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한장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한장석은 홍석주의 외손이며 봉서 유신환의 문인으로서 문형을 역임하고 당시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미산집』은 장남 한광수의 수집과 김인식의 교정과 산삭을 거치고, 다시 문인 이용신이 교정하고, 연보를 추가하여 1907년에 연활자로 처음 간행하였다. 이후 저자의 시문을 증보하고 권책도 새로 분류 편차하여 손자 하상기가 1934년에 경성에서 14권 7책의 연활자로 중간하였다.
한장석(韓章錫, 1832~1894)은 자는 치수(穉綏)·치유(穉由), 호는 미산(眉山)·경향(經香),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홍석주(洪奭周)의 외손이고, 한필교(韓弼敎)의 아들이다. 유신환(兪莘煥)의 문인으로 민태호(閔台鎬), 서응순(徐應淳) 등과 교유하였다.
1872년(고종 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86년 2월 홍문관제학, 같은 해 3월 예조판서, 1888년 형조판서, 1889년 이조판서, 같은 해 12월에 다시 예조판서, 이듬해 3월 함경도관찰사, 1891년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문형(文衡)을 역임하고 고종(高宗)의 묘정(廟庭)에 배향된 인물로서 김윤식(金允植), 민태호(閔台鎬)와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14권 7책. 연활자본.
한장석은 1871년(고종 8)에 지은 자서(自序)에 따르면 생전에 자신의 시문(詩文)을 정리해 둔 가장초고(家藏草稿)가 있었던 듯하다. 장남 한광수(韓光洙)는 1898년에 가장초고를 김인식(金寅植)의 교정(校正)과 산삭(刪削)을 거친 다음 신응조(申應朝)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문인 이용신(李庸信)이 김인식이 교정한 문집에 1906년(광무 10)에 편찬한 연보(年譜)를 붙여 1907년에 연활자(鉛活字)로 문집을 인행하였는데, 이것이 초간본이다.
그 후 차남 한창수(韓昌洙)가 초간본에 수록되지 않은 저자의 시문을 증보하고 다시 편차한 다음, 연보에 신미년(1931) 기사를 추가하여 1931년에 새로 문집을 완성하였다. 이것을 손자 한상기(韓相琦)가 1934년에 경성(京城)에서 14권 7책의 연활자로 인행하였다. 이것이 중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신응조의 서문, 유신환의 『삼관필경(三觀筆耕)』 서문 및 자서(自序)가 있다.
권1~2는 사부(辭賦) 2편, 시 49수이다. 시는 민태호, 황규호(黃奎鎬), 김영수(金永壽) 등의 제우(諸友)들과 교유하며 지은 것과 외조부 홍석주의 구택(舊宅)인 광진(廣津) 임한정(臨漢亭)에서 소회를 읊은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시강원 문학으로 춘방(春坊)에서 직숙(直宿)할 때의 시를 비롯하여 금강산 장안사, 개경(開京), 평양(平壤)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가 많다.
권3~4는 시 56수, 서(書) 30편이다. 1891년(고종 28)에 선원전(濬源殿), 덕릉(德陵), 안릉(安陵) 등을 봉심(奉審)하러 관북(關北)에 갔을 때 지은 기행시와 동궁의 생신 때 어제(御製)에 갱진(賡進)한 시, 신정왕후(神貞王后)의 만장(輓章) 등이 있다. 서에는 스승 유신환을 비롯해 종유(從遊)하던 당대의 명사들인 서응순(徐應淳)·신응조· 김학진(金鶴鎭) 등과 학문을 논하고 문장을 토론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김준혁(金駿赫)에게 답한 별지는 사단(四端)·도(道)와 『중용』에 대한 논변들이다.
권5~6은 서(書) 8편, 소계(疏啓) 26편, 응제문(應製文) 33편 등이다. 소·계에는 사직소(辭職疏)와 당시의 시폐를 진언한 것이 많다. 명의 「심경재명(心鏡齋銘)」은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아 물욕에 가리면 자신의 선불선(善不善)을 살필 수 없는 것이므로, 거울처럼 환히 비칠 수 있어야 미세한 것까지도 살펴보게 된다고 자경(自警)하였다.
권7~8은 서(序) 33편, 기(記) 26편 등이다. 서는 주로 송서(送序), 수서(壽序), 족보서(族譜序), 문집서(文集序), 지서(誌序), 자서(自序) 등이고, 이 가운데 「남행집소서(南行集小序)」는 1869년 익산(益山)에 귀양 가 있던 부친을 찾아뵙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지은 근체고시(近體古詩) 38편을 수록한 『남행집(南行集)』에 대한 서문이다.
권9~10은 제발(題跋) 6편, 명(銘) 8편, 찬(贊) 3편, 잠(箴) 1편, 상량문(上樑文) 4편, 강의(講義) 5편, 잡저(雜著) 22편 등이다. 잡저 가운데 「독사(讀史)」는 주로 한사(漢史)를 읽고 쓴 독후감으로, 저자의 사관(史觀)을 엿볼 수 있다. 「정론(政論)」은 용법(用法)·선거(選擧)·친현(親賢)·위군(爲君)·전제(田制)·심관(審官) 등의 조목으로 나누어 정치에 대한 포부와 경륜을 피력한 것으로, 저자의 정치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권11~12는 제문(祭文) 29편, 애사(哀詞) 2편, 비(碑) 3편, 묘갈(墓碣) 8편, 묘지(墓誌) 13편 등이다. 제문은 유신환과 서응순 등을 제사하는 글과 외조부 홍석주, 부친 한필교 등 일가친척을 제사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권13~14는 묘표(墓表) 5편, 행장(行狀) 4편, 시장(諡狀) 1편, 가장(家狀) 2편, 부록으로 연보가 있다. 묘표는 부친 한필교와 모친 풍산홍씨 등에 대한 것이다.
권13 끝에 1898년에 지은 김인식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14는 부록으로 이용신이 지은 연보와 연보발(年譜跋)이 실려 있다. 연보 기사 내용 안에 아들 한광수가 지은 가장, 이설(李偰)이 지은 묘갈(墓碣)과, 묘표(墓表), 김돈희(金敦熙)가 지은 묘지명(墓誌銘), 이용원(李容元)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말에는 1934년에 간행된 사실 등이 적혀 있는 판권지가 첨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