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세조 대에, 생육신으로 널리 알려진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하자, 사찰의 승려들이 그의 영각(影閣)을 짓고 초상을 봉안했다. 그 뒤 부여의 사족이 김시습의 절개를 기리며 향교(鄕校) 옆에 사당을 짓고 청일사(淸逸祠)라 이름 지은 후, 초상을 옮겨 모셨다. 조선 전기에 무량사에서는 많은 경판을 판각했는데, 1498년(연산군 4)에 『법계성풍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風水陸勝會修齋儀軌)』, 1522년(중종 17) 『몽산화상육도보설(夢山和尙六道普說)』, 1470년에서 1494년 사이에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源經)』이 간행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생불로 칭송되던 진묵 일옥(震默一玉, 15621633)이 무량사의 아미타불 조성 불사를 주관했다고 전한다. 극락전(極樂殿)에 아미타여래삼존 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복장 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이 1633년에 완성했다. 극락전 앞의 나말여초 시기의 석등과 고려 전기의 오층석탑, 절 문 앞의 당간지주, 김시습의 부도 등이 무량사의 오랜 역사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 출토된 금동불상 일괄, 석등, 극락전과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1627년에 그려진 미륵불 괘불탱, 김시습 초상, 1654년에 제작된 삼전패(三殿牌) 등 다수가 있다.