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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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헌경왕후 (獻敬王后)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명성왕후는 조선 후기 제18대 현종의 왕비이며, 숙종의 어머니이다. 며느리 인경왕후가 사망하자 신하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7개월 만에 계비 인현왕후를 맞아들였으며, 당시 숙종의 은총을 받던 궁녀 장씨[희빈 장씨]를 경계하여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등 대비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명성왕후 (明聖王后)
명성왕후는 조선 후기 제18대 현종의 왕비이며, 숙종의 어머니이다. 며느리 인경왕후가 사망하자 신하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7개월 만에 계비 인현왕후를 맞아들였으며, 당시 숙종의 은총을 받던 궁녀 장씨[희빈 장씨]를 경계하여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등 대비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였다.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인목왕후 (仁穆王后)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성왕후 (仁聖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인원왕후 (仁元王后)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인현왕후 (仁顯王后)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효순왕후 (孝純王后)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종부는 종가의 맏며느리이다. 크고 작은 문중의 맏아들을 종손이라고 부른다. 종손의 부인이자 그 종손이 속한 종가의 맏며느리를 종부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 가족 집단이 형성되면서 그 가문을 운영하는 여성의 대표자로서 종부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종부의 가문 내 역할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으로 대표된다. 종부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가문의 유지와 번성을 위해 아들을 생산하는 일이다. 근대에는 종가의 의미가 쇠퇴하면서 종부의 역할은 남아 있으되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축소되어 종부로서의 위치가 약화되었다.
종부 (宗婦)
종부는 종가의 맏며느리이다. 크고 작은 문중의 맏아들을 종손이라고 부른다. 종손의 부인이자 그 종손이 속한 종가의 맏며느리를 종부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 가족 집단이 형성되면서 그 가문을 운영하는 여성의 대표자로서 종부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종부의 가문 내 역할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으로 대표된다. 종부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가문의 유지와 번성을 위해 아들을 생산하는 일이다. 근대에는 종가의 의미가 쇠퇴하면서 종부의 역할은 남아 있으되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축소되어 종부로서의 위치가 약화되었다.
조선후기 조도관,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김순 (金純)
조선후기 조도관,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
조선전기 호용시위사총제, 충청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중보 (金重寶)
조선전기 호용시위사총제, 충청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시대 관리임용의 한 절차.
낙점 (落點)
조선시대 관리임용의 한 절차.
조선시대 의금부에 설치되었던 감옥.
남간 (南間)
조선시대 의금부에 설치되었던 감옥.
조선 전기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남경우 (南景祐)
조선 전기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과거를 거치지 않은 문음자제(門蔭子弟)나 은일지사(隱逸之士)를 관직에 임명하던 제도, 또는 그렇게 임명된 관리의 부류.
남행 (南行)
조선시대 과거를 거치지 않은 문음자제(門蔭子弟)나 은일지사(隱逸之士)를 관직에 임명하던 제도, 또는 그렇게 임명된 관리의 부류.
조선시대 궁방관리인 도장(導掌)을 임명하는 방법.
납가도장 (納價導掌)
조선시대 궁방관리인 도장(導掌)을 임명하는 방법.
조선시대 궁중의 숙위 또는 왕의 시위를 담당하였던 갑사.
내갑사 (內甲士)
조선시대 궁중의 숙위 또는 왕의 시위를 담당하였던 갑사.
조선시대 왕실 전용의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
내빙고 (內氷庫)
조선시대 왕실 전용의 얼음을 관리하던 관청.
조선시대 한성(漢城)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내사고 (內史庫)
조선시대 한성(漢城)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조선시대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관청.
내사복시 (內司僕寺)
조선시대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관청.
조선시대 내수사(內需司)에 관련된 죄인을 수감하던 감옥.
내사옥 (內司獄)
조선시대 내수사(內需司)에 관련된 죄인을 수감하던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