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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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청서도」는 조선 후기 화가 강세황이 그린 산수인물화이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17세기 초 중국에서 유입된 『개자원화전』 초집을 남종화법 산수화의 학습 교재로 인식하였다. 강세황의 「벽오청서도」도 『개자원화전』에 수록된 심주의 그림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개자원화전』 초집이 조선 후기 수묵담채화의 성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벽오청서도 (碧梧淸暑圖)
「벽오청서도」는 조선 후기 화가 강세황이 그린 산수인물화이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17세기 초 중국에서 유입된 『개자원화전』 초집을 남종화법 산수화의 학습 교재로 인식하였다. 강세황의 「벽오청서도」도 『개자원화전』에 수록된 심주의 그림을 보고 그린 작품이다. 『개자원화전』 초집이 조선 후기 수묵담채화의 성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장경주는 조선 후기 「영조어진」, 『기사경회첩』 등을 그린 화가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화원 가문인 인동 장씨 출신으로, 아버지 역시 화원이었던 장득만이다. 각종 궁중 행사에 화원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 어진 제작 시 주관화사로 활약했다.
장경주 (張敬周)
장경주는 조선 후기 「영조어진」, 『기사경회첩』 등을 그린 화가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화원 가문인 인동 장씨 출신으로, 아버지 역시 화원이었던 장득만이다. 각종 궁중 행사에 화원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 어진 제작 시 주관화사로 활약했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은 1673년에 화승 철학 등이 그린 미륵불을 주존으로 하는 불화이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이라 쓰여 있다. 본존은 ‘미륵존불’이라 되어 있으나, 특이하게도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그려져 있다.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長谷寺 彌勒佛掛佛幀)
장곡사 「미륵불괘불탱」은 1673년에 화승 철학 등이 그린 미륵불을 주존으로 하는 불화이다.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화기에 ‘영산대회괘불탱’이라 쓰여 있다. 본존은 ‘미륵존불’이라 되어 있으나, 특이하게도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그려져 있다.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장황은 전통시대에 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두루마리·족자·첩·책·병풍 등의 형태로 만드는 행위이다. 종이나 비단처럼 낱장의 얇은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나서 이를 감상하고 보관하기 위해 튼튼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이다. 장황은 건축물의 크기를 비롯해 사용 계층이나 사용 목적 등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에 한 · 중 · 일 삼국에서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장황 (粧䌙)
장황은 전통시대에 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두루마리·족자·첩·책·병풍 등의 형태로 만드는 행위이다. 종이나 비단처럼 낱장의 얇은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나서 이를 감상하고 보관하기 위해 튼튼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이다. 장황은 건축물의 크기를 비롯해 사용 계층이나 사용 목적 등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에 한 · 중 · 일 삼국에서 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전충효는 조선 후기 「석정처사유거도」, 「소상팔경도」, 「괴석초충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묵호이며, 생몰년이나 가계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기록과 현전 작품으로 미루어 17세기 중후반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직업 화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충효 (全忠孝)
전충효는 조선 후기 「석정처사유거도」, 「소상팔경도」, 「괴석초충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묵호이며, 생몰년이나 가계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기록과 현전 작품으로 미루어 17세기 중후반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직업 화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석진은 근대 1세대 동양화가를 배출한 미술 교육자이자, 전통시대와 근대를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한 화가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조정규에게 학문과 그림을 배웠다. 19세기 말부터 화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서화미술회 교수, 서화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안중식과 함께 최초의 중국 유학생으로 신문물을 경험한 개화 지식인이었으며, 조선 말기와 근대 화단을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하였다.
조석진 (趙錫晋)
조석진은 근대 1세대 동양화가를 배출한 미술 교육자이자, 전통시대와 근대를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한 화가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조정규에게 학문과 그림을 배웠다. 19세기 말부터 화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서화미술회 교수, 서화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안중식과 함께 최초의 중국 유학생으로 신문물을 경험한 개화 지식인이었으며, 조선 말기와 근대 화단을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하였다.
조속은 조선 후기 「고매서작도」, 「금궤도」, 「호촌연응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병조참판에 추증된 조수륜의 아들이며, 사대부 화가 조지운의 아버지이다. 광해군 때 아버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였으나, 1632년 인조반정 성공으로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청백리로 유명하였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청록산수화풍, 안견파 화풍, 절파 화풍, 남종문인화풍, 실경사생풍 등의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였다.
조속 (趙涑)
조속은 조선 후기 「고매서작도」, 「금궤도」, 「호촌연응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병조참판에 추증된 조수륜의 아들이며, 사대부 화가 조지운의 아버지이다. 광해군 때 아버지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였으나, 1632년 인조반정 성공으로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였다. 청백리로 유명하였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청록산수화풍, 안견파 화풍, 절파 화풍, 남종문인화풍, 실경사생풍 등의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였다.
최북은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이다. 문인과 교유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했으며, 안산 문인들의 후원 아래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남종화법을 완성했다.
최북 (崔北)
최북은 조선 후기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그린 최초의 여항 직업 화가이다. 문인과 교유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했으며, 안산 문인들의 후원 아래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강세황 등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남종화법을 완성했다.
최석환은 조선 후기 묵포도도를 주로 그린 화가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낭곡(浪谷), 별호는 고봉산인(古峰散人)이다. 전라도 임피에 살면서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현전하는 작품은 묵포도도를 비롯해 산수화, 사군자화, 영모화 등이 있는데, 묵포도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다.
최석환 (崔奭煥)
최석환은 조선 후기 묵포도도를 주로 그린 화가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낭곡(浪谷), 별호는 고봉산인(古峰散人)이다. 전라도 임피에 살면서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현전하는 작품은 묵포도도를 비롯해 산수화, 사군자화, 영모화 등이 있는데, 묵포도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다.
고성탈박물관은 2005년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에 설립된 탈 전문 공립 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탈 전문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와 아프리카를 비롯해 중국, 티베트, 몽골, 네팔,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탈 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탈 관련 연구를 통해 탈 문화의 다양성과 국가별 차이점을 전달하며 세계 탈 문화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또는 왜곡된 탈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성탈박물관 (固城탈博物館)
고성탈박물관은 2005년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에 설립된 탈 전문 공립 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탈 전문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와 아프리카를 비롯해 중국, 티베트, 몽골, 네팔,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탈 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탈 관련 연구를 통해 탈 문화의 다양성과 국가별 차이점을 전달하며 세계 탈 문화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또는 왜곡된 탈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헌종의 국장도감 등에 참여한 화가.
고진승 (高鎭升)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헌종의 국장도감 등에 참여한 화가.
해방 이후 국전 추천작가, 서예부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서화가.
구철우 (具哲祐)
해방 이후 국전 추천작가, 서예부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서화가.
일제강점기 「유하미인」·「청조」·「춘규」 등을 그린 화가.
김권수 (金權洙)
일제강점기 「유하미인」·「청조」·「춘규」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우후산수」·「난」·「매」 등을 그린 화가. 문인화가.
김우범 (金禹範)
일제강점기 「우후산수」·「난」·「매」 등을 그린 화가. 문인화가.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김유탁 (金有鐸)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개항기 「산수도」, 「쌍마인물도」, 「설중방우도」 등을 그린 화가.
김윤보 (金允輔)
개항기 「산수도」, 「쌍마인물도」, 「설중방우도」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송월학명」·「봉학도」 등을 그린 화가.
김창환 (金彰桓)
일제강점기 「송월학명」·「봉학도」 등을 그린 화가.
근⋅현대기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서화가.
김희순 (金熙舜)
근⋅현대기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서화가.
일제강점기 「호접도」·「호접탐화」·「부귀호접」 등을 그린 화가.
이경승 (李絅承)
일제강점기 「호접도」·「호접탐화」·「부귀호접」 등을 그린 화가.
대한제국기 「묵란」, 「노근묵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정치인.
민영익 (閔泳翊)
대한제국기 「묵란」, 「노근묵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