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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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생사진은 1883년 조선에 사진술이 도입된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기생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을 지칭한다. 기생사진은 주로 일찍이 한반도에 온 일본인 사진사들에 의해 촬영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실물 사진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담배카드, 관광홍보물, 사진첩 등 다양한 형태의 인쇄물로 제작되었다.
조선기생사진 (朝鮮妓生寫眞)
조선기생사진은 1883년 조선에 사진술이 도입된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기생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을 지칭한다. 기생사진은 주로 일찍이 한반도에 온 일본인 사진사들에 의해 촬영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을 전후해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실물 사진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담배카드, 관광홍보물, 사진첩 등 다양한 형태의 인쇄물로 제작되었다.
조선인신체측정사진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과 일본의 인류학자들이 체질인류학적 관점에서 조선인의 신체를 측정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체질인류학적 관점에서 인종 연구를 위해 고안한 신체측정사진술을 조선인에게 적용한 것인데, 에일 부르다레[프랑스], 리하르트 분쉬[독일], 카를로 로제티[이탈리아] 등의 서양인 인류학자 뿐만 아니라 일본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다수의 조선인신체측정사진을 남겼다.
조선인신체측정사진 (朝鮮人身體測定寫眞)
조선인신체측정사진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과 일본의 인류학자들이 체질인류학적 관점에서 조선인의 신체를 측정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체질인류학적 관점에서 인종 연구를 위해 고안한 신체측정사진술을 조선인에게 적용한 것인데, 에일 부르다레[프랑스], 리하르트 분쉬[독일], 카를로 로제티[이탈리아] 등의 서양인 인류학자 뿐만 아니라 일본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가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다수의 조선인신체측정사진을 남겼다.
부인사진관은 1921년 5월 여성사진사 이홍경이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내외법이란 관습이 남아있던 1920년대 초반, 사진사가 여성이었던 부인사진관은 사진 수요의 절반을 차지했던 여성 고객을 불러들이는데 유리했으며, 이는 초상사진의 대중화를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부인사진관 (朝鮮婦人寫眞館)
부인사진관은 1921년 5월 여성사진사 이홍경이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내외법이란 관습이 남아있던 1920년대 초반, 사진사가 여성이었던 부인사진관은 사진 수요의 절반을 차지했던 여성 고객을 불러들이는데 유리했으며, 이는 초상사진의 대중화를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옥당사진관은 1920년 5월 21일 김경집이 서울시 종로 공평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설 당시 서울에 있는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다고 전해지며, 1922년 관주 김경집이 주도하여 설립한 사진업조합의 사무실로도 쓰였다. 1920년대 중반 초상사진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인 조선인 사진관 시대를 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금옥당사진관 (金玉堂寫眞館)
금옥당사진관은 1920년 5월 21일 김경집이 서울시 종로 공평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설 당시 서울에 있는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다고 전해지며, 1922년 관주 김경집이 주도하여 설립한 사진업조합의 사무실로도 쓰였다. 1920년대 중반 초상사진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인 조선인 사진관 시대를 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금광사진관은 1912년 김준식이 김현태, 김시련과 함께 서울시 종로 인사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금광사진관 이전에는 1907년 김규진이 개설한 천연당사진관이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으나 금광사진관이 개설됨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고, 또한 북촌 지역에 개설됨으로서 조선인 중심의 북촌 사진관 시대를 열게 되었다.
금광사진관 (金光寫眞館)
금광사진관은 1912년 김준식이 김현태, 김시련과 함께 서울시 종로 인사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금광사진관 이전에는 1907년 김규진이 개설한 천연당사진관이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으나 금광사진관이 개설됨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고, 또한 북촌 지역에 개설됨으로서 조선인 중심의 북촌 사진관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이홍경 (李弘敬)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전조선사진작품모집』은 1936년 8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조선인 사진단체 6곳의 찬조와 협력을 얻어 주최한 사진 공모전이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와 관변 단체에서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의 대항 공모전으로 추진되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에 연루된 조선중앙일보사가 무기정간 처분을 받게 되면서 이 행사도 무산되었다.
전조선사진작품모집 (全朝鮮寫眞作品募集)
『전조선사진작품모집』은 1936년 8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조선인 사진단체 6곳의 찬조와 협력을 얻어 주최한 사진 공모전이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와 관변 단체에서 주최한 『조선사진전람회』의 대항 공모전으로 추진되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에 연루된 조선중앙일보사가 무기정간 처분을 받게 되면서 이 행사도 무산되었다.
조선신문사진협회는 1946년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간사장 제도로 운영되었다. 미군정 하에서 사진 취재 통제 방침에 강력 항의하는 한편, 사진재료 수급 문제에 대해서도 사진계와 공동 대응하는 등 보도사진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신문사진협회 (朝鮮新聞寫眞協會)
조선신문사진협회는 1946년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간사장 제도로 운영되었다. 미군정 하에서 사진 취재 통제 방침에 강력 항의하는 한편, 사진재료 수급 문제에 대해서도 사진계와 공동 대응하는 등 보도사진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서울인상사진연구회는 1946년 10월 사진관을 운영하던 영업사진사들이 인물사진 연구를 위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설립 목적인 ‘인물사진의 창조적 작업을 위한 연구와 작품 발표’를 위해 정기적인 월례회를 가졌으며, 전국산업사진전람회와 전국어린이사진전람회 등의 사진 전람회와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사진문화 발전에도 힘썼다.
서울인상사진연구회 (―人像寫眞硏究會)
서울인상사진연구회는 1946년 10월 사진관을 운영하던 영업사진사들이 인물사진 연구를 위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설립 목적인 ‘인물사진의 창조적 작업을 위한 연구와 작품 발표’를 위해 정기적인 월례회를 가졌으며, 전국산업사진전람회와 전국어린이사진전람회 등의 사진 전람회와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사진문화 발전에도 힘썼다.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업조합 (寫眞業組合)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기성사진관은 1912년 김영선이 평양 수옥리에 천연당사진관의 분점으로 개설한 사진관이다. 김영선은 1907년 8월 개설된 천연당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활동하다가, 숙부이자 양부인 김규진의 도움을 받아 천연당사진관의 분관 형식으로 사진관을 개설하였다. 기성사진관의 개설로 일본인 사진관만 있었던 평양에 조선인 사진관의 등장을 알리게 되었으며, 관주인 김영선은 기성사진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진조합 및 사진단체를 설립하면서 평양 사진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기성사진관 (箕城寫眞館)
기성사진관은 1912년 김영선이 평양 수옥리에 천연당사진관의 분점으로 개설한 사진관이다. 김영선은 1907년 8월 개설된 천연당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활동하다가, 숙부이자 양부인 김규진의 도움을 받아 천연당사진관의 분관 형식으로 사진관을 개설하였다. 기성사진관의 개설로 일본인 사진관만 있었던 평양에 조선인 사진관의 등장을 알리게 되었으며, 관주인 김영선은 기성사진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진조합 및 사진단체를 설립하면서 평양 사진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금광당사진관 (金光堂寫眞館)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삼정사진관은 1925년 사진사 서순삼이 평양 종로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평양 종로통 3번지에 위치했었다. 관주 서순삼은 영업사진가로 일하면서 동아일보사 및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촉탁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삼정사진관 주최로 평양 최초의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고, 사진단체 오월회를 조직하는 등 평양의 사진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정사진관 (三井寫眞館)
삼정사진관은 1925년 사진사 서순삼이 평양 종로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평양 종로통 3번지에 위치했었다. 관주 서순삼은 영업사진가로 일하면서 동아일보사 및 조선일보사의 평양지국 촉탁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삼정사진관 주최로 평양 최초의 예술사진전람회를 개최하고, 사진단체 오월회를 조직하는 등 평양의 사진제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사진작가단은 1957년 1월 최계복을 단장으로 7명의 사진가가 설립한 직업사진가단체이다. 이 단체는 이승만 정권의 관광 및 문화재 정책에 부응하여, 주로 한국의 풍광과 문화재를 대상으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했고, 관광사진과 문화재사진이라는 새로운 사진시장을 개척했다.
한국사진작가단 (韓國寫眞作家團)
한국사진작가단은 1957년 1월 최계복을 단장으로 7명의 사진가가 설립한 직업사진가단체이다. 이 단체는 이승만 정권의 관광 및 문화재 정책에 부응하여, 주로 한국의 풍광과 문화재를 대상으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했고, 관광사진과 문화재사진이라는 새로운 사진시장을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