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정남"
검색결과 총 43건
목수(木手)는 나무로 집을 짓거나 물건을 제작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장인이다. 목수 중에서 집의 구조체가 되는 기둥, 들보 등과 같이 큰 목재를 다루는 장인을 대목장(大木匠), 창호나 가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小木匠), 목부재를 조각하거나 목불상 등을 만드는 장인을 목조각장(木彫刻匠)이라 한다. 대목장, 소목장, 목조각장은 국가 및 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문화와 기술을 보존하고 전승하도록 하였으며, 대목장은 한국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점 등이 높이 평가되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목수 (木手)
목수(木手)는 나무로 집을 짓거나 물건을 제작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장인이다. 목수 중에서 집의 구조체가 되는 기둥, 들보 등과 같이 큰 목재를 다루는 장인을 대목장(大木匠), 창호나 가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小木匠), 목부재를 조각하거나 목불상 등을 만드는 장인을 목조각장(木彫刻匠)이라 한다. 대목장, 소목장, 목조각장은 국가 및 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문화와 기술을 보존하고 전승하도록 하였으며, 대목장은 한국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점 등이 높이 평가되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수진궁 (壽進宮)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잠저와 제17대 왕인 효종의 잠저를 일컫는 궁궐의 이름이다. 인조의 잠저는 한성부 경행방 향교동에 있었으며, 효종의 잠저는 숭교방 어의동에 자리했었다. 각각 당대에는 본궁이라 하였지만, 조선 말기에는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어의궁 (於義宮)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잠저와 제17대 왕인 효종의 잠저를 일컫는 궁궐의 이름이다. 인조의 잠저는 한성부 경행방 향교동에 있었으며, 효종의 잠저는 숭교방 어의동에 자리했었다. 각각 당대에는 본궁이라 하였지만, 조선 말기에는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용동궁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의 궁가이다. 순회세자 사후 왕실의 내탕(內帑)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례궁과 더불어 왕실 내탕 중 왕후 및 왕대비의 내탕을 마련하고 관리하였다. 1907년(융희 1) 궁방 관리인인 도장(導掌)이 폐지되고, 순종 즉위 후 모든 재산을 제실에서 관리하면서 1909년 폐지되었다.
용동궁 (龍洞宮)
용동궁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의 궁가이다. 순회세자 사후 왕실의 내탕(內帑)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례궁과 더불어 왕실 내탕 중 왕후 및 왕대비의 내탕을 마련하고 관리하였다. 1907년(융희 1) 궁방 관리인인 도장(導掌)이 폐지되고, 순종 즉위 후 모든 재산을 제실에서 관리하면서 1909년 폐지되었다.
저경궁(儲慶宮)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이다.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인 인빈김씨에게 ‘저경’이라는 궁호를 바친 후 제향을 위한 묘우(廟宇)를 짓고는 저경궁으로 불렀다. 인빈김씨를 위한 제사궁 기능을 하던 저경궁은 1908년(융희 2)에 육상궁(毓祥宮)에 합쳐지고 그 소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저경궁 (儲慶宮)
저경궁(儲慶宮)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가에 있던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의 사친이었던 인빈김씨의 궁묘이다. 본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부친인 원종의 제택(第宅)으로 인조 즉위 후 송현궁(松峴宮)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 6월에 원종의 사친인 인빈김씨에게 ‘저경’이라는 궁호를 바친 후 제향을 위한 묘우(廟宇)를 짓고는 저경궁으로 불렀다. 인빈김씨를 위한 제사궁 기능을 하던 저경궁은 1908년(융희 2)에 육상궁(毓祥宮)에 합쳐지고 그 소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제주향교 대성전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제주향교 내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건물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건축 문화유산으로, 1394년(태조 3) 건립 후 몇 차례 이건을 거쳐 1827년(순조 27)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제주도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낮고 안정적인 건물 모습을 갖추었고, 처마의 처짐 방지를 위한 덧기둥 등에서 제주도 향교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향교 대성전 (濟州鄕校 大成殿)
제주향교 대성전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제주향교 내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건물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건축 문화유산으로, 1394년(태조 3) 건립 후 몇 차례 이건을 거쳐 1827년(순조 27)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제주도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낮고 안정적인 건물 모습을 갖추었고, 처마의 처짐 방지를 위한 덧기둥 등에서 제주도 향교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 화령전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 있는 정조의 어진을 모신 영전 건축물이다. 1801년(순조 1)에 건립한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전 건축으로 수원 화성행궁의 북쪽에 있다. 화령전의 중심 건물인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고급 건축기술로 지어졌으며, 정전과 이안청이 복도각으로 이어진 특이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조이다. 이것은 18세기 말, 19세기의 합리적 사고가 예를 중히 여기는 길례용 건축에도 적극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水原 華寧殿 雲漢閣·複道閣·移安廳)
수원 화령전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 있는 정조의 어진을 모신 영전 건축물이다. 1801년(순조 1)에 건립한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전 건축으로 수원 화성행궁의 북쪽에 있다. 화령전의 중심 건물인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고급 건축기술로 지어졌으며, 정전과 이안청이 복도각으로 이어진 특이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조이다. 이것은 18세기 말, 19세기의 합리적 사고가 예를 중히 여기는 길례용 건축에도 적극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구 경상감영지는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은 1601년(선조 34) 건립 후 위치가 바뀌지 않은 것이 밝혀졌으며, 기타 유구와 유물들을 통해서는 감영의 입지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대구 경상감영지 (大邱 慶尙監營址)
대구 경상감영지는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은 1601년(선조 34) 건립 후 위치가 바뀌지 않은 것이 밝혀졌으며, 기타 유구와 유물들을 통해서는 감영의 입지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는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있는 한국전쟁 기간 중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1926년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건립된 목조 2층 기와집으로, 한국전쟁 기간 중 피란 수도인 부산에서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다. 국방 · 정치 ·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었던 역사적 현장으로서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 (釜山 臨時首都 大統領官邸)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는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있는 한국전쟁 기간 중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1926년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건립된 목조 2층 기와집으로, 한국전쟁 기간 중 피란 수도인 부산에서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다. 국방 · 정치 ·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었던 역사적 현장으로서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경산 상엿집과 관련문서는 경상북도 경산시 무학로 62길 산 162에 자리한 상엿집과 건립 전후 시기에 운영된 상여계와 관련된 문서이다. 상엿집은 상여를 보관하는 공간과 부속품 등을 두는 2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었고, 세 칸 규모의 판벽과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전통 상여, 장례에 쓰던 각종 제구, 상여 제작 · 운반 등과 관련된 비용 기록 문서들이 함께 발견되어 상여문화 전체를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경산 상엿집과 관련 문서 (慶山 喪輿집과 關聯 文書)
경산 상엿집과 관련문서는 경상북도 경산시 무학로 62길 산 162에 자리한 상엿집과 건립 전후 시기에 운영된 상여계와 관련된 문서이다. 상엿집은 상여를 보관하는 공간과 부속품 등을 두는 2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었고, 세 칸 규모의 판벽과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전통 상여, 장례에 쓰던 각종 제구, 상여 제작 · 운반 등과 관련된 비용 기록 문서들이 함께 발견되어 상여문화 전체를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장흥 신와고택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가옥이다. 조선 후기부터 터를 잡아 조성한 가옥으로 사당,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도 지역 전통 양반가, 특히 방촌마을 상류 민가의 틀을 잘 유지하여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축적 가치 외에 의례 및 신앙, 주거생활적 특징 등을 잘 간직한 가옥이다.
장흥 신와고택 (長興 新窩古宅)
장흥 신와고택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가옥이다. 조선 후기부터 터를 잡아 조성한 가옥으로 사당, 안채, 사랑채, 곳간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도 지역 전통 양반가, 특히 방촌마을 상류 민가의 틀을 잘 유지하여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축적 가치 외에 의례 및 신앙, 주거생활적 특징 등을 잘 간직한 가옥이다.
봉화 만산고택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1878년(고종 15) 만산 강용이 건립한 가옥이다. 측면 출입형 ‘ㅁ’자 집으로 상류주택의 구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경상북도 북동부 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교적 제례의식과 주거 민속 등 전통적 주생활 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다.
봉화 만산고택 (奉化 晩山古宅)
봉화 만산고택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1878년(고종 15) 만산 강용이 건립한 가옥이다. 측면 출입형 ‘ㅁ’자 집으로 상류주택의 구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경상북도 북동부 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교적 제례의식과 주거 민속 등 전통적 주생활 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다.
사남 고택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가옥이다. 평산신씨 31세손인 신치학이 18세기 후반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건립한 가옥으로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ㅁ’자 형 뜰집이다.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서벽 고택과 더불어 마을의 중요한 민속행위를 잘 보존 전승하고 있으며, 가옥에 보유하고 있는 전적류 · 생활도구 등 유물과 유품을 통해 당시 지역과 문중의 민속적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사남고택 (泗南古宅)
사남 고택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가옥이다. 평산신씨 31세손인 신치학이 18세기 후반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건립한 가옥으로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ㅁ’자 형 뜰집이다.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 서벽 고택과 더불어 마을의 중요한 민속행위를 잘 보존 전승하고 있으며, 가옥에 보유하고 있는 전적류 · 생활도구 등 유물과 유품을 통해 당시 지역과 문중의 민속적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안동 시은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예안이씨 7세손 이훈이 기묘사화를 계기로 낙향하여 1525년(중종 20)에 지은 가옥으로 사당, 대문채, 방앗간채가 멸실되고 없지만 16세기 초반의 평면 배치 및 구성, 구조 양식과 더불어 17세기를 전후한 시기 건축 양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집이다. 마을 이름을 따 상리종택(上里宗宅)이라고도 부른다.
안동 시은고택 (安東 市隱古宅)
안동 시은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예안이씨 7세손 이훈이 기묘사화를 계기로 낙향하여 1525년(중종 20)에 지은 가옥으로 사당, 대문채, 방앗간채가 멸실되고 없지만 16세기 초반의 평면 배치 및 구성, 구조 양식과 더불어 17세기를 전후한 시기 건축 양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집이다. 마을 이름을 따 상리종택(上里宗宅)이라고도 부른다.
대전 소대헌 · 호연재 고택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현종 15) 분가하여 건립한 가옥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숙종 40)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 지역 명문가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고,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大田 小大軒·浩然齋 古宅)
대전 소대헌 · 호연재 고택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현종 15) 분가하여 건립한 가옥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숙종 40)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 지역 명문가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고,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다.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진성이씨 송안군파의 대종가로 본채, 별당,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당의 당호가 경류정이어서 '경류정 종택'으로도 불린다. 종택 내에 가문의 역사적인 변천, 향촌사회의 변화상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자료가 전승되고 있어 민속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
안동 진성이씨 종택 (安東 眞城李氏 宗宅)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진성이씨 송안군파의 대종가로 본채, 별당,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당의 당호가 경류정이어서 '경류정 종택'으로도 불린다. 종택 내에 가문의 역사적인 변천, 향촌사회의 변화상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자료가 전승되고 있어 민속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
온돌문화는 바닥 난방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총체적 주거문화이다. 전통적인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붙여 그 열기가 고래를 통과하면서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직접 가열식 난방으로 취사와 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구조였다. 온돌문화는 바닥 난방 및 생태환경 활용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관습과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기후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해 온 한국인의 창의성이 발현된 독특한 문화라는 점에서 2018년 4월 30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온돌문화 (溫突文化)
온돌문화는 바닥 난방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총체적 주거문화이다. 전통적인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붙여 그 열기가 고래를 통과하면서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직접 가열식 난방으로 취사와 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구조였다. 온돌문화는 바닥 난방 및 생태환경 활용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관습과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기후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해 온 한국인의 창의성이 발현된 독특한 문화라는 점에서 2018년 4월 30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예천 초간정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조선 전기 초간 권문해가 건립한 누정이다.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에 건립하였다. 이후 화재로 불타 현재의 초간정은 1739년에 지은 것이다. 초간정은 절벽 위에서 금곡천의 경관을 확보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남쪽에 초간정사, 북쪽에 초간정, 동쪽에 석조헌이라고 쓴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이 가운데 '초간정사' 편액은 권문해가 처음 정사를 지을 때 박승임이 쓴 것이다. 초간정은 인공적인 원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운 독특한 누정이다.
예천 초간정 (醴泉 草澗亭)
예천 초간정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조선 전기 초간 권문해가 건립한 누정이다.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에 건립하였다. 이후 화재로 불타 현재의 초간정은 1739년에 지은 것이다. 초간정은 절벽 위에서 금곡천의 경관을 확보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남쪽에 초간정사, 북쪽에 초간정, 동쪽에 석조헌이라고 쓴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이 가운데 '초간정사' 편액은 권문해가 처음 정사를 지을 때 박승임이 쓴 것이다. 초간정은 인공적인 원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운 독특한 누정이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유부 관련 건축물. 사우.
탁삼재 (卓三齋)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유부 관련 건축물. 사우.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에 있는 조선후기 영광 정씨 4인과 이순신, 임영립 관련 건축물. 사우.
반계사 (盤谿祠)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에 있는 조선후기 영광 정씨 4인과 이순신, 임영립 관련 건축물. 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