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도갑사 해탈문 ( )

영암 도갑사 해탈문 정면
영암 도갑사 해탈문 정면
건축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사찰건물. 산문. 국보.
내용 요약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있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사찰 건물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도갑사는 880년(헌강왕 6)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몇 번의 소실과 중창을 거쳤다. 해탈문은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473년(성종 4)에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맞배집이다. 정면에는 ‘월출산도갑사’라 쓴 현판이, 반대편에는 ‘해탈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도갑사 해탈문은 희소적 가치가 높은 산문이다. 공포의 구성, 가구 수법 등 오래된 건축 수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사찰건물. 산문. 국보.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영암 월출산 자락에 있다. 해탈문은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면에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본래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보물. 1992년 지정)을 모셨으나 이 상들은 현재 도선국사유물전시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대신 지금은 금강역사상 2구를 모시고 있다. 해탈문은 1960년 해체 · 수리할 때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1473년(성종 4)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역사적 변천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도갑사는 880년(헌강왕 6) 도선국사가 문수암이 있던 자리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미륵전에 봉안된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대웅전 앞에 있는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보물, 2005년 지정), 석등 대좌 등 여러 유적 등을 볼 때 11세기에 대규모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사세가 크게 기울었으나 1457년(세조 3)부터 신미(信眉)수미(守眉) 두 스님이 왕실의 지원을 받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창불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도갑사는 12개의 암자를 거느리며 966칸이나 되는 큰 사찰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말았다. 1835년(헌종 원년) 호암화상이 다시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과 1977년 화재로 명부전과 해탈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또다시 소실되었다. 현재 도갑사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1981년 이후에 다시 세운 것들이다.

해탈문은 상량문(上樑文)에 1473년(성종 4)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 공사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60년에 해체 · 보수되었고 1971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해탈문의 부분적인 보수와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

내용

도갑사 해탈문은 도갑사의 산문으로, 가운데 칸은 출입을 위해 개방되었고 좌우 협칸(夾間)에는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였다. 이 건물은 평면과 구조 때문에 사천왕상을 모신 사천왕문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발굴조사에서 현 건물의 뒤쪽 25m 지점에서 사천왕문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맞배집이다. 2중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헛첨차가 사용된 주심포 형식으로 바깥에 출목(出目)이 있다.

가구(架構) 구조는 5량 형식이다. 전면과 배면의 공포 위에 주1를 걸고 대들보 위에는 주2을 짜서 주3를 걸었다. 포대공에는 주4이 결구되어 주5를 받치고 있다. 종보의 양 끝에는 주6를 올렸으며 중앙에는 접시대공을 놓아 주7를 받쳤다. 종도리와 종보 상부에는 인(人)자형 소슬합장을 결구하여 종도리를 보강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천장은 반자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한 연등천장이다.

특징

이 건물은 주심포집이지만 마치 다포집처럼 기둥머리에 있는 공포와 종도리와 대들보를 받치는 포대공의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공포는 기둥머리에 주8가 사용된 형식으로 주9 밑에 주10를 사용하지 않은 특징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주심포(柱心包)의 건축수법을 따르면서 부분적으로는 다포계(多包係) 건축수법을 반영한 특징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도갑사 해탈문은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1963년 지정)과 함께 희소적 가치가 높은 산문(山門)이다. 건립연대는 1473년으로 공포의 구성, 가구 수법 등에서 오래된 건축수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붕부의 가구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1962년 지정)과 비교할 수 있으며, 공포의 모습은 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1962년 지정), 순천 송광사 국사전(국보, 1962년 지정) 및 하사당(보물, 1963년 지정) 등과 비교할 수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다.

참고문헌

『한국의건축문화재 전남편』(전봉희 · 천득염, 기문당, 2002)
「도갑사해탈문 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5)
「도갑사 해탈문」(문화재관리국 편, 『한국의 고건축』1, 국립문화재연구소, 1973)
도갑사(www.dogapsa.org)
주석
주1

작은 들보의 하중을 받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우리말샘

주2

대들보나 마룻보 위에 포작(包作)으로 짜서 세운 대공. 우리말샘

주3

대들보 위의 동자기둥 또는 고주(高柱)에 얹히어 중도리와 마룻대를 받치는 들보. ⇒규범 표기는 ‘마룻보’이다. 우리말샘

주4

가재 꼬리 모양으로 굽은 보. 우리말샘

주5

기둥의 중심 위에서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도리. 우리말샘

주6

동자기둥에 얹어서 서까래나 지붕널을 받치는 가로재. 우리말샘

주7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우리말샘

주8

기둥머리를 뚫고 내밀어 소로를 얹은 위에 초제공을 받는 주심포계 공포재. 우리말샘

주9

서까래를 얹기 위하여 기둥의 중심선 바깥쪽에 걸치는 도리. 우리말샘

주10

공포에서 외목도리와 장여를 받치는 첨차. 우리말샘

집필자
홍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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