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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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법은 음악의 높이, 길이, 연주법 등을 기록하여 창작과 보존, 연주를 돕는 시각적 표기 체계이다. 음악의 요소를 기호로 기록하여 리듬·음정·템포 등 음악의 재현·창작을 돕는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오선보가 발달했으며, 한국에서는 정간보·육보·율자보·합자보 등 고유한 기보법이 발전했다. 한국의 기보법은 주로 음의 높이와 길이, 연주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보법은 오늘날 국악 연구와 교육에서 필수적이며, 전통 음악의 원형을 보존,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보법 (記譜法)
기보법은 음악의 높이, 길이, 연주법 등을 기록하여 창작과 보존, 연주를 돕는 시각적 표기 체계이다. 음악의 요소를 기호로 기록하여 리듬·음정·템포 등 음악의 재현·창작을 돕는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오선보가 발달했으며, 한국에서는 정간보·육보·율자보·합자보 등 고유한 기보법이 발전했다. 한국의 기보법은 주로 음의 높이와 길이, 연주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보법은 오늘날 국악 연구와 교육에서 필수적이며, 전통 음악의 원형을 보존,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마지는 조선 전기 장악원 전악을 역임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악학궤범』의 저자 성현과 안침, 채수 등의 거문고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마지의 거문고 음악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의 거문고 연주법은 『악학궤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지의 음악적 업적은 조선 전기 음악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시 상류층의 풍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마지 (李亇知)
이마지는 조선 전기 장악원 전악을 역임한 거문고 연주자이다. 『악학궤범』의 저자 성현과 안침, 채수 등의 거문고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마지의 거문고 음악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의 거문고 연주법은 『악학궤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지의 음악적 업적은 조선 전기 음악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시 상류층의 풍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학포금보』는 20세기 초 민간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이다. 민간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과 「여민락」 같은 풍류 음악과 가곡의 거문고 선율을 수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문고 연주 범례, 장구, 단소, 매화점 장단, 가곡의 각 수를 기록한 각표, 수파형 선율선 악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악보집은 『현학금보』와 『오희상금보』와 유사한 점이 많아 같은 계통의 음악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포금보 (學圃琴譜)
『학포금보』는 20세기 초 민간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이다. 민간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과 「여민락」 같은 풍류 음악과 가곡의 거문고 선율을 수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문고 연주 범례, 장구, 단소, 매화점 장단, 가곡의 각 수를 기록한 각표, 수파형 선율선 악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악보집은 『현학금보』와 『오희상금보』와 유사한 점이 많아 같은 계통의 음악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협률랑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궁중 의례에서 음악의 진행을 맡았던 관직명이다. 연주 조율, 연습 감독, 악대 배치, 연주 속도와 음악의 시작·종료를 신호하는 핵심적 실무를 맡아 의례의 완성도를 높였다. 고려시대에서 시작해 조선 성종 때 장악원 관원이 전담하는 체제로 정착했으며, 의례 성격에 따라 다른 관원이 대행하기도 하였다. 협률랑은 단순히 신호 관리를 넘어 의례와 음악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궁중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협률랑 (協律郎)
협률랑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궁중 의례에서 음악의 진행을 맡았던 관직명이다. 연주 조율, 연습 감독, 악대 배치, 연주 속도와 음악의 시작·종료를 신호하는 핵심적 실무를 맡아 의례의 완성도를 높였다. 고려시대에서 시작해 조선 성종 때 장악원 관원이 전담하는 체제로 정착했으며, 의례 성격에 따라 다른 관원이 대행하기도 하였다. 협률랑은 단순히 신호 관리를 넘어 의례와 음악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궁중 음악 전승에 기여하였다.
화방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망운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1636년(인조 14) 현재 위치로 옮겨 중창한 후 화방사라 불렀으며 18세기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해 충렬사를 수호하는 한편 제지와 서적 간인의 역을 수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옥종자와 이충무공 비문 목판이 전해졌으나 1981년 보광전의 화재로 소실되었고,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후기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건륭32년명 동종, 지장시왕탱과 아미타후불탱, 신중탱 등이 있다.
망운산 화방사 (望雲山 花芳寺)
화방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망운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1636년(인조 14) 현재 위치로 옮겨 중창한 후 화방사라 불렀으며 18세기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해 충렬사를 수호하는 한편 제지와 서적 간인의 역을 수행하였다. 고려시대의 옥종자와 이충무공 비문 목판이 전해졌으나 1981년 보광전의 화재로 소실되었고,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후기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건륭32년명 동종, 지장시왕탱과 아미타후불탱, 신중탱 등이 있다.
한금신보는 1724년 응천 후인이 자신의 거문고 스승인 한립의 악보를 토대로 편찬한 금보이다. 이 악보는 『금보신증가령』(1680년)과 『유예지』(1806~1813년 추정) 사이의 대엽류 가곡, 「보허자」, 「영산회상」 등의 거문고 음악의 변천과 18세기 전반 양반과 중인이 중심이 된 풍류방 음악의 일단을 밝히는 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한금신보 (韓琴新譜)
한금신보는 1724년 응천 후인이 자신의 거문고 스승인 한립의 악보를 토대로 편찬한 금보이다. 이 악보는 『금보신증가령』(1680년)과 『유예지』(1806~1813년 추정) 사이의 대엽류 가곡, 「보허자」, 「영산회상」 등의 거문고 음악의 변천과 18세기 전반 양반과 중인이 중심이 된 풍류방 음악의 일단을 밝히는 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이 들른 바가 있으며, 고려 말의 각유가 주지로 있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였으나 1862년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그 이후로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른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비로자나삼불회도, 건칠보살반가상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함월산 기림사 (含月山 祇林寺)
기림사는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이 들른 바가 있으며, 고려 말의 각유가 주지로 있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였으나 1862년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그 이후로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른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비로자나삼불회도, 건칠보살반가상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김룡사는 경상북도 문경시 운달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운달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사적은 1624년부터 확인된다. 많은 문자 기록물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사찰의 사역 형성 과정과 배치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1670년 사인비구가 제작한 동종과 1703년 조성된 영산회 괘불도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그 외에도 영산회상도, 사천왕도 등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운달산 김룡사 (雲達山 金龍寺)
김룡사는 경상북도 문경시 운달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운달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사적은 1624년부터 확인된다. 많은 문자 기록물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사찰의 사역 형성 과정과 배치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1670년 사인비구가 제작한 동종과 1703년 조성된 영산회 괘불도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그 외에도 영산회상도, 사천왕도 등 다수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백운암금보』는 17세기 전반 『양금신보』(1610)와 『신증금보』(1680) 사이의 시기에 거문고와 소의 음악을 기보한 악보이다. 이 악보는 거문고 음악을 합자보와 육보로 함께 기록하며, 「평단」을 최초로 소개한다. 특히 「소 평조계면조」는 다른 고악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악보로, 소의 연주법을 지공 번호와 구멍의 개폐 부호와 글자로 음의 높이를 표현하며, 연주 용어, 시가 용어, 셈여림 용어, 악상 용어 등이 사용되었다. 이 악보는 17세기 전반의 음악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백운암금보 (白雲庵琴譜)
『백운암금보』는 17세기 전반 『양금신보』(1610)와 『신증금보』(1680) 사이의 시기에 거문고와 소의 음악을 기보한 악보이다. 이 악보는 거문고 음악을 합자보와 육보로 함께 기록하며, 「평단」을 최초로 소개한다. 특히 「소 평조계면조」는 다른 고악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악보로, 소의 연주법을 지공 번호와 구멍의 개폐 부호와 글자로 음의 높이를 표현하며, 연주 용어, 시가 용어, 셈여림 용어, 악상 용어 등이 사용되었다. 이 악보는 17세기 전반의 음악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법주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후기인 1660년에 목조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하고 1690년에 주 법당인 보광명전을 새로 지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판석에 조각한 석불 입상이 있다. 보광명전의 용마루에서 다수의 불교 경전이 발견되었다.
청화산 법주사 (靑華山 法住寺)
법주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후기인 1660년에 목조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하고 1690년에 주 법당인 보광명전을 새로 지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판석에 조각한 석불 입상이 있다. 보광명전의 용마루에서 다수의 불교 경전이 발견되었다.
보문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낙가산(洛迦山)에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 중 하나인 사찰이다. 절의 연원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구체적인 역사는 조선 후기부터 전한다. 나한상이 봉안된 석실과 마애석불 좌상을 조각한 눈썹바위, 서역 고승이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천인대 등이 유명하다. 특히 석실과 석불 앞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신도들이 많이 찾는다.
낙가산 보문사 (洛迦山 普門寺)
보문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낙가산(洛迦山)에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 중 하나인 사찰이다. 절의 연원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구체적인 역사는 조선 후기부터 전한다. 나한상이 봉안된 석실과 마애석불 좌상을 조각한 눈썹바위, 서역 고승이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천인대 등이 유명하다. 특히 석실과 석불 앞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신도들이 많이 찾는다.
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터이다. 절의 창건은 구전에 의하면 선덕여왕 시기라고 하며, 조선시대의 기록과 발굴 조사의 성과, 절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 등을 근거로 8세기 초 성덕왕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1232년 몽고의 2차 침입으로 대장경은 소실되었다. 이후 중창과 소실을 반복했으며, 사지의 북쪽으로 새로운 부인사를 조성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팔공산 부인사지 (八公山 符仁寺址)
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터이다. 절의 창건은 구전에 의하면 선덕여왕 시기라고 하며, 조선시대의 기록과 발굴 조사의 성과, 절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 등을 근거로 8세기 초 성덕왕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1232년 몽고의 2차 침입으로 대장경은 소실되었다. 이후 중창과 소실을 반복했으며, 사지의 북쪽으로 새로운 부인사를 조성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천왕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3문(三門)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대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사천왕문은 그림 또는 조각으로 조성한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의 역할을 한다. 사찰로 들어서는 3문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여 절을 외호하는 동시에 출입하는 이로 하여금 절이 청정 도량임을 인식하게 한다.
사천왕문 (四天王門)
사천왕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3문(三門)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대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사천왕문은 그림 또는 조각으로 조성한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의 역할을 한다. 사찰로 들어서는 3문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여 절을 외호하는 동시에 출입하는 이로 하여금 절이 청정 도량임을 인식하게 한다.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선불장을 열었으며, 1472년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가 크게 중창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608년부터 10여 년 동안 중창이 이어졌다. 이후 중건과 중수가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3건의 지장보살상 외에도 다수의 지정문화재(현, 지정문화유산)가 있다.
도솔산 선운사 (兜率山 禪雲寺)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선불장을 열었으며, 1472년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가 크게 중창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608년부터 10여 년 동안 중창이 이어졌다. 이후 중건과 중수가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3건의 지장보살상 외에도 다수의 지정문화재(현, 지정문화유산)가 있다.
성흥사(聖興寺)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팔판산(八判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진해구 팔판산 자락에 자리잡았으며, 18세기 후반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되었다. 17세기 조각승 희장이 제작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제자 자수가조성한 나한상,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 등이 있다.
팔판산 성흥사 (八判山 聖興寺)
성흥사(聖興寺)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팔판산(八判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진해구 팔판산 자락에 자리잡았으며, 18세기 후반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되었다. 17세기 조각승 희장이 제작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제자 자수가조성한 나한상,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 등이 있다.
『속악원보』는 조선 정조 이후에,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인 장악원에서 편찬한 7권 5책의 관찬 악보이다. 이 악보는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악후보』와 현행의 한국 전통 음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음악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 중요한 문헌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이 악보는 종묘제례악의 변화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며, 1음 1박으로 변화한 모든 궁중음악의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악보이지만,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의도적인 변화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속악원보 (俗樂源譜)
『속악원보』는 조선 정조 이후에,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인 장악원에서 편찬한 7권 5책의 관찬 악보이다. 이 악보는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악후보』와 현행의 한국 전통 음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음악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 중요한 문헌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이 악보는 종묘제례악의 변화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며, 1음 1박으로 변화한 모든 궁중음악의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악보이지만,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의도적인 변화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수다사(水多寺)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감국사가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연악산(淵岳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수다사에 1만여 명의 의승이 모여 의국법회를 개설했다. 18세기 초의 화재로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명부전 요사채 외에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1649년에 조성된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1731년에 제작된 영산회상도, 1772년에 제작된 동종 등이 전한다.
연악산 수다사 (淵岳山 水多寺)
수다사(水多寺)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감국사가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연악산(淵岳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수다사에 1만여 명의 의승이 모여 의국법회를 개설했다. 18세기 초의 화재로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명부전 요사채 외에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1649년에 조성된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1731년에 제작된 영산회상도, 1772년에 제작된 동종 등이 전한다.
『신증금보』는 1680년에 장악원의 악관이었던 신성에 의해서 편찬된 거문고 악보이다. 서문에 해당하는 ‘금보신증가령’에는 『악학궤범』을 참고하여 거문고 관련 이론적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거문고 악보는 『신증금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악보의 중요한 특징은 「중대엽」·「북전」·「삭대엽」과 같은 곡들이 평조·평조계면조·우조·우조계면조의 4조를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중대엽」과 「삭대엽」은 1·2·3의 분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초기 가곡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증금보 (新證琴譜)
『신증금보』는 1680년에 장악원의 악관이었던 신성에 의해서 편찬된 거문고 악보이다. 서문에 해당하는 ‘금보신증가령’에는 『악학궤범』을 참고하여 거문고 관련 이론적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거문고 악보는 『신증금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악보의 중요한 특징은 「중대엽」·「북전」·「삭대엽」과 같은 곡들이 평조·평조계면조·우조·우조계면조의 4조를 모두 기록하고 있으며, 「중대엽」과 「삭대엽」은 1·2·3의 분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초기 가곡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악장요람』은 조선 순조 시대 궁중 의례에서 불리는 노랫말, 즉 악장(樂章)을 선별하여 필사한 1책 46면(23장)의 책이다. 이 책은 노랫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가창할 수 있게 악인을 교습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책의 전반부에는 악장이, 후반부에는 악보(樂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이원화된 구조는 정조 시대에 구축된 것이다. 필체와 수록된 가사의 작성된 시기를 통해 『악장요람』은 1809년 경에 작성된 후에도 3차례에 걸쳐 수정되어 현재의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악장요람 (樂章要覽)
『악장요람』은 조선 순조 시대 궁중 의례에서 불리는 노랫말, 즉 악장(樂章)을 선별하여 필사한 1책 46면(23장)의 책이다. 이 책은 노랫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가창할 수 있게 악인을 교습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책의 전반부에는 악장이, 후반부에는 악보(樂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이원화된 구조는 정조 시대에 구축된 것이다. 필체와 수록된 가사의 작성된 시기를 통해 『악장요람』은 1809년 경에 작성된 후에도 3차례에 걸쳐 수정되어 현재의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안상은 조선 전기 명종(재위: 1545-1567년) 때 장악원(掌樂院)의 첨정(僉正)을 역임한 문관이자 『금합자보(琴合字譜)』 편찬자이다. 1561년 장악원에서 홍선종 악사와 허억봉, 이무금의 도움을 받아 『금합자보』를 편찬하였고, 1572년 덕원부사 시절에 간행하였다. 『금합자보』는 여러 악곡의 거문고 악보를 오음약보, 합자보, 육보 등의 형태로 제시한 것으로, 악기 연주법과 구음, 노랫말, 장구와 북의 연주법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일부 악곡은 관악기인 적 악보가 오음약보와 육보로 병기되어 있다.
안상 (安瑺)
안상은 조선 전기 명종(재위: 1545-1567년) 때 장악원(掌樂院)의 첨정(僉正)을 역임한 문관이자 『금합자보(琴合字譜)』 편찬자이다. 1561년 장악원에서 홍선종 악사와 허억봉, 이무금의 도움을 받아 『금합자보』를 편찬하였고, 1572년 덕원부사 시절에 간행하였다. 『금합자보』는 여러 악곡의 거문고 악보를 오음약보, 합자보, 육보 등의 형태로 제시한 것으로, 악기 연주법과 구음, 노랫말, 장구와 북의 연주법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일부 악곡은 관악기인 적 악보가 오음약보와 육보로 병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