는 해방 이후 북조선 소비조합 초대 위원장,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상업국장,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로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장주련이고, 심혁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광복 이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노동운동,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가담 등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 상업국장을, 1948년 북한의 제1차 내각 때 상업상을 지냈다. 1953년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김일성 일파에 의해 숙청되었다.
장시우 (張時雨)
장시우는 해방 이후 북조선 소비조합 초대 위원장,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상업국장,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로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장주련이고, 심혁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광복 이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노동운동,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가담 등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 상업국장을, 1948년 북한의 제1차 내각 때 상업상을 지냈다. 1953년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김일성 일파에 의해 숙청되었다.
정로는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의 기관 회보이다.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창립대회가 열리고, 기관지 『정로』를 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정로사에서 소형 2면에 한글과 한문을 섞어 주간으로 발행하였다. 이듬해 일간 대형으로 발간하였다. 1946년 9월 『로동신문』으로 개칭되었고, 대형판 6면으로 늘어났다. 북한 최초의 공산당기관지이다. 초기 공산정권 수립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선전하고, 김일성의 의지와 당 정책을 선전·선동하는 데 치중하였다.
정로 (正路)
정로는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의 기관 회보이다.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창립대회가 열리고, 기관지 『정로』를 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정로사에서 소형 2면에 한글과 한문을 섞어 주간으로 발행하였다. 이듬해 일간 대형으로 발간하였다. 1946년 9월 『로동신문』으로 개칭되었고, 대형판 6면으로 늘어났다. 북한 최초의 공산당기관지이다. 초기 공산정권 수립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선전하고, 김일성의 의지와 당 정책을 선전·선동하는 데 치중하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적을 전시하는 북한의 대표적 박물관.
조선혁명박물관 (朝鮮革命博物館)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적을 전시하는 북한의 대표적 박물관.
집체적 령도는 당위원회가 행정·경제기관의 모든 문제를 군중노선에 입각하여 관리운영하는 지도 방법을 가리키는 북한용어로 집체적 지도라고도 한다. 스탈린 사망 이후 북한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우려에 따라 집체적 지도가 강조되었다. 북한의 권력구조는 당 중심으로 조직되며, 당적 지도를 통해 당위원회들의 집체적 지도를 강화한다. 일테면 공장당위원회의 집체적 영도를 통해 생산자들의 주인의식을 형성함으로써 자발적 노동의욕과 창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당 독재정치와 수령절대주의의 폐단으로 말미암아 집체적 령도(영도)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집체적 령도 (集體的 領導)
집체적 령도는 당위원회가 행정·경제기관의 모든 문제를 군중노선에 입각하여 관리운영하는 지도 방법을 가리키는 북한용어로 집체적 지도라고도 한다. 스탈린 사망 이후 북한에서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우려에 따라 집체적 지도가 강조되었다. 북한의 권력구조는 당 중심으로 조직되며, 당적 지도를 통해 당위원회들의 집체적 지도를 강화한다. 일테면 공장당위원회의 집체적 영도를 통해 생산자들의 주인의식을 형성함으로써 자발적 노동의욕과 창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당 독재정치와 수령절대주의의 폐단으로 말미암아 집체적 령도(영도)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한일무는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민족보위부상,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08년 소련에서 고려인 2세로 태어났다. 소련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와 조선공산당 원산시당 제2비서, 원산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민족보위부상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으로 6·25전쟁에 가담하였다. 북한 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소련으로 간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을 맞아 1958년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였다.
한일무 (韓一武)
한일무는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민족보위부상,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08년 소련에서 고려인 2세로 태어났다. 소련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북한으로 들어와 조선공산당 원산시당 제2비서, 원산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민족보위부상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인민군 해군사령관으로 6·25전쟁에 가담하였다. 북한 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소련으로 간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을 맞아 1958년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였다.
수령의 영도 밑에 진행되는 혁명투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적 유산.
혁명전통 (革命傳統)
수령의 영도 밑에 진행되는 혁명투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적 유산.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경희대학교 부속 박물관.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慶熙大學校 惠靜博物館)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경희대학교 부속 박물관.
간부 현대화는 당중앙이 정책집행자인 간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사업이다. 북한은 간부를 ‘당의 기본역량’이자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말하는 간부화의 요체는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높은 실무능력, 고상한 인민적 품성 등이다. 간부는 당 노선과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이를 관철하는 투쟁정신과 함께 정치실무능력도 갖춰야 한다. 해방 후 김일성은 당의 중앙집권화를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간부산업의 중앙집권화를 수반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간부사업은 관료주의적 폐단과 형식주의를 촉발하고, 수령절대주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간부 현대화 (幹部 現代化)
간부 현대화는 당중앙이 정책집행자인 간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사업이다. 북한은 간부를 ‘당의 기본역량’이자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말하는 간부화의 요체는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높은 실무능력, 고상한 인민적 품성 등이다. 간부는 당 노선과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이를 관철하는 투쟁정신과 함께 정치실무능력도 갖춰야 한다. 해방 후 김일성은 당의 중앙집권화를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간부산업의 중앙집권화를 수반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 간부사업은 관료주의적 폐단과 형식주의를 촉발하고, 수령절대주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이 대포동 1호에 실어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 (光明星 1號)
북한이 대포동 1호에 실어 궤도 진입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인공지구위성’.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광장.
김일성광장 (金日成廣場)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