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윤용혁"
검색결과 총 211건
김경손은 고려 후기 전라도지휘사·추밀원지주사·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231년(고종 18) 구주성전투에서 정주분도장군으로서 몽골군을 방어해 냈으며, 1237년(고종 24)에 전라도지휘사로서 이연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망이 높아지자 위협감을 느낀 최항에 의하여 제거되었다.
김경손 (金慶孫)
김경손은 고려 후기 전라도지휘사·추밀원지주사·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231년(고종 18) 구주성전투에서 정주분도장군으로서 몽골군을 방어해 냈으며, 1237년(고종 24)에 전라도지휘사로서 이연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망이 높아지자 위협감을 느낀 최항에 의하여 제거되었다.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송분 (宋玢)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송송례는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이다. 이후 원종대 후반부에서 충령왕 대 전반부에 일본원정에 필요한 군사를 징발하거나 외교적 교섭을 위해 원에 파견되는 등 고려의 재상으로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송송례 (宋松禮)
송송례는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이다. 이후 원종대 후반부에서 충령왕 대 전반부에 일본원정에 필요한 군사를 징발하거나 외교적 교섭을 위해 원에 파견되는 등 고려의 재상으로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이공주는 고려 후기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원래 김준과 같은 최씨정권의 가노 출신으로서 최의에 의하여 낭장으로 발탁되었다. 김준의 집권에 기여함으로써 장군의 직에 올랐지만, 김준 집권기에 정치적 영향력은 차츰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공주 (李公柱)
이공주는 고려 후기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원래 김준과 같은 최씨정권의 가노 출신으로서 최의에 의하여 낭장으로 발탁되었다. 김준의 집권에 기여함으로써 장군의 직에 올랐지만, 김준 집권기에 정치적 영향력은 차츰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지순은 고려 후기 무신집정자 이의민의 큰아들로서 장군, 대장군 등을 지낸 무신이다. 경상도에서 김사미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와 공모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러난 이는 최충헌이 이의민 정권의 불법성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의하여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지순 (李至純)
이지순은 고려 후기 무신집정자 이의민의 큰아들로서 장군, 대장군 등을 지낸 무신이다. 경상도에서 김사미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와 공모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러난 이는 최충헌이 이의민 정권의 불법성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의하여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임유무는 고려 후기에 교정별감을 역임한 무신정권 시대 최후의 집권자이다. 임연의 아들로 정권을 승계하였으나 정치적 경륜이 미흡한 상태에서 권력 기반의 안정화에 실패하였다. 몽골의 후원을 받은 원종의 왕정복고 논리에 의하여 송송례 등에 의하여 제거됨으로써 100년 무신정권이 종식되어 왕정복고와 개경 환도가 이루어졌다.
임유무 (林惟茂)
임유무는 고려 후기에 교정별감을 역임한 무신정권 시대 최후의 집권자이다. 임연의 아들로 정권을 승계하였으나 정치적 경륜이 미흡한 상태에서 권력 기반의 안정화에 실패하였다. 몽골의 후원을 받은 원종의 왕정복고 논리에 의하여 송송례 등에 의하여 제거됨으로써 100년 무신정권이 종식되어 왕정복고와 개경 환도가 이루어졌다.
정안은 고려 후기 최씨정권 하에서 동지공거,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한때 정치를 떠나 남해도에 있었는데 이때 정림사를 개창하고 팔만대장경의 각판 작업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최씨정권 시대에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지만 최항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정안 (鄭晏)
정안은 고려 후기 최씨정권 하에서 동지공거,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한때 정치를 떠나 남해도에 있었는데 이때 정림사를 개창하고 팔만대장경의 각판 작업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최씨정권 시대에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지만 최항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조숙창은 고려 후기에 방수장군, 대장군, 상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군의 침입 때 함신진(의주) 방수장군이었으나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주변 성들의 항복을 권유하는 등 부몽 행위를 하였다. 상장군까지 올랐지만 서경에서 일어난 필현보의 난에 연루되어 처단되었다.
조숙창 (趙叔昌)
조숙창은 고려 후기에 방수장군, 대장군, 상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몽골군의 침입 때 함신진(의주) 방수장군이었으나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주변 성들의 항복을 권유하는 등 부몽 행위를 하였다. 상장군까지 올랐지만 서경에서 일어난 필현보의 난에 연루되어 처단되었다.
죽동의 난은 1182년(명종 12) 전라도 전주에서 죽동과 관노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무신정권 수립 후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치열하게 일어났는데, 전주에서는 주현군의 기두 죽동이 관노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고 전주성을 장악하여 40여 일간 저항하였다.
죽동의 난 (竹同의 亂)
죽동의 난은 1182년(명종 12) 전라도 전주에서 죽동과 관노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무신정권 수립 후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치열하게 일어났는데, 전주에서는 주현군의 기두 죽동이 관노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고 전주성을 장악하여 40여 일간 저항하였다.
처인성전투는 고려 후기 몽골의 제2차 침입(1232) 때 처인성에서 승장(僧將) 김윤후가 적장 살례탑을 사살한 전투이다. 백현원의 승려였던 김윤후가 살례탑을 사살한 것은 처인성 안에 피란하였던 처인부곡민과 승려들의 적극적 호응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1232년 12월 16일의 일로 대몽전쟁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처인성전투 (處仁城戰鬪)
처인성전투는 고려 후기 몽골의 제2차 침입(1232) 때 처인성에서 승장(僧將) 김윤후가 적장 살례탑을 사살한 전투이다. 백현원의 승려였던 김윤후가 살례탑을 사살한 것은 처인성 안에 피란하였던 처인부곡민과 승려들의 적극적 호응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1232년 12월 16일의 일로 대몽전쟁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최춘명은 고려 후기에 자주부사로서 1231년(고종 18) 몽골 침입에 끝까지 저항하며 자주성을 방어한 관리이다. 당시 북계 지역 대부분이 몽골에 점령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몽골과의 협상을 위하여 항복을 강요하였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였다가 도리어 최우 세력에 의해 처형당할 뻔하였으나 몽골 관리에 의해 구명되었다. 자주성 방어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후 벼슬이 추밀원부사, 지추밀원사에까지 올랐다.
최춘명 (崔椿命)
최춘명은 고려 후기에 자주부사로서 1231년(고종 18) 몽골 침입에 끝까지 저항하며 자주성을 방어한 관리이다. 당시 북계 지역 대부분이 몽골에 점령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몽골과의 협상을 위하여 항복을 강요하였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였다가 도리어 최우 세력에 의해 처형당할 뻔하였으나 몽골 관리에 의해 구명되었다. 자주성 방어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후 벼슬이 추밀원부사, 지추밀원사에까지 올랐다.
최항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시대 최우의 아들로서 최씨정권의 제3대 집권자이다. 서자로 출생한 이유 때문에 정치와 거리를 두도록 절로 보내어져 처음에는 송광사, 쌍계사 등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다. 1248년(고종 35)에 환속하여 후계자 수업을 받고 1249년(고종 36)에 최우의 정권을 계승하였다. 최우의 반몽 항전책을 계승하여 몽골의 침입에 적극 대응하였다. 전국에 방호별감을 파견하여, 피란 입보를 추진하였고, 강도(강화도)의 방어시설 강화를 위하여 강도 중성을 축성하였다.
최항 (崔沆)
최항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시대 최우의 아들로서 최씨정권의 제3대 집권자이다. 서자로 출생한 이유 때문에 정치와 거리를 두도록 절로 보내어져 처음에는 송광사, 쌍계사 등에서 승려 생활을 하였다. 1248년(고종 35)에 환속하여 후계자 수업을 받고 1249년(고종 36)에 최우의 정권을 계승하였다. 최우의 반몽 항전책을 계승하여 몽골의 침입에 적극 대응하였다. 전국에 방호별감을 파견하여, 피란 입보를 추진하였고, 강도(강화도)의 방어시설 강화를 위하여 강도 중성을 축성하였다.
홍복원은 1231년(고종 18) 몽골군에 투항한 이후 몽골의 고려 침입에 적극 협력한 대표적 부몽 관리이다. 몽골군의 고려 침입 때마다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몽골로부터는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에 임명되어 요양·심양 등지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몽골에서 머물던 영녕공 왕준과 귀부 군민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다가 1258년(고종 45)에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 자손들에 의하여 부몽 행위는 계속되었다.
홍복원 (洪福源)
홍복원은 1231년(고종 18) 몽골군에 투항한 이후 몽골의 고려 침입에 적극 협력한 대표적 부몽 관리이다. 몽골군의 고려 침입 때마다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몽골로부터는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에 임명되어 요양·심양 등지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몽골에서 머물던 영녕공 왕준과 귀부 군민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다가 1258년(고종 45)에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 자손들에 의하여 부몽 행위는 계속되었다.
문광단은 고려 후기 최의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에 대항하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258년(고종 45) 김준 등에 의하여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였던 최의가 제거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자, 아버지 문황 등과 함께 이에 대항하여 김준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김준 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문광단 (文光旦)
문광단은 고려 후기 최의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에 대항하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258년(고종 45) 김준 등에 의하여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였던 최의가 제거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자, 아버지 문황 등과 함께 이에 대항하여 김준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김준 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문영단은 고려 후기 최의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에 대항하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258년(고종 45) 김준 등에 의하여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였던 최의가 제거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자, 아버지 문황 등과 함께 김준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김준 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문영단 (文英旦)
문영단은 고려 후기 최의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에 대항하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258년(고종 45) 김준 등에 의하여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였던 최의가 제거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자, 아버지 문황 등과 함께 김준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일이 사전에 누설되어 김준 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강국승은 고려 후기 무오정변을 통해 최씨 무신정권을 붕괴시켜 위사보좌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최씨정권 하에서 군인으로 입신하여 낭장에 이르렀다. 1258년(고종 45) 별장 김준 등이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최의를 제거하였던 무오정변에서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지만 김준 집권기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강국승 (康國升)
강국승은 고려 후기 무오정변을 통해 최씨 무신정권을 붕괴시켜 위사보좌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최씨정권 하에서 군인으로 입신하여 낭장에 이르렀다. 1258년(고종 45) 별장 김준 등이 최씨정권의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최의를 제거하였던 무오정변에서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지만 김준 집권기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길인은 고려 후기 상장군으로 최충헌의 정변에 저항하였던 이의민 계의 무신이다. 1196년(명종 26)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한 후 이의민 세력을 압박하자 이에 반발하여 장군 유광·박공습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다. 전투 끝에 최충헌 군에 의하여 격파되어 북산으로 피하여 도망하던 중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길인 (吉仁)
길인은 고려 후기 상장군으로 최충헌의 정변에 저항하였던 이의민 계의 무신이다. 1196년(명종 26)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한 후 이의민 세력을 압박하자 이에 반발하여 장군 유광·박공습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다. 전투 끝에 최충헌 군에 의하여 격파되어 북산으로 피하여 도망하던 중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노지정은 고려 후기 희종복위 참소사건에 연루되어 최우에게 죽임을 당한 무신이다. 희종은 최충헌에 의하여 옹립되었으나 1211년(희종 7) 최충헌을 제거하려 했다가 도리어 폐위된 왕이다. 1227년(고종 14) 금오위 상장군이었던 노지정은 희종을 복위시키려 한다는 참소에 의하여 최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노지정 (盧之正)
노지정은 고려 후기 희종복위 참소사건에 연루되어 최우에게 죽임을 당한 무신이다. 희종은 최충헌에 의하여 옹립되었으나 1211년(희종 7) 최충헌을 제거하려 했다가 도리어 폐위된 왕이다. 1227년(고종 14) 금오위 상장군이었던 노지정은 희종을 복위시키려 한다는 참소에 의하여 최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조시저는 고려 후기 최씨 무신정권에서 최우의 심복으로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이다. 폐위된 희종의 복위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최우의 명에 따라 희종의 거처를 강화, 교동 등으로 옮기는 일을 수행하였다. 몽골군이 침입하자 적장 살례탑에게 파견되어 막후 교섭을 추진하는 등 최우의 신임을 받은 인물이었다.
조시저 (曹時著)
조시저는 고려 후기 최씨 무신정권에서 최우의 심복으로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이다. 폐위된 희종의 복위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최우의 명에 따라 희종의 거처를 강화, 교동 등으로 옮기는 일을 수행하였다. 몽골군이 침입하자 적장 살례탑에게 파견되어 막후 교섭을 추진하는 등 최우의 신임을 받은 인물이었다.
송염은 고려 후기 고려 최후의 무신집권자 임유무를 제거하여 무신정권을 붕괴시키고 상장군에 오른 무신이다. 1270년(원종 11) 아버지 송송례, 동생 송분과 함께 휘하 신의군을 동원하여 무신정권의 임유무를 제거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로써 100년간 지속되어 온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었다.
송염 (宋琰)
송염은 고려 후기 고려 최후의 무신집권자 임유무를 제거하여 무신정권을 붕괴시키고 상장군에 오른 무신이다. 1270년(원종 11) 아버지 송송례, 동생 송분과 함께 휘하 신의군을 동원하여 무신정권의 임유무를 제거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로써 100년간 지속되어 온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