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은진"
검색결과 총 11건
나(羅)는 세 올 또는 네 올의 경사가 한 조(組)를 이루며 서로 꼬이도록 직조한 직물이다. 세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꼬이면 3경교, 네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꼬이면 4경교라고 한다. 3경교와 4경교의 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애용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2경교의 사(紗)가 등장하면서 나의 사용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나는 조선시대 이후 복식 유물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며, 현재 우리나라 나 제직 기술은 단절된 상태이다.
나 (羅)
나(羅)는 세 올 또는 네 올의 경사가 한 조(組)를 이루며 서로 꼬이도록 직조한 직물이다. 세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꼬이면 3경교, 네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꼬이면 4경교라고 한다. 3경교와 4경교의 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애용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2경교의 사(紗)가 등장하면서 나의 사용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나는 조선시대 이후 복식 유물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며, 현재 우리나라 나 제직 기술은 단절된 상태이다.
마직은 마식물의 인피 섬유로 제직한 직물이다. 마직물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복식의 재료로 사용된 역사가 길다. 기원전 3000년경의 신석기 유적에서 마섬유가 붙은 가락바퀴와 뼈바늘, 물레 등이 발견되어 우리 민족이 당시 마섬유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마직물은 고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직물이며, 오늘날까지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마직물의 제직 기술은 ‘한산모시짜기’, ‘삼베짜기’ 등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특히 한산모시짜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직 (麻織)
마직은 마식물의 인피 섬유로 제직한 직물이다. 마직물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복식의 재료로 사용된 역사가 길다. 기원전 3000년경의 신석기 유적에서 마섬유가 붙은 가락바퀴와 뼈바늘, 물레 등이 발견되어 우리 민족이 당시 마섬유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마직물은 고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직물이며, 오늘날까지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마직물의 제직 기술은 ‘한산모시짜기’, ‘삼베짜기’ 등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특히 한산모시짜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는 이웃한 두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서로 꼬이도록 제직한, 얇고 가벼운 직물이다. 이러한 2경교의 익직물은 고려시대 무렵 나타났으며, 고대의 사는 경 · 위사의 밀도가 성글게 직조된 평직의 견직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4경교, 3경교로 된 라의 사용은 줄어들었고, 2경교의 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가 시대를 대표하는 직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사가 등장하여 애용되었다.
사 (紗)
사는 이웃한 두 올의 경사가 한 조를 이루며 서로 꼬이도록 제직한, 얇고 가벼운 직물이다. 이러한 2경교의 익직물은 고려시대 무렵 나타났으며, 고대의 사는 경 · 위사의 밀도가 성글게 직조된 평직의 견직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4경교, 3경교로 된 라의 사용은 줄어들었고, 2경교의 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가 시대를 대표하는 직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사가 등장하여 애용되었다.
솜은 천연 및 인조 섬유에서 뽑아 낸 섬유질 뭉치이다. 솜은 보온성이 뛰어나 의복 및 침구의 충전재로 사용한다. 솜은 식물성 섬유, 동물성 섬유, 합성 섬유 등 다양한 원료에서 얻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대표적인 솜은 면솜인 목화솜과 견솜인 풀솜이 있다. 목화솜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그의 장인인 정천익에 의해 재배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풀솜은 필라멘트사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은 저급한 누에고치나 부스러기를 삶아 늘여 만드는 솜으로, 설면자, 고치솜, 명주솜, 진면이라고도 한다.
솜
솜은 천연 및 인조 섬유에서 뽑아 낸 섬유질 뭉치이다. 솜은 보온성이 뛰어나 의복 및 침구의 충전재로 사용한다. 솜은 식물성 섬유, 동물성 섬유, 합성 섬유 등 다양한 원료에서 얻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대표적인 솜은 면솜인 목화솜과 견솜인 풀솜이 있다. 목화솜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그의 장인인 정천익에 의해 재배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다. 풀솜은 필라멘트사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은 저급한 누에고치나 부스러기를 삶아 늘여 만드는 솜으로, 설면자, 고치솜, 명주솜, 진면이라고도 한다.
양단은 수자직(朱子織) 바탕에 무늬가 직조되어 있는 비교적 두꺼운 한복용 단(緞)직물이다. 양단은 수입된 서양의 단(緞)직물을 기존의 무늬가 있는 단직물과 구분하여 부르기 위한 명칭이었다. 점차 그 의미가 무늬가 있는 단직물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양단의 소재와 직조 방법은 조선 말기, 개화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양단은 오늘날에는 수자직의 단직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화 조직으로 직조한 무늬 있는 두꺼운 한복용 직물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단 (洋緞)
양단은 수자직(朱子織) 바탕에 무늬가 직조되어 있는 비교적 두꺼운 한복용 단(緞)직물이다. 양단은 수입된 서양의 단(緞)직물을 기존의 무늬가 있는 단직물과 구분하여 부르기 위한 명칭이었다. 점차 그 의미가 무늬가 있는 단직물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양단의 소재와 직조 방법은 조선 말기, 개화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양단은 오늘날에는 수자직의 단직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화 조직으로 직조한 무늬 있는 두꺼운 한복용 직물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산모시짜기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전통 모시 직조 기술이다. 한산은 안개가 잦고 습도가 높아 질 좋은 모시풀의 재배와 모시 제직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가졌다. 한산모시는 조선시대에 들어 한산의 특산품으로서 본격적으로 언급되었고, 현재까지도 모시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한산모시짜기는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14호로,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산모시짜기는 ‘태모시 만들기’, ‘모시 째기’, ‘모시 삼기’, ‘모시 날기’, ‘모시 매기’, ‘꾸리 감기’, ‘제직’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한산모시짜기 (韓山모시짜기)
한산모시짜기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전통 모시 직조 기술이다. 한산은 안개가 잦고 습도가 높아 질 좋은 모시풀의 재배와 모시 제직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가졌다. 한산모시는 조선시대에 들어 한산의 특산품으로서 본격적으로 언급되었고, 현재까지도 모시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한산모시짜기는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14호로,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산모시짜기는 ‘태모시 만들기’, ‘모시 째기’, ‘모시 삼기’, ‘모시 날기’, ‘모시 매기’, ‘꾸리 감기’, ‘제직’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라사는 조선 말기 서양에서 유입되어 사용된 방모 직물(紡毛織物)이다. 라사라는 명칭의 기원은 포르투갈어 ‘Raxa’이다. 16세기 무렵에 일본으로 건너간 포르투갈인들이 서양의 모직물을 ‘라샤(Raxa)’라고 호칭하는 것을 들은 일본인들이 그 직물의 이름을 한자로 ‘羅紗’라고 표기하면서 라사가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00년에 서구식 연미복을 문관의 대례복으로 정하고, 라사를 대례복의 주요 옷감으로 사용하면서 유입되었다. 양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들어온 라사는 우리나라 전통 복식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라사 (羅紗)
라사는 조선 말기 서양에서 유입되어 사용된 방모 직물(紡毛織物)이다. 라사라는 명칭의 기원은 포르투갈어 ‘Raxa’이다. 16세기 무렵에 일본으로 건너간 포르투갈인들이 서양의 모직물을 ‘라샤(Raxa)’라고 호칭하는 것을 들은 일본인들이 그 직물의 이름을 한자로 ‘羅紗’라고 표기하면서 라사가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00년에 서구식 연미복을 문관의 대례복으로 정하고, 라사를 대례복의 주요 옷감으로 사용하면서 유입되었다. 양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들어온 라사는 우리나라 전통 복식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삼팔주는 중국에서 처음 생산하여, 조선에 수입된 평 견직물(平絹織物)이다. 삼팔주는 대개 경·위사 모두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촘촘하고 탄탄하게 평직(平織)으로 천을 짠 후에 정련(精練)한 것이다. 경사(經絲)가 위사(緯絲)에 비하여 가늘고, 경 · 위사 모두 품질이 좋은 필라멘트사(filament絲)를 사용하여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게 천을 짜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좋다. 또 경사 두 올이 한 조를 이루어 몰려 있으며 두 올과 두 올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삼팔주 (三八紬)
삼팔주는 중국에서 처음 생산하여, 조선에 수입된 평 견직물(平絹織物)이다. 삼팔주는 대개 경·위사 모두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촘촘하고 탄탄하게 평직(平織)으로 천을 짠 후에 정련(精練)한 것이다. 경사(經絲)가 위사(緯絲)에 비하여 가늘고, 경 · 위사 모두 품질이 좋은 필라멘트사(filament絲)를 사용하여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게 천을 짜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좋다. 또 경사 두 올이 한 조를 이루어 몰려 있으며 두 올과 두 올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조선방직주식회사는 1917년, 일본 자본에 의해 부산에 설립된 기계제 면방적 회사이다. 면화의 재배 및 매매, 면사(綿絲)나 면포(綿布)의 방직 · 판매 및 면업을 비롯한 유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후 1969년까지 존립하였다. 조선방직주식회사는 우리나라 면방업의 효시로, 실과 면의 매수에서부터 방적 · 염색 · 나염 · 피복에 이르는 일관된 생산 체제를 구축하였다. 현재까지도 회사가 있었던 범일동 일대를 ‘조방 앞’이라 통칭하고 있다.
조선방직주식회사 (朝鮮紡織株式會社)
조선방직주식회사는 1917년, 일본 자본에 의해 부산에 설립된 기계제 면방적 회사이다. 면화의 재배 및 매매, 면사(綿絲)나 면포(綿布)의 방직 · 판매 및 면업을 비롯한 유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후 1969년까지 존립하였다. 조선방직주식회사는 우리나라 면방업의 효시로, 실과 면의 매수에서부터 방적 · 염색 · 나염 · 피복에 이르는 일관된 생산 체제를 구축하였다. 현재까지도 회사가 있었던 범일동 일대를 ‘조방 앞’이라 통칭하고 있다.
저항라 적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저마사로 제직한 항라를 옷감으로 하여 만든 속저고리 또는 여름용 홑저고리이다. 옷감 이름 중의 하나인 저항라라는 명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헌에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저항라 실증 유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서 소장한 남성용 소색 적삼의 옷감으로 사용된 한 점뿐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저항라 적삼은 문헌에만 남아 있었던 저항라라는 옷감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유물로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14년에 국가 등록 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저항라 적삼 (紵亢羅 적삼)
저항라 적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저마사로 제직한 항라를 옷감으로 하여 만든 속저고리 또는 여름용 홑저고리이다. 옷감 이름 중의 하나인 저항라라는 명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헌에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저항라 실증 유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서 소장한 남성용 소색 적삼의 옷감으로 사용된 한 점뿐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저항라 적삼은 문헌에만 남아 있었던 저항라라는 옷감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유물로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14년에 국가 등록 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향염직물명칭유휘」는 1915년 일본인 요시나가 히코타로[吉永彦太郞]가 조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염직물 품종의 명칭과 특징을 8년 동안 조사하여 수록한 글이다. 이 글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휘보(朝鮮彙報)』 1915년 3월호에 실려 있다. 글의 서문에 따르면 주로 서울 시내의 주단포목상을 상대로 하여 조사 · 수록하였다. 이 글을 통하여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었던 400여 종에 이르는 염직물 품종의 명칭과 이칭, 원산지, 섬유 소재, 직물 조직, 제직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향염직물명칭유휘 (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
「조선향염직물명칭유휘」는 1915년 일본인 요시나가 히코타로[吉永彦太郞]가 조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염직물 품종의 명칭과 특징을 8년 동안 조사하여 수록한 글이다. 이 글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휘보(朝鮮彙報)』 1915년 3월호에 실려 있다. 글의 서문에 따르면 주로 서울 시내의 주단포목상을 상대로 하여 조사 · 수록하였다. 이 글을 통하여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었던 400여 종에 이르는 염직물 품종의 명칭과 이칭, 원산지, 섬유 소재, 직물 조직, 제직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